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가는 길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37
존 버닝햄 글.그림, 이상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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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6



‘동물원’에 갇힌 꿈 없는 아이들

― 동물원 가는 길

 존 버닝햄 글·그림

 이상희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14.6.20.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 방’을 따로 마련하면서 저녁에 아이가 따로 잠들도록 합니다. 고작 두어 살밖에 안 된 아이들조차 요즈음에는 어버이와 떨어져 따로 자기 일쑤입니다. 대여섯 살쯤 되면 아주 마땅히 어버이와 따로 자야 하는 듯 여기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은 왜 따로 자야 할까요? 아이들은 어버이와 같은 방에서 자면 안 될까요? 열 살뿐 아니라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에도 어버이와 같은 방에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먼 옛날을 돌아보면 조그마한 집에서 온 식구가 함께 잠을 잤습니다. 이불 하나를 함께 덮고 잠들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많이 커서 제금을 나기까지는 조그마한 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르르 잠들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와 어른이 다른 방에서 잠들면서 아이와 어른 사이에 이야기가 끊어집니다. 아이와 어른이 다른 방에서 잠들기에 어른은 아이가 어떤 숨결인지 헤아리지 못하고, 아이는 어른한테서 따스한 사랑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 시간이 한참 흘렀어요. 실비는 이제 그만 자기 방으로 돌아가 잠들어야 했어요. 아침엔 다시 학교에 가야 하니까요. 실비는 아기 곰에게 함께 방으로 가겠냐고 물었어요. 그리고 아기 곰을 데려가 자기 침대에 재웠지요 ..  (11쪽)



  존 버닝햄 님 그림책 《동물원 가는 길》(시공주니어,2014)을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는 가시내 하나, 어머니 하나, 이렇게 두 사람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은 더 안 나옵니다. 아마 가시내는 집에서 혼자인 듯합니다. 아버지가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은 없지만, 아버지가 있더라도 아이와 보내는 겨를은 없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집에서 ‘말을 나눌 사람’이 없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침에 아이를 깨워 학교로 보냅니다. 아이 어머니는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도 아이하고 말을 섞지 않습니다.


  아이는 이런 집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아이는 이와 같은 집에서 ‘왜 살’까요? 아침과 저녁을 먹고 잠을 자기는 하지만, 이밖에 다른 아무런 삶이 없는 집이란 어떤 곳일까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만 하면 ‘아이 가르치기’는 끝인 셈일까 궁금합니다. 아이가 배울 이야기는 학교에서 다 가르치는 셈인지 궁금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학교에서 배우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으로서 이웃을 서로 아끼고 믿고 돌보고 사랑하는 숨결을 학교에서 얼마나 잘 가르칠는지 궁금합니다.




.. 거실에는 동물들이 그득했어요. 실비가 펄쩍 뛰며 화를 내자 동물들은 모두 가 버렸어요 ..  (31∼33쪽)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집에서 심심합니다. 아니, 심심함을 넘어서지요. 날마다 똑같은 하루가 되풀이될 뿐이니, 아이는 지겹습니다. 날마다 신나게 뛰놀아야 할 아이가 활짝 웃을 일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속삭일 일조차 없습니다. 말을 할 줄 알 테지만, 입을 벙긋할 일이 없습니다.


  아이는 마음속으로 새로운 길을 짓습니다. 아이가 잠드는 방 한쪽에 문을 만들어서, 이 문을 열고 어떤 길로 들어서면 무엇이 나오도록 마음속으로 무엇인가 짓습니다.


  아이가 지은 것은 동물원입니다. 왜 동물원일까요? 동물원에 있는 짐승은 사람을 고분고분 따릅니다. 사람이 시키는 대로 따릅니다. 게다가 범이든 코끼리이든 사자이든 코뿔소이든, ‘어린 사람이 소리를 지르거나 윽박질러’도 꼼짝을 못 합니다. 아이는 귀여운 짐승을 제 방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잠들기도 한다는데, 동물원 짐승들은 마치 꼭둑각시나 인형과 같습니다. 아이하고 놀지 않아요. 아이도 놀 줄 몰라요. 짐승들은 그저 아이 곁에 머물 뿐입니다. 아이도 짐승들을 어떻게 보살피거나 함께 살아야 하는가를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배운 적도 본 적도 없거든요.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무언가 잘못했을 적에 소리를 지르거나 윽박지르기는 했겠지요. 차근차근 타이르거나 함께 더 어지르면서 논 적이 없겠지요. 아이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똑같이 아이하고 말을 제대로 섞은 적이 없을 테니, 아이도 이웃이나 동무하고 어떻게 말을 섞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 즐거운지 모릅니다.


