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얘기하고 장미와 말을 섞는
― 이원수, 《시가 있는 산책길》



- 책이름 : 시가 있는 산책길
- 글 : 이원수
- 펴낸곳 : 경학사 (1969.6.10.)


 “아동문학을 내 꽃동산으로 생각해 왔다(5쪽).”고 하는 이원수 님 책 《시가 있는 산책길》을 봅니다. 시랑 소설이랑 동화랑 산문을 골고루 엮은 《시가 있는 산책길》은 “동화나 동시가 아동들만의 것으로 끝나는 문학은 진정한 문학이 될 수 없다는 나의 생각(5쪽)”에 따라 내놓는 책이라고 합니다. “문학 예술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고 생각(4쪽)”한다는 이원수 님입니다. 하루하루 즐겁다고 여기며 보내었기에 즐겁다고 여기며 살아온 손길과 내음과 빛깔과 무늬가 이원수 님 시와 소설과 동화와 산문마다 알뜰히 배어듭니다. 슬프다고 여길 때에는 슬픈 빛과 내음이 담기고, 좋다고 여길 때에는 좋은 빛과 내음이 담깁니다.


 너도 보이지,
 오리나무 잎사귀에 흩어져 앉아
 바람에 몸 흔들며 춤추는 달이.

 너도 들리지,
 시내물에 반짝반짝 은부스러기
 흘러 가며 조잘대는 달의 노래가.

 그래도 그래도
 너는 모른다.
 둥그런 저 달을 온통 네 품에
 안겨 주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은……. (달)



 이름난 글쟁이나 손꼽히는 평론가 글을 들지 않더라도, 글은 삶이고 책 또한 삶입니다. 부엌일도 삶이고 바깥일도 삶입니다. 장작패기도 삶이며 지게질도 삶입니다. 빨래도 삶이고 젖먹이기도 삶입니다.

 우리가 부대끼거나 복닥이거나 마주하는 일 가운데 삶 아닌 일이란 없습니다. 아귀다툼도 삶이며 주먹다짐도 삶입니다. 손찌검도 삶인 가운데 따돌림도 삶이겠지요.

 나 스스로 즐겁게 꾸리는 삶일 수 있으나, 나부터 짓궂게 팽개칠 수 있는 삶입니다. 깊디깊이 바라보며 속으로 사랑할 삶인 가운데, 겉스쳐 지나가면서 겉치레에 얽매이는 삶입니다.


.. “쟤는 너무 나무라지 말아 주셔요. 전 쟤를 사랑하고 있어요. 쟤는 나를 잴강잴강 씹었어요. 전 아파서 울었어요. 그뿐인가요? 쟤는 저를 마구 비벼서 찢었어요. 저는 쟤 때문에 죽었어요. 아! 나를 죽인 아이여요! 사람을 죽였으면 사형을 받겠지요. 장미꽃을 죽인 아이는 어떻게 됩니까? 사형은 안 받습니까, 선생님?” ..  (191∼192쪽)


 엊그제만 해도 초승달이던 밤하늘인데, 오늘 새벽에 올려다보니 차츰 통통하게 차오르는 밤하늘입니다. 하루하루 흐르고 한 달 두 달 지납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아빠랑 엄마는 꾸준하게 무르익는 나이로 접어듭니다. 이울고 차는 달마냥 나고 스러지는 사람이요, 가느다란 초승달에서 똑 사라지는 듯 보이는 달이었다가는 통통하게 꽉 차는 달처럼 천천히 오르내리면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사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무엇을 하며 밥을 차리나 생각하고, 새벽녘 흩뿌리는 눈발을 보며 오늘만큼은 부디 눈도 그치고 날도 하루쯤 풀리면 얼마나 고마우랴 비손합니다.

 시골자락 삶자리이니 으레 땅을 보고 쉬 하늘을 봅니다.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리를 듣지만, 언제나 집 둘레 멧자락에서 살아가는 크고작은 새들 날갯짓을 바라보며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풀도 나무도 흙도 모두 눈으로 덮인 나날인데, 이런 겨울날 꽁꽁 얼어붙기만 한 날씨에도 어쩜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낼 수 있니? 너희들도 얼른 따순 봄 찾아와 살진 먹이로 배를 채우면서 새끼를 키우고 싶겠지?


.. 서울의 거리에도 이젠 내 작품 속의 어느 장면이나, 내 동시의 어느 소재가 된 것이 늘어 가는 게 즐겁고, 그래서 나의 산책은 곧 내 생활과 어울려 하나가 되어 버린다. 아귀다툼하며 거리를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이 가엾은 것 같다 ..  (314쪽)


 1969년에 1쇄를 찍은 이원수 님 책 《시가 있는 산책길》은 1972년에 2쇄를 찍은 듯하고 1978년에 3쇄를 찍은 듯합니다. 아니, 3쇄는 안 찍었겠다 싶습니다. 제가 뒤적이는 책은 1972년에 찍은 2쇄 같습니다. 1978년에 간기 종이를 새로 붙여 책값을 650원에서 700원으로 올려받습니다. 그러니까, 1972년에 잔뜩 찍어 놓고 안 팔린 책을 여섯 해 뒤에 종이값이든 물건값이든 꽤 올랐으니까 이렇게나마 종이 한 장 붙여 50원을 더 받으려 했을 뿐이로구나 싶어요.

