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38. 밤빛


  사진에 담는 빛은 두 가지입니다. 하는 ‘낮빛’이고, 둘은 ‘밤빛’입니다. 낮빛만 있다면 사진을 못 찍습니다. 밤빛이 함께 있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이론이나 실기에서는 으레 ‘어둠·빛’이라 하거나 ‘흑·백’이라 하거나 ‘명·암’이라 하지만, 이런 말마디로는 사진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어둠은 그냥 어둠이 아니고, ‘흑’과 ‘암’도 그냥 흑과 암이 아닙니다. 한겨레는 예부터 까망이나 검정도 ‘까망빛(까만빛)’이나 ‘검정빛(검은빛)’이라 했어요. 어둠이나 밤은 아무것도 없는 결이 아니요, 아무런 빛도 없는 결이 아닙니다. 어둠은 ‘어둠빛’이요, 밤은 ‘밤빛’입니다.

  무지개빛으로 찍는 사진은 수없이 다른 빛깔을 골고루 어우르면서 이룹니다. 무지개빛은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우러진다고 할 만한데, 빛깔도 그냥 빛깔이 아닙니다. 빛마다 다른 결을 살펴서 찍는 사진이 ‘무지개빛 사진’입니다. ‘칼라’나 ‘총천연색’이라는 말마디로는 사진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흑백’이나 ‘칼라’로 사진을 나누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흑백과 칼라로 사진을 나누는 버릇은, 캐논 사진기와 니콘 사진기로 사진을 나누는 버릇하고 똑같습니다. 펜탁스로 찍으니 훌륭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롤라이를 써야만 놀라운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흑백사진이기에 더 훌륭하지 않고, 칼라사진이기에 더 놀랍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사진을 할 뿐이고, 사진에 담는 두 가지 빛인 낮빛과 밤빛을 저마다 아름다운 손길로 가다듬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로 태어나도록 갈무리를 합니다.

  밤빛을 읽으면서 낮빛을 읽습니다. 낮빛을 읽으면서 밤빛을 읽습니다. 빛은 그냥 빛이 아닌 줄 알아차리면서 바라볼 적에 사진으로 가는 길을 밝힙니다. 4348.3.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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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37. 봄꽃과 겨울꽃



  봄에 피어나기에 봄꽃입니다. 겨울에 피기에 겨울꽃입니다. 봄에는 따스한 봄볕을 쬐고 보드라운 봄바람을 쐬면서 봄꽃이 핍니다. 겨울에는 차갑고 거친 볕과 바람을 맞아들이면서 겨울꽃이 핍니다. 그런데, 봄꽃이 가끔 겨울에도 핍니다. 그러면, 이 봄꽃은 봄꽃이 될까요, 겨울꽃이 될까요. 한겨울에 꽃송이를 내미는 이 꽃한테는 어떤 이름을 붙여 주어야 할까요.


  봄에 피어나는 꽃이 가을에도 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민들레꽃은 봄민들레와 가을민들레가 있습니다. 봄철 가운데 아주 이른 봄에 피는 꽃은 겨울 막바지부터 꽃송이를 내미는데, 이 봄꽃은 가을이 저물고 겨울로 접어드는 철에도 피기 일쑤입니다. 겨울이 저무는 봄과 겨울로 다가서는 가을은 볕과 바람과 날씨가 엇비슷하거든요. 게다가, 이 들꽃이 겨울 첫무렵에 처음 꽃송이를 내밀면, 한겨울을 지나고 봄이 올 때까지 안 시들고 씩씩하게 버팁니다. 이러면서 새봄에 다시금 꽃송이를 벌려요.


  사진이면 모두 사진입니다. 이것은 사진이고 저것은 사진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사진은 어떤 사진이고 저 사진은 어떤 사진이 될까요. 우리는 두 가지 사진을 바라보면서 저마다 어떤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두 가지 사진에 붙이는 이름은 사진에 걸맞을까요. 아니면, 우리는 두 가지 사진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채 섣불리 이름을 붙이지는 않을까요. 게다가, 두 가지 사진은 서로 다르면서도 같고, 서로 멀리 떨어진 듯하면서도 늘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요. 이때에 우리는 두 가지 사진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문화나 예술은 똑 떨어진 채 있지 않습니다. 이것만 문화이고 저것만 예술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문화가 되는 문화는 없고, 오직 예술이 되는 예술은 없습니다. ‘전문 문화’나 ‘전문 예술’이란 없습니다. 삶이 있을 때에, 삶은 삶이면서 문화가 됩니다. 삶이 있기에, 삶은 삶이면서 예술이 됩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이면서 삶입니다. 사진은 늘 사진이면서 사랑입니다. 사진은 노상 사진이면서 꿈입니다. 봄꽃이 봄꽃이면서 겨울꽃이듯이, 사진은 사진이면서 새로운 숨결로 거듭납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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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36. 사진을 찍는 사람은 바로



  빛을 읽기에 사진을 찍습니다만, 빛을 읽는 눈은 바로 내 눈이고, 빛을 읽는 가슴은 바로 내 가슴이며, 빛을 담는 손은 바로 내 손입니다. 우리 별누리에서 해가 있어서 빛과 볕과 살을 우리한테 베푸는데, 해가 지구별을 비추더라도, 내가 스스로 눈과 가슴과 손으로 빛과 볕과 살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사진기가 있으니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기가 없으면 무엇을 할까요? 손가락을 놀려 사진놀이를 하기도 하고, 그저 마음으로 머릿속에 사진을 찍듯이 이야기를 담기도 합니다. 사진기가 있어서 사진을 찍는다면, 사진기는 내가 손에 쥔 연장입니다. 언제나 내 뜻과 마음과 생각이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사진을 이룹니다.