  그저, 마음속 동물원에서 ‘새로운 짐승’을 끝없이 데려올 뿐입니다.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갔다가, 교과서 수업을 받은 뒤, 집으로 돌아와서 얌전히 지내다가 잠드는 하루처럼, 마음속 동물원에서도 ‘새로운 짐승’만 끝없이 데리고 와서 침대맡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는 하룻밤을 보낼 뿐입니다.


  더구나, ‘동물원 짐승’들이 조그마한 방에서 벗어나 넓은 데에서 놀고 싶어 마루로 나왔는데, ‘그림책 아이’는 이 짐승들하고 놀 줄 몰라요. 함께 놀지 않고 그저 윽박지르지요. ‘아이 방’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다그칩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한테 ‘시키기’만 하고, 아이는 짐승들한테 ‘시키기’만 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를 ‘아이 방’에 가두기만 하고, 아이도 짐승들을 ‘제 방’에 가두기만 합니다. 놀이도 삶도 꿈도 이야기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 실비가 이제 막 방을 다 치웠을 때 엄마가 도착했어요. “이런, 실비야!” 엄마가 소리쳤어요. “온갖 동물들이 몰려와 놀다 간 것처럼 어질러 놓았네. 내가 집을 비울 때는 실비 너도 나가 노는 게 좋겠어.” ..  (37쪽)



  새로운 삶을 배운 적 없기에 새로운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즐거운 사랑을 물려받은 적 없으니 즐거운 사랑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가 ‘동물원’이 아닌 ‘숲’을 그릴 수 있었다면 이야기가 사뭇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존 버밍햄 님은 이 그림책에서 ‘숲’을 그릴 수는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날마다 쳇바퀴처럼 지내는 아이라면, 숲에 가 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고작 동물원에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겠지요. 아이가 그릴 수 있는 꿈은 아이가 누린 삶입니다. 아이 스스로 겪은 적이 없는 삶을 아이가 꿈꾸지 못해요.


  어른도 이와 똑같습니다. 어른도 스스로 겪은 적이 없는 삶을 꿈꾸지 못합니다. 평화를 겪은 적이 없으면 평화를 꿈꾸지 못합니다. 사랑과 아름다움을 겪은 적이 없으니 사랑과 아름다움을 꿈꾸지 못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버이(어른)부터 아름다운 삶과 이야기와 사랑을 겪고 누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이한테 아름다움도 이야기도 물려주지 못하지요.


  《동물원 가는 길》을 아이한테 읽히는 어버이는 무엇을 느낄까요? 아이가 그저 재미나게 ‘꿈놀이’를 한다고만 여길까요? 그렇게 여기고 재미난 여러 짐승들 그림을 보며 재미나다고 여길까요? 짐승들 이름 알아맞히기 놀이를 하면서 좋아할까요? 4347.9.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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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백과사전 - 내 안의 모든 감정과 만나는 그림책 밝은미래 그림책 18
메리 호프만 글, 로스 애스퀴스 그림, 최정선 옮김 / 밝은미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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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5



마음을 이야기해요

― 감정 백과사전

 메리 호프만 글

 로스 애스퀴스 그림

 최정선 옮김

 밝은미래 펴냄, 2014.5.30.



  어머니나 아버지가 걱정을 늘어놓으면 아이들도 어느새 걱정을 물려받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걱정을 모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 아이들은 늘 웃고 노래하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즐겁게 웃거나 노래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웃음도 노래도 좀처럼 스스로 길어올리지 못하곤 합니다.