 어찌 보면 우습지만, 곰곰이 헤아리면 슬픕니다. 이 책 《시가 있는 산책길》이 2011년까지 새책방 책시렁에 얌전히 남았다면, 슬프게도 1972년 책값 650원 그대로일 테니까, 하는 수 없이라도 2011년 물건값에 발맞추어 6500원이만 16500원이든 올려붙여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책을 헌책방에서 뜻밖에 마주친다 할 때에는 ‘마흔 해 앞서 붙은 책값이 650원이든 700원’이든 따져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 터전을 헤아릴 때에 이 책이 얼마쯤 될까를 따져야 합니다. 350쪽이 넘는 퍽 도톰한 책이라 한다면 요사이는 글책이랄지라도 만오천 원쯤은 하겠지요. 값싸게 만 원 안팎일 수 있을 테고요. 헌책방 헌책 값으로 《시가 있는 산책길》을 만 원에 살 수 있다면 아주 싼 셈입니다. 게다가 이 책은 헌책방에서 딱 한 번 마주칠 그때가 아니고서는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들 테니, 만 원 아닌 이만 원이어도 값싼 셈입니다. 나중에는 십만 원이나 이십만 원을 얹어 준다 하더라도 책 껍데기 구경조차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참 얄궂은 짐승이라, 판 끊어졌지 오래되었지 소담스럽지 알뜰하지 ……, 이런 책 하나를 헌책방에서 헌책으로 산다 할 때에 만 원이나 이만 원 값을 치러야 한달 때에는 비싸다고 여깁니다. 아마, 이원수 님 이름을 아는 분들조차 이 책을 5000원에 사 가라 하더라도 비싸게 여길는지 모릅니다. (4344.1.1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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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아닌 날씨를 보며 산다
― 데오도라 크로버,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



- 책이름 :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
- 글 : 데오도라 크로버
- 옮긴이 : 김정환
-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1981.9.20.)



 이오덕 님이 1984년에 내놓은 책 《어린이를 지키는 문학》(백산서당) 끝자락을 보면 〈어린이의 마음을 지켰던 마지막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라는 책을 이야기하는 꼭지가 있습니다.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라는 책을 제대로 읽어 제대로 말한 글은 1981년부터 2011년 오늘까지 오직 이 글 하나만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쩌면, 책으로 묶이지 못하거나 신문·잡지 같은 데에 안 실린 채 조용히 적바림한 사랑스러운 느낌글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구태여 누구한테 읽히려고 쓰는 느낌글이 아닌, 일기장에 살가이 적어 놓은 느낌글이 있을 수 있겠지요.


.. 캘리포니아 산기슭 언덕 지방의 샛강이나 하상에 깔린 자갈 속에 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자 처음 이주했을 때는 물방울에 불과했던 것이 강물을 이루어 산맥의 서쪽 면을 쏟아져내리게 되었다 … 그들(백인)은 비록 물방앗간샛강족은 한 명도 못 잡았지만 잡아 죽일 인디안 ‘몇 명’은 발견해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 길이 나고 목장이 들어서고, 구릉 지대로 새로 밀려드는 백인 이주민들 때문에 물방앗간샛강 지방은 갈수록 잠식당했던 것이다 ..  (64, 98, 144쪽)


 1981년에 나온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를 쓴 ‘데오도라 크로버’ 님은 1982년에 나온 《마지막 인디언》을 쓴 ‘디오도러 크로버’ 님하고 같은 사람입니다. 어느 책이 옮게 적바림한 이름인지 모를 노릇입니다. 두 책 모두 글쓴이 이름을 알파벳으로 밝히지 않았거든요. 다만, ‘크로버’는 ‘Kroeber’로 적으며, 남편 이름은 ‘알프레드 루이 크로버’라 합니다. 알파벳 이름이 ‘Kroeber’라 한다면, 네덜란드 쪽 이름이 아닌가 싶고, 네덜란드 쪽 이름이라면 이 이름은 ‘끄루베르’로 읽어야 맞는데, 영어 투로 읽는다면 ‘크루버’입니다.

 책에는 안 나오는 이름을 인터넷으로 살펴 가까스로 ‘Theodora Kroeber’라는 알파벳 이름을 찾아냅니다. 이 알파벳 이름으로 다시금 살피니, ‘Theodora Kroeber’ 님은 1897년 3월 24일에 태어나, 1979년 7월 4일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더욱이, ‘시오도라 크뢰버’ 님은 딸아이 ‘어슐러 K.르 귄’을 1929년 10월 21일에 낳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어슐러 K.르 귄’은 판타지문학 작품으로 몹시 사랑받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 1850년대는 야나족에 있어 고난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측면이 적에게 노출되자 그들은 도매금으로 노예 신세가 되거나 납치되었고, 성병으로 인한 극심한 타격 때문에 그 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이런 인접 지방의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했던 야히족은 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식량을 주워 모으던 땅을 상실하면서, 멀지않아 그들을 굶어죽게 만들 심각한 타격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사슴이나 다른 사냥감들의 수가 감소했음은 물론, 권총을 쏘는 소리(이쉬는 권총이 ‘부서지는’ 소리라고 했다)가 투석기나 활 따위가 지닌 무성무기의 장점을 짓밟아 버렸기 때문에 짐승들이 워낙 조심을 하는 터라 몰래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 인디안들은 가능한 시간, 가능한 장소에서 말·노새·소 그리고 양들을 가져갔다. 그들은 고기는 식량으로 가죽은 걸칠 것으로 만들면서 이 가축들의 어느 부분도 버리지 않았다 … 단지 살기 위해서 훔치거나 죽인 것이지, 가축 수를 늘리거나 재산을 모으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  (88∼90쪽)


 헌책방마실을 하며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를 곧잘 만납니다. 아주 흔한 책은 아니지만 아주 드문 책 또한 아닙니다. 헌책방 책시렁 한켠에 얌전히 꽂힌 모습을 심심찮게 마주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기쁘게 집어드는 사람은 썩 드뭅니다. 인류학을 하는 학자나 학생이 아니라면, 게다가 인류학을 하는 학자나 학생일지라도 책읽기를 몹시 좋아하거나 공부를 깊이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선뜻 이 책을 집어들지 않습니다.

