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71
아라이 료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보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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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9

 


두 다리로 걷는 즐거움
― 버스를 타고
 아라이 료지 글·그림
 김난주 옮김
 보림 펴냄, 2007.6.25.

 


  시골에서 살며 자가용이 없는 집이 드뭅니다. 나이든 할매와 할배가 살아가는 집에는 경운기는 있어도 자가용이나 짐차가 없지만, 젊은 식구가 살아가는 집에는 으레 자가용이나 짐차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시골버스를 타는 젊은이는 거의 없어요. 시골에서 살며 아이를 돌보는 젊은 식구가 아이와 함께 시골버스를 타는 일이란 참말 거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도 웬만하면 자가용을 굴립니다. 도시에서 살며 자가용을 굴리는 이들은 더러 버스나 전철을 타곤 합니다. 도시에서는 자가용과 버스와 전철 가운데 하나를 퍽 쉽게 고를 만합니다. 도시에서는 찻길도 넓고 차편도 많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느라 5분이나 10분이 걸리곤 하지만, 버스를 한 시간이나 두 시간씩 기다리는 일은 없어요. 더욱이, 밤 늦게까지 버스가 있고 전철이 다녀요.


.. 버스를 타고 멀리멀리 갈 거예요 ..  (2쪽)

 


  시골버스는 한두 시간을 가볍게 기다립니다. 사람이 뜸한 깊은 마을이라면 서너 시간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버스가 하루에 한 차례만 지나가는 마을도 있습니다. 시골에서 한 시간에 한 번씩 버스가 다니는 마을은 이럭저럭 손님이 있지만, 두 시간에 한 번 다닌다거나 서너 시간에 한 번 다니는 마을은 손님이 드물어요. 하루에 한 번 버스가 지나가는 마을이라면 손님이 훨씬 드물어요.


  도시에서라면 아마 한 시간쯤 버스를 기다린다든지, 한 시간쯤 두 다리로 걸어서 어딘가를 찾아가는 일이 거의 없지 싶습니다. 한 시간쯤 길을 거니는 도시내기는 얼마나 있을까요. 두 시간쯤 길을 거닐며 이웃한테 찾아가는 도시내기는 몇이나 될까요.


  자전거로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달려 일터나 학교를 오가는 도시내기가 있을까요. 동무를 만나거나 이웃과 어울리려고 자전거로 한두 시간을 달리는 도시내기는 얼마쯤 있을까요.


..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이제 밤이에요. 라디오도 잠들었어요. 버스는 안 와요 ..  (14쪽)

 


  길은 자동차가 다니기에 길이 아닙니다. 길은 사람이 다니기에 길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한결 빨리 달릴 수 있는지 모르나, 참말 빨리 달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동차를 얻어서 길을 빨리 지나가면 우리 삶에 더 즐겁거나 좋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두 다리로 마을을 느끼면서 걸어요. 두 다리로 골목을 느끼면서 걸어요. 두 다리로 들과 숲과 멧골과 바다와 냇물을 느끼면서 걸어요. 십 킬로미터쯤이라면 씩씩하게 걸어요. 버스를 십 분 기다리고 십 분쯤 달려 어딘가를 찾아가도 즐거울 테지만, 버스를 안 기다리고 한 시간쯤 천천히 걸어서 찾아가도 즐거워요.


  봄에는 봄내음을 맡으면서 걸어요. 여름에는 여름노래를 들으면서 걸어요. 가을에는 가을빛을 누리면서 걸어요. 겨울에는 겨울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어요.


.. 조금 더 기다리다 마음을 바꿨어요. 버스는 안 탈래요 ..  (30쪽)

 


  아라이 료지 님 그림책 《버스를 타고》(보림,2007)를 읽습니다. 너른 사막과 비슷한 곳에서 누군가 버스를 기다립니다. 하루 내내 기다립니다. 그러나 하루 내내 기다려도 버스는 지나가지 않아요. 버스를 기다리는 하루 내내 온갖 사람을 스치듯이 만나고, 밤새 별잔치를 누립니다. 이튿날이 되어 비로소 버스를 만나는데, 버스에는 사람들이 가득해서 탈 자리가 없습니다. 버스는 스르르 떠납니다. 사막처럼 너른 벌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사람은 한동안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다가 씩씩하게 일어서서 두 다리로 걷습니다. 두 다리로 거닐면서 노래를 합니다. 들바람을 마시고 들볕을 머금으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면서 마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는 동안 이웃마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면서 멧새 노래를 듣고 풀벌레 이야기를 듣습니다. 두 다리로 걸어가면서 내 몸을 구석구석 새삼스레 느낍니다.


  삼월에는 삼월을 느낍니다. 사월에는 사월을 마주합니다. 오월에는 오월을 헤아립니다. 우리들은 철마다 철을 느끼고 달마다 달을 헤아리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숨결입니다. 4347.3.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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