.. 행복 유전자를 타고난 것처럼 언제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어. 어떨 땐 반짝이는 햇살만 봐도 행복한 기분이 든단다 ..  (5쪽)



  사랑을 물려주는 어버이는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될 적에 이웃과 동무한테 사랑을 나누어 주도록 이끕니다. 근심과 슬픔을 물려주는 어버이는 아이들이 앞으로 어른이 될 적에 이웃과 동무한테 근심과 슬픔을 퍼뜨리도록 이끕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옳거나 그르다고 가르지 않으면서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은 좋거나 싫다고 금을 긋지 않으면서 맞아들입니다. 사랑이라서 옳거나 좋다고 받아들이지 않아요. 어버이가 사랑스럽게 지내니, 이러한 모습을 늘 지켜보면서 사랑을 받아들입니다. 근심이라서 그르거나 슬픔이라서 나쁘다고 쩍쩍 가르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늘 근심과 슬픔에 젖어서 지내니, 아이들은 그저 늘 바라보면서 하나둘 맞아들입니다.




.. 살다 보면 속상한 일도 생겨. 친구가 너를 무시하거나 따돌린다면 ..  (14쪽)



  메리 호프만 님이 글을 쓰고, 로스 애스퀴스 님이 그림을 그린 《감정 백과사전》(밝은미래,2014)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즐거움과 흐뭇함 같은 느낌뿐 아니라 걱정과 창피 같은 느낌을 두루 이야기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즐거운 느낌보다 서운하거나 고단한 느낌을 조금 더 이야기하지 싶습니다.


  가만히 살피면, 이 그림책에서 서운하거나 고단한 느낌을 더 다룰 만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여느 어버이는 즐거운 느낌보다 서운하거나 고단한 느낌으로 하루하루 살림을 꾸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걱정이 참 많습니다. 오늘날 어버이들은 근심덩어리라 할 만합니다. 아이를 낳아 함께 지내면서 즐겁게 웃고 노래하며 춤추는 어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학교와 학원 때문에 걱정할 뿐 아니라, 돈 때문에 근심이 가득합니다. 뒤틀린 정치와 경제와 사회 때문에 골이 아픕니다. 자동차 소리 때문에 언제나 귀가 아프고, 매캐한 바람과 찌뿌둥한 하늘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 힘겹습니다.


  맑은 물을 못 마시는 사람들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똑같습니다. 하루라도 수돗물이 끊기면 도시에서는 큰일이 생깁니다. 하루라도 가스가 끊기거나 전기가 끊겨 보셔요.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은 딱히 걱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른들은 온통 걱정투성이입니다.


  전쟁이 터지면 어쩌지요? 아버지나 아저씨는 군대에 끌려갈 걱정을 해야겠지요. 전쟁이 터지면 도시사람은 어떻게 하지요? 어디 몸을 옮길 시골이 있을까요. 시골로 몸을 옮기더라도 어떻게 먹고살까요? 전쟁이 아니더라도 핵발전소가 터지면 어쩌나요? 핵발전소가 아니더라도 화력발전소가 터지면 어떡하나요? 화력발전소가 아니더라도 그동안 미군부대에서 흘려보낸 엄청난 쓰레기와 석유찌꺼기와 중금속은 어떡하나요?




.. 정말로 부끄러워서 어떡해야 좋을지 몰랐던 적이 있니? 떠올리기만 해도 창피해서 숨어 버리고 싶은 일,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있어. 엄마나 아빠가 사람들 앞에서 너를 창피하게 만들 때도 있을 거야 ..  (22쪽)



  마음을 바라봅니다. 아이들이 서로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마주합니다. 아이와 어른이 서로 따사롭게 마주하면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어른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이 넉넉할 때에 즐거운 하루가 됩니다. 마음이 기쁠 때에 환하게 웃습니다. 환하게 웃는 마음일 때에 사랑이 샘솟습니다. 사랑이 샘솟을 때에 노래가 흐르고 춤이 절로 나옵니다.




..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일도 자꾸 걱정하다 보면 큰일처럼 느껴지거든. 이런 말 들어 봤니? “작은 걱정이 큰 걱정을 만든다.” 네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없으면 종이에 네 걱정거리들을 하나하나 적어 보는 것도 좋아 ..  (27쪽)



  마음을 이야기하는 《감정 백과사전》은 우리한테 꼭 한 가지를 힘주어 말하려는구나 싶습니다. 어려운 일도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고달픈 일도 있을 테지만, 우리 스스로 웃고 노래하면, 모든 실타래를 풀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지 싶습니다. 내가 먼저 한발 나서서 어깨동무를 하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스스로 웃고 노래하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내가 먼저 웃으면 돼요.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느긋하게 웃으면 됩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이 따사롭습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일 때에 서로 돕습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비로소 사랑꽃이 핍니다. 4347.9.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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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프키 두프키의 아주 멋진 날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58
윌리엄 스타이그 지음, 김경미 옮김 / 마루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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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4



