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독서모임 책이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 비해 감흥이 많이 떨어졌다. 밀란 쿤데라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다. <농담>, <불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사람들 평이 좋다. 

 


  "쓸데없기만 한 게 아니야. 해롭다니까.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돼.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거든. 버티지 않고 바로 자기를 내주면 안 될 것 같은 거지. 그런데 그냥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 줘.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거야. 재치 있어야 할 필요도 전혀 없어. 여자가 마음을 탁놓게 만들고, 그러니 접근이 더 쉬워지지. 아, 이쯤 하자. -p25


 이 글을 읽으면 예전에도 그랬지만 공감갔다. 독서모임에서 이 글을 가지고 이야기 나눠서 좋았다.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붙임성이 좋다. 처음보는 사람한테도 말을 잘 건다. 여자와 대화할 때도 여자의 경계심을 풀게하고 무장해제시키는 재주가 있다. 부러운 능력이다. 나는 책을 읽고 부터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도 줄어든 거 같다. 그러다보니 쓸데없이 진지해지고 점점 노잼이 되어가고 있다. 좀처럼 가볍고 편해지지 않는다. 디폴트 값이 어색함이다.



  "왜냐하면 그 주위 누구도 농담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하게 됐으니까. 나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가 도래한 거라고 봐." -p31


 스탈린은 농담을 한다. 그러나 아무도 스탈린 말이 농담이라는 걸 모른다. 심지어 나도 그랬고, 독서모임 사람들 대다수도 그랬다. 스탈린이 농담을 한다고? 


 농담이 통하지 않는 세상. 작가는 왜 이를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라고 말했을까? 반어법이었을까? 


 

  그녀는 온힘을 다해 발버둥 쳐야 할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구하기 위해. -p50

 

 자신의 죽음을 구하기 위해라는 표현이 멋졌다. 모순적인 표현이다. 죽음을 구한다니. 한 여자는 자살하려고 물에 몸을 던졌다. 그런데 그것을 본 누군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상황이다. 



  아니, 어떻게? 결심을 잊은 것일까? 죽음을 훔쳐 가려던 이가 이제 살아 있지 않은데 왜 그녀는 물에 빠져서 죽지 않은 것일까? 마침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는데 왜 이제 죽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예상치 못하게 다시 찾은 삶은 마치 어떤 타격처럼 그녀의 확고한 의지를 내리쳐 부숴 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죽음으로 온 힘을 집결시킬 기운이 없었다. -p52


 자신을 구하려는 남자를 그녀는 죽인다. 그리고 힘이 빠져 죽으려던 것을 멈추고 물에서 헤엄쳐 나온다. 죽기 위해서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 의지를 소진하면 우리에게 남은 건 본능적인 생존욕구가 아닐까? 작가가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역설적이지만 살려는 의지가 필요한 게 아니다. 죽으려는 의지가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칼리방은 신비화하려 기를 쓰는 그런 짓이 모두 아무 소용없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됐는데, 왜냐하면 손님들이 그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또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만큼 무엇을 먹거나 마시고 싶고 간단한 몸짓을 할 뿐 그가 하는 말을 듣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관객 없는 배우가 되었다. -p67

 

 칼리방은 파키스탄인을 연기한다. 하지만 그의 장난을 아무도 눈치재지 못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우리의 페르소나를 연기하지만 사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우리는 관객 없는 배우가 아닐까?



  "내가 꿈꿨던 건 인류 역사의 종말이 아니야, 미래를 없애 버리는 게 아니라고, 아니, 아니, 내가 원했던 건 인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그들의 미래와 과거와 더불어, 그들의 시작과 끝과 더불어, 그들이 존재해 온 시간 전체와 더불어, 부처와 예수와 더불어, 다 사라지는 거였단다, 나는 최초의 여자의 배꼽 없는 작은 배에 뿌리 내린 그 나무의 전적인 소멸을 원한 거야, 자기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그 참담한 성교가 우리에게 어떤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할지 몰랐던 그 어리석은 여자, 쾌락을 가져다주지도 못했을 게 틀림없는 그 성교가......" -p104


 이 부분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 뒤를 다시 읽어도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 미래와 과거, 그들이 존재해 온 전부가 다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의 종말을 원하는 건 아니다. 아, 이제 이해가 간다. 역사의 종말이나 미래만 없애 버리는 게 아니라, 아예 과거까지 송두리채 사라지는 걸 원한 거구나.



