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68. 꽃잎


  꽃잎은 꽃송이에 달린 잎입니다. 풀잎은 풀줄기에 달린 잎입니다. 나뭇잎은 나뭇가지에 달린 잎입니다. 잎은 모두 세 가지가 있습니다. 꽃과 풀과 나무는 한덩어리로 있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숨결을 보여줍니다.

  꽃송이를 맑고 환하게 빛내는 꽃잎은 언제까지나 매달리지 않습니다. 꽃가루받이를 마치고 꽃이 저물어 열매를 맺도록 북돋울 무렵에 꽃잎이 하나둘 떨어집니다. 때로는 꽃송이째 떨어집니다. 열매가 익지 않더라도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한 나무에 맺히는 모든 꽃에서 모조리 열매가 열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꽃잎이 떨어져서 나뭇잎에 앉습니다. 꽃잎은 흙으로 돌아가서 다시 나무한테 스며들 텐데, 바람을 타고 흙으로 돌아가기 앞서 나뭇잎하고 만나서 마지막 이야기를 나눕니다.

  꽃잎은 나뭇잎한테 어떤 이야기를 속삭일까요. 나뭇잎은 꽃잎더러 어떤 꿈을 품으라고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에 담는 모든 숨결한테 이야기를 겁니다. 또는, 사진에 담는 모든 숨결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귀여겨듣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 한 장으로 이야기를 엮어서 베푸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리 둘레에서 언제나 넉넉하게 일어나고 퍼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 숱한 이야기를 알뜰살뜰 갈무리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꽃잎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 소리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사진가’입니다. 4348.6.7.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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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67. 빗물방울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방울이 알알이 맺힙니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밤이 저물고 새벽이 될 무렵 이슬방울이 초롱초롱 맺힙니다. 빗물방울하고 이슬방울은 숲에서 저절로 맺히는 방울빛이요 방울결입니다. 이 빛과 결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든 말든, 풀잎과 나뭇잎과 꽃송이와 나뭇가지에는 아기자기한 방울이 수없이 돋습니다.


  비가 그치고 날이 개면 빗물방울이 사라집니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이슬방울이 사그라듭니다. 살그마니 찾아와서 조용히 지나가는 빗물이요 이슬입니다. 빗물이 맺히고 이슬이 달릴 적에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만 놓치거나 아예 생각조차 못 하고 마는 빗물이면서 이슬입니다.


  빗물방울이나 이슬방울은 똑같이 맺히지 않습니다. 비가 올 적마다 빗물방울이 늘 다릅니다. 새벽마다 이슬방울이 언제나 다릅니다. 날마다 새로운 물방울입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은 날마다 같을까요 다를까요. 우리는 날마다 똑같은 사진을 찍을까요, 아니면 날마다 다른 사진을 찍을까요. 동이 트면서 아침이 되고 해가 지면서 저녁이 되는데, 아침저녁으로 흐르는 바람은 언제나 똑같을까요 다를까요. 하루하루 보내는 마음은 언제나 똑같을까요, 아니면 날마다 새로운 하루로 여기면서 늘 새로운 마음이 될까요.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자랍니다. 조금씩 자라든 아주 조금 자라든, 많이 자라든 아주 크게 자라든, 참으로 누구나 날마다 자랍니다. 둘레를 살피는 눈길이 자라고, 이웃을 헤아리는 마음결이 자랍니다. 삶을 가꾸거나 보듬는 손길이 자라고, 사랑을 돌보거나 일구는 숨결이 자랍니다. 사진을 찍는 눈빛을 날마다 새롭게 북돋우려면, 나 스스로 아침마다 새롭게 눈을 뜨고 일어나서 둘레를 살피면 됩니다. 4348.6.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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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6-05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 소식이 있었던가 잠깐 생각하다
문을 열고 빗 소리를 들어봅니다.

숲노래 2015-06-05 11:49   좋아요 1 | URL
빗소리에 실리는 산뜻한 여름냄새를 맡으셔요~
 

사진 찍는 눈빛 166. 빨래터가 있는 곳


  빨래터가 있는 곳에서는 빨래터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다만, 빨래터를 사진으로 찍기 앞서, 빨래터에서 놀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며, 빨래터에 끼는 물이끼를 걷어냅니다. 옛날에는 마을사람 누구나 빨래터에서 빨래를 했으니 물이끼가 낄 일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마을사람 누구나 집에 놓은 빨래기계로 빨래를 하니까 물이끼가 자꾸 낍니다. 옛날에는 따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없어도 마을사람 마음에는 빨래터에서 빨래하고 놀고 어우러지고 이야기하던 삶이 깊이 아로새겨졌습니다. 오늘날에는 사진기 있는 사람이 많으나 마을에서 빨래터로 빨래를 하러 나오거나 빨래를 하면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 일이 없습니다.

  샘터가 있는 곳에서는 샘터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다만, 샘터를 사진으로 찍기 앞서, 샘터에서 물을 긷고, 샘터에서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샘터에서 다리를 쉬면서 하루를 돌아봅니다. 옛날에는 시골사람 누구나 샘터에서 물을 길었으니 샘터는 만남터 구실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시골사람 누구나 집에서 물꼭지를 틀어서 물을 씁니다. 옛날에는 따로 사진을 찍거나 녹음기를 다루는 사람이 없어도 시골사람 가슴에는 샘터에서 만나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가 꽃으로 열매로 씨앗으로 넓게 드리웠습니다. 오늘날에는 사진기며 손전화기며 온갖 기계가 많으나 시골 샘터에서 사이좋게 만나서 이야기잔치를 누리는 일이 없습니다.

