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28. 오늘 누리는 어제



  사진을 찍는 자리는 늘 ‘오늘 이곳’입니다. 오늘 이곳에 있기에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를 한자말을 빌어 ‘현장’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현장에 있어야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현장에 없으면 어느 누구도 사진을 못 찍는다고 하지요.


  요즈음은 현장에 없어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사진을 찍는다기보다 사진을 ‘만든다’고 해야 할 텐데, ‘콜라주’를 하듯이 요리조리 오려붙여서 ‘사진 만들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장에 갈 수 없는 몸이니, 어느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다른 사람들 말과 글과 그림과 사진과 영상으로 살피면서, 이녁 나름대로 ‘가 보지 않은 현장을 다시 엮는 얼거리’로 사진을 만듭니다.


  인터넷이 널리 퍼진 오늘날에는 ‘오늘 이곳에서 손수 찍는 사진’이 조금씩 줄면서, ‘오늘 이곳에 없고 손수 찍지 않아도, 다른 사람 손길을 빌어서 만드는 사진’이 차츰 늘어납니다. 게다가 ‘내가 스스로 오늘 이곳에서 찍은 모습’을 여러 날이나 여러 달에 걸쳐 그러모아서 이 모습을 조각 하나로 여긴 뒤, 수많은 조각을 이어붙이거나 엮여서 사진을 만드는 사람이 꾸준하게 늘어납니다.


  찍어도 사진이 되고, 만들어도 사진이 됩니다. 찍어도 ‘오늘’이 어느덧 ‘어제’로 흘러가고, 만들어도 ‘오늘’이 어느새 ‘어제’로 흘러갑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사진은 모두 ‘어제 모습’입니다. 다만, 오늘 누리는 사진이 모두 ‘어제 모습’이어도,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사진기 단추를 찰칵 하고 눌렀기에, ‘어제가 된 오늘’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오늘 그대로 있는 모습을 아로새기면서, 이 모습을 모레(앞날)에도 고스란히 누리려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은 언제나 어제가 되지만, 이 어제는 늘 오늘 누리고, 오늘 누릴 어제는 모레에 비로소 어제가 됩니다. 어제와 오늘과 모레는 다 다른 때입니다. 그렇지만 다 다른 세 가지 때는 늘 한몸이 되어 흐릅니다. 다 다른 때가 다 같은 때가 되어 흐릅니다.


  사진을 이루는 틀을 살피고, 사진이 태어나는 얼거리를 느끼며, 사진이 자라는 자리를 헤아리려면, 어제와 오늘과 모레가 어떻게 얽히는가를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밥을 먹는 동안 밥그릇이 비고, 밥그릇이 빌수록 몸에는 새로운 숨결이 찹니다. 새로운 숨결이 차도록 하는 까닭은 앞으로 새로운 기운을 내어 새로운 일이나 놀이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앞날(모레)을 생각하면서 밥을 먹습니다. 앞날(모레)을 꿈꾸면서 오늘을 사진으로 찍어 어제가 되도록 합니다.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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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7. 오늘 하루도 하나씩



  날마다 사진을 수십 장이나 수백 장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날마다 한두 장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며칠에 한 장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고, 한 달에 한두 장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 달 만에 비로소 사진 한 장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스스로 그러모은 사진 장수’는 다릅니다. 누군가는 얼핏 보기에 ‘사진이 무척 많이 있다’고 할 만하며, 누군가는 얼핏 보기에 ‘사진이 얼마 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사진이 무척 많은 사람은 사진을 잘 찍거나 멋스럽거나 놀랍거나 대단할까요? 사진이 얼마 없는 사람은 사진을 못 찍거나 멋이 없거나 안 놀랍거나 안 대단할까요?


  사진책 한 권은 두꺼울 수 있습니다. 사진책 한 권은 얇을 수 있습니다. 사진 천 장으로 사진책 한 권을 엮을 만하고, 사진 백 장이나 스무 장으로 사진책 한 권을 묶을 만합니다.


