아름답게 읽는다



  겉으로만 본다면 ‘아름다움’과 ‘그럴듯함’은 거의 똑같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빛을 고스란히 흉내내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아름다움과 그럴듯함은 따로 있지 않다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그럴듯한지 헤아려 봅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눈을 감고 바라보는 하늘빛이 아름다울까요. 눈을 감고 마주하는 꽃빛이 아름다울까요. 눈을 감고 들여다보는 얼굴빛이 아름다울까요. 눈을 감은 나한테는 어떠한 빛이 보일까요.


  귀를 닫고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닫고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귀를 닫고 물 흐르는 소리와 아이들 놀이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무엇이 아름다울까요. 귀를 닫은 나한테는 어떤 소리가 들릴까요.


  참다운 결이 스며서 드러난다면 아름다움일 테고, 참답지 않다면, 그러니까 거짓스럽다면 그럴듯함이 되겠지요. 그러면, 나는 언제 참과 거짓을 알아볼까요. 나는 어떻게 참과 거짓을 헤아릴까요.


  눈을 감은 사람한테는 높이가 없습니다. 눈을 감은 사람한테는 너비가 없습니다. 눈을 감은 사람한테는 깊이가 없습니다. 귀를 닫은 사람과 코를 막은 사람한테도 높이와 너비와 깊이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우리들은 아름다움과 그럴듯함을 어떻게 가리거나 살필 만할까요.

  겉보기로는 모두 책입니다. 겉보기로는 모두 이야기입니다. 겉보기로는 모두 생각꾸러미요, 슬기로운 열매이고, 재미난 노래입니다.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속에는 무엇을 담을까요.


  ‘빛’으로 둘러친 책과 ‘사랑’으로 여민 책을 알아보는 넋은 어떤 사람한테 있을까 궁금합니다. ‘소리’를 입힌 책과 ‘꿈’으로 가꾼 책을 알아차리는 넋은 어떤 사람한테서 샘솟을까 궁금합니다.


  책 하나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이룬 삶이 될 때까지, 어느 것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저 책 하나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꿈으로 가꾼 삶으로 나아갈 때까지, 어디에도 대수로운 것은 없습니다.


  아름다운 덫에 걸리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덫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그예 맴돌기만 한대서 나쁘지 않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덫에 묶일 적에는 아름다운 빛이 밥을 주고 잠자리를 줄 테니, 언제까지나 그곳에 머물러도 굶을 일은 없습니다.


  손에 책을 한 권 쥡니다. 아름답지도 않고 안 아름답지도 않은 책을 한 권 쥡니다. 사랑으로 엮은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낍니다. 다만, 나 스스로 사랑을 바라고 생각하며 꿈꿀 때에 사랑을 알아채면서 즐겁게 누립니다. 나 스스로 사랑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사랑으로 엮은 책인 줄 알아보지 못합니다.


  둘레에 있는 숱한 책을 쓰다듬습니다. 멋있고 값있으며 놀라운 책을 쓰다듬습니다. 눈부신 책이 많으며, 대단한 책이 많습니다. 이 많은 책들은 도서관에 꽂힐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새책방을 그득 채울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무엇인가 읽고 싶은 사람들한테 넉넉히 도움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돈이 얼마나 많아야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책이 얼마나 많아야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돈을 가져야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돈을 어떻게 쓸 때에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하다가, 읽은 책을 어떻게 삭힐 때에 삶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늘 이곳에 머문 채 ‘새로운 아름다운 책’을 찾아 책더미를 헤맬 만합니다. 나는 늘 새롭게 눈을 뜨며 ‘사랑을 날마다 가꾸는 삶’으로 나아갈 만합니다. 어느 쪽이든 스스로 고르는 길입니다. 옳거나 그른 길은 없습니다. 빛을 보려 하기에 빛을 보고, 삶을 보려 하기에 삶을 보며, 사랑을 보려 하기에 사랑을 봅니다. 4347.8.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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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이



