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10] ㅂㅅㅁㅎㅈㄷ

 

  한뎃잠을 자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문화잡지를 부산문화재단에서 내놓았다고 한다. 마침 부산마실을 하는 길에 이 문화잡지 한 권을 얻어서 여관에서 읽는다. 떨꺼둥이 삶과 넋과 꿈을 헤아리는 문화잡지를 지역 문화재단에서 엮어서 내놓는다니 놀랍구나 싶으면서, 참말 지역 문화재단이라면 이렇게 힘을 쓰고 마음을 기울일 때에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즐겁게 사랑을 빛내고 기쁘게 꿈을 나눌 때에 마을살이가 살고 살림살이 또한 북돋울 수 있겠지. 아이들이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바라보며 읽은 문화잡지 끝에는 ‘ㅂㅅㅁㅎㅈㄷ’라는 글씨가 나온다. 무슨 글씨인가 하고 들여다본다. ‘부산문화재단’에서 한글 닿소리를 딴 이름이라고 한다. 옳거니, 오늘날 숱한 지자체와 공공기관과 회사에서는 온통 알파벳 첫소리를 딴 이름을 쓰는데, 부산문화재단에서는 한글 닿소리로 그곳 이름을 적는구나. 처음부터 이름을 이렇게 썼을까. 얼마 앞서부터 이름을 이렇게 쓸까. 서울에서는 ‘Seoul’ 아닌 ‘ㅅㅇ’이나 ‘ㅅ’을 사랑하면 반가우리라. 경기도에서는 ‘G bus’ 아닌 ‘ㄱ 버스’를 사랑하면 반가우리라. 생각을 하면 열리는 마음이고, 사랑을 하면 날아오르는 꿈이 되리라. (4345.10.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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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09] 달걀밥

 

  한가위를 맞이해서 네 식구 길을 나섭니다. 아침 열한 시 십오 분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와서는, 시외버스로 갈아타서 순천 기차역에서 낮 두 시 기차를 타려 하는데, 어린 아이들이랑 짐을 꾸려 길을 나서자니 집밥을 먹기도 빠듯합니다. 기차 타기 앞서 기차역 앞 분식집에 들릅니다. 큰아이 몫으로 돼지고기튀김을 시키고, 옆지기는 찬국수를 시킵니다. 나는 ‘차림판에 적힌 오므라이스’를 시킵니다. 세 사람 밥이 나옵니다. 아버지 몫 ‘오므라이스’를 본 다섯 살 큰아이가 문득 “달걀밥이다! 나 달걀밥 먹고 싶어!” 하고 말합니다. 참말, 밥 위에 달걀을 지져서 얹으니 달걀밥이에요. 아마, 달걀을 삶아서 밥 사이에 심어도 ‘달걀밥’이라 할 테지요. 달걀을 으깨어 밥에 섞어도 ‘달걀밥’이라 할 테고요. 다 같은 달걀밥이면서 다 다른 달걀밥입니다. 달걀볶음밥이 있고 삶은달걀밥이 있어요. 달걀부침밥이 있을 테며, 달걀비빔밥이나 달걀말이밥이 있겠지요. 그러고 보면, 여느 밥집에서 일본말 ‘오므라이스(오믈렛라이스를 일본사람이 간추려 일컫는 이름)’를 씻어내고 ‘달걀밥’이라고 예쁘게 쓸 만한데, 아직 이런 밥이름을 쓰기는 힘든지 모릅니다. 어른들은 앞으로도 오므라이스라고만 말하지 않겠느냐 싶은데, 그래도 우리 아이는 이 밥을 바라보며 새삼스레 “달걀밥이다!” 하고 외치겠지요. (4345.9.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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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08] 가자

 

  아이들과 살아가며 내가 아이 앞에서건 옆지기한테건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는 말인데, 아이들이 갑자기 외치듯 말하는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깜짝 놀라지만, 이내 어디에서 아이들이 이런 말을 듣고서 외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첫째, 나는 말을 안 하더라도 옆지기가 말하겠지요. 둘째, 마을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서 들었겠지요. 셋째, 음성이나 일산 식구들한테서 들었겠지요. 넷째, 집에서 만화영화를 보면서 들었겠지요.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면내 우체국에 가려 하는데, 큰아이가 자전거수레에서 “출발!” 하고 외칩니다. 나는 퍽 뜬금없다고 느낍니다. 사름벼리야, 아버지는 너한테 ‘출발(出發)’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잖니, 너는 어디에서 이 말을 듣고 이렇게 외치니? 처음에는 생각을 하느라 지나칩니다. ㅋ이라는 만화영화에서 이 외침말이 흐른 듯합니다. 다음날에는 이 말버릇은 안 되겠다 싶어, 큰아이가 또 “출발!” 하고 외칠 때에, 나는 앞에서 자전거 발판을 구르며 “가자!” 하고 외칩니다. “가자! 가자! 우체국에 가자!” 하고 외칩니다. 큰아이는 이윽고 아버지가 외치는 “가자!”라는 말을 따라합니다. (4345.9.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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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07] 창문바람