  연필이 있어도 내가 스스로 쥐지 않으면 글이나 그림이 안 태어납니다. 연필과 종이는 그저 연필과 종이입니다. ‘글’이나 ‘그림’이 되려면 늘 내 뜻과 넋과 생각이 흘러서 움직여야 합니다.


  사진이 사진인 까닭은, 내가 대학교 사진학과를 마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진이 사진은 까닭은, 내가 사진작가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먹고서 사진기를 한 대 장만한 뒤, 이 사진기를 빌어서 내가 담고 싶은 이야기를 한 장 두 장 차곡차곡 찍을 때에, 비로소 사진이 됩니다.


  부러진 색연필 조각은 그냥 부러진 색연필 조각입니다. 이 조각을 손에 쥐어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장난을 하든, 오로지 내 뜻입니다. 내 뜻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지고 새롭습니다. 내가 눈으로 무엇을 바라보는지 똑똑히 느껴서 알아야 하고, 내가 가슴으로 무엇을 헤아리는지 또렷이 느껴서 알아내야 하며, 내가 두 손으로 무엇을 담으려는지 환하게 느껴서 움직여야 합니다.


  사진을 찍기는 아주 쉽습니다. 내 마음에 생각을 한 톨 심어서 기쁘게 움직이면, 언제 어디에서나 늘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4348.3.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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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35. 좋은 날



  사진 찍기 좋은 날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찍기 안 좋은 날이 있습니다. 사진과 얽혀 늘 두 가지 날이 있습니다.


  사진 찍기 좋은 날은 내가 스스로 ‘사진 한번 찍어 볼까?’ 하고 생각하는 날입니다. 사진 찍기 안 좋은 날은 내가 스스로 ‘사진 찍고 싶지 않아!’ 하고 생각하는 날입니다.


  사진을 한번 찍어 보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날 따라 사진을 잘 찍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사진기에 손이 안 갑니다. 그런데 ‘나는 좋은 사진을 꼭 찍고 말 테야!’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좀처럼 ‘좋은 사진’을 못 찍기 마련입니다. 이때에는 ‘스스럼없이 홀가분한 마음’이 아니라서 ‘좋은 사진’은커녕 ‘사진’이라 할 만한 그림조차 얻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적에는 그냥 뛰놉니다. 아이들은 “자, 이제 신나게 놀아 볼까?” 하고 말하면서 놀지 않아요. 그냥 홀가분하게 놉니다. 그냥 홀가분하게 놀다 보면 신이 나고 웃음이 나며 기쁨이 솟습니다.


  사진은 어느 날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사진도 그냥 찍으면 됩니다. 그저 홀가분하게 찍으면 됩니다. ‘좋은 날 궂은 날’을 가리지 말고, 어느 날이든 스스로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내 둘레를 따사롭게 바라보면 됩니다.


  어떤 ‘현장’에 가야 멋있는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어떤 ‘유명인사’를 찾아가야 놀라운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어서 이야기를 담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사진을 찍어서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내가 스스로 아름다운 넋으로 하루를 가꿀 때에 사진 한 장을 즐겁게 찍고, 이렇게 찍은 사진이 ‘좋은 사진’이라는 이름도 얻습니다. 사진을 찍기는 아주 쉽습니다. 내 마음이 사랑이라면 사진을 늘 쉬우면서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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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34. 찍히는 줄 모른다



  우리가 찍는 사진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찍히는 줄 모르는’ 채 찍는 사진입니다. 다른 하나는 ‘찍히는 줄 아는’ 채 찍는 사진입니다. 찍히는 줄 모르는 채 찍기에 더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찍히는 줄 알아도 얼마든지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찍히는 줄 모르거나 알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에 찍히는 사람’하고 한마음이 될 때에는, 언제나 따스하면서 살가운 기운이 감돌도록 사진을 찍어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에 찍히는 사람하고 한마음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찍든 따스함이나 살가움은 사진에 감돌지 않습니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한마음이 될 때에는, 사진이 싱그럽게 살아서 움직입니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한마음이 안 될 때에는, 멋진 구도와 볼 만한 그림이 나오더라도 사진이 싱그럽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진은 언제나 ‘작품’이 아닌 ‘마음’을 담고, 마음을 ‘이야기’로 엮으며, 이야기로 엮은 마음을 ‘기쁜 사랑’으로 서로 나누는 놀이요 몸짓이기 때문입니다.


  ‘찍히는 줄 모르’도록 찍는 일은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찍히는 줄 알아도 괜찮습니다. 아니, 찍히는 줄 알건 모르건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찍는 사람이 찍히는 사람과 한마음으로 움직이거나 놀거나 일하면, 어떤 모습을 찍든 언제 찍든 어떻게 찍든, 참으로 재미나면서 살갑고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러니까, ‘스냅 사진’일 때에 ‘자연스러운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틀로 찍는 사진이든, 내가 마음을 어떻게 기울이는지 바라볼 수 있으면 됩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기 앞서, 내 사진에 담길 사람들과 이웃으로 지내고 동무로 만나며 한솥밥 먹는 따사로운 살붙이로 어우러질 수 있으면 아름답습니다. 4348.3.6.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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