어떻게 바라보는가

― 티프키 두프키의 아주 멋진 날

 윌리엄 스타이그 글·그림

 마루벌 펴냄, 2005.9.14.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새로운 날을 누립니다. 어제와 오늘은 다릅니다. 오늘과 모레도 다릅니다. 모레와 글피도 다릅니다. 이러면서 어제와 오늘과 모레는 모두 같아요. 언제나 다른 새날이라는 대목에서 모두 같아요. 즐거운 아침으로 열어, 기쁜 저녁으로 마무리짓는 하루라는 대목에서 모두 같습니다.


  노래하는 사람한테는 날마다 노래잔치입니다. 흙을 가꾸는 사람한테는 날마다 흙잔치입니다. 풀을 먹는 사람한테는 날마다 풀잔치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글잔치이고,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책잔치입니다. 밥을 맛있게 차려서 먹으려는 사람은 밥잔치를 누리고, 한집 사람뿐 아니라 이웃과 동무하고 사랑을 속삭이려는 사람은 사랑잔치를 누려요.



.. 쓰레기 청소부 티프키 두프키는 그날도 즐겁게 일을 하고 있었어요. 날씨는 정말 좋았어요. 티프키는 시간에 맞추어서 일을 끝낼 생각이에요 ..  (1쪽)




  윌리엄 스타이그 님이 빚은 그림책 《티프키 두프키의 아주 멋진 날》(마루벌,2005)을 읽습니다. 그림책 《티프키 두프키의 아주 멋진 날》에 나오는 티프키는 어느 도시에서 청소부 노릇을 합니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날마다 치우면서 삶을 꾸립니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리고는 쓰레기를 잊지만, 티프키는 날마다 쓰레기를 치우면서 쓰레기 냄새를 맡고, 쓰레기 사이에서 여러모로 쓸모 있는 것을 찾아냅니다. 그냥 치워서 쓰레기 파묻는 데로 갖다 놓는다든지 쓰레기 태우는 데에 쏟아붓지 않아요. 먼저 쓰레기를 찬찬히 살핍니다.


  티프키는 이녁이 입는 옷이라든지 이녁이 쓰는 여러 살림살이를 쓰레기 사이에서 건집니다. 그런데, 쓰레기 사이에서 건진다는 말은 그리 옳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은 ‘쓰레기’로 여겨 버리지만, 티프키는 쓰레기가 아닌 ‘살림살이’로 여깁니다. 새롭게 바라보면서 새롭게 보듬습니다. 새롭게 마주하면서 새롭게 사랑합니다.



.. 벌써부터 마음은 앞으로 만나게 될 아가씨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있었어요. 아가씨를 떠올리니 장미꽃, 이슬, 별빛, 초콜릿 푸딩이 생각났어요. 고약한 쓰레기 냄새는 아무래도 좋았어요. 오히려 티프키는 쓰레기를 소중히 여겼어요 ..  (4쪽)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그냥 쓰레기로 바라보면 쓰레기입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금덩이나 보석조차 쓰레기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책이 쓰레기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헌 신문종이가 쓰레기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안 입는 옷’이 쓰레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헌 신문종이에 적힌 ‘우리 할아버지 예전 이야기’를 보고는, 이 헌 신문종이를 어느 보배보다 알뜰히 건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헐거나 낡은 책을 집어들어 매우 아름다우면서 훌륭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이 헐거나 낡은 책을 살뜰히 품을 만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이가 안 입는 옷을 고맙게 물려받아서 즐겁게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는가요.


  숲을 숲으로 바라본다면 숲을 망가뜨리지 못합니다. 냇물을 냇물로 바라본다면 냇물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숲을 숲으로 바라보지 못한 탓에, 숲을 밀어 골프장이나 공장이나 발전소를 세웁니다. 냇물을 냇물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냇물을 밀어 시멘트를 들이붓는 짓을 서슴지 않습니다.




