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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 - 히말라야 마르디 히말 트레킹기
옥영경 지음 / 공명 / 2020년 5월
평점 :
숲노래 배움책
인문책시렁 147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
옥영경
공명
2020.5.20.
나는 공급자와 수급자가 서로 공정하자는 ‘공정여행’보다는 여행자는 여행하는 곳의 환경과 문화를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책임여행’의 의미를 더 선소한다. (36쪽)
그때 그 비행기를 타서 지금 여기 있고, 그때 그 버스를 타지 않아 지금 여기 있으며, 지나간 모든 그때가 지금 여기 이르게 했다. (44쪽)
관광객들에게는 입장료를 받지만 현지 사람들은 세계 문화유산 유네스코 지정 건물과 건물 사이로 장을 보러 가고, 장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50쪽)
산을 내려오면 한 생을 건넌 것만 같다. 고생스러운 산일수록 아득한 세월이 흐른 것만 같다. 아스라한 시간일수록 그 시간이 사람에 이른다는 건 뜻밖이기도 하고 한편 헤아려지기도 한다. (167쪽)
계단, 계단, 계단.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이제 끝이겠다, 그러고도 돌계단은 계속된다. (244쪽)
어느덧 사람하고 사람 사이가 멀어지는 오늘날이 됩니다. 2019년 겨울 무렵까지 이런 흐름을 내다본 사람은 드물었을 수 있고, 머잖아 이런 흐름이 오리라 여긴 사람이 많았을 수 있습니다. ‘비대면’이니 ‘언택트’이니 갑작스런 바깥말이 춤추는데, 돌림앓이판 한 해가 무르익는 동안, 이 나라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도무지 안 헤아리는 길로만 치닫습니다.
아이들을 배움터에 안 가도록 하면 끝나지 않아요. 앞배움길(대학입시)에 맞추어 배움틀을 고치면 되지 않습니다. 정작 바라보아야 할 곳은 잊거나 등돌리네 싶어요. 12월 3일에 드디어 뭘 했대서 배움길이 될 턱이 없습니다. 아이들 앞삶에는 마침종이(졸업장)가 아닌 살림을 사랑하는 손빛이 대수롭거든요.
그동안 이 나라와 삶터는 ‘배운 사람이 덜 배우거나 못 배운 사람을 억누르고 괴롭히고 들볶아 피를 빨던 틀’이었습니다. 이러했기에 누구나 배우도록 하는 일이 뜻깊고 값졌어요. 그런데 애써 마을사람이 땅을 내놓고 등짐을 져서 배움집을 세우고 보니, 이 배움터에서 쓰는 배움책은 마을살림이나 흙살림이나 숲살림하고 동떨어진 줄거리였어요. 배움터를 다닌 어린이·푸름이는 하나같이 서울바라기가 되고, 어느새 마을이며 시골을 떠났습니다. 배움터를 다니는 사람이 늘자, 이제 ‘더 배운 사람’은 ‘새로운 굴레와 수렁과 덫’으로 사람들을 옥죄는 틀을 마련하지요.
배움숲 ‘물꼬’를 가꾸는 분이 쓴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옥영경, 공명, 2020)를 읽습니다. 흔히 ‘자유학교 물꼬’라 하는데, 멧자락에 깃든, 또는 멧자락이 품은 물꼬란 곳은 ‘배움숲’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싶어요.
그래요. 배움숲입니다. 이제는 ‘터’를 지나 ‘숲’으로 살 때예요. 텃힘을 부리는 틀은 내려놓고서 숲을 노래할 줄 아는 싱그러운 마음을 북돋우는 길로 갈 때입니다.
물꼬지기 옥영경 님은 물꼬 배움살이를 쉴 적마다 등짐을 꾸려 안나푸르나 멧길을 오르내렸다고 합니다. 왜 굳이 안나푸르나일까 하고 묻는다면, 그곳이 마음에 끌렸기 때문이겠지요. 안나푸르나이든 티벳이든 부탄이든 방글라데시이든 인도이든 미얀마이든 안데스이든 얼마든지 찾아가서 걸을 만합니다. 아무 말 없이 멧자락을 타면서 하늘바라기가 되고 나무바라기가 될 만하지요.
사람은 모여서 살아야 한다지만, 오늘날 서울이며 큰고장을 보면 끔찍하도록 너무 몰렸어요. ‘모임’이 아닌 ‘몰림’이자 ‘쏠림’입니다. 알맞게 모이면 어깨동무나 두레가 되지만, 몰리거나 쏠리면 다툼이나 싸움이나 겨룸이 돼요.
온나라가 바글대지 않도록 서울을 치워야지 싶습니다. 집값 잡는 길은 쉬워요. 서울에 더는 새집을 못 짓게 하면 됩니다. 앞으로 서른 해쯤은 집짓기를 멈추고, 낡은 집은 허물어 숲으로 바꾸면 되어요. 알아서 서울을 떠나도록, 알아서 숲을 품도록, 우리 어른들부터 생각을 고치고 삶을 바꾸며 길을 틀 적에,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노래하는 살림꽃을 지피는 슬기로운 마음으로 거듭날 만하지 싶습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