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45] 한솥지기

 


  어릴 적에 어른들은 ‘식구(食口)’라는 한자말을 써야 옳고, ‘가족(家族)’이라는 한자말 쓰면 옳지 않다 이야기했습니다. ‘식구’는 한겨레가 예뿌터 쓰던 낱말이요, ‘가족’은 일제강점기에 함부로 들어온 얄궂은 낱말이라 이야기했습니다. 적잖은 학자들도 이 같은 대목을 밝힙니다. 그러나 공공기관이나 학자나 전문가나 작가를 비롯해 참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대목을 살피지 않습니다. 상업광고 물결이 크기도 했겠지만, 오늘날 사람들 입과 손과 눈에 익은 ‘가족’이라는 낱말을 ‘식구’로 바로잡기는 힘드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참말 한겨레는 먼먼 옛날부터 ‘식구’라는 한자말로 우리 살붙이를 가리켰을까 궁금해요. 한자가 없던 옛날에도 한겨레 스스로 ‘식구’ 같은 낱말을 썼을까 아리송해요. 시골 할매는 곧잘 “우리 사람”이라고 말씀하곤 합니다. “우리 집”이라는 말마디는 으레 내 살붙이를 가리킵니다. 국어사전에는 안 나오는 “한지붕”이라는 낱말은, “한 지붕” 아닌 “한지붕”이라 느낄 만큼 “한식구”를 일컫는 자리에 씁니다.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밥을 나란히 먹다가 어느 날 ‘한솥밥’이라는 낱말 생각합니다. 시인 백석 님이 쓴 글 〈개구리네 한솥밥〉을 떠올립니다. 한솥으로 지어서 먹는 밥이니 한솥밥이요, “한지붕 사람들”이 먹는 밥이며, “우리 집 사람들”이 먹는 밥입니다. 한솥밥 사람이란 ‘한솥지기’입니다. 허물없는 이웃이라면 ‘한솥벗’이나 ‘한솥동무’ 됩니다. ‘한솥사랑’ 나누는 사이는 서로 즐겁고, ‘한솥꿈’ 꾸는 사이는 함께 아름답습니다. 4346.4.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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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44] 잣방울

 


  소나무에는 솔방울 열립니다. 소나무 방울이라 솔방울입니다. 잣나무에는 잣방울 맺힙니다. 잣나무 방울이기에 잣방울입니다. 오리나무에는 오리방울 자랍니다. 오리나무 방울이니 오리방울이에요. 소나무에는 솔꽃 핍니다. 소나무 꽃이라 솔꽃입니다. 잣나무에는 어떤 꽃이 필까요. 잣나무 꽃은 잣꽃일까요. 오리나무에는 어떤 꽃이 필까요. 오리나무인 만큼 오리꽃일까요. 국어사전을 살피면 ‘솔방울’ 하나 나옵니다. 국어사전에는 ‘송화(松花)’라는 한자말만 싣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잣방울’이나 ‘잣꽃’을 다루지 않습니다. 우리 국어사전은 ‘오리방울’이나 ‘오리꽃’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남녘 국어사전은 소나무 꽃을 ‘솔꽃’이라 밝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숲마다 잣방울과 오리방울 맺습니다. 숲으로 들어가면 잣꽃과 오리꽃 흐드러집니다. 국어학자한테는 솔꽃 잣꽃 오리꽃 안 보이기에 이러한 꽃 가리키는 이름 국어사전에 못 실을까요. 국어학자는 솔방울 하나만 알아보니 솔방울만 국어사전에 싣고, 잣방울과 오리방울은 국어사전에 안 실을까요. 솔꽃이 퍼뜨리는 가루는 솔꽃가루입니다. 송화가루가 아닙니다. 국어학자들이 풀학자와 나무학자 손을 잡고, 아니, 국어학자들이 시골 할매와 시골 어린이 손을 잡고 숲마실 다니며 숲말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6.4.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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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43] 마음노래

 


  둘레에서 만나는 사람들한테 조그마한 쪽쫑이에 글 몇 줄 적어서 건넵니다. 내 마음으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글을 써서 선물하니 글선물 되겠지요. 책 하나 장만해서 선물하면 책선물 될 테고요. 글선물 할 적마다 쪽종이 하나만큼 될 글을 씁니다. 더도 덜도 아닌 조그마한 종이 한 쪽 채울 만큼 글을 씁니다. 이 글은 어떻게 바라보면 ‘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분은 이 ‘시’를 놓고, 한글로 적으면 맛스럽지 않아 ‘詩’처럼 적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들한테 선물하는 ‘동시’도 한글로 적지 말고 한자로 ‘童詩’처럼 적어야 맛스러운 느낌 살아날까요. 참말 예전에 동시 쓰던 어른들은 이렇게 한자로 ‘童詩’를 쓰곤 했는데, 동시이든 童詩이든 하나도 안 대수롭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아이들한테는 그저 글이고 이야기일 뿐이거든요. 아이들은 어른한테서 글을 듣고 이야기를 들어요. 반가운 분한테 쪽글 하나 적어서 드리다가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어떤 마음 되어 이 글을 선물하나? 나는 내 쪽글 받는 분들이 이 쪽글을 노래하듯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요, 나는 쪽글도 시도 詩도 아닌 ‘마음노래’를 글 빌어 쪽종이에 적어 건넵니다. 4346.4.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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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42] 살펴 가셔요