 북중미 토박이들 말과 삶을 다룬 책이 그럭저럭 팔리거나 읽히곤 합니다. 북중미 토박이들이 살아오며 남긴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람이 살아갈 슬기’를 얻는다고들 합니다.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라는 책은 ‘사람이 살아갈 슬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북중미에서 마지막 석기사람으로 살았다 할 만한 ‘이쉬’라는 사람을 ‘박물관사람’으로 삼아 ‘보살폈다’고 하는 백인이 곁에서 지켜보고 학문으로 파헤친 이야기를 갈무리한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입니다. 《마지막 인디언》은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을 어린이도 알기 쉽도록 한결 부드러우며 애틋하게 엮은 동화문학입니다.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는 이른바 보고서라 할 만합니다. 북중미 땅에서 ‘야히 겨레’가 어떻게 백인 손아귀에서 괴로워 하다가 그만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는가를 차분히 들려주는 보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쉬’라는 야히 겨레 마지막 사람이 ‘야히 겨레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스스로 적바림해 놓아야 한다는 ‘야히 겨레 옛사람 목소리’를 듣고 나서 스스로 박물관사람으로 지내는 자취와 삶을 곁에서 꼼꼼히 살핀 ‘적이 아니지만 동지 또한 아닌 인류학자(남편)랑 이야기꾼(아내)’이 갈무리하면서 엮어 놓은 ‘야히 겨레 역사를 다른 모습으로 담은 책’이라 해도 좋습니다.


.. 이쉬는 사냥의 어느 과정도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의식을 거치지 않고는 화살을 만지지도 않았다. 사슴 사냥을 나갈 때는 다른 의식절차도 첨가되었다. 사슴 사냥을 나가기 전날이면 이쉬는 밤이고 낮이고 생선을 먹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금욕기간은 3일로 연장되는 적도 있었다 ..  (268∼269쪽)


 야히 겨레 마지막 사람 이쉬는 당신 삶을 숱한 글과 사진과 이야기로 남긴 채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야히 겨레 마지막 사람 이쉬 삶을 담은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 될 《북미 최후의 석기인 이쉬》는 1981년에 조용히 태어나 조용히 읽히다가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아직 한국땅에서는 이 책이 책다이 읽히기 어렵다 할 테고, 문화학이나 인류학으로서도 깊이 헤아리기 힘들다 할 테며, 우리 삶을 돌아보는 좋은 길동무로 삼기에도 벅차다 할 테지요. 한국사람은 한국문화와 한국삶조차 살뜰히 돌아볼 겨를이 없을 만큼 몹시 바쁘니까요.

 시계나 달력에 맞추어서 살아간 사람이 아닌 이쉬입니다. 날씨와 철과 바람과 흙과 햇볕에 따라 살아간 사람인 이쉬입니다. 이쉬를 읽으려면 내 삶이 시계 아닌 날씨로 움직여야 하고, 달력 아닌 철에 따라 숨쉬어야 합니다. 돈이 아닌 사랑으로 사람을 사귀며 살아야 합니다. 1978년에 나왔다는 ‘이쉬 이야기 담은 영화’가 어떤 줄거리를 담았을는지 궁금합니다. 12달러면 살 수 있다는데, 한국에서 이 영화를 장만할 길을 찾아봐야겠습니다. (4344.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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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삶을 고마운 말에 실어 고마운 책으로
― 민영, 《내 젊은 날의 사랑은》



- 책이름 : 내 젊은 날의 사랑은
- 글 : 민영
- 펴낸곳 : 나루 (1991.9.30.)


 시를 쓰는 분들이 쓰는 산문을 즐겨읽습니다. 소설을 쓰는 분들이 쓰는 산문도 즐겨읽습니다. 그런데 산문을 쓰는 이들이 쓰는 시나 소설은 거의 못 봅니다. 어쩌면, 산문쓰기만을 즐기는 이는 퍽 드물지 않느냐 싶고, 산문쓰기를 하는 이들은 다른 갈래 글은 거의 못 쓰지 않느냐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진 한 장에 말 한 마디를 붙일 때에도 산문입니다. 사진과 글이 어울린다는 거의 모든 책들은 산문으로 적은 글이라 할 만합니다. 자서전이나 일기나 편지를 책으로 묶을 때에는 산문으로 쓴 글이라 여길 만하고, 책을 읽고 적바림하는 글 또한 산문으로 적바림하는 글이라 볼 만합니다.

 산문이란 가장 홀가분하게 쓰는 글입니다. 길이를 맞출 까닭이 없으나 길이를 맞추어 써도 됩니다. 줄을 띄어서 적을 까닭이 없지만 줄을 알맞게 띄어서 적을 수 있어요. 산문은 시처럼 써도 되고 소설처럼 써도 됩니다. 산문이라는 테두리에서 산문이라는 알맹이를 건사한다면 모두 산문입니다.