  책이 겹겹이 있습니다. 수많은 책이 겹겹이 쌓입니다. 내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책이 있고, 내 손길을 끄는 책이 있으며, 내 마음길이 다가가려는 책이 있습니다. 모든 책을 다 골라도 되지만, 모든 책을 다 고르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책을 다 읽는 일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책만 읽으며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겹겹이 있는 책들 가운데 살피고 가리며 추립니다. 나한테 찾아와서 환하게 빛날 책을 생각하고 헤아리며 돌아봅니다.


  겹겹이 있는 책은 예쁘장합니다. 책등만 보일 수 있고, 책겉이 다 보일 수 있으며, 책등도 책겉도 안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잘 보이기에 그 책을 고르지는 않습니다. 다른 책 밑에 깔려서 잘 안 보이는 책이더라도, 나는 언제나 내 마음에 와닿을 책을 찬찬히 살핍니다.


  어느 책이 나한테 찾아올까요. 나는 어느 책을 맞아들일까요. 나한테 새로운 하루는 어떠한 삶일까요. 나는 어떠한 이야기를 날마다 새롭게 누리고 싶을까요. 겹겹이 쌓인 책 가운데 내 아름다운 나날을 들여 즐겁게 읽을 책 몇 권을 손에 쥡니다. 4347.8.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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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왜 자꾸 읽는가



  어떤 사람은 책을 자꾸 읽습니다. 왜 자꾸 읽을까요. 자꾸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꾸준히 읽습니다. 왜 꾸준히 읽을까요. 꾸준히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새롭게 읽습니다. 왜 새롭게 읽을까요. 새롭게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안 읽습니다. 안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멀리합니다. 책을 멀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등집니다. 등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을는지 모르지만, 속보기로는 사뭇 다릅니다. ‘자꾸’ 읽을 때와 ‘꾸준히’ 읽을 때와 ‘새롭게’ 읽을 때에는 참으로 다릅니다. 같은 책을 열 차례 읽는데, 그저 ‘자꾸’ 읽는다면 무엇을 얻을까요? ‘꾸준히’ 읽을 때하고 ‘새롭게’ 읽을 때에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책을 안 읽더라도 그냥 ‘안’ 읽을 때하고 ‘멀리할’ 때하고 ‘등질’ 때는 더없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경상도 밀양 송전탑 이야기를 모르쇠로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멀리합’니다. 누군가는 ‘등질’ 테지요. 경상도 밀양에는 송전탑 때문에 말썽이 있으나, 전국 곳곳에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와 골프장과 온갖 나쁜 것들 때문에 말썽이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터지는 온갖 아픈 일들에 우리는 얼마나 마음을 기울일까요? 어느 한 곳에만 마음을 기울이면 될까요? 몇 군데에만 마음을 쓰면 될까요? 내가 사는 곳하고 가까운 곳이라든지, 내가 아는 사람이 돕는 일만 마음을 두면 될까요?


  어떤 모습을 가르치거나 일깨우려고 다시 되풀이하는 삶이 있습니다. 한자말로는 ‘윤회’라고 합니다. 윤회란 쳇바퀴질입니다.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가 똑같이 달릴 수밖에 없듯이, 사람도 쳇바퀴에 갇히면 똑같이 살기를 되풀이합니다. 쳇바퀴질을 멈추면 바깥으로 나올 수 있으나, 다람쥐도 사람도 바르게 살피지 못하니 깨닫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터라 삶을 바꾸지 못합니다.