  "벌써 세 번, 그래서 사실 여기에 샤갈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한 주 한 주 지나면 줄이 더 길어지는 걸, 그러니까 지구에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걸 확인하러 오는 거지, 저 사람들 봐! 저 사람들이 느닷없이 샤갈을 사랑하게 됐다고 생각해? 저 사람들은 오로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뭐든 다 할 준비가 돼 있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누가 하라는 대로 다 해. 기막하게 조종하기 쉽다고." -p136 


 과거 내 모습이 떠올라서 부끄러웠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혹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전시회를 가진 않았는지. 이제는 그래서 전시회를 잘 가지 않는다. 진짜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 이 징후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배 가운데,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 모든 에로틱한 욕망의 유일한 미래만을 나타내는 배 가운데 조그맣게 난 똑같은 구멍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섹스의 전사들인 거라고." -p139


 공감가진 않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거 같다. 저자는 여자들의 배꼽은 다 똑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배꼽은 배꼽을 지닌 여자에 대해 말해주지 않고 태아에 대해 말해준다고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여자를 사랑했지만 이제는 태아를 생각해서 섹스를 한다는 걸까? 잘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중략)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 작품 속에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인물이 한 페이지에 걸쳐 말을 한다. 저자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김이 좀 샜다. 최근에 하루키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소설 속에서 저자가 진술을 하는 순간 끝장이라고. 그 글을 읽고 위 구절을 읽어서 그런지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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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4-04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보면 저자와 대화하고 작중 인물과 대화하고 은유와 의미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사람과 멀어지게 되고 말수가 적어져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줄어들더군요. 하지만 그 간극을 글쓰기로 메우고 감상에 대해 공감하다보면 일상의 무의미한 대화보다 더 큰 감정적 교류를 하는 것 같아요. ^^

고양이라디오 2023-04-04 11:2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공감합니다ㅎ

그런데 아주 가끔은 무의미한 대화, 하찮은 대화가 하고 싶을 때도 있는 거 같습니다. 친한 친구들하고만 할 수 있는ㅎ

 















 요즘 인문/고전 독서모임을 하고 있어 문학 류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과학도서가 요즘 읽고 싶다. 어제 책 정리를 하다가 <스켑틱 21호>을 발견했다. 앞부분을 거의 읽고 뒷부분 조금 남겨놓은 상태였다. 뒷부분을 읽고 앞부분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도 훑어봤다. 


 <스켑틱 21호>는 코로나에 관한 내용들이 많아서 찾아봤다. 재밌었다. 



 <스켑틱>은 내가 좋아하는 과학잡지다. 구독하면 좋은데 가끔 이렇게 중고로 구입해서 보고 있다. 생각난 김에 <스켑틱> 중고를 찾아서 좀 구입해야겠다.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가 다시 독서욕이 활활 타오른다. 


 

















 슈테판 클라인은 좋아하는 과학 작가이다.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는 예전에 구입한 책이니 집에서 한 번 찾아봐야겠다. 


 <슈퍼버그>는 전염병에 관한 책이다. 역시 읽어보고 싶다. 


















 기억과 학습의 원리를 밝히고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의 저서들을 읽어보고 싶다. <통찰의 시대>, <기억을 찾아서>,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를 읽어보고 싶다. 



 셔머는 '악'을 감응적 존재에 의도적으로 가해진 위해로 정의했다. -p221


 악에 대한 꽤 훌륭한 정의라 기록해둔다.


 

 과학을 좋아하는 내게 언제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스켑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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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신형철씨의 에세이다. 시를 소개하고 해석하고 시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도 들려줘서 좋았다. 시는 평소 거의 읽지 않는다. 이렇게 해석이 있으면 읽을만 할 거 같다. 좋은 시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p112 


 우리가 시나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어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아래는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는 생애 딱 한 번 만났다. 하루키는 <잡문집>에 이 이야기를 썼고, 레이먼드 카버는 시를 썼다. 그 시를 앞 부분만 소개해본다. 