 시 가운데에는 산문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산문 가운데에는 ‘시산문’이란 없습니다. 산문이란 그예 산문이지만, 산문이면서 시 내음이 나기도 하고 소설 빛깔이 나기도 합니다. 산문은 제 얼굴이나 목소리가 없다 할 만한 글인데, 제 얼굴이 없어도 즐겁고 제 목소리가 나지 않아도 즐겁게 나누는 글이라고 느낍니다.


.. 우리가 세든 집은 긴 것이 특색이었다. 버스간처럼 길다랗게 생긴 일자 집을 반으로 나눠 오른쪽에는 주인집 식구들이 살고, 나머지 왼쪽 단간방에는 우리가 살았다. 집 앞에는 빨랫줄에 널린 빨래들이 늘 만국기처럼 펄럭거리고 있었다. 엄마(아내)는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 공동수도로 물을 길러 가야만 했다. 물지게를 지고 돌층계 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며 한참 동안 내려가야 수도가 있는데, 거기에서 물이 담긴 물지게를 지고 집까지 돌아온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서울로 시집오지 말 걸 그랬어요. 시골 있을 때도 이처럼 고된 일을 하지 않았는데, 아마 팔자인 모양이죠? 하기야 시골에서는 저보고 서울로 시집가 얼마나 좋으냐고 말들을 하지만, 이거 어디 서울 신랑 얻었다고 좋아할 수 있겠어요?” … 아빠는 이때부터 우리가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이 성실하지 못하여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열심히 살려고 밤잠조차 줄여 가며 노력해도 입에 풀칠을 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그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동숭동 집에서 평지에 있는 효제동 집으로 이사한 것은 그 이 년 후의 일이었다. 전세값이 해마다 껑충껑충 오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낙산 꼬방동네 인심이 좋았었기 때문이다. 예부터 가난뱅이 사정은 없는 사람만이 안다고, 조선 팔도의 가난한 사람들이 다 모인 꼬방동네 사람들의 마음에는 훈기가 있었다 ..  (22, 24, 31쪽)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글이든 마음대로 쓰지 못합니다. 내 모든 넋과 기운을 바쳐야 비로소 글 한 줄을 씁니다. 산문 또한 이 글을 쓰는 사람이 모든 넋과 기운을 바쳐야 비로소 한 꼭지 얻습니다. 그런데 모든 넋과 기운을 바쳐서 이루는 산문 한 꼭지이지만, 시를 쓸 때나 소설을 쓸 때나 사진을 찍을 때처럼 어떠한 틀에 매이지 않습니다. 틀에 매일 때에는 산문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사진을 찍든 내 잣대에 따라 내 틀을 마련해야 하기는 하면서도 내 틀에 얽매여서는 열매 하나 이루지 못합니다. 틀을 마련하여 지키지만 틀에 매일 때에는 아무런 문학도 문화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산문은 틀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어느 결에도 매이지 않되, 다른 모든 문학과 문화와 마찬가지로 모든 넋과 기운을 바치는 글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산문쓰기가 다른 시쓰기나 소설쓰기나 사진찍기보다 한결 힘들는지 모릅니다. 틀이 없는 틀이 산문쓰기가 되니까요.

 그런데 우리 살아가는 일과 살림살이 가운데 ‘틀이 있는 틀’이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하면서 쌀알 숫자를 꼭 똑같이 맞추는 일이란 없어요. 그저 쌀자루에 담아 놓은 작은 밥그릇 하나를 푹 박아서 집어올리는 느낌과 무게로 어림합니다. 쌀을 씻을 때에 물을 어느 만큼 부어서 씻은 다음 몇 초에 걸쳐 어떠한 빠르기로 개수대로 버려야 하는가 하는 틀 또한 없습니다. 밥을 안칠 때에 불을 어떠한 불을 넣고 몇 분 몇 초 동안 끓여야 하는가 하는 틀 또한 없어요. 그런데 모두 같은 밥입니다.

 김치를 접시에 담을 때에 몇 조각이 되도록 하나하나 세지 않습니다. 김치를 칼로 썰거나 가위로 자를 때에 크기가 어떻게 되도록 꼼꼼히 살피지 않습니다. 밥술을 뜰 때에도 똑같고, 젓가락질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밥을 먹고 젓가락질을 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님과 입을 맞출 때에 ‘오늘은 몇 초 동안 입을 맞추어야지.’ 하지 않습니다. 더 깊이 입을 맞춘다든지 더 살짝 입을 맞춘다든지 해서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지 않아요.


..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처방전에 약이름을 적어 주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왕진을 해 주실 수 없을까요?” “안 됩니다. 이 약을 갖다 먹이면 곧 나을 겁니다.” 의사는 다소 사무적으로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기야 대학에서 교수직까지 맡으신 분이니, 조바심하는 환자 쪽의 요청을 다 들어줄 수는 없을 것도 같았다 … 그러나 앓는 아이의 아비로서는, 그때 그분이 좀더 차분하게 증세를 설명하며 다급한 자의 물음에 이해와 동정을 베풀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인술은 육신의 병을 고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일까? ..  (140∼141쪽)


 아이 손을 잡고 멧길을 오를 때면 아이는 혼자 신나게 달리다가, 아빠 손을 잡다가, 힘들다며 안아 달라 합니다. 어찌 되든 우리들은 멧길을 오르내리고, 즐거이 바깥바람을 쐽니다. 아이는 잠자리에 누워 새근새근 잠들기도 하지만, 엄마 무릎이나 아빠 무릎에 누워 곯아떨어지기도 합니다. 오줌을 잘 가려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가 있는 한편, 잘못해서 바지에 쌀 때면 아빠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네 나이가 몇인데 이러니 하고 꾸중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꾸중을 듣는 아이가 신나게 뛰놀다가 곯아떨어져 색색대는 곁에서 이불을 덮어 주며 생각합니다. 왜 아빠로서 아이를 조금 더 따스히 돌보지 못하고 꾸중부터 하는가 하고.