  사진책에 사진을 더 많이 써야 사진책이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이천 장쯤 담은 사진책인데, 내 눈을 사로잡거나 끌어당길 만한 이야기를 볼 수 없다면, 이런 사진책에는 마음이 갈 수 없습니다. 사진을 스무 장만 담은 사진책이지만, 내 눈을 사로잡거나 끌어당길 만한 이야기를 내내 볼 수 있다면, 이런 사진책에는 마음이 가만히 기울어집니다.


  여러 달에 사진을 한 장 찍는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조금씩 숨결이 모여서 어느 하루에 열매를 맺습니다. 하루에 사진을 수십 장이나 수백 장을 찍는다고 한다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열매를 맺는’지 ‘열매는 안 맺는’데 그저 사진기 단추를 눌러대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어떤 흐름을 보여주려고 여러 장 찍을 수 있어요. 그러나, 흐름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굳이 열 장이나 서른 장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흐름’을 꼭 석 장으로만 보여주도록, 또는 흐름을 다문 한 장으로만 보여주도록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흐름이란 그냥 흐름이 아닌 ‘삶’입니다. 삶을 보여주려는 사진이라면, 한두 장으로는 어림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열 장이나 스무 장을 자꾸 찍으려 할 수 있어요.


  이때에 생각해야 합니다. ‘한 사람 삶’을 사진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 사람이 백 해를 산다면, 한 해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백 장입니다. 한 달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천이백 장입니다. 한 주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육천 장에 이릅니다. 하루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사만이천 장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새로운 밥을 먹고 새로운 일을 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이러한 ‘흐름’을 모두 보여주려 한다면, 또 ‘흐름’을 낱낱이 보여주려 한다면, ‘백 해를 산 사람’을 사진으로 보여줄 적에는 ‘백 해를 들여야 읽을 수 있을 만큼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모든 움직임과 몸짓을 사진으로 다 찍어야 비로소 ‘흐름’을 짚는 사진이 되는 셈입니다.


  사진은 ‘기록’이 아닙니다. 사진은 동영상도 아닙니다. 사진은 책 하나로 엮어서 보여주는 이야기꾸러미가 되기도 하고, 다문 종이 한 장짜리로 간추려서 들려주는 노랫가락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야기꾸러미가 되려면 먼저 노랫가락이 되어야 합니다. 수수께끼이면서 실마리가 되는 삶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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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6. 이리 와서 함께 보자



  사진을 배우려 한다면 ‘이론’이 아닌 ‘사진’을 배워야 합니다. 글을 배우려 한다면 ‘이론’이 아닌 ‘글’을 배워야 합니다. 그림을 배울 적이든, 노래나 춤을 배울 적이든, 시골 흙일이나 바닷가 고기잡이를 배울 적이든 늘 같아요. 우리는 ‘이론’을 배울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이론’은 내가 스스로 삶을 세워서 지을 적에 나 스스로 갈고닦아서 내놓기 때문입니다.


  ‘이론’은 사람 숫자만큼 다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이론은 삶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 삶은 다 다릅니다. 그러니, 모든 이론은 다 다를 수밖에 없어요. 몇몇 이름난 사람들 이론을 배운들 사진도 글도 그림도 흙일(농사)도 못 배웁니다. 밥을 짓고 싶으면 밥짓기를 배워야 합니다. ‘요리’나 ‘요리 이론’을 아무리 배운들 밥을 못 짓습니다.


  사진 이론을 배우는 사람은 사진을 모르는 채 ‘이론’만 압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배우려 하면서 ‘사진비평’만 잔뜩 읽는 사람은, 사진은 하나도 모르는 채 ‘사진 이론’만 머릿속에 잔뜩 집어넣은 꼴입니다. 시를 배우려 하는 사람도 이와 같아요. 시를 배우면서 누리려 하지 않고 ‘문학비평’이나 ‘시론’만 잔뜩 읽으면, 머릿속에 헛바람만 집어넣은 꼴입니다.


  그렇다고 이론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론은 저절로 생겨요. 내가 스스로 내 삶을 세우거나 지으면 ‘내 이론’이 저절로 섭니다. 그러니, 이론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말고, 내 삶을 바라보면 됩니다. 이리 와서 함께 보면 됩니다.


