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살아온 나이



  쉰 해를 살아온 책이 있고 오백 해를 살아온 책이 있다. 열다섯 해를 살아온 책이 있고 다섯 해를 살아온 책이 있다. 나는 어느 책을 골라서 읽는가? 나는 어느 책에 눈길을 두면서 가만히 바라보는가?


  오백 해를 묵은 책이 있대서 그 책을 바라볼 일은 없다. 오천 해를 묵은 책이 있대서 그 책을 쳐다볼 일은 없다. 나는 내가 바라볼 책을 본다. 내가 바라볼 책은 내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다. 내가 쳐다볼 책은 내 마음을 건드려 내가 스스로 생각을 열어젖히도록 이끄는 책이다.


  책이 살아온 나이는 얼마나 대단할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오백 해나 천 해쯤 묵은 책이 있다면 여러모로 값어치가 있으리라. 그런데, 나이값으로 헤아리는 값어치 말고, 무슨 값어치를 헤아리면 즐거울까? 이를테면 《월간조선》이나 《한겨레21》 같은 잡지도 앞으로 오백 해쯤 묵으면 대단한 값어치가 있는 책으로 여겨도 될까? 모든 시집과 소설책을 앞으로 천 해쯤 묵혀 대단한 값어치가 있다고 내세워도 즐거울까?


  어느 책은 오백 해가 아닌 다섯 해가 흘러도 빛이 난다. 어느 책은 다섯 해가 아닌 닷새가 흘러도 빛이 난다. 어느 책은 열다섯 해가 흐르거나 천오백 해가 흐르더라도 빛이 안 난다.


  책은 ‘나무를 베어 얻은 종이’라는 껍데기보다, ‘종이를 묶어서 빚은 이야기꾸러미’라는 속살로 따진다고 느낀다. 이야기를 읽으려고 책을 장만한다. 이야기를 나누려고 책방을 열고 도서관을 꾸린다. 이야기를 물려주려고 책을 읽어 아이들한테 조곤조곤 노래를 부른다.


  읽을 책을 읽으면 된다. 사라질 책은 없다. 종이가 바스라지는 책은 흙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돌아간 책은 나무 한 그루가 새롭게 자라도록 돕는 밑거름이 된다. 나무 한 그루가 새롭게 자랐으면 고맙게 베어서 새로운 책을 즐겁게 엮는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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