 아직 많이 어리니까 잘못할 수 있습니다. 더 개구지게 놀고 싶지만 아빠가 온갖 집일과 글쓰기에 얽혀 온 하루를 마음껏 놀아 주지 못하니까 말썽을 부릴 수 있습니다. 어른으로서 이런 대목쯤 못 봐주는가 싶어 부끄럽습니다.


.. 현실에 안주하여 잠꼬대 같은 풍월을 읊조리긴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가 아닙니다. 시는 치열한 자기성찰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나와야 합니다. 거짓이 끼어서는 안 됩니다. 잘난 체해서도 안 됩니다. 남에게 오래도록 불려지길 바란다면 시는 어머니가 떠 놓고 비는 한 사발의 정한수같이 진실하고 겸허해야 합니다 … 솜씨가 늘면 자만하기 쉽고 이제까지 공들여 쓰던 시를 업신여기게 됩니다. ‘그 정도의 글쯤이야’ 하고 시쓰는 작업을 무시하게 될 때, 즉 생각을 깊이하고 시어를 갈고 다듬는 일에 소홀해질 때, 이제까지 빈틈없이 긴장을 유지해 오던 시가 갑자기 맥이 풀려서 헤식은 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  (150, 157쪽)


 시쓰는 민영 님이 내놓은 산문책 《내 젊은 날의 사랑은》을 읽었습니다. 1991년에 나온 이 산문책은 판이 끊어졌습니다. 헌책방마실을 1992년부터 다녔는데, 이때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이 책 하나를 헌책방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새책으로도 마주해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아침 물 긷고 빨래하러 이오덕자유학교로 천천히 멧길을 걸어올라가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앞서, 지난날 이오덕 선생님이 보시던 책 가운데 이 책이 눈에 뜨이어 빌려서 읽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걸려 스무 해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1970년대 첫무렵부터 1990년까지 쓴 산문을 성글게 그러모은 《내 젊은 날의 사랑은》이라는 책은 민영 님이 당신 글에 곧잘 쓰는 ‘헤식다’라는 말마디처럼 헤식은 글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 작은 책에 꽤 길게 담은 ‘민영 님네 아주머님’ 이야기는 더없이 사랑스러우며, 그지없이 애틋합니다. 당신 따님 ‘들레’한테 띄우는 편지도 참으로 좋습니다.

 어쩌면, 민영 님 묵은 책을 읽으며 끄적이는 이 느낌글 하나는, 우리 집 첫딸 사름벼리한테 쓰는 어설픈 ‘아빠 편지’가 될는지 모릅니다. 곯아떨어진 딸아이를 잠자리에 곱게 눕혀 이불을 덮은 다음, 아버지도 많이 졸리며 고단하지만, 졸음과 고단함을 꾸욱 참으면서 글 한 꼭지 붙드는 삶을 오늘 하루치 남겨 놓고, 딸아이가 먼 뒷날 무럭무럭 자라나서 제 아비가 쓴 글을 찬찬히 돌아본다 할 때에 2011년 1월 어느 날 이런 글도 이런 살림을 꾸리면서 썼네, 하고 돌아보아 줄 수 있을까 하고 꿈을 꾸면서 쓰는 편지로 삼을 수 있습니다.

 고마운 삶이기에 고마운 넋을 껴안고 고마운 말을 고마운 책에 담습니다. (4344.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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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만 님은 ‘독재부역’ 만화를 그렸을까? 아니면?
 ― 1987∼88년 민주운동을 비웃는 《퇴색공간》을 보면서



- 책이름 : 퇴색공간
- 글ㆍ그림 : 허영만
- 펴낸곳 : 당산 (1990.9.5.)