  기계가 없던 때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있던 때에는 기계가 없어도 두레와 품앗이가 사랑스러웠습니다. 기계가 있는 때에는 이야기가 자취를 감춥니다. 이야기가 없는 자리에 기계만 춤을 추면서 더 많은 생산과 소비와 효율과 경제성장을 부추깁니다.

  기계가 있어도 이야기가 있으면 사진이 태어납니다. 기계가 없어도 이야기가 없으면 사진은 안 태어납니다. 삶을 가꾸려는 마음으로 날마다 새롭게 웃고 노래할 적에 이야기가 자라면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삶을 가꾸려는 손길이 사라지거나 스러지거나 잊혀지면, 새롭게 웃거나 노래할 일이 없어서 이야기도 사진도 태어날 길이 없습니다. 4348.6.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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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65. 멀리 가지 않아도 사진


  사진이 태어나는 자리는 언제나 ‘바로 이곳’입니다. 사진을 찍는 때는 늘 ‘바로 오늘 이때’입니다. 사진을 오랫동안 찍은 분이든, 사진을 이제 막 찍는 분이든, 사진은 언제나 ‘바로 이곳’에서 누구나 ‘바로 오늘 이때’에 찍는 줄 잘 알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분이 많습니다.

  사진이 언제나 ‘바로 이곳’에서 태어난다면, 사진을 어디에서 찍어야 할까요? 사진을 찍으러 어디로 가야 할까요?

  사진은 참말 ‘바로 이곳’에서 찍습니다. 어디 먼 데까지 나들이를 가야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먼 데까지 나들이를 갔으면, 나들이를 간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사진을 얻으려고 먼 데까지 나들이를 가야 할 까닭이 없되, 나 스스로 삶을 즐기거나 누리려고 먼 데까지 나들이를 으레 다닌다면, 바로 ‘내 사진’은 ‘내가 늘 머물면서 삶을 누리는 그곳’에서 태어납니다.

  사진을 찍기에 좋거나 알맞거나 멋진 ‘때’는 따로 없습니다. 내가 손에 사진기를 쥔 때가 바로 ‘사진을 찍을 때’입니다. 한낮이든 한밤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흐르면서 스물네 시간에 따라 스물네 가지 이야기가 있고, 한 시간은 예순 갈래로 나누는 이야기가 있으며, 예순 갈래는 다시 예순 갈래로 더 나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적에는 ‘이 많은 이야기 가운데 한 가지’를 고르거나 가리거나 추립니다. 모든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으려 한다면,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하고 사진만 찍어야 하니까, 참말 사진은 ‘삶을 즐겁게 누리는 하루 가운데 꼭 한 자락’을 뽑아서 찍습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사진입니다. 멀리 가도 사진입니다. 여기에 있어도 사진입니다. 저기에 가도 사진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사진을 찍습니다. 온누리 모든 것은 사진으로 찍을 만한 이야기요, 온누리 모든 사람은 사진을 아름답고 사랑스레 찍을 수 있는 작가요 예술가이며 ‘이야기님’입니다. 4348.6.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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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164. 나무 한 그루



  밥을 차려서 아이들하고 함께 먹다가 두부에 풀을 한 포기 속 꽂습니다. 봄에 돋는 봄나물을 뜯어서 밥상에 올렸는데, 그냥 먹어도 맛나지만 밥놀이를 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저를 놀리던 두 아이는 “오잉?” 하더니 “나무네? 두부에 나무가 생겼네? 나무 한 그루잖아?” 하고 말하다가 “나도 나무 심어야지!” 하면서 풀포기를 하나 집어서 두부에 속 꽂습니다. 큰아이가 ‘풀나무’를 심으니 작은아이도 “나도 나무 심어야지!” 하고 말도 똑같이 따라하면서 풀나무 한 그루를 더 심습니다.


  두부에 꽂은 풀은 풀이지만, 이 풀을 나무로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무로 풀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숲에서 마주하는 나무 한 그루는 ‘나무’이지만, 이 나무를 얼마든지 ‘하늘님’이나 ‘땅님’이나 ‘숲님’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나무를 하늘이나 땅이나 숲을 아우르는 님으로 바라본다면 이러한 눈빛이 되고, 이러한 생각이 되며, 이러한 숨결이 됩니다.


  가을에 들녘을 바라보면 누렇게 잘 익은 나락이 물결을 칩니다. 이 나락물결은 그냥 ‘나락’으로만 여길 수 있지만, 바닷물 같은 물결로 바라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금빛’ 물결로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진은 무엇을 찍을까요? 바로 내 마음을 찍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이웃과 동무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온누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나 ‘지구별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마주하면서 찰칵 하고 찍을 수 있습니다. 조그마한 들꽃을 ‘가장 빛나는 꽃송이’로 마주하면서 찍을 수 있고, 커다란 바윗돌을 ‘가장 귀여운 조약돌’로 여기면서 찍을 수 있어요. 마음결에 따라서 사진결이 새롭게 흐릅니다. 4348.5.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 찍는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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