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15] 언감

 

  겨울을 앞둔 늦가을에 자전거를 맨손으로 타니 손이 업니다. ‘언손’이 됩니다. 털신 아닌 고무신을 신고 자전거 발판을 밟으니 ‘언발’까지 됩니다. 한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손은 녹이며 자전거를 달리다가 생각합니다. 아마 국어사전에는 ‘언손’도 ‘언발’도 안 실리겠지요. 마을마다 이제 감알을 거의 다 땄습니다. 아직 감알 그대로 둔 집이 드문드문 있는데, 그리 멀지 않은 옛날에는 감알을 대롱대롱 매단 채 겨울을 맞이하기도 했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추운 겨울날 ‘언감’이 되면 새롭고 새삼스러운 먹을거리가 되거든요. 추운 날 추운 손을 비비며 꽁꽁 얼어붙은 감을 숟가락으로 파먹을 때에는 시골에만 있는 ‘얼음보숭이’가 되어요. 요즈음에는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어, 굳이 감나무에 감알 매단 채 언감 만들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얼리는 칸에 말랑말랑 감알을 넣으면 하루도 안 되어 ‘얼린감’이 되어요. 그러니까, 지난날에는 감알이 스스로 얼어 ‘언감’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감알을 일부러 얼려서 ‘얼린감’이에요. 서울사람은 ‘냉동홍시’라느니 ‘아이스홍시’라느니, 시골사람으로서는 못 알아들을 말을 쓰기도 하던데, 나는 시골에서 언손 언발 언몸이 되면서 언감을 누립니다. 4345.1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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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14] 물고기묵

 

  국어사전을 보면 ‘생선(生鮮)묵’이라는 낱말은 ‘어(魚)묵’으로 고쳐서 써야 한다고 나와요. 그런데, ‘생선묵’을 ‘어묵’으로 고쳐써야 하는 까닭은 밝히지 않아요. ‘생선묵’이라는 낱말은 ‘가마보꼬(かまぼこ)’라 일컫던 일본 먹을거리를 이런 일본말로 얘기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 한글학자들이 해방 뒤 이처럼 고쳐쓰자고 외쳐서 나왔다 하는데, 요즈음에는 ‘생선묵’을 ‘어묵’으로 바로잡자고 다시 얘기한다면 ‘생선’이라는 한자말도 알맞지 않다는 소리가 될 테지요. 그러면 ‘어묵’이라 할 때에 ‘魚’를 붙이는 한자는 얼마나 알맞을까 궁금해요. 무엇보다 왜 해방 뒤에나 요즈음에나 한국사람이 가리키는 한국말인 ‘물고기’라는 낱말을 붙이는 ‘물고기묵’은 생각하지 못할까 아리송합니다. 물고기 살을 발라서 만든 먹을거리라면 ‘물고기묵’일 뿐이에요. 도토리를 갈아 만든 먹을거리는 ‘도토리묵’이고, 메밀을 갈아 만든 먹을거리는 ‘메밀묵’이에요. 바라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살아가는 대로, 말을 빚고 이름을 붙여요. 그러나, 학자들은 ‘어류학자’일 뿐 ‘물고기학자’가 없어요. 사전을 엮어도 ‘어류사전’일 뿐 ‘물고기사전’을 엮지 않아요. ‘고기잡이배’라 하면서 막상 ‘물고기장수’ 아닌 ‘생선장수’가 되고 말아요. 여느 사람들도 학자들도 ‘물고기’라 일컫거나 말하지 않아요. 차라리 ‘오뎅(おでん)’이라 하든 ‘가마보꼬’라 하든, 일본말을 쓸 때가 외려 덜 남우세스럽지 않나 싶기까지 합니다. 이 말도 저 말도 모두 생각이 없어요. 4345.1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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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13] 풀이름

 