 

  네 식구 함께 기차를 타고 다섯 시간 가까이 달리면서 옛날 일을 떠올립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기차에도 ‘열고 닫는 창문’이 있었어요. 따로 에어컨이 없었고, 누구나 창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며 여름날 더위를 식혔어요. 인천에서 떠나 서울로 가는 전철도 창문을 열어 바깥바람을 쐬도록 했습니다. 시내버스는 아주 마땅히 창문을 열어 여름날 더위를 식히도록 했어요. 시외버스도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도록 했습니다. 어느 버스이든 찬바람이 휭휭 나오지 않았어요. 이때에는 택시나 자가용에서 나오는 에어컨 찬바람이 퍽 놀랍다 싶기도 하면서, 창문바람 아닌 기계바람이라 그리 내키지 않았어요. 차를 타면 기차이든 버스이든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어야 비로소 시원하구나 하고 느꼈어요. 도시에서는 창문바람이 시원하기는 하더라도 상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깥에서 시원스러운 바람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버스나 기차에 바람이 고이지 않도록 합니다. 봄에는 봄 기운을 느끼고 가을에는 가을 기운을 느껴요. 시외버스가 도시 바깥을 달릴라치면 ‘아, 바람맛이 달라졌네?’ 하고 느낍니다. 기차가 시골 논밭 사이를 달릴라치면 ‘이야, 바람맛이 푸르구나!’ 하고 느껴요. 꽁꽁 닫혀 열 수 없는 기찻간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창문바람을 쐬지 못한다면, 곡성을 달리건 구례를 달리건 임실을 달리건, 아이들은 시골마을 푸른 숲을 느낄 수 없습니다. 눈으로는 바라볼는지 모르나, 바람을 쐬지 못하니 이내 고개를 돌려 손전화나 다른 것에 눈길마저 휩쓸립니다. (4345.9.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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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06] 기차동무

 

  음성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 생일을 맞이해 고흥에서 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간 다음, 순천에서 기차를 타고 음성까지 갑니다. 버스와 기차로 돌고 돌아 여섯 시간 남짓 걸리는 길에 다섯 살 큰아이 사름벼리는 기차동무를 사귑니다. 순천에서 조치원 사이 무궁화열차 느릿느릿 달리는 길에 다섯 살 두 아이는 눈이 마주쳤고, 한 번 눈이 마주친 뒤에는 서로 빙글빙글 웃고 싱긋빙긋 웃다가는 까르르 웃음주머니를 터뜨립니다. 둘은 놀이동무가 됩니다. 둘은 얘기동무가 됩니다. 둘은 과자를 나누어 먹는 밥동무가 됩니다. 서로 손을 꼬옥 쥐고는 기찻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싶은 마실동무가 됩니다. 아이한테도 어버이한테도 여러 동무가 있습니다. 같이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흙동무 있고, 서로 해를 바라보며 누리는 해동무 있어요. 버스를 같이 타면 버스동무, 길을 함께 거닐면 길동무, 삶을 함께 빚으면 삶동무, 책을 나란히 읽으면 책동무, 학교를 함께 다녀서 학교동무, 골목동네에서 살아가기에 골목동무, 들마실을 하면서 들마실동무, 서로서로 풀꽃을 아끼고 좋아하는 풀꽃동무, 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마을동무, 꿈을 서로 북돋우는 꿈동무, 일을 어깨동무하는 일동무, …… 동무 동무 좋아요. 서로 노래를 부르는 노래동무가 되고, 서로 시 한 줄 적으며 주고받는 글동무 되며, 서로 마음 깊이 피어나는 사랑을 나누는 사랑동무 됩니다. (4345.9.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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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9-03 06:39   좋아요 0 | URL
아버님 생신인가보군요.
저도 지난 주에 식구들과 음성에 다녀왔는데...남편 사촌 누님 포도 농장 가느라고요. 음성군내도 둘러보고 점심도 거기서 먹었지요. 저희 집에서는 차로 한시간 좀 넘게 걸리더군요.
아이들에게는 좀 먼거리일텐데 그래도 즐거운 나들이 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숲노래 2012-09-03 08:23   좋아요 0 | URL
고흥에서 음성까지는 참 멀어요 ㅠ.ㅜ
그래도 애써 온 길에...
옆지기 어버이 살아가는 일산에도 가려고 해요 @.@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을 거쳐 일산으로 가야지요 이구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