.. “청소부신가요? 우리 아빠도 청소부셨는데! 세상에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요?” 에스트렐라는 사랑에 빠져 멍하게 서 있는 티프키처럼 이렇게 씩씩하고 겸손한 청년을 만난 적이 없었어요 ..  (28쪽)



  얼굴이 이쁘장하기에 사랑스러운 님이 아닙니다. 얼굴에 깃든 마음이 아름답기에 사랑스러운 님입니다. 겉모습이 이쁘장하대서 사랑스러운 님이 아닙니다. 속마음이 아름답기에 사랑스러운 님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마주하면서 무엇을 보나요? 아이 얼굴이나 몸매를 보나요? 아이가 학교에서 받는 성적표를 보나요? 아이한테서 무엇을 보나요? 아이 마음속을 바라보는 어버이가 아닐까요? 아이 가슴속에 깃든 사랑스러운 씨앗을 바라보는 어버이가 아닐는지요?


  그러면, 어른과 어른 사이에서는 무엇을 보나요? 어른과 어른 사이에서도 서로 얼굴이나 몸매나 재산이 자가용이나 옷차림이 아닌, 마음속에 깃든 꿈과 사랑을 바라볼 노릇 아닐까요? 그림책 《티프키 두프키의 아주 멋진 날》에 흐르는 따사로운 속살을 가만히 읽습니다. 4347.9.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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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
탁혜정 그림, 이상희 글 / 초방책방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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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3



서울 한복판 아파트 옆 공원

― 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

 이상희 글

 탁혜정 그림

 초방책방 펴냄, 2003.3.20.



  이상희 님이 글을 쓰고 탁혜정 님이 그림을 그린 《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초방책방,2003)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어느 늦봄이나 이른여름에 ‘유치원을 걸어서 다니는 아이’가 나오는 보드라운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입니다. 평화는 먼 데 있지 않고 바로 우리 삶에 있으며, 사랑은 꿈속이 아닌 바로 오늘 이곳에 있는 줄 곱게 보여주려는 그림책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 우리 집은 언덕 위에 있어요. 나는 집에 갈 때 계단으로 갑니다 ..  (2쪽)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집과 유치원 사이를 씩씩하게 오가는 듯합니다. 나이가 퍽 어릴 텐데 그야말로 씩씩합니다. 아이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에서 삽니다. 지난날에는 골목집이 다닥다닥 있었겠네 싶은 언덕받이에 아파트가 아주 높다라니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골목집이 사라지면서 저 아파트숲이 생겼을까요. 그리고, 아파트를 빼곡하게 지으면서 조그맣게나마 공원을 만든 듯합니다.


  아이는 집과 유치원을 오가는 길에 개미를 보고 다람쥐를 봅니다. 멋집니다. 아이들은 마음이 남달라 개미도 바라보고 다람쥐를 알아챌 수 있는가 봐요. 서울 한복판이라지만, 조그맣게나마 공원이 있으니 다람쥐가 이곳까지 찾아온 듯하군요.


  생각해 보면, 오늘날은 도시 꼴을 하는 서울이지만, 지난날에는 다람쥐가 살던 시골입니다. 다람쥐뿐 아니라 온갖 새와 짐승이 어우러져 살던 숲입니다. 사람들은 숲짐승이나 들짐승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숲과 들을 싹 밀었어요. 사람들은 오직 사람만 살겠다며 다른 짐승을 모조리 죽이거나 없앴어요. 게다가, 예전에 아름답게 있던 나무를 몽땅 베어 없애고는 따로 나무를 사다가 공원을 만들어요.



.. 어휴, 하마터면 머리핀을 밟을 뻔했어요. 곰돌이도 놀랐나 봐요. 후후, 불어서 먼지를 턴 다음 주인이 찾으러 올 때까지 잘 있으라고 살그머니 한쪽으로 옮겨 줬어요 ..  (10쪽)



  비가 그친 날 혼자서 높다란 계단을 오르는 아이는 무엇을 알까요. 이 아이는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 언저리에서만 놀 텐데, 이 아이는 무엇을 보고 느끼면서 삶을 가꿀까요.


  높은 곳에 있는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에 바람이 붑니다. 땅이 높으니 바람이 한결 시원하게 붑니다. 바람에는 나무내음과 풀내음이 묻어납니다. 그림책에는 제비꽃이 피었다고 나오니 사월이나 오월인가 싶다가도, 아카시아꽃이 피었다고도 나와서 유월인가 싶기도 합니다.


