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문을 열어라 - 좌충우돌 고려 사람 조선 적응기 조선 시대 깊이 알기
손주현 지음, 이해정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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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맑은책시렁 232


《조선의 문을 열어라》

 손주현 글

 이해정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20.5.23.



‘고려라고 한다더니 조선으로 바꾸고 고려 때 해온 대로 한다더니 다 뒤집어 버렸네, 훌쩍.’ (21쪽)


“조상에게 빌면 된다. 제사를 잘 지내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상을 잘 치르는 게 중요하지. 그러다 보면 조상들이 우리를 보살펴 주는 것이고.” “거참 이상하네. 죽은 조상을 믿는 것은 미신이 아니고 부처를 믿는 것은 미신이라고요?” (56쪽)


‘고려인 중에서도 왜구들 앞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놈들이 있다더니 이 자도 그중 하나인가 보군.’ (111쪽)


우치는 그제야 무언가 이해가 됐다. 조선은 무역을 금지하며 나라의 문을 닫아 놓은 줄 알았지만 공물을 바치고 선물을 받아 오면서 문물을 주고받았다. 꼭 닫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120쪽)


“시조 말이야?”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치는 맨날 충효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시조를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조선은 재미가 없어도 너무 재미없었다. (131쪽)


“고려 때는 지방 아전 자리를 지방 권세가들이 맡아서 했지만 조선에서는 그저 수령을 돕는 말단 행정 일꾼일 뿐이다. 글을 알고 수완이 있으면 할 수 있지.” (149쪽)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역사를 다룬 인문책이 꽤 많습니다만, 거의 모두 ‘다른 책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갈무리합니다. 역사란 다른 책이나 자료가 있어야 쓸 수 있거나 말할 수 있을까요? 가만히 보면 역사뿐 아니라 웬만한 인문책도 으레 다른 책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엮곤 합니다. 다른 이가 먼저 갈무리한 책이나 자료가 없다면 인문이라는 이야기를 다루지 못할까요?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가 나라일을 갈무리했고, 조선 무렵에는 임금 언저리 하루살이를 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이든 조선 무렵이든 이 나라를 아우르는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를 갈무리한 자취는 없다시피 합니다. 흙살림을 한 해 내내 지켜보면서 갈무리한다든지, 이 흙살림을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를 통틀어서 갈무리하는 자취는 아예 없다고 하겠지요. 아이를 돌보며 사랑한 여느 사람들 집살림을 갈무리한 적도 아예 없다시피 했어요. 이는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앞으로 쉰 해쯤 뒤에는 2000∼2020년을 어떠한 나날로 이야기하는 역사책이 나올까요? 1980∼2000년을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는 오늘 어떤 역사책으로 다루는가요?


  어린이 역사책 《조선의 문을 열어라》(손주현 글·이해정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2020)는 고려란 나라에서 조선이란 나라로 넘어선 뒤에 ‘왕씨 어린이’가 맞닥뜨리는 나날을 짚습니다. 고려 이야기를 다루는 역사책은 꽤 드물기에 차근차근 눈여겨보는데, 이 책도 ‘왕씨 언저리’에서 머물 뿐, ‘왕씨가 아닌 사람들’이라든지 ‘임금님하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던 수수한 사람들 살림살이’까지는 짚지 못해요.


  조선은 이씨 나라가 아닙니다. 고려는 왕씨 나라가 아닙니다. 조선이든 고려이든, 또 신라나 백제나 고구려나 가야나 부여란 나라도 몇몇 우두머리나 벼슬아치로 이야기할 나라는 아니에요. 보금자리를 가꾸고 마을을 이루며 아이를 즐겁게 낳아 돌본 수수한 사람들이 바탕이 되기에 흐를 수 있는 터전입니다.


  들꽃 같은 사람들은 ‘인구 몇’이라는 숫자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들꽃은 들꽃입니다. 다 다른 들꽃이요 저마다 아름다운 들꽃이에요. 《조선의 문을 열어라》를 읽으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서니 ‘고려 옷차림’을 버리고 ‘조선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 줄거리가 얼핏 나옵니다. 그런데 ‘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나 ‘발해’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예전 옷차림을 버리고 고려 옷차림이 되어야 한다고 나라에서 윽박지르지 않았을까요?


  먼먼 옛날을 다루는 이야기라면 책이나 여러 자료를 돌아보기도 해야겠습니다만, ‘책에도 자료에도 남지 못한’ 숱한 사람들 눈빛이며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역사는 글줄에만 적힌 삶이 아니거든요. 오늘을 짓고 모레로 나아가는 길에 되새기는 어제라는 살림빛이 역사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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