 (1) 창작하는 자유와 비평하는 자유


 만화를 비롯해 모든 문화와 예술은 ‘창작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창작하는 자유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개 창작품이 나한테 못마땅하다면, “나는 그이 작품은 못마땅해요” 하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그이가 작품을 내놓지 못하게 막아야 해요”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이렇게 말하는 일은 잘못입니다. 진보만이 옳을 수 없고, 보수만이 옳을 수 없습니다. 진보 목소리를 막을 수 없고, 보수 목소리 또한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은 반드시 진보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보수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 삶은 우리 삶대로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 있으면 됩니다. 법 없이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일 때가 가장 아름답고, 어느 틀에 매이지 않으면서 내 삶과 이웃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넋일 때가 가장 믿음직스럽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이승만과 박정희를 우러르는 만화쟁이가 있더라도(이원복), 전두환을 높이 사는 사진쟁이가 있더라도(에드워드 김), 노태우를 훌륭하게 여기는 만화쟁이가 있더라도(고우영),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도록 애쓴 만화쟁이가 있더라도(이현세), 이분들 모두 당신 생각과 뜻에 따라서 우직하게 한길을 걸어간 분들이므로, 또 이분들 나름대로 만화창작(또는 사진창작)을 하신 분들이므로, 꾸밈없이 바라보고 껴안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이분들이나 다른 분들이나 누구한테나 ‘창작하는 자유’가 있고, 창작하는 자유에 따라서 “박정희를 사랑해요!”나 “노태우가 좋아요!”나 “이회창이 짱이야!”를 외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한테는 창작하는 자유 못지않게 ‘따지는 자유’, 곧 비평과 비판을 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 따위 만화를 그리냐, 이런 ○○ 녀석!” 하고 쏘아붙이는 헐뜯기가 아니라, “아무개 씨 이런 만화는 이러저러한 줄거리로 이러저러한 목소리를 내는 만화로군요. 이러저러한 만화는 우리 삶과 사회에 어떻게 파고들거나 스며들어, 우리들한테 어떻게 느껴지거나 보여지는 만화이네요.” 하고 따질 자유가 있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화를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또 만화를 말하는 한 사람으로서, 더욱이 거칠고 팍팍한 이 나라에서 똑같이 세금을 내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만화비평과 만화평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노무현 님이 막 대통령이 되어 사랑을 받을 때, 책방에는 ‘노무현 만세!’를 외치는 어린이 만화가 제법 쌓이며 팔렸는데, 여러모로 씁쓸한 길을 걸으면서 이 만화책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황우석 님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만화 또한 한동안 책방 책시렁을 가득 메웠으나, 쓰디쓴 일이 터지면서 이 만화와 전기와 과학책들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작가는 작가고, 작품은 작품이며, 책은 책인데, 작가가 다룬 작품이 누구를 다루느냐에 따라서 책은 붕붕 뜨기도 하다가 종이쓰레기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책한테 무슨 잘못이 있느냐 싶어 안타깝습니다. 잘못이란, 제대로 알아보거나 앞날을 헤아리지 못하는 가운데 엮어내고 사고팔려던 책마을 사람한테, 또 이런 책을 아낌없이 사랑하며 사들이던 우리한테 있지 않느냐 싶으나, 화살은 늘 애꿎은 책한테만 돌아갑니다.


 (2) 허영만 님 만화 《퇴색공간》을 보면서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 보면 뜻하지 않던 보배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책이 나온 적이 있느냐 놀라는 책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소문으로는 제법 퍼졌으나 실물을 보지 못해 궁금하던 책을 용케 손에 쥘 때가 있습니다. 때를 잘못 타고 나오는 바람에 사랑 한 번 못 받고 스러졌던 책을 만나고, 때를 잘 타고 나오면서 돈과 이름을 얻었으나 하루하루 흘러가면서 ‘부역’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 자취를 감추어 버린 책을 만납니다.

 허영만 님 만화책 《퇴색공간》을 만났을 때에는 느낌이 여러모로 아리송했습니다. 만화 《오! 한강》을 그릴 때 떠돌던 소문이 그저 소문일 뿐인지, 아니면 만화를 그린 분 스스로 우리 삶터를 바라보는 눈길이었는지를 알 길이 없었는데, 만화 《퇴색공간》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아하, 그랬구나.’ 하고 무릎을 칩니다.


.. “신두표 이제 가니?” “으응, 도서관에서, 에 에 에 에취! 왜들 이렇게 북새통인지 이해가 안 가!” “내가 요즘 읽는 것 중에 고내찮은 책이 있는데 빌려 줄까?” “무슨 책인데?” “이거야.(《대학의 소리》라는 책)” “이거, 불온서적 아니야?” “무슨 말을, 이 시대의 지성인으로 자처하려면 이런 정도의 이론 무장은 되어 있어야지.” ..  (17∼18쪽)


 만화 《퇴색공간》은 ‘공장에 다니며 누나한테서 대학 등록금을 받던 신두표라는 1학년 학생이 세상물정을 하나도 몰랐다가 좌경학생한테 물이 들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뜻을 품고는, 학업을 때려치우고 공장에 위장취업을 하면서 노조운동을 벌여 애꿎은 회사가 부도가 나게 한다’는 줄거리를 담습니다. 이러면서 사이사이 ‘대학생들이 철없이 데모질이나 한다’는 대목을 끼워넣습니다.


.. “아이고, 이 녀석아, 이게 무슨 냄새냐? 네가 들어오니까 코가 근질거려 죽겠구나!” “최루탄이 묻어서 그래요.” “빨리 벗어라, 물에 담그게.” “예!” “원 녀석들, 비싼 돈 들여 학교 보냈으면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웬 데모야, 데모가. 넌 아예 근처도 가지 마라, 응?” “염려 마세요, 어머니.” ..  (19쪽)


 데모를 왜 하는지, 누가 누구하고 맞서는 데모인지, 1987년에 대학생들이 왜 그토록 데모를 하려고 했는지는 한 마디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오로지 신두표가 차츰 ‘지하서클’에 가까이하며 나쁜 물이 든다는 이야기를 펼치고, 지하서클에서는 학생들한테 ‘반공교육이니 대북정책이니 고급호텔이니 식민성과 반 봉건성이니 민중운동이니 부자는 몹쓸 놈이니’ 하는 이야기를 앞뒤 흐름 없이 툭툭 잘라서 토막토막 내던집니다.

 1987년에 학생들 데모가 그토록 일어난 까닭, 노동자가 그토록 일어난 까닭, 사람들 살림이 고달팠던 까닭, 학생들이 얌전히(?) 공부에 마음쓰지 못한 까닭, 이리하여 전두환 독재정권이 무너진 까닭, 이러는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흘러왔고 어찌 흘러가게 되는지 들은 조금도 다루지 않습니다.