  마을 어르신한테 풀이름을 여쭈면 당신이 아는 풀이름은 이렁저렁 알려주지만, 당신이 모르는 풀이름은 이내 “몰러.” 하고 말씀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당신이 뜯어서 먹는 풀이름은 웬만해서는 다 압니다. 굳이 안 뜯어서 안 먹는 풀이름은 딱히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없이 예쁘구나 싶은 꽃이 돌울타리 따라 죽 피었기에 마을 어르신한테 여쭈어 보면 으레 “몰러. 난 안 심었는데, 바람에 씨가 날아왔서 뿌리내렸나 봐. 꽃이 이쁘니 그냥 뒀지.” 하고 말씀합니다. 전남 고흥 어르신들은 고구마도 그냥 ‘감자’나 ‘감저’라고 말해요. 감자도 감자이고 고구마도 감자인 셈인데, 민들레이건 부추이건 마을마다 이름이 달라요. 마을 깊숙한 두메와 멧골에서는 또 두메와 멧골마다 이름이 다르고요. 어째 이리 이름이 다를까 싶으면서도, 저마다 삶자락이 다르니 저마다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는 모습이 달라, 이름도 달리 붙이겠구나 싶어요. 이를테면, 우리 집 다섯 살 큰아이는 안경 맞추러 ‘안경집’에 가고 신발 사러 ‘신발집’에 가며 자동차는 기름 넣으러 ‘기름집’에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와 옆지기는 아이한테 아무 가게이름도 안 가르쳤으나, 아이는 스스로 느낀 대로 말해요. 곧, 풀이름이라 할 때에도 표준말 이름을 달달 외워서 맞출 까닭이 없어요. 저마다 달리 살아가는 내 마을살이에 맞추고 내 보금자리를 헤아리며 ‘내가 느낀 풀이름’ 하나 붙이고 ‘내가 바라보는 꽃이름’ 하나 붙이면 돼요. 학자가 붙인 ‘민들레’ 이름이 아니요, 임금님이 붙인 ‘쑥’ 이름이 아니에요. (4345.1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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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12] 잘못 없어요

 


  창원으로 기차를 타고 갑니다. 창원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로 아이들을 만나러 갑니다. 새벽 일찍 짐을 꾸려 아침 첫 군내버스를 타고 고흥읍으로 갑니다. 읍내에서 순천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탑니다. 퍽 멀디멀달 수 있는 길이지만 가을꽃 가을바람 물씬 느끼면서 시골을 지나 도시로 나아갑니다. 순천에서 탄 기차가 창원으로 가는 동안 안내방송 한 가락 흐릅니다. “…… 열차 이용하시는 데 잘못 없으시기 바랍니다.” 하는 소리가 문득 내 귀에 살짝 꽂힙니다. 어라, ‘잘못’ 없기를 바란다니, 얼마 앞서까지는 한자말로 ‘착오(錯誤)’를 말하더니, 웬일이람. 재미있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착오’를 ‘잘못’으로 바로잡는 마음결이라 한다면 “열차 이용(利用)하시는”도 “열차 타시며”로 손질한다면 훨씬 나을 텐데, 하고도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잘못은 없어요. 즐겁게 말하면 되고, 기쁜 마음 실어 얘기할 수 있으면 돼요. 내가 기차에서 안내방송을 한다면 “타려는 기차를 잘 살펴서 타시고, 표를 끊은 자리를 잘 찾아서 앉으셔요.” 하고 이야기했겠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 (4345.1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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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11] 맛있는 밥상

 


  ㅇ시에 있는 고등학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퍽 머나먼 길을 고속버스를 타고 찾아갔습니다. 네 시간에 걸쳐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버스를 타는데, 버스에 타기 앞서 밥 먹을 데를 살핍니다. 길가에서 맨 먼저 보이는 밥집으로 들어갑니다. 무엇을 시킬까 따로 생각하지 않고 ‘맛있는 밥상’이라고 적힌 밥이 무엇인가 여쭈어 두 그릇 시킵니다. 이른바 여느 밥집에서 ‘백반(白飯)’이라 이름을 붙여 내놓는 밥이 이곳에서는 ‘맛있는 밥상’입니다. 조금 기다리니 국과 반찬 몇 가지를 내옵니다. 살짝 허술하구나 느끼면서도 이름은 ‘맛있는 밥상’인 만큼 맛있게 먹자고 생각하며 맛있게 먹습니다. 어찌 되든 고맙게 받아서 먹는 밥이기에, ‘고마운 밥상’이 될 수 있습니다. 맛은 있지 않더라도 ‘즐거운 밥상’이나 ‘반가운 밥상’이 될 수 있겠지요. 밥집마다 그날그날 새 국과 반찬을 내놓기도 하니까, 이때에는 ‘오늘 밥상’이나 ‘오늘밥’처럼 이름을 붙여도 어울려요. 때로는 가장 수수하면서 투박하게 ‘밥 한 그릇’이라 이름을 붙일 수 있고, 더 단출하게 ‘밥’이라고만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4345.10.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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