  알쏭달쏭합니다. 제비꽃과 아카시아꽃은 나란히 피지 않습니다. 이른봄 아직 찬바람이 부는 철에 피는 제비꽃입니다. 제비꽃은 한 차례 피고 나서 씨를 맺은 뒤, 여름에 다시금 꽃을 피워요. 그러니, ‘첫물 제비꽃’이 아닌 ‘두물 제비꽃’이라면, 아카시아꽃하고 함께 핀다고도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모로 알쏭달쏭합니다.




.. 바람이 붑니다. 나무들이 흔들려요. 초록 연두 빨강 고운 색깔 숲에서 나도 쉬고 계단도 쉴 거예요 ..  (14쪽)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는 계단에서 머리핀을 줍습니다. ‘머리핀에 묻은 먼지를 후후 불어서 턴다’고 합니다. 이제는 아리송합니다. 비가 그친 날인데, 머리핀에 먼지가 묻을 수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비가 그친 날에 주운 머리핀에는 흙이 묻었을 텐데, 흙을 아이가 입김으로 후후 분대서 털 수 있을까 아리송합니다. 머리핀에 먼지가 묻었어도 아이라면 옷으로 닦겠지요. 머리핀에 묻은 흙일 적에도 옷에 문질러서 닦겠지요.



.. 머리 위에 하얀 꽃이 조롱조롱 피어 있어요. 발돋움하고 꽃 향기를 마셔요. 바람에 떨어진 초록 이파리도 주워요. 아카시아 나무랍니다 ..  (24쪽)





  그림책을 보면, 공원에 있는 나무가 빨강 노랑 푸름, 세 가지 빛깔입니다. 빨간 꽃과 노란 꽃일까요? 아닙니다. 빨간 빛깔은 단풍나무입니다. 그러면 노란 빛깔은?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아카시아꽃이 피는 유월에 노랗게 꽃이 피는 나무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밤꽃이라면 여름에도 노랗게 꽃이 필 테지만, 밤꽃을 그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온통 노랗게 물든 나무를 온통 빨갛게 그린 나무 옆에 그렸기에 여러모로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지만, 실마리를 못 풀겠습니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 옆 작은 공원에는 ‘철을 잊은 꽃나무’를 잔뜩 심었을는지 모를 노릇이라고 느끼면서도 궁금함이 가시지 않습니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는 계단 끄트머리에서 고양이를 만납니다. 들고양이 또는 골목고양이입니다. 사람 손을 잘 안 탈 만한 들고양이나 골목고양이일 텐데, 이 고양이는 아이하고 나란히 앉아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어른이 아닌 아이인 터라 이렇게 들고양이하고도 나란히 해바라기를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아카시아 초록 이파리’가 떨어졌다는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림으로 보아도 ‘초록 이파리’가 아닌 ‘잎이 붙은 나뭇가지’입니다. 글과 그림이 어긋납니다. 무엇보다, ‘아카시아나무 잎이나 가지’는 바람에 섣불리 떨어지지 않습니다. 거위벌레가 쏠아서 잎이나 가지를 끊어야 비로소 톡 떨어집니다. 바람이 불면 아카시아나무 하얀 꽃송이는 떨어질 만해요. 꽃송이는 가볍고 여리게 붙었으니까요.


  그림책을 조용히 덮습니다. 보드라운 이야기를 차분하게 펼치는 그림책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틀림없이 이 그림책은 보드라운 이야기를 차분하게 펼쳐서, 도시 한복판에서도 나무와 풀내음과 하늘빛과 빗방울과 여러 이웃(숲동무)을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렇지만, 이모저모 살피면 앞뒤가 어긋난다든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대목이 곳곳에 나옵니다.


  그림을 예쁘게 그리고, 글을 이쁘장하게 다듬는 일도 좋습니다. 다만, 예쁜 그림에 앞서 ‘올바로 그리는 그림’이 되기를 바라요. 이쁘장하게 다듬는 글에 앞서 ‘올바로 말하는 글’이 되기를 바라요. 아이들도 압니다. 또는, 아이들이 모른다면 아이들은 ‘잘못된 지식’을 그림책을 거쳐 받아들입니다. 4347.8.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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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시 읽는 아이 2
황순원 지음, 최승호 엮음, 사석원 그림 / 비룡소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2



모든 말은 언제나 노래

― 오리

 황순원 글

 사석원 그림

 비룡소 펴냄, 2002.11.25.



