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25] 흙순이

 


  공장을 다니는 가시내를 가리켜 ‘공순이’라고들 하고, 공장을 다니는 사내를 일컬어 ‘공돌이’라고들 합니다. 으레 얕잡는 말처럼 다루지만, 말로는 누가 누구를 얕잡는다든지 높이지 못합니다. 오직 마음으로 서로를 얕잡거나 높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겨레는 퍽 예전부터 가시내한테는 ‘순이’라 했고, 사내한테는 ‘돌이’라 했어요. 빨래순이·빨래돌이요, 집순이·집돌이입니다. 책순이·책돌이요, 만화순이·만화돌이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흙순이랑 흙돌이라 할 만해요. 그러니까, 나는 노동자한테 붙이는 이름 ‘공순이·공돌이’가 하나도 안 나쁘다고 느껴요. 참 수수한 이름이요, 더없이 착한 이름이며, 그야말로 예쁜 이름이로구나 싶어요. 흙내음 흐르는 이름이고, 살내음 따사로운 이름이면서, 사랑내음 촉촉히 젖어드는 이름이라고 느껴요. 하늘을 바라보며 곱다시 껴안는 아이는 하늘순이·하늘돌이입니다. 바다를 마주하며 넉넉히 얼싸안는 아이는 바다순이·바다돌이입니다. 꽃순이와 꽃돌이를 생각합니다. 나무순이와 나무돌이를 생각합니다. 이야기순이와 이야기돌이를 생각합니다. 글순이와 글돌이를, 사진순이와 사진돌이를, 그림순이와 그림돌이를 생각합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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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24] 차상위계층

 

  내 한 달 벌이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 들지만, 내 아버지가 ‘공무원 연금생활자’이기 때문에, 나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못 됩니다. 다만, ‘차상위계층’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한자로 적으면 ‘次上位階層’이라 하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잠재적 빈곤층’이라 한답니다. 그런데, 나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는 이름도, ‘차상위계층’이라는 이름도, 도무지 무엇을 뜻하거나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쉬운 말로 ‘가난뱅이’란 소리일 텐데, 왜 이렇게 어려운 한자말로 껍데기를 잔뜩 뒤집어씌워야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요, 돈이 없대서 못나지 않습니다. 가멸찬 살림이라서 부러울 일 없고, 돈이 있대서 잘나지 않아요. 그예 서로 이웃이요 저마다 동무이며 다 함께 사람입니다. ‘가난뱅이’가 여러모로 낮잡는 낱말이라 느낀다면 ‘가난이’라든지 ‘가난살림’처럼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가만히 따지면, ‘중산층’이라는 이름도 어딘가 어설퍼요. ‘중산’이란 무엇인가요. 또 ‘층’이라는 꼬리말을 붙이며 높낮이를 따져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요. ‘가난살림·넉넉살림’처럼 꾸밈없이 말하면서, ‘적은돈·많은돈’처럼 수수하게 말을 섞으면서, 서로 살가이 어깨동무를 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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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23] emart everyday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에는 없는 것이 많아요. 웬만한 도시에는 으레 있는 커다란 가게가 없어요. 이를테면 이마트나 롯데마트나 또 무엇무엇이라 하는 가게는 없어요. 자그마한 시골마을이니까 이런 가게가 들어온들 장사하기 어렵겠지요. 시골은 꼭 시골만 한 크기에 알맞춤한 가게면 넉넉하거든요. 커다란 가게 없는 시골이니 참말 시골은 시골이로구나 하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난해에 ‘emart everyday’라는 곳이 문을 열었어요. 지난해 봄께만 하더라도 ‘kim's club’이라는 이름을 쓰던 가게였더니, 어느새 ‘emart everyday’라는 이름으로 바뀌더군요. 도시에서 흔히 말하는 ‘기업 구멍가게’라고 하나요, 이런 곳이 들어오더군요. 예전에 있던 가게도 ‘기업 구멍가게’라 할 텐데, 가만히 보니까, 시골에서 조그맣게 꾸리는 가게 가운데 알파벳으로 가게이름 적는 데는 없지만, 이렇게 도시에서 생겨나 널리 퍼지는 가게는, 시골로 들어올 적에도 알파벳으로 가게이름을 붙여요. 이를테면, 편의점 ‘FamilyMart’나 빵집 ‘PARIS PAGUETTE’처럼 대놓고 알파벳으로 적어요. 옷가게도 시골 읍내에서조차 알파벳 이름을 써요. 어린이옷을 팔든 어른옷을 팔든, 기업에서 만든 옷을 파는 데는 으레 알파벳 이름이에요. 처음부터 이름을 한국말로 안 지으니 ‘이마트 에브리데이’나 ‘킴스클럽’이나 ‘패밀리마트’나 ‘파리바게뜨’처럼 한글로 적으면 외려 안 어울려 보일는지 몰라요. 그런데 말예요, 다른 나라에 여는 가게도 아니요, 외국사람 오라는 가게도 아닌데, 왜 한국에서 한국사람 마주하는 가게가 이렇게 영어사랑을 해야 할까 알쏭달쏭해요. 우리는 어떤 나라 어떤 사람이기에 이토록 영어를 아끼거나 즐겨야 할까 궁금해요. 434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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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22] 아주까리 동백꽃


