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5.16.

숨은책 527


《北傀의 南侵態勢》

박정희 국가비상사태선언

문화공보부

1971.12.6.



  서슬퍼런 나라에서 서슬퍼런 어른들 윽박질을 들으면서 자라며 늘 궁금했어요. 북녘은 사람들이 굶주려도 싸움연모(전쟁무기)에 쏟아붓고 싸움질만 시킨다지만, 남녘도 똑같아 보여요. 북녘이 싸움연모를 멈춰야 한다고 외치는 남녘이지만, 막상 남녘도 싸움연모에 더 돈을 퍼부을 뿐, 둘은 나란히 달렸어요. 남북녘 두 나라는 서로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고 총칼을 들이대도록 사람들을 내몰고 길들인 셈이지 싶더군요. 《北傀의 南侵態勢》처럼 얇은 사진책을 으레 보았습니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서는 이런 사진이나 글을 읽고서 반공독후감을 쓰고 반공포스터를 그리라 시켰어요. 임금자리를 지키려고 ‘국가비상사태’란 말을 지어내어 퍼뜨렸겠지요. 사람들 마음에 두려움·걱정을 심고 스스로 싸움박질이 일어나도록 미움·불길을 일으켰겠지요. 총칼은 사랑이 아닌 싸움이자 죽음으로 이어주는 길입니다.


이 책자를 보시는 분에게 : 3. 이 책자는, ‘국가비상사태선언’의 올바른 인식과그 실천을 위한 정부의 특별홍보계획의 하나로서, 북괴의 남친태세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그 소름끼치는 전쟁도발의 흉모를 사전에 분쇄하는, 강철같은 국민총화를 이룩하기 위한 전국민적 자각과 분발을 촉구하고자 하는데 근본목적이 있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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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5.16.

숨은책 526


《朝鮮野史全集 卷二》

 윤백남 엮음

 계유출판사

 1934.7.25.



  나라 목소리를 갈무리한 자취라 ‘정사(正史)’요, 나라 목소리가 아닌 자취를 갈무리해서 ‘야사(野史)’라고 합니다. 나라에서 하기에 옳다(正)고 내세우면서 ‘나라자취’란 이름으로 들사람(野) 목소리를 뒷전으로 두곤 합니다. 틀을 지키자니 사람들 눈길이나 마음을 가두려 하지요. 《朝鮮野史全集 卷二》는 나라밥을 먹는 쪽에서 다루지 않은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뒷이야기나 숨은얘기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들노래나 들이야기까지는 아니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정사·야사’ 모두 임금과 벼슬아치를 둘러싼 이야기에서 그치거든요. 나라자취조차 ‘이 나라가 다스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들여다보지 않고 갈무리하지 않습니다. 나라자취가 못미더워서 뒷이야기를 남기는 쪽에서도 ‘나라를 이룬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하게 짓고 돌보며 누리는 하루’를 살펴보지 않고 갈무리하지 않아요. 1934년에 나온 ‘야사’뿐 아니라 그 앞뒤에 나오는 숱한 ‘야사’도 한문투성이였습니다. 이 땅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고 흙을 일구어 살림하고 옷·밥·집을 손수 건사하는 하루를 ‘우리말 아닌 한문’으로 얼마나 그려낼 만할까요? 들사람이 들살림을 지으며 들아이한테 들노래를 물려주고 들꽃을 돌보는 들빛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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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25


《大百科事典 總索引》

 편집부 엮음

 학원사

 1965.10.5.



  어릴 적에 살림숲(백과사전)을 즐겨읽었어요. 어린이가 읽는 살림숲으로 영 모자라다 싶으면 ‘어른 살림숲’을 폈는데, 어른이 읽는 책은 아주 깨알글에 한자가 까맣지만 막상 더 깊거나 넓게 다루지는 못했다고 느꼈어요. 책에 담은 갈래는 많고 두툼하지만 정작 하나하나를 놓고는 스치고 지나가듯 다루었지 싶어요. 온누리 모든 살림살이를 빼곡하게 담을 뿐 아니라 꼼꼼하게 들려주기는 어려울는지 모르지만, ‘모든 살림을 다 안 담’더라도 ‘애써 담은 살림은 다룰 수 있을 만큼 깊고 넓게’ 다루면 좋을 텐데 싶어 늘 아쉬웠어요. 《大百科事典 總索引》은 ‘학원사 대백과사전’이 나오고서 덧책으로 나온 판입니다. 이름 그대로 ‘찾아보기’입니다. 어릴 적에는 이런 살림숲이 있는 줄 몰랐고, 2001년부터 어린이 낱말책을 엮는 일을 할 적에 일터지기님이 “얘야, 헌책집에 가면 학원 백과사전을 꼭 사오너라.” 하고 얘기했기에 비로소 알았습니다. 학원사 김익달 님은 1952년에 《學園》이란 잡지를 냈고 이듬해부터 ‘학원 장학회’를 꾸렸는데, 일터지기님이 바로 이 ‘학원 장학금’을 받으셨어요. 학원사에서 1958년에 낸 ‘살림숲(백과사전)’은 우리 손으로 이룬 첫 살림숲이라 할 만합니다. 요새 들추어도 빛날 만큼 알차고요.