 발사체

-무라카미 하루키를 위하여

레이먼드 카버


 우리는 차를 홀짝였다.

 내 책이 당신의 나라에서 성공하게 된 

 타당한 이유들에 대해 점잖게 사색하면서. 

 당신이 내 소설들에 되풀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한 

 고통과 굴욕에 대한 대화로 미끄러져들어갔다.

 그리고 순전한 우연이라는 그 요소에 대해서도. 

 어떻게 이 모든 것이

 팔릴 만한 것으로 옮겨졌을까.

 나는 방 한구석을 응시했다. 


 (중략)


  

 전문을 소개하고 싶었는 데 너무 길다. 시가 4페이지나 된다. 궁금한 분은 인터넷을 검색해보거나 책을 찾아보시길! 




  나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 덕질은 우리에게 그런 덕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자꾸만 나를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세계와 맞서고 있다. -p254


 이 책에 소개 된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라는 영화를 보고 싶다. 평점도 높고 좋은 영화 일 거 같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간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노래를 우리의 국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과분해서다. 이 노래가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자격이 없어서다. -p267

 

 

 가끔 가슴을 울리는 좋은 문장들이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시를 읽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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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03-27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인간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노래를 우리의 국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과분해서다. 이 노래가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자격이 없어서다

저도 이 구절을 읽고 울컥했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03-27 17:22   좋아요 1 | URL
네,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찾아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이제서야 페이퍼를 쓴다. 예전에 페이퍼를 쓰다가 날아간 후로 미뤄두다 이제야 쓴다. 셰릴 샌드버그는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였다. 최근 기사에서는 그녀가 페이스북을 떠났다고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으로 손꼽히지만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은 거 같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어쨌든 이 책의 셰릴 샌드버그는 본받을 만하고 배울만하고 존경할만한 분이었다. 좋은 책이라 추천하고 싶다. 




 관리자에게는 빈자리를 충원하기 위해 지원자 전원을 세심하게 검토할 시간이 거의 없다. 과묵한 사람을 설득해 빈자리에 지원하게 할 시간은 더더욱 없다. 따라서 기회는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사람이 쥐게 마련이다. -p60


 저자는 여성들이 상급직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성향을 꼽는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시스코의 기술담당 최고책임자인 패드마스리 워리어는 "과거에 범한 실수에서 터득한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인가요?" 라는 <허핑턴 포스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그것은 내가 전공한 분야가 아니야' 또는 '그 분야에 대해 잘 몰라' 라고 생각해서 많은 기회를 놓쳤어요. 뒤돌아 보면, 빨리 배우고 신속하게 기여하는 능력이 중요했는데도 말입니다. 다음에 어떤 일을 추진할지 모색해봐도 자신에게 꼭 맞는 일을 찾을 수는 없을 겁니다. 자신에게 완벽하게 들어맞는 기회를 노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회를 잡고 그 기회를 자신에게 맞춰야 합니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바로 배우는 능력입니다." -ㅔ61


 격하게 공감된다. 내가 모르는 분야라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새로운 배움의 기회로 삼는게 중요하다. 



 나는 누구나 장기적인 꿈을 가져야 한다고 믿으며, 누구나 18개월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2년은 너무 길고 1년은 너무 짧은 것 같아서 18개월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18개월일 필요는 없다.) (중략)


 첫째, 무엇보다도 내가 이끄는 팀이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운다. (중략)

 둘째, 18개월 동안 새로운 기술을 익힌다는 좀 더 개인적인 목표를 세운다.   -p96


 나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팀의 목표와 개인적 목표.



