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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1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5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535
‘극장 없는’ 시골에는 ‘마당이 있지’
― 목소리의 형태 1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15.5.31.
시골에는 ‘없는 것’이 많습니다. 영화관이 없고 놀이공원이 없으며 대형마트가 없습니다. 쇼핑센터나 지하철이나 지하상가도 없습니다. 높은 건물이나 빽빽한 아파트숲도 없습니다.
우리 식구가 깃들어 지내는 전남 고흥에는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도 없고, 시멘트공장 한 곳과 김 공장을 빼고는 공장조차 없습니다. 고흥에는 골프장도 고속도로도 기차역도 공항도 없습니다. 대학교도 없고, 고등학교조차 자꾸 줄어들며, 관광지라고 할 만한 데도 드뭅니다.
요즈음 시골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한테 ‘시골 놀이터’는 피시방입니다. 피시방에서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도시로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키웁니다. 아니면, 손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텔레비전을 들여다봅니다. 손전화에서도 텔레비전에서도 시골마을 아이가 만날 수 있는 이야기는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겪는 이야기’입니다. 신문에 나오는 사건이나 사고나 소식도 도시 이야기요, 방송에 흐르는 예능이나 연속극도 오로지 도시 이야기입니다. 더군다나 학교에서 하루 내내 배우는 교과서는 언제나 도시 이야기일 뿐입니다.
‘나는 따분함이 질색이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거라고는 내겐 통 관심 없는 것들뿐. 간디가 어떤 사람인지, 인류의 진화 과정이라든지, 수조 안에 들어 있는 물이 양동에 몇 개 들이라든지, 알 게 뭐람. 내가 가장 알고 싶은 건, 어떡하면 따분해 하지 않고 살 수 있느냐다. 그리고 나는 그 따분함에게 매일 조금씩 승리해 왔다.’ (22∼23쪽)
시골에는 ‘도시에 없는 것’투성이입니다. 아무렴, 그렇습니다. 도시에 있는 것이 시골에 모조리 있다면, 시골은 시골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시골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시골에는 ‘도시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도시에 없는 곳’이 가득한 시골이요, ‘시골에 있는 것’은 도시에 없기 일쑤입니다.
이를테면, 맑고 새파란 하늘은 도시에 없습니다. 싱그럽고 깨끗한 냇물이나 골짝물이나 바닷물은 도시에 없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숲도 도시에 없고, 풀벌레하고 개구리가 노래하는 풀밭도 도시에 없습니다. 멧새가 둥지를 트는 너른 터도, 제비가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처마도,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도시에는 ‘마당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는 집이 더러 있습니다만, 웬만큼 돈이 있지 않고서야 마당을 못 누리는 도시사람입니다. 서울에 천만 사람이 산다는데, 천만 사람 가운데 마당을 누리는 사람은 몇이나 될는지요?
“전부터 얘기하려고 한 건데, 우리 좀더 안전하고 유익하게 시간을 쓰는 게 어때? 이제 슬슬 관두자고. 담력시험.” (48쪽)
‘분명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거야. 정말 그럴까? 가르쳐 주느라 힘이 드는 거. 수업이 지연되는 거. 서툰 노래에 맞춰 주는 거.’ (87쪽)
오이마 요시토키 님이 빚은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대원씨아이,2015)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는 두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한 아이는 ‘학교하고 집하고 마을에서 지내는 하루’가 너무나 따분해서 미칠 듯합니다. 다른 한 아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삶’을 조용히 누립니다.
삶이 따분해서 미치겠다고 여기는 아이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전학생 아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면서 재미있어 합니다. 학교에서 교사는 ‘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는 삶’을 따분하게 여기는 나머지,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마음을 안 기울입니다. 삶이 따분해서 미치겠다고 여기는 아이를 둘러싼 다른 아이들도 ‘넌지시 전학생 따돌리기’를 하면서 ‘따분한 나날’에 재미를 누립니다.
“오늘은 보청기를 안 끼어서 특히나. 누가 개울에 던져버려서 못 찾았어요. 쇼코 애는 찾아본 것 같지만.” “던져버려요?” “얘, 학교에서 애들이 괴롭혀요. 뭐, 곧 장애 아동을 배려하는 학교로 전학시킬 거지만.” (64쪽)
학교나 사회에서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이 오직 ‘따분함’ 때문에 벌어진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따분함’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분함이란 무엇인가 하면, ‘이 땅에서 태어나서 사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왜 태어났을까?’ 하는 수수께끼를 스스로 찾지 못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는 보람이 없으니 동무를 짓궂게 괴롭히면서 ‘짜릿함’을 느끼지만, 짜릿함은 기쁨이나 즐거움하고 동떨어집니다. 그저 짜릿함일 뿐입니다. 그래서, 더 짙거나 센 짜릿함을 느끼고 싶어서 더 괴롭히고 더 못살게 굽니다.