ㅅㄴㄹ


'학원사'와 '백과사전' 이야기를

월간조선에서 다룬 적 있네요.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00910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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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4.20.

숨은책 520


《베르사이유의 장미 2》

 마리 스테판 드바이트 글

 노희지 옮김

 소년문화사

 1979.12.15,



  ‘만화방’을 처음 찾아간 어린 날 무척 놀랐습니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우글우글한데, 만화책 하나를 몇으로 가르고 까만 끈으로 꿰어서 까만 고무줄에 척 얹더군요. 낱책 하나를 그냥 두면 한 아이가 오래 본다면서 부러 너덧으로 쪼개어 30원을 받습니다. 이러면 아이들이 더 많이 보고, 그만큼 돈을 더 번다지요. 서서 읽도록 실꼬리를 달아 줄에 묶고요. 멀쩡한 책을 쪼개는 손짓이 끔찍해서 만화방에는 다시 안 갔습니다. 동무들이 가자고 잡아끌면 “난 싫다. 차라리 돈을 모아 낱책을 사서 읽을래.” 했어요. 동무들은 《수학의 정석》이나 두꺼운 배움책을 으레 갈라서 들고 다니지만, 저는 아무리 두꺼운 배움책도 통째로 건사했습니다. 줄거리를 읽는 책은 종이꾸러미로 그칠 수 없어요. 일본 만화책을 참 많이 몰래 베낀 우리나라인데,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놓고 몰래책이 갖가지로 나왔어요. 어느 몰래책도 ‘이케다 리에코’라는 이름을 안 밝히더군요. ‘글·옮긴이’는 밝혀도 ‘그린이’는 안 밝히는 눈가림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준 셈일까요. 배고프니 훔친다지만, 배고프면 손수 짓거나 손을 벌리는 동냥을 하면 됩니다. 그나저나 안 찢기고 살아남은 1979년치 만화책이 드문드문 있으니 고마울 뿐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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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4.20.

숨은책 521


《샘이깊은물》 94호

 설호정 엮음

 뿌리깊은나무

 1992.8.1.



  2001∼2003년에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일할 적입니다. ‘뿌리깊은나무·샘이깊은물’을 잇던 붓잡이 설호정 님을 만나기 앞서 《샘이깊은물》을 되읽었습니다. 1992년 8월치 〈이 인물의 대답〉을 보면 설호정·김종철 두 분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녹색평론》의 이념을 선생님은 삶에서 어느 정도 실천하세요?” “대부분 못하죠. 그러니까 《녹색평론》은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실천하시는지.” “가급적이면 외식 안 하려고 하고.” “보신주의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보신주의 나쁠 거 없어요. 나한테 좋은 게 지구한테도 좋은 거예요. 또 고기 안 먹고. 제 생활은 간단하게 단순하게 살고. 여행을 잘 안 하고. 거의 안 합니다. 도시를 벗어나지 않고. 집하고 여기하고 학교하고밖에 왔다갔다 안 하고. 또 식구한테 빨래 자주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빨리 해결해야 되는 과제가 아파트로부터 나와야 하는 일입니다.” “선생님 가족들이 공감하세요?” “내년이면 애들이 다 우리를 벗어납니다. 대학을 가니까.” “서울로 간단 말이죠?” 《녹색평론》 김종철 님은 대구를 안 버리겠다고 했지만, 설호정 님이 따진 말처럼 2009년에 서울로 갔지요. 글은 스스로 하는 삶만 쓸 노릇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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