 나는 자기 관점(내 진실)과 남의 관점(남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화의 출발점이라고 프레드에게 배웠다. 단 하나의 절대적 진실은 없으므로 자신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으면 남의 입을 막는 셈이 된다. 누구나 자기 관점에서 상황을 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비로소 위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자기 견해를 말할 수 있다. 이때 일인칭인 '나'를 사용하면 더욱 건설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다음의 두 가지 표현을 비교해보자. "당신은 내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군요." "내가 최근에 이메일을 네 통이나 보냈는데 답장을 못 받아서 실망했어요. 당신이 내 제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그런가요?" 전자처럼 말한다면 즉각적으로 "그렇지 않아요!" 라는 방어적인 반응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후자와 같은 표현은 상대방이 단박에 부정하기 힘들다. 전자는 견해 차이를 유발하는 반면에 후자는 토론을 자극한다. 나는 후자의 관점을 유지하며 대화할 수 있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어려운 일이라 계속 노력하고 있다. -p126~127


 참 좋은 팁입니다. 일인칭 나를 사용해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식으로 대화를 해야겠다. 상대방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면 상대방이 위협적이고 방어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현재 미국 여성의 24%만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성 평등을 믿는 사람' 이라고 정의하면 여기에 동의하는 여성은 65%까지 늘어난다. 이는 여성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큰 발전이다.

 

 나도 페미니스트를 위와 같은 정의로 여기면 동의한다. 예전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를 읽고 나도 페미니스트라 생각했다. 저자의 이야기가 공감되고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나도 부정적인 감정부터 앞선다. 극단적이고 잘못된 페미니스트들에 노출되서 그런 거 같다. 


















  나는 큰 꿈을 꾸고, 장애물을 통과해서 길을 만들고,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라고 여성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여성 각자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즐겁게 노력하기를 희망한다. 또한 남성이 직장과 가정에서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 몫을 담당해서 여성을 도와주기를 희망한다. 사회가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의 재능을 활용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가정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한 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더 이상 편협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p256



 과거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경우가 흔했다. 특히 과학, 수학 등 남성이 주류인 분야에서 심했다. 이제는 그런 차별이 점점 터부시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나 또한 사회가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의 재능을 활용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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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3-18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악인과 선인이 대립하는 영화를 볼 때도 악인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하면 조금은 이해가 가더라고요.

고양이라디오 2023-03-22 11:56   좋아요 1 | URL
악인의 입장이 공감가는 영화가 기억에도 오래 남고 좋은 영화같아요ㅎㅎㅎ
 
















 에리히 프롬의 책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이다. 철학자로도 볼 수 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계승했다. 독서모임 때문에 읽었다. 저자의 오류와 번역의 문제로 읽기가 힘들었다. 비판하고 싶은 부분과 좋았던 부분을 이야기해보겠다.

 


 삶에 대한 사랑은 없고 파괴성만 그득해 부서지고 몰락하거나 몰락하기 직전에 이른 사회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 가지 사례가 소수의 스페인 사람들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먼지처럼 흩어져버린 아스텍 부족이다. 혹은 히틀러의 뜻대로 되었다면 집단 자살의 제물이 되고 말았을 나치 독일이 그렇다. 서구는 아직까지 몰락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될 조짐이 보인다. -p24


 첫 부분부터 눈에 거슬렸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비판적인 자세로 읽게 됐다. 저자는 아스텍 부족의 몰락의 원인을 삶에 대한 사랑은 없고 파괴성만 그득했기 때문으로 말하고 있다. 아스텍 부족의 몰락은 원인은 스페인의 침략과 전염병 때문이었다. 독서모임에서 이 부분을 지적했는데, 모임장님은 번역의 잘못이라고 해석했다. 몰락한 사회는 아스텍 부족이 아니라 스페인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였다. 에리히 프롬이 잘못 알았을리 없다는 이야기였다.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문맥 상으로도 내용 상으로도 몰락한 사회가 스페인 사람들이라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번역 상의 실수로 보기도 불가능하다. 이걸 가지고 몇 번을 같은 주장을 반복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국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왜 다른 사람들은 모임장님의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반박하지 않고 다들 중립기어를 박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들 첫 모임이라 어색해서? 아니면 내가 틀린 걸까? 에리히 프롬이 틀릴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원칙으로서 폭력은 절대로 '인간 본성'의 일부가 아니다. -p29


 원칙으로서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폭력이 인간 본성이 아니라고 하는 에리히 프롬의 주장도 거슬렸다. 철학자 답게 자기 멋대로 인간 본성을 정의하고 폭력은 인간 본성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내가 잘못 이해했나 싶어 '원칙으로서' 의 의미를 해석해보려고 앞 뒤를 다시 읽어보고 노력해봐도 설명이 부족하다. 