.. “태일아, 책 잘 봤다.” “잘 읽었니?” “뭐가 뭔지 모르겠어. 민주화니, 투쟁이니,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니냐?” ..  (20쪽)


 신두표는 “누나가 해 준 등록금이야! 어렵게 벌어서 준 돈인데 공부는 안 하고 데모에 앞장서고 있는 내가 과연 이 돈을 쓸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등을 느끼고 있어.(41쪽)”라 말하면서, 이무렵 다른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걱정을 하는데, 《퇴색공간》은 이 대목에서 이 1학년 대학생들을 뒤에서 이끄는(배후조종자) 사람을 조용히 내보냅니다. 배후조종자는 “여러분을 이곳으로 부른 것은 대규모 시위에 관한 것이다. 학원의 민주화 쟁취를 위하여 6개 대학이 우리 대학에 모여 한날 한시 터뜨리는 것이다.(47쪽)”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가벼운’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조직을 탄탄히 하는 데에나 마음을 쓰라고 이야기합니다.


.. “야, 이놈들아 그만두지 못하겠니? 장사를 못한 지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우리 식구는 뭘 먹고 살라는 얘기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왜 이 난리야!” “에취! 에취!” “그놈의 데모 땜에 이사갈래도 집이 팔려야 가지.” “에취! 에취! 기형아를 출산하기 쉽다는데 어떡해.” “좀 조용히 살자! 조용히! 누가 옳고 누가 나쁘든 제발 그만둬!” ..  (23∼24쪽)


 여섯 개 대학이 모인 큰 집회에서 신두표는 지명수배가 됩니다. 서울역 앞에서 떨꺼둥이로 지내다가 형사한테 붙잡혀 한 해 동안 감옥살이를 합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다음, 신두표 스스로 누나와 어머니 볼 얼굴이 없다며 골방에 틀어박혀 지내는데, 이렇게 한 주 지내는 사이 배후조정자인 박정웅 선배가 귀신처럼 나타나 “민족해방 운동은 학생 신분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넌 학원 내에서의 활동은 졸업했다. 구로공단으로 가라. 그곳에서 노동을 착취당하는 밑바닥 계급의 해방을 위해 헌신해라!(94쪽)”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위장취업을 합니다. 신두표는 집을 나오면서 어머니한테 편지 한 장 남깁니다. 이 편지에는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로 양지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살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가야겠습니다. 핍박 받는 수많은 노동민중의 해방은 우리 손으로 이뤄야 합니다.” 하는 이야기가 적힙니다.


.. “이것은 좌경학생들이나 보는 책인데, 신두표의 가방에서 나왔어요.” “이 미친 놈아,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네놈 학비 땜에 고생하는 네 누나 생각을 해 봐라.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돌 던지고 불병 던지고 소리나 고래고래 지리는 게 공부냐! 이번엔 처음이라 풀어 줬지만 다음엔 감옥소에 보낸다고 했으니,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이 새끼야!” “…….” “두표야, 누나가 어떤 기분인 줄 아니? 나를 더 실망시키지 말아 줘!” “미안해 누나, 하지만, 이건 뭐가 잘못돼 가고 있어.” ..  (28∼29쪽)


 공장에 들어간 신두표는 노조운동을 하며 파업을 이끌고, 다른 노동자와 함께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라! 주 44시간 작업 보장하라! 시간외특별수당을 지급하라! 최저임금 30% 인상하라!” 같은 말을 외칩니다. 이무렵 1988년에는 어느 공장에서나 이와 같은 파업이 두루 퍼졌습니다. 왜냐하면, 회사 간부들은 노동자한테 최저생계비조차 되지 않는 일삯을 일삯이라고 주면서 시간외수당이나 특근수당을 안 주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쉬는 날 없이 몸이 망가지게끔 일해야 했으니, 빼앗긴 권리를 찾고자 들고 일어서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고요.

 그렇지만, 만화 《퇴색공간》에는 이무렵 노동자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었는가는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문받은 제품의 납품시한이 코앞인데, 일하지 않고 저러고 있으니 어떡하면 좋겠나? 회사가 잘 돌아가야 종업원 처우도 나아질 것 아닌가. 위장취업을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여기를 떠나 주게. 이건 적지만 취직이 될 때까지 생활비로 쓰게나!(111쪽)” 하는 얘기 하나 나오고, 이에 신두표가 이 구린 돈을 동료 노동자한테 까밝히면서 노동자들은 쇠파이프로 사장 머리를 후려치고, 회사는 부도로 문을 닫았다는 얘기만 만화로 그려 냅니다.


.. “명단하고 목적 말이야! 잘 봐줄 테니까 사실대로 말해!” “성갑성 씨야좌경분자인지 모르겠지만,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하겠다는 걸 잘봐 주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회사엔 지금 노조가 있는데 무슨 말인가? 노조를 반대하려면 정당한 방법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숨어서 선동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 “웃기는 소리 말더라고잉, 토요일날 우리는 민주노조 결성을 헐랑께 회사에서 막아 놓고 뭔 소리여?” “그건 위장취업된 불순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좌경세력에 의해서 노조가 결성되면 회사가 망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좌경부자라니? 빨갱이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이중에 그런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습니다. 기존 노조가 있으니까 회사의 정당한 절차에 따라 만들어져야 하고, 기존 노조와 대화로 해결하세요. 그리고 나서 회사와 협상합시다. 그러니까 모두 작업장으로 들어가세요.” “잘해 준다는데 이러고 있을 건 없잖아.” “맞아!” ..  (143, 158∼159쪽)


 신두표는 구로공단에서 ‘한 건’을 올려 얼굴이 팔렸기 때문에 더 위장취업을 하지 못하고 인천으로 와서 위장취업을 합니다. 그러나 이번 회사 사장은 다른 노동자들 앞에서 “여러분! 민주노조를 자랑하는 저 사람들 말처럼 제가 여러분들을 정말 착취했습니까? 명색이 창업주가 사장인 제가 이 공장을 운영한 지 28년 동안 남은 것이라곤 32평 아파트 한 채올시다. 이것이 착취입니까? 정해진 월급 외에 회사돈 꺼내 썼다면 내가 개요 개(179쪽)!” 하고 말하며 살살 달랩니다. 신두표는 “귀족과 노예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역시 타협하지 못합니다. 싸워 이겨서 뺏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착취당한 것을 찾읍시다, 여러분(178쪽)!” 하고 외칩니다. 이 바람에 노동자들은 신두표를 ‘빨갱이’로 여기며 등을 돌립니다.