  날마다 늘 새롭게 피어나면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될 때에 비로소 ‘삶’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삶이 될 때에는 책읽기가 언제나 ‘새롭게 읽는 삶’입니다. 삶이 될 때에는 노래하기가 언제나 ‘새롭게 노래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삶을 찾고 삶을 이루는 사랑을 느껴서 밝히는 빛이로구나 하고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지식으로만 머릿속에 넣는 책읽기라면 쳇바퀴질하고 똑같습니다. 회사나 예배당을 그저 다니기만 하는 모습도 쳇바퀴질하고 똑같습니다.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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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은 오래 묵어야 기름진 흙이 돼요. ‘새 흙’이란 없습니다. 켜켜이 쌓이고 묵으면서 삭은 오래된 흙이 풀과 꽃과 나무를 살찌웁니다. 흙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햇볕을 골고루 받아먹은 뒤 푸른 숨결을 내놓고는, 나뭇가지에서 톡 떨어져 가랑잎이 되면, 흙에서 삭아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에서 태어난 풀벌레가 흙에 뿌리를 내린 풀잎과 풀열매를 먹고 살다가 어느새 흙에 살포시 안겨 흙으로 돌아갑니다.


  한두 해를 묵거나 삭아서는 기름진 흙이 되지 않습니다. 열 해나 스무 해를 묵거나 삭으며 비로소 기름진 흙이 됩니다. 백 해나 이백 해를 묵거나 삭으며 아름다운 흙이 되고, 즈믄 해 즈음 묵거나 삭을 때에 짙푸른 숲을 이루는 사랑스러운 흙이 됩니다.


  사람들이 이루는 삶은 얼마나 삭거나 묵었을까요. 사람들이 빚는 글이나 노래나 이야기는 얼마나 삭거나 묵었을까요. 흙과 마찬가지로 사람들 삶도 오래도록 삭거나 묵으면서 아름다운 빛이 서리리라 느낍니다. 흙처럼 사람들 삶도 두고두고 삭거나 묵는 동안 시나브로 사랑스러운 빛으로 거듭나리라 느낍니다.


  책은 오래될수록 아름답게 빛납니다. 오래도록 읽히고 되읽힐 수 있는 책은 한결같이 사랑스레 빛납니다. 한 번 읽고 내려놓는 책도 있기는 할 테지만, 모름지기 책이라 할 때에는, 즈믄 해에 다시 즈믄 해가 찾아와서 사람들 마음자리에 환한 숨결로 푸르게 노래하는 빛을 품은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4347.8.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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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길에는



  아이들과 골짝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우리 집 아이들은 골짜기를 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나무를 안다. 우리 집 아이들은 풀벌레를 알고, 멧새를 알며, 개구리를 안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은 야구나 축구나 농구나 배구를 모른다. 우리 집 아이들은 연속극을 모르고, 코미디 방송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본 적이 없으니 알 길이 없고, 이런 것들을 마주한 적이 없으니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


  어버이가 야구를 좋아하거나 연속극을 좋아한다면 으레 이런 것을 보리라. 그러면, 아이들도 으레 야구나 연속극을 만날 테니, 차츰 눈여겨볼 테지. 아이들은 이런 것을 좋아할 수 있으나 안 좋아할 수 있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본다. 아이들은 어버이인 내가 고르고 장만한 그림책을 본다. 어버이로서 내가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그림책을 골라서 장만했으면, 아이들은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빛이 서린 그림책을 읽는다. 어버이라 하지만 그림책을 찬찬히 살피기보다 ‘추천도서’라든지 ‘책방에서 잘 보이는 데 놓은 책’만 덥석덥석 사서 갖춘다면, 아이들은 또 이 그림책들만 만난다.


  자동차가 수없이 밀려다니는 도시에서 살림을 꾸리면, 아이들은 이런 모습에 익숙하다. 자동차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시골에서 살림을 꾸리면, 아이들은 찻길에서도 한복판을 거침없이 달리면서 논다.


  우리는 어떤 삶으로 가는 길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사랑하고픈 길을 걷는가.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으로 가는 길이 될까.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어떤 빛을 물려받으면서 저희 삶을 사랑하는 하루를 누릴까. 4347.8.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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