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58. 흐르는 이야기마다



  흐르는 이야기마다 사진으로 담을 만한 숨결이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흐르는 이야기도, 어제 그곳에서 흐른 이야기도, 모레 저곳에서 흐를 이야기도, 저마다 다르면서 아기자기하게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즐겁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내 이야기를 스스로 찍을 수 있고, 우리 이웃 이야기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찍을 수 있습니다. 들과 숲을 곰곰이 지켜보면서 찍을 수 있고, 하늘이나 건물이나 자동차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찍을 수 있습니다.


  냇물을 찍는 사진이 바다를 찍는 사진보다 낫지도 덜떨어지지도 않습니다. 댐을 찍는 사진이 웅덩이나 둠벙을 찍는 사진보다 덜떨어지지도 낫지도 않습니다. 시골마을 풀집을 찍는 사진이 큰도시 아파트를 찍는 사진보다 낫지도 덜떨어지지도 않습니다.


  사진은 기록이 아닙니다. 사진은 사진입니다. 기록은 기록입니다. 기록하려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으나, 사진을 찍으려고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사진을 찍으려면 기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기록은 ‘이야기’를 헤아리지 않고 ‘남기려’고 하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진이란 ‘이야기’를 헤아리기에 사진이요, 남기든 안 남기든 대수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유리원판으로 찍든, 대형필름으로 찍든, 35미리필름으로 찍든 모두 사진입니다. 사진은 디지털로 찍든 필름으로 찍든 모두 사진입니다. 사진은 사진기로 찍든 손전화로 찍든 모두 사진입니다. 이야기를 찍을 때에는 사진이고, 기록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려고 찍는다면 기록이거나 다른 것이 되지요. 이를테면, 예술을 하려는 사람이 찍는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 예술입니다.


  흐르는 이야기마다 새로운 숨결이 퍼지기에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으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흐르는 이야기마다 재미난 노래가 감돌기에 사진기를 손에 쥐어 사진을 찍은 뒤 살며시 웃습니다. 다 함께 사진을 찍어요.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고서, 웃음과 노래를 가득 실어서 사진을 찍어요. 4348.5.13.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찍는 눈빛 157. 고요히 어우러지는 빛깔



  겨울이 지나면 봄이고, 봄이 무르익으면 여름이 다가옵니다. 겨울에는 겨울빛이 있고, 봄에는 봄빛이 있습니다. 여름과 가을에는 여름빛과 가을빛이 있습니다. 겨울 가운데 십이월은 십이월빛이 있고, 일월은 일월빛이 있으며, 이월은 이월빛이 있습니다. 같은 겨울이어도 다른 겨울빛입니다. 더 낱낱으로 파고들면, 같은 이월이어도 첫무렵과 끝자락 빛결이 다릅니다. 날마다 다른 빛결이 흐릅니다.


  흙을 보고 하늘을 보며 푸나무를 보면, 날마다 다른 빛결과 빛살과 빛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멘트로 지은 집에서 도시 한복판을 바라본다면, 아무래도 철마다 다른 빛을 느끼기 어렵고, 날마다 새로운 빛을 헤아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해님은 날마다 다른 빛살을 지구별에 골고루 베푸니, 이 빛살을 읽으려 한다면 도시 한복판에서도 철마다 다른 빛, 이른바 ‘철빛’을 읽고 잡아챌 수 있습니다.


  한여름에는 흙바닥이 풀빛으로 가득합니다. 이른봄에는 겨우내 시들어서 마른 풀잎이 흙빛으로 차츰 바뀝니다. 이런 흙빛에서 조물조물 푸른 빛깔이 태어납니다. 새로 돋는 풀은 모두 풀빛이니까요. 겨울눈을 틔우는 나무는 해맑은 꽃빛을 베풉니다. 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풀빛과 꽃빛은 저마다 고요히 어우러집니다. 풀잎은 풀포기로 사람한테 밥이 되어 주고, 꽃송이는 어느덧 꽃잎이 지고 씨앗을 맺으면서 열매가 무르익어 사람한테 밥이 되어 줍니다.


  풀포기를 먹는 사람은 저마다 푸른 몸이 됩니다. 해맑게 피어난 앵두꽃은 새빨간 앵두알로 바뀝니다. 새빨간 앵두알을 먹는 사람은 빨간 숨결을 받아들이는 한편, 새하얀 넋도 맞아들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바람을 마셔요. 하늘이 파랗게 물들도록 흐르는 바람을 마시니까, 우리 모두 파란 빛깔을 온몸으로 품습니다.


