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4.11.

헌책읽기 14 케테 콜비츠



  ‘대파’는 ‘큰파(大-)’가 아닌 ‘대나무’처럼 곧고 굵게 오르는 파를 가리킵니다. 오늘날 널리 퍼진 ‘대박’도 매한가지입니다. ‘대단하다·대수롭다’를 이루는 밑동인 ‘대’는 ‘장대·잣대·바지랑대·빨대’ 같은 곳을 받치고, ‘대머리·대가리’에도 씁니다. 대나무를 마당이나 마을에서 늘 마주하는 사람은 ‘대’가 왜 ‘대’인 줄 알고, ‘꽃대·속대’를 쓰는 뜻을 읽어요. 한때 대파 값이 제법 세긴 했지만, 능금이나 배에 대면 아무것이 아니고, 애호박이 훨씬 값이 셉니다. 다들 잊었을 수 있으나, 몇 해 앞서 달걀 한 판이 3000원에서 어느 날 5000원으로, 또 9000원을 거쳐 12000원까지 솟은 적 있습니다. 그때 대파 한 묶음도 9000원이었고, 시금치 한 단도 비슷한 값이었습니다. 그무렵 배추 한 포기는 2만 원을 넘었고요. 그즈음 기름값은 하늘로 껑충 솟아서 겨우내 얼음집에서 버틴 분이 꽤 많은 줄 압니다. 누가 잘 하고 더 잘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누가 우두머리에 선들, ‘그들’은 모두 ‘살림자리’를 안 쳐다보기 때문에, 이놈을 떨구거나 저놈을 올린들 이 나라는 안 바뀐다는 뜻입니다. 단출하고 얇게 처음 나온 1991년판 《케테 콜비츠》를 새삼스레 읽습니다. 케테 콜비츠 님은 우두머리도 으뜸도 아닙니다. 이녁은 ‘엄마’이자 ‘어버이’요, ‘사람’이자 ‘살림꾼’으로서, ‘사랑’을 그림에 새긴 길이라고 느낍니다. 벼슬을 쥔 무리 가운데 엄마나 아빠가 있을까요? 기저귀를 갈고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걸레질을 하고, 살림을 추스르고, 나무를 심어서 돌보고, 나비랑 풀벌레를 반기며 함께 노래하다가, 아이 손을 잡고서 풀밭에서 소꿉놀이를 하더니, 두바퀴 뒷자리에 아이를 태워서 들길을 천천히 달리는 벼슬아치나 글바치가 있기나 할까요? “변증법적 과정 경유”라든지 “명확 진실 제시”라든지 “동일화할 것 요구”처럼, 뜬금없는 먹물말은 걷어내기를 바랍니다. 엄마랑 아빠는 아이한테 이런 말을 안 쓰거든요. 우리는 사람일 노릇입니다.


《케테 콜비츠》(카테리네 크라머/이순례·최영진 옮김, 실천문학사, 1991.2.30.)


ㅅㄴㄹ


케테 콜비츠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변증법적 과정을 경유하도록 이끌지 않는다. 명확한 진실을 제시하고 우리에게 바로 동일화할 것을 요구한다. (45쪽)


“당신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전쟁일기 1914년 10월 30일/94쪽)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나의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리라. 네가 너의 방식으로 사랑하였듯이 나는 내 방식으로 그렇게 사랑할 것이다.” (전쟁일기 1914년 섣달 그믐/95쪽)


“부끄럽다. 나는 아직 당파를 취하지 않고 있다. 아무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내가 비겁하기 때문이다. 본래 나는 혁명론자가 아니라 발전론자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예술가로 간주하고 칭송하면서 내게 그런 일들을 떠맡겨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들을 계속하기가 꺼려진다. 한때는 혁명론자였다 …… 전쟁을 겪었고 페터와 마찬가지로 수천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퍼져 있는 증오에 이제는 몸서리가 난다.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사회주의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19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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