 


  여섯 살 아이가 보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이 “조심해!” 하고 말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논둑을 타고 논다든지 어디에서건 개구지게 뛰거나 달리면, 어른들이 곁에서 “조심해!”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이래저래 ‘조심(操心)’이라는 한자말을 어린 나날부터 익숙하게 듣고 씁니다. 내 어릴 적 돌아보면, 내 둘레 어른들은 ‘조심’이라는 한자말도 익히 썼지만, ‘살피다’와 ‘마음 쓰다’라는 한국말을 나란히 썼어요. 나는 어릴 적에 ‘조심·살피다·마음 쓰다’가 다른 말마디인 줄 여겼는데, 나중에 커서 국어사전 들여다보니, 모두 같은 자리에 같은 뜻으로 쓰는 말마디이더군요. 내 둘레 어른들은 이 대목을 알았을까요. 이런 대목 돌아보며 말을 하는 어른은 몇이나 있었을까요. 어른들끼리 “조심해서 들어가셔요.” 하는 인사를 주고받곤 하는데, 언젠가 어느 어른이 ‘조심’이라는 말마디를 몹시 얹짢게 여겼어요. 당신은 “살펴 가셔요.” 하고 인사해야 바른 인사말이라 여긴대요. 당신으로서는 ‘조심’이라는 낱말이 마뜩하지 않다 했어요. 그러고 보면, ‘조심’이라는 한자말은 일제강점기 즈음부터 스며든 낱말 아닌가 싶어요. 예전에는 아이들한테 “잘 살펴야지.”라든지 “마음을 잘 써야지.” 하고 말했으리라 느껴요. 그래서 나도 우리 아이한테는 “응, ‘조심’하지는 말고 ‘잘 살펴’.” 하고 말합니다. 길을 살피고, 뜻을 살피며, 사랑을 살핍니다. 둘레를 살피고, 동무를 살피며, 숲을 살핍니다. 4346.4.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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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16 10:53   좋아요 0 | URL
확실히 '조심'이란 말과 '살피다'는 느낌이 다르군요.
조심은 무엇인가 경계를 하고 분리되는 느낌인데, 살피다는 주변의 모든 것을 두루 바라보고 헤아리며 함께하려는 그런 마음의 눈빛같아요. ^^
저도 이제부터는 조심하며 살지 않고, 잘 살펴가며 예쁘게 살아야겠습니다.~

숲노래 2013-04-16 23:05   좋아요 0 | URL
'살피다'는 테두리가 훨씬 넓어요.
"이웃을 살피다"와 "살펴서 가세요"
이렇게 두 갈래 모두 쓰지만,
'조심'은 좁은 테두리에서만 쓰거든요.

사람들이 한자말 쓰면서 갇히는
굴레랄까 수렁이랄까 우물이랄까
이런 대목이 참 커요...
 

[함께 살아가는 말 141] 하나부터 일까지

 


  큰아이와 숫자를 익히며 ‘하나 둘 셋 …… 여덟 아홉 열’을 이야기했지만, 큰아이랑 함께 보는 만화영화를 비롯해, 둘레 다른 어른들, 여기에 어른들 누구나 쓰는 손전화 숫자판을 누를 때에 터져나오는 소리는 몽땅 ‘일 이 삼 …… 팔 구 십’입니다. 시간을 셀 때에 “열 시 삼십 분”이라 말하니까, 한자로 가리키는 ‘삼십’도 알아야 할 테고, 날을 셀 적에 “사월 십오일”이라 말하니까, 한자로 일컫는 ‘사’라든지 ‘십오’도 알아야겠지요. 그렇지만, 책을 ‘한 권 두 권’으로 셉니다. 사람은 ‘네 사람 다섯 사람’으로 셉니다. 열매는 ‘넉 알 닷 알’로 셉니다. 이야기는 ‘일곱 가지 여덟 가지’로 들려줍니다. 숫자놀이 즐기다가 문득 큰 걸림돌 만납니다. 사회가 다 그러하니 사회를 따라야 하는 셈일 수 있지만, 똑같은 숨결을 두고 한편으로는 ‘사람’이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人間’이라 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human’이라 하는 이 나라 말글살이를 우리 아이들한테도 엉터리로 가르치거나 보여주어야 할까요. 하나부터 열까지 나아가야 할 말이고 넋이며 삶이지만, 하나에서 일까지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회 얼거리입니다. 4346.4.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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