  사진을 배우려 할 적에는 ‘이름난 몇몇 작가’가 남긴 작품을 볼 수도 있고, ‘이름이 안 난 수많은 이웃’이 남긴 작품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저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바라보면서 사진을 배울 수도 있어요. 어떻게 배우든 모두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진’을 사진답게 배우려 하기에, 삶을 삶답게 마주합니다. 남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거나 자랑하려는 뜻이라면 ‘사진 이론’을 배워도 될 테지만, 나 스스로 삶을 사랑하면서 가꾸려 한다면, 그저 즐겁게 내 이웃과 동무를 이리로 불러서 함께 놀고 노래하듯이 사진을 즐기면 됩니다. 4348.2.1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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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5. 무엇을 하려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생각하면서 사진기를 손에 쥐면, 무슨 사진을 찍으면 되는가를 스스로 환하게 깨닫습니다. 무엇을 하려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사진기를 손에 쥐면, 이것저것 자질구레하게 많이 찍을는지 모르나, 막상 어느 사진이고 따로 뽑아서 쓰기 어렵기 일쑤입니다.


  사진으로 찍을 이야기는 남이 골라서 나한테 알려주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을 이야기는 늘 내가 스스로 찾고 생각해서 내가 나한테 말해 줍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스스로 말하지요. 내 사진이 무엇이고, 내 손길이 어떠하며, 내 눈빛은 언제 밝은가를 스스로 느껴서 언제나 새롭게 말합니다.


  밥을 먹을 적에 ‘내가 오늘 이곳에서 밥을 먹지’ 하고 생각해야 밥맛을 느낍니다. 자전거를 달릴 적에 ‘내가 오늘 이곳에서 자전거를 달리지’ 하고 생각해야 어느 길을 어떻게 달리는지 기쁘게 깨닫습니다.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함께 놀 적에 ‘내가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하고 노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새로운 놀이를 스스로 자꾸 생각해 내면서 환하게 웃고 노래합니다.


  사진기 단추를 한 번 누르기 앞서 내 마음에 생각이 깃들어야 합니다. 사진기 단추를 한 번 누르기 앞서 내가 짓고 싶은 삶을 씨앗으로 빚어서 마음에 심어야 합니다. 아무 생각이 없다면 아무런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사진기만 손에 쥘 적에는 ‘기계질’에 그치고 맙니다.


  사진을 찍고 싶다면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오늘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남한테 물을 일이 없고, 남한테 묻는들 실마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찾으면 됩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길을 찾을 때에, ‘나다운 사진’이 한결같이 샘솟습니다. 4348.2.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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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24. 몸짓 하나마다



  몸짓 하나마다 사진입니다. 몸짓 하나마다 삶이니까요. 어떤 몸짓이든 기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어떤 몸짓이든 내 따사로운 손길이 닿으면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삶이거든요. 글을 쓰고 싶으면 삶을 고이 바라보면 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삶을 가만히 마주하면 됩니다. 사진을 찍고 싶으면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면 됩니다. 내 삶이 내 사진이 되고, 내 사랑이 내 사진으로 드러나며, 내 꿈이 내 사진에서 피어납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내가 나를 마주하는 오늘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글을 씁니다. 내가 나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하루라면 늘 기쁘게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립니다.


  작은 몸짓을 느낍니다. 큰 몸짓을 헤아립니다. 작은 몸짓에서 깨어나는 숨결을 느끼고, 큰 몸짓에서 일으키는 물결을 헤아립니다.


  커다란 종이에 뽑아야 더 커 보이는 사진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종이에 뽑으니 더 작아 보이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은 모두 사진입니다. 더 작게 쓰는 사진이 없고, 더 크게 쓸 사진이 없습니다. 모두 즐겁게 찍어서 다 같이 즐거이 누리는 사진입니다.


  몸짓 하나를 읽으면서 사진 한 장을 찍고, 사진 한 장을 읽으면서 몸짓 하나를 다시 생각합니다. 몸짓 하나에서 사진 한 장이 태어나고, 사진 한 장을 보면서 몸짓 하나에 깃든 삶을 새롭게 생각합니다. 4348.2.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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