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4.11.

헌책읽기 15 린하르트와 겔트루드



  1994년 어느 날, 왜 우리나라에서는 ‘페스탈로치’를 안 읽는지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스무 살을 맞이했습니다. 이른바 ‘사범대학’에 있거나 ‘교육대학교’를 다니는 또래·윗내기·동생 모두 “이름은 들어 봤고, 수업에서 말은 하는데…….”에서 끝납니다. 1994년이나 2024년이나 페스탈로치를 읽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녁이 남긴 글이 한글로 몇 안 나왔을 뿐 아니라, 죄 사라졌거든요. 다리품을 팔아서 헌책집을 누벼야 겨우 한두 자락 찾아낼 수 있습니다. 《린하르트와 겔트루드》를 처음 만나고서 몹시 기쁜 나머지, 몇 해 동안 이 책을 늘 챙기면서 둘레에 읽어 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이 1746∼1827년 사이를 살던 사람이 남긴 이야기라고 덧붙이면 다들 놀라지만, 막상 먹고살기 바쁘고 돈을 벌어야 하고 서울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잿집(아파트)이랑 쇳덩이(자가용)를 거느려야 하기 때문에, 으레 손사래를 치더군요. 그래서 더는 이 책을 둘레에 읽어 주지 않습니다. 다만 큰아이랑 작은아이를 낳고서는 두 아이한테 읽어 주었고 스스로 늘 곱씹습니다. 둘레를 보면, 으뜸바치(일타강사)가 뭔 말을 하는지 챙기고, 그들이 낸 책을 잔뜩 삽니다. 그들은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는 길”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기보다는, 아이가 동무랑 이웃을 밟고 올라서서 으뜸자리에 서기를 바라는 판입니다. 어진 사람이기에 ‘어른’이되, 어진꽃을 피우려고 ‘어버이’로 서고, 어른과 어버이는 ‘어머니’가 살림을 이끌면서 ‘아버지’를 가르치고 타이르면서 살림살이가 깨어납니다. 어진 어른이자 어버이인 어머니가 일머리를 잡고서 일꾼을 일으킬 적에 이야기꽃이 피면서 사랑으로 나아갈 만합니다. 아버지란, 어머니가 들려주는 모든 목소리를 잔소리 아닌 사랑소리로 맞아들이면서 스스로 깨어날 적에 아름답습니다. 이름값을 보지 말고, 이름을 보셔요. 겉모습과 얼굴을 보지 말고, 마음과 얼을 보셔요. 나이를 재지 말고, 나를 보셔요.



《린하르트와 겔트루드》(페스탈로찌/홍순명 옮김, 광개토, 1987.9.25.)


ㅅㄴㄹ


나는 어떠어떠한 주의(主義)에 대한 사람들의 모든 논쟁에 가담치 않는다. (7쪽)


“영주님, 교회는 너무 술집에 가깝습니다 … 저의 남편은 술에 유혹되기가 쉽습니다. 만일 날마다 술집 바로 근처에서 일하게 되면, 남편은 유혹을 막기가 어려우리라고 걱정이 됩니다. 목이 마르는 일을 하는 사람이, 하루종일 눈앞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함께 어울리도록 부추겨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읍니까?” (20쪽)


“니겔, 너는 왜 진작 목사가 되지 않았나! 그렇다라면 교리문답 하나 멋드러지게 만들었을 텐데.” “그러다간 목사들의 밥줄이 모두 끊어지게요. 내가 어린아이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교리문답을 만들었다가는 목사가 한 사람도 필요없을 테니까요.” (25쪽)


“빵을 한 조각 더 제게 주세요. 안 돼요, 어머니?” “네 것은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니, 니콜라스?” “하지만 난 루디를 주어야 하는 걸요.” “루디를 주라고는 말하지 않았어. 네가 먹고 싶으면 그걸 먹으려므나.” “먹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 조금도 더 안 돼요?” “응, 절대로. 얘야!” “왜요?” “우리의 배가 가득하게 되고 나서, 가난한 사람을 구하려고 해서는 안 돼. 아니면 전부 루디를 주려고 그러니?” “예, 모두 주려고 해요. 루디는 지금 매우 배가 고픈 줄 제가 알고 있고, 또 우리는 여섯 시면 또 저녁을 먹는걸요.” (71쪽)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일을 시키거나, 좋아하지도 않는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는 게 의무는 아닐 것이다.” (79쪽)


“루디의 목장과 나의 경계석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거짓 증언과 탈취행위가 사회전반에 헤아릴 수 없는 위험과 재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91쪽)


“왜 돈을 꾸어서는 안 됩니까?” “하나의 못에서 또다른 못으로 옮겨걸지 않는 것이 살림살이의 한 지혜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비싼 이자를 받지 않는 사채꾼은 백에 열 명도 없는 법이에요.” (107쪽)


“학교는 현재와 같이 가정생활과 크게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참으로 밀접한 관계에 서는 곳이어야 합니다.” (14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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