못된 동무한테 시달리는 아이가 어떤 마음인가를 알 길은 없습니다. 짓궂은 동무한테 괴로운 아이가 어떤 삶인가를 알 길도 없습니다. 다만,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짓을 일삼는 아이가 ‘거꾸로 괴롭힘하고 따돌림을 고스란히 받는 자리’로 바뀐다면, 이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겠지요.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는 ‘따분한 삶을 헤쳐 나가고자 소리를 못 듣는 아이를 괴롭히던 아이가 거꾸로 괴롭힘을 받으면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고등학교까지 마치는 나날’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짚히는 데가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렴. 다 합쳐 170만 엔쯤 되는 모양이더구나. 물론 너희는 어린이니까, 그런 고가의 보청기 비용을 물어낼 순 없겠지. 지금 솔직히 이야기하면 학교 선에서 해결도 가능하단다. 아버지 어머니께 폐를 끼치는 일 없이 말이다.” (122∼123쪽)
마당이 너른 시골집에서 온갖 놀이를 누리던 아이들이 도시로 나들이를 가면 갑갑해서 괴로워 합니다. 마당이 너른 시골집에서 마음껏 뛰거나 달리거나 소리지르거나 노래하거나 춤추던 아이들이 도시로 마실을 가면 답답해서 좀이 쑤시다고 합니다.
도시에서는 아무리 넓은 아파트에 놀러가더라도 마루에서 못 뛰고 못 구릅니다. 도시에서는 재미난 골목이란 없이 자동차 주차장만 있는데다가 어느 골목에서 자동차가 불쑥 튀어나올는지 알 턱이 없습니다. 집 바깥에서 하루 내내 신나게 놀 만한 터전이 못 되는 도시 사회입니다. 학교하고 학원에서는 입시교육만 시키는 한국 사회입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아이들은 따분하고 괴로운 나머지 피시방하고 손전화하고 텔레비전 아니고는 재미있는 놀잇거리가 없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나마 극장이라도 있으면 좋다고 여기지만, 극장마저 없는 시골에서는 할 일이 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당 있는 집이라면, 마당 한쪽에서 자라는 나무를 철마다 다른 숨결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봄하고 여름에는 나비와 나방 애벌레가 깨어나서 꼬물꼬물 기어다니면서 잎을 갉아먹는 몸짓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제비가 잠자리나 나비를 낚아채어 새끼한테 먹이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멧골마을이라면 숲이나 멧등성이를 땀흘려 오르내릴 만합니다. 바닷마을이라면 시원하게 헤엄을 치고 모래밭 놀이를 누릴 만합니다. 들마을이라면 들풀을 뜯고 들꽃을 꺾으면서 들노래를 부를 만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제일 싫다. 나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사실 고독한 것이 아니라고 믿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2 때 처음으로 혼자 나고야까지 갔다. 엄청 먼 곳에 와 있는 것 같아 바짝 긴장했다. 도착해 보고 알게 된 것은, 돈이랑 배짱만 있으면 의외로 가깝다는 것이었다. 나 혼자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의외로 바로 손이 닿는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180∼181쪽)
시골에서는 잘사는 집만 마당이 있지 않습니다. 시골에서는 모든 집이 마당을 누립니다. 시골에서는 땅이 넓은 집만 새파랗게 맑은 하늘을 누리지 않습니다. 모든 시골집이 드넓은 하늘을 누리면서 시원한 바람을 쐽니다.
걸음을 옮길 수 있으면 시골에서는 누구나 숲하고 골짜기를 누립니다. 마실을 다닐 마음이 있으면 시골에서는 누구나 바다와 들과 멧등성이를 누립니다. 아무런 마음이 없으면, 도시에서도 삶이 갑갑하고 시골에서도 삶이 답답합니다.
깜깜한 밤은 그저 깜깜할 뿐 무서울 일이 없습니다. 밝은 낮은 그저 밝을 뿐 안 무서울 일이 없습니다. 밤이 있기에 무더운 여름이 차분히 식습니다. 낮이 있기에 해가 온누리를 비추면서 따스하게 어루만집니다.
아이들이 씨앗 심는 재미를 느끼고, 씨앗 돌보는 즐거움을 마주하며, 씨앗 거두는 보람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철마다 다른 삶을 느끼고, 다달이 새로운 사랑을 마주하며, 언제나 기쁘게 찾아오는 아침인 줄 알아차릴 수 있다면, 따분함이란 어디에도 스며들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삶과 사랑과 꿈이 없으니 그예 따분한 마음이 되리라 느낍니다. 4348.7.1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