  내 앞에도 무지개빛이 펼쳐지고, 내 마음에도 무지개빛이 흐릅니다. 낮에 일어나서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나 무지개빛으로 펼치지거나 흐르는 숨결을 마주하면서 고요하게 깨어납니다. 밤에 천천히 잠들면서 꿈을 꾸는 사람은 누구나 까망과 하양으로 어우러지는 넋을 헤아리면서 생각을 짓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 두 갈래로 찍는 뜻이 재미있습니다. 하나는 낮 이야기요, 다른 하나는 밤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한낮에 짓는 사랑 이야기요, 다른 하나는 한밤에 빚는 꿈 이야기입니다. 낮밤과 밤낮이 어우러져서 삶이 되어 사진 한 장으로 태어납니다. 4348.5.10.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찍는 눈빛 156. 네 마음 읽기



  마음을 담아서 그림을 그립니다. 온 하루를 즐겁게 누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그림을 그립니다. 연필이나 붓을 들어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앞서, 내 마음에 먼저 ‘즐겁게 누리고 싶은 온 하루’ 이야기가 흐를 때에, 이 ‘마음속 그림’을 바탕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립니다.


  마음을 담아서 사진을 찍습니다. 온 하루를 기쁘게 누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사진을 찍습니다. 내 마음에 먼저 ‘즐겁게 누리고 싶은 온 하루’ 이야기가 흐르도록 하면서, 이 ‘마음속 그림’을 하나씩 펼쳐서 사진을 찍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생각하고 살피고 헤아리고 돌아보면서 비로소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생각하지 않거나 살피지 않거나 헤아리지 않거나 돌아보지 않으면, 눈앞에 온갖 모습이 펼쳐진다고 하더라도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을 읽으면서 내 사진을 찍습니다. 네 마음을 읽으면서 너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내 마음을 읽기에 내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네 마음을 읽으니 네 삶을 사진으로 가만히 찍습니다. 4348.5.9.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찍는 눈빛 155. 발길이 머무는 곳



  언제 어디에서나 바로 오늘 찍는 사진이기에, 오늘 내 발길이 머무는 곳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오늘 태어난 사진은 앞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날 곳으로 내딛는 첫걸음이 됩니다.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이루는 삶처럼, 한 장을 찍고 다시 한 장을 찍으면서 새로운 노랫가락이 울려퍼집니다.


  내 발길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기에, 내 사진에 사랑스러운 기운을 담을 수 있습니다. 내 눈길이 닿는 곳을 아끼기에, 내 사진에 고운 숨결을 실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길이 흐르는 곳을 보살피기에, 내 사진에 기쁜 마음을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발걸음이 다릅니다. 빠르기도 다르고 몸짓도 다릅니다. 저마다 즐겁게 누리는 하루에 맞추어 재미나거나 아기자기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놀랍거나 신나거나 설레거나 갑갑한 이야기가 하나둘 피어납니다. 재미나기에 더 좋은 사진이 아니고, 아프기에 더 나쁜 사진이 아닙니다. 모두 다른 사진이면서, 저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품는 사진입니다.


  발길이 머무는 곳을 바라봅니다. 내 발길을 돌아보고, 네 발길을 헤아립니다. 내 손길을 다시 보고, 네 손길을 지긋이 지켜봅니다. 내 마음길을 되새기고, 네 마음길과 어깨동무할 수 있도록 빙그레 웃습니다.


  한 걸음을 내딛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기에 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한 장을 찍고 다시 한 장을 찍기에 내 사진을 이룰 수 있습니다. 4348.5.7.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진 찍는 눈빛 154.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림자를 달고 움직입니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에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한자리에 우뚝 서서 살아간다는 풀과 꽃과 나무인데, 이들도 사람하고 똑같이 늘 그림자를 달고 한들거립니다. 한자리에 가만히 서도 해가 움직이고 지구가 빙글빙글 도는 결에 맞추어 그림자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날과 달과 철이 흐르는 결에 따라서 그림자가 바뀝니다.


  집과 돌에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종이와 연필에도 그림자가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모두 그림자를 달고 삽니다. 지구에서는 누구라도 어느 것이라도 그림자와 함께 있습니다.


  빛에는 어둠이 함께 있고, 목숨에는 그림자가 함께 있습니다. 삶에는 죽음이 함께 있으며, 웃음에는 눈물이 함께 있어요. 기쁨에는 슬픔이 함께 있고, 노래에는 고요가 함께 있습니다. 따스함에는 차가움이 함께 있고, 움직임에는 멈춤이 함께 있어요. 그래서, 사진 한 장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 다르게 느끼기 마련입니다. 누군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슬픔을 느낄 수 있어요. 누군가는 삶을 읽을 만하고, 누군가는 죽음을 읽을 만합니다.


  이 사진은 이렇게만 읽어야 하지 않고, 저 사진은 저렇게만 바라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릅니다. 모두 새롭습니다. 모두 다 다르면서 새롭게 움직이고 살아가는 넋입니다.


  꽃을 볼 적에 사진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꽃을 보아도 아무것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밤에도 불빛이 환한 도시에서 즐겁게 놀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지만, 한밤이 어둡지 않아 괴롭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있지만, 곁에 있는 사람은 쳐다보지 않으면서 언제나 바깥으로만 떠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림자를 보려고 하면 어디에서나 봅니다. 삶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삶을 보려고 하면 어디에서나 봅니다. 사진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어디에서나 찍습니다. 4348.4.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