 실제로 삶을 파괴할 수 있는 기술의 기적을 삶 자체보다 더 좋아한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는 참으로 많다. 산업화된 세상에서 핵 군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없는 이유도 삶에서 느끼는 매력이 많이 사라지고, 대신 사물이 경탄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 아닐까? -p42~43


 이 부분을 읽으면서 멘탈이 약간 나가버렸다. 핵 군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없는 이유로 삶에서 느끼는 매력이 많이 사라지고, 대신 사물이 경탄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니. 논리의 비약도 이만한 비약이 있을까 싶다. 물론 인류가 삶에서 느끼는 매력이 많아지면 핵 군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삶에서 느끼는 매력이 많아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텐데. 식량문제도 해결되고, 성차별도 해결되고, 총기문제도 해결되고, 지구온난화도 해결될텐데.


 이후부터는 그냥 비판할 부분을 표시하지 않았다.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자신을, 자신의 호불호를 타인에게 투영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훈련과 감수성, 매우 높은 객관성이 필요하다. 그에 더해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에겐 바로 그 집중력이 부족하다. 바쁘기 때문에, 동시에 모든 것을 하려고 들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 역사상 가장 집중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되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신문을 읽는 동시에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다른 일을 한다. 실제로는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다. -p70 


 물론 좋은 부분도 있었다. 저자의 전체적인 논지도 수긍한다. 저자는 불교에도 심취했었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금, 여기에' 와 일맥상통한다. 집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의 마음은 얼마나 바쁘고 이리저리 헤매는지.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인간이 '소비하는 인간', 완전한 소비자가 되기 시작했고, 이런 인간상이 새로운 종교적 비전의 성격을 띤다는 사실이다. 이 비전에서 천국은 모두가 매일 새 물건을 살 수 있는, 바라는 모든 것을 살 수 있고 이웃보다 조금 더 많이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거대한 백화점이다.-p211


 많은 사람이 상상하는 천국은 바라는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원하는 것, 갖고 싶은 것을 맘껏 살 수 있는 곳.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수동성을 의식하고 이 수동성이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깨달음이다. 다음 걸음은 진정한 활동성의 연습이다. 아마도 그 시작은 한번 가만히 앉아 바라보려는, 들어보려는, 명상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이건 절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말은 정말 쉬워 보인다. 가만히 좀 앉아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답할 것이다. "그게 뭐 특별하다고.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래?" 하지만 한번 해보면 당신이 얼마나 쉼 없는 행동의 강제와 분주함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p251


 수동성을 의식하고 능동적이고 활동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겠다. 이 부분도 좋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처음 만난 분이다. 그 때는 굉장히 좋았다. 사랑은 능력이고 기술이라는 깨달음을 줬다. 이번 책은 영 아니었다. 이 책은 미발표 작품을 에리히 프롬의 사후에 엮어서 낸 책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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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3-11 15: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종종 유명한 철학자나 사상가의 유작이나 미발표 원고라고 마케팅을 하며 출간되는 경우가 있는데 미발표의 경우 그럴만한 이유가 있거나 초고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원고에 수정을 가하면 가하는대로 수정자의 해석이 들어가 좋지 않고 날 것 그대로를 출간하면 사실관계가 부정확하거나 심하게는 주요 사상과 배치되기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 오히려 원작자에게 누가 되는 것 같아요. ㅠㅠ

고양이라디오 2023-03-11 15:13   좋아요 1 | URL
저도 딱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글들은 초고에 불과하지 않을까, 에리히 프롬이 다시 본다면 수정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DYDADDY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transient-guest 2023-03-11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의 문제? 혹은 편집? 뭔가 어색하고 억지스럽게 보이네요. 영어로 된 원서와 비교하시기 전까지는 알 수 없을 듯…

고양이라디오 2023-03-11 15:14   좋아요 2 | URL
아스텍 부족 부분은 번역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ㅎ

전체적으로 번역의 질도 많이 떨어지는 거 같았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