.. ‘멍청이! 라이터가 6개면 어떻고 6백만 개면 어떻다는 거야? 우리는 불을 지른 자의 소모성 부싯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  (216∼217쪽)


 노조운동이 실패로 돌아가 고개를 떨군 신두표 앞에, 배후조종자 박정웅 선배는 ‘분신’을 하라고 주문합니다. 라이터 돌을 뺀 채 분신을 하겠다고 사장과 간부를 을러대라 꼬드깁니다. 그런데 그만 누군가 노조원 몸에 불을 붙여서 두 사람이 불에 타 죽습니다. 신두표는 학생운동이든 민주화운동이든 노조운동이든 한낱 부질없는 짓이며, ‘그들’ 끄나풀로 ‘소모성’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고 깨달았다고 뉘우치면서 《퇴색공간》은 빛바랜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3) 어느 곳이 ‘퇴색’된 ‘공간’일까?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수많은 ‘어용’노조가 사라졌습니다. 오늘날은 ‘주 44시간 노동’이 아닌 ‘주 40시간 노동’과 ‘주 5일 노동’이 자리잡습니다. 지난날 ‘어용’노조가 말썽이 된 까닭은, 이들 어용노조가 노동자 권리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으면서 언제나 노동자 짓누르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간부나 중간간부가 노동자를 때리고 욕하거나 윽박질렀다면 요즈음은 이주노동자가 이와 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삶터가 차츰 나아진다고 하지만 얼마나 나아진다고 하는가를 헤아리는 일이란 쉽지 않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허영만 님이 그린 만화 《퇴색공간》은 우리한테 무엇을 보여주는 만화가 될까요. 무엇보다도 허영만 님은 이와 같은 만화를 어떠한 까닭과 생각으로 그렸을까요. 스스로 ‘학생운동-사회운동-노동운동’ 하는 사람이 나쁘다고 여기면서 이러한 만화를 그렸을는지요? 아니면, 다른 어느 누가 부탁을 해서 그려 주었을는지요?

 만화책 《퇴색공간》으로 담아내듯, 이 나라에서 전두환 독재정권을 몰아낸 사람들 몸부림은 ‘옳든 그르든 중요하지 않고, 데모란 하지 말아야 했을 나쁜’ 일이며, 학생은 곱게 ‘공부나 해야 하는’ 노릇이었을까요?

 참 민주와 평화와 평등과 통일을 바라던 사람들 몸짓과 발자국을 모두 거스르는 한편, ‘소모성 부싯돌’인데다가 ‘퇴색한 공간’이라고 말하는 허영만 님 만화생각을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요?

 글 첫머리에서 밝힌 대로, 허영만 님한테는 허영만 님 눈길대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만화를 그릴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허영만 님 눈길대로 그리는 만화와 ‘참과 거짓을 비틀면서 그리는 만화’는 똑같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꾸밈없고 아낌없이 쏟아내는 허영만 님 생각인지, 다른 이 자유와 권리와 민주를 허튼 짓이라고 깔아뭉개는 허영만 님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허영만 님은 당신이 1990년에 세상에 내놓은 만화책 《퇴색공간》을 어떤 까닭으로 어떻게 그리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부디 속시원히 당신 생각을 털어놓아 주면 고맙겠습니다. (4342.3.1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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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 현대한국사진가선 · 임응식



- 책이름 : 현대한국사진가선 · 임응식
- 사진 : 임응식
- 펴낸곳 : 시각 (1979.9.1.)



 “사진기로 진실을 말했다”는 소리를 듣는 임응식 님입니다. 그렇지만 사진기로 참된 모습을 담아내어 참된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했던 임응식 님 책은 여느 새책방 책꽂이에서 하나둘 품절이 되고 절판이 됩니다.

 “사진기로 골목길 사람들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는 소리를 듣는 김기찬 님입니다. 그러나 사진기 하나로 골목길 사람들 웃음과 눈물을 담아내어 수수함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김기찬 님 책도 여느 새책방 책시렁에서 하나둘 품절이 된 뒤 절판으로 이어집니다.

 “사진기로 낮은 자리 사람들 삶터를 꾸밈없이 담아냈다”는 소리를 듣는 최민식 님입니다. 그런데 사진기 하나 들처메고 이 땅 구석구석 찾아나서면서 속울음을 꺼내 보이려고 했던 최민식 님 책(《인간》과 《휴먼》)은 차례차례 품절이 되었다가 절판으로 마감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뜻있는 사진을 하려면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아야 할까요. 우리 나라에서 뜻있는 사진을 펼친다면 ‘사진역사’에 이름 몇 줄 남기겠지만, 밥 굶거나 배 곯다가 고대로 스러지면 될까요. (4340.9.21.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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