  오늘날 우리들이 주고받는 말 가운데 노래는 매우 드뭅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와서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돈을 벌어야 비로소 노래인 줄 잘못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스스로 노래를 부를 줄 모르고, 이래저래 노래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은 노래가 아닌 장삿속이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주고받는 말 가운데 이야기는 아주 드뭅니다. 소설이나 영화쯤 되어야 비로소 이야기인 줄 잘못 여기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지을 줄 모르며, 이래저래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아니되곤 합니다. 돈으로 사고팔거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장삿속만 넘칩니다.



.. 이빨을 몽땅 / 드러내고 / 웃는다 ..  (옥수수)



  예부터 지구별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노래였습니다. 지구별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주고받는 말은 늘 노래였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를 부릅니다. 노래를 하면서 일을 하고 놀이를 합니다.


  예부터 지구별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이야기였습니다. 지구별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주고받는 말은 늘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아낍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살림을 가꾸고 논밭을 돌보았으며 아기를 보살폈어요.



.. 나를 / 혀 위에 / 굴리었다 ..  (앵두)





  황순원 님이 짤막하게 쓴 글에 사석원 님이 가벼우면서 재미나고 살갑게 그린 그림이 예쁜 《오리》(비룡소,2002)를 봅니다. 참말 ‘시’는 가볍고 재미나며 살갑게 쓰기 마련입니다. 참말 ‘그림’은 가볍고 재미나며 살갑게 그리기 마련입니다.


  굳이 어두컴컴하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아요. 괜히 무겁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아요. 억지스레 목에 뻣뻣하게 힘을 주는 글이나 그림을 낳을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이 말을 하고 그림놀이를 하며 흙놀이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셔요. 어른인 내가 바로 이 아이들만 하던 지난날, 나도 이 아이하고 똑같이 놀던 모습을 조용히 떠올려요.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님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운 빛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아름다운 숨결이었습니다. 님이요 빛이며 숨결입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물들지 않거나 학교에 길들지 않은 채 꺼내는 말은 언제나 노래입니다. 아이들이 책에 젖지 않거나 어른들 울타리에 갇히지 않은 채 들려주는 말은 늘 이야기입니다.



.. 별을 / 쓰느라 / 머리가 / 세었소 ..  (갈대)



  모든 말은 언제나 노래이기에, 모든 일과 놀이도 언제나 노래입니다. 모든 살림살이도 언제나 노래입니다. 웃음도 노래요, 눈물도 노래입니다. 삶은 언제나 노래입니다.


  언제나 노래인 터라, 모든 말은 늘 이야기입니다. 일과 놀이도 늘 이야기입니다. 모든 살림살이도 늘 이야기입니다. 웃음도 이야기요, 눈물도 이야기입니다. 삶은 늘 이야기입니다.


  노래와 이야기가 언제 어떻게 누구한테서 태어났는가를 알고 싶으면, 스스로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면서 돌아보면 됩니다. 내 마음속에 깃든 님과 빛과 숨결을 읽으면 됩니다. 나 스스로 노래를 길어올리고, 나 스스로 이야기를 터뜨리면 됩니다.



.. 이 초롱불엔 / 불나방이 / 안 모인다 ..  (꽈리)



  그림책 《오리》를 끝맺는 작품이 〈꽈리〉인데, 황순원 님은 이 말과 노래와 이야기에서 ‘불나방’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불나방’이라니? 뭔가 안 맞습니다. 왜냐하면, ‘나방 = 불나비’이기 때문입니다. 남녘에서는 ‘나방’이라 하지만, 북녘에서는 ‘불나비’라 합니다. ‘불나비’란 밤에 불이 있는 곳으로 날아드는 나비를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그러니, ‘나방 = 불나비’인 만큼, ‘불나방’처럼 적으면 겹말이 돼요.


  아무튼, 그림책 《오리》는 즐겁게 웃고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우리 삶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떻게 누리며, 어떻게 나누는가 하는 실마리를 조그맣게 보여줍니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며 노래꾼입니다. 어른 또한 누구나 시인이며 노래쟁이입니다. 우리는 다 함께 사랑둥이요 꿈넋입니다. 4347.8.2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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