  둘레 어른들이 모두 ‘피마자’라고 말해서, 우리 집 뒤꼍이나 텃밭에서 자라던 풀을 ‘피마자’라고만 생각했다. 이 이름이 한국말 아닌 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가 풀이름을 잘 모른다고만 여겨, 어른들이 일컫는 이름을 그예 따라서 익히면 되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한겨레가 예부터 일컫던 풀이름은 ‘아주까리’요, ‘피마자(蓖麻子)’는 ‘아주까리’라는 풀을 한자로 옮겨적은 이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아주 어릴 적에도 내 둘레 어른들은 ‘피마자’라는 한자말을 곧잘 썼구나 싶다. 어른들은 똑같은 풀 하나를 놓고 한쪽에서는 오랜 한국말(토박이말)로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자로 껍데기를 씌운 말을 쓰는 셈이다. 한편, 〈아리랑목동〉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아무리 고와도”처럼, 노래나 시에서는 으레 ‘아주까리’라 말한다. 이 노래를 그토록 많이 듣고 불렀지만, 정작 아주까리가 무엇이요 어떤 모습인지 알아보려 한 적이 없었다. 궁금해 하지 않았고, 가슴 깊이 느끼지 못했다. 그러면 “아주까리 동백꽃”에서 ‘동백꽃’은 무엇일까. 김유정 님 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은 강원도말로 ‘생강나무 꽃’을 가리킨다고 했는데, “아주까리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 또한 생강나무 꽃은 아닐까. 남녘 바닷가 마을이나 제주섬에 흐드러지게 피는 동백나무 꽃일까. 참말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지만, 한국말을 슬기롭게 들려주는 어른을 보기 어렵고, 한국사람답게 한국말 빛내는 어른을 마주하기 힘들다. 4345.12.3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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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21] 달려다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새 하루를 누리며 새 삶을 빚습니다. 새 하루요 새 삶이기에, 아이들 말소리는 늘 새로운 말이고, 새로운 넋이며, 새로운 사랑입니다. 여느 날과 같이 아침밥 차리고 먹이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방바닥 비질하고 이불 말리고 빨래 개고 부산스레 보내다가 기지개 크게 켜고 살짝 방바닥에 드러누웠더니, 아이들 마룻바닥 콩탕콩탕 울리며 달리는 소리 한가득. 어라, 이 아이들 늘 달리면서 살잖아. 뛰거나 달리거나. 어른들은 살몃살몃 ‘걸어다니’는데, 아이들은 집에서고 마당에서고 길에서고 들에서고 숲에서고 멧골에서고 늘 ‘날아다니’듯 ‘뛰어다니’고, ‘달려다니’는구나. 심부름을 시킬까 싶어 부르든, 예쁜 아이 까까 주려고 부르든, 마실 가자며 부르든, 참말 아이들은 쪼르르 ‘달려오니’까, 노상 ‘달려다니’는 아이들이네. 4345.12.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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