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책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이다. 철학자로도 볼 수 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계승했다. 독서모임 때문에 읽었다. 저자의 오류와 번역의 문제로 읽기가 힘들었다. 비판하고 싶은 부분과 좋았던 부분을 이야기해보겠다.

 


 삶에 대한 사랑은 없고 파괴성만 그득해 부서지고 몰락하거나 몰락하기 직전에 이른 사회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 가지 사례가 소수의 스페인 사람들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먼지처럼 흩어져버린 아스텍 부족이다. 혹은 히틀러의 뜻대로 되었다면 집단 자살의 제물이 되고 말았을 나치 독일이 그렇다. 서구는 아직까지 몰락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될 조짐이 보인다. -p24


 첫 부분부터 눈에 거슬렸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비판적인 자세로 읽게 됐다. 저자는 아스텍 부족의 몰락의 원인을 삶에 대한 사랑은 없고 파괴성만 그득했기 때문으로 말하고 있다. 아스텍 부족의 몰락은 원인은 스페인의 침략과 전염병 때문이었다. 독서모임에서 이 부분을 지적했는데, 모임장님은 번역의 잘못이라고 해석했다. 몰락한 사회는 아스텍 부족이 아니라 스페인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였다. 에리히 프롬이 잘못 알았을리 없다는 이야기였다.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 생각한다. 문맥 상으로도 내용 상으로도 몰락한 사회가 스페인 사람들이라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번역 상의 실수로 보기도 불가능하다. 이걸 가지고 몇 번을 같은 주장을 반복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국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왜 다른 사람들은 모임장님의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반박하지 않고 다들 중립기어를 박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들 첫 모임이라 어색해서? 아니면 내가 틀린 걸까? 에리히 프롬이 틀릴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원칙으로서 폭력은 절대로 '인간 본성'의 일부가 아니다. -p29


 원칙으로서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폭력이 인간 본성이 아니라고 하는 에리히 프롬의 주장도 거슬렸다. 철학자 답게 자기 멋대로 인간 본성을 정의하고 폭력은 인간 본성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내가 잘못 이해했나 싶어 '원칙으로서' 의 의미를 해석해보려고 앞 뒤를 다시 읽어보고 노력해봐도 설명이 부족하다. 



 실제로 삶을 파괴할 수 있는 기술의 기적을 삶 자체보다 더 좋아한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는 참으로 많다. 산업화된 세상에서 핵 군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없는 이유도 삶에서 느끼는 매력이 많이 사라지고, 대신 사물이 경탄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 아닐까? -p42~43


 이 부분을 읽으면서 멘탈이 약간 나가버렸다. 핵 군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없는 이유로 삶에서 느끼는 매력이 많이 사라지고, 대신 사물이 경탄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니. 논리의 비약도 이만한 비약이 있을까 싶다. 물론 인류가 삶에서 느끼는 매력이 많아지면 핵 군축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삶에서 느끼는 매력이 많아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텐데. 식량문제도 해결되고, 성차별도 해결되고, 총기문제도 해결되고, 지구온난화도 해결될텐데.


 이후부터는 그냥 비판할 부분을 표시하지 않았다.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자신을, 자신의 호불호를 타인에게 투영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훈련과 감수성, 매우 높은 객관성이 필요하다. 그에 더해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에겐 바로 그 집중력이 부족하다. 바쁘기 때문에, 동시에 모든 것을 하려고 들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 역사상 가장 집중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되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신문을 읽는 동시에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다른 일을 한다. 실제로는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다. -p70 


 물론 좋은 부분도 있었다. 저자의 전체적인 논지도 수긍한다. 저자는 불교에도 심취했었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금, 여기에' 와 일맥상통한다. 집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의 마음은 얼마나 바쁘고 이리저리 헤매는지.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인간이 '소비하는 인간', 완전한 소비자가 되기 시작했고, 이런 인간상이 새로운 종교적 비전의 성격을 띤다는 사실이다. 이 비전에서 천국은 모두가 매일 새 물건을 살 수 있는, 바라는 모든 것을 살 수 있고 이웃보다 조금 더 많이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거대한 백화점이다.-p211


 많은 사람이 상상하는 천국은 바라는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원하는 것, 갖고 싶은 것을 맘껏 살 수 있는 곳.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수동성을 의식하고 이 수동성이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깨달음이다. 다음 걸음은 진정한 활동성의 연습이다. 아마도 그 시작은 한번 가만히 앉아 바라보려는, 들어보려는, 명상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이건 절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말은 정말 쉬워 보인다. 가만히 좀 앉아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답할 것이다. "그게 뭐 특별하다고.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래?" 하지만 한번 해보면 당신이 얼마나 쉼 없는 행동의 강제와 분주함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p251


 수동성을 의식하고 능동적이고 활동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겠다. 이 부분도 좋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처음 만난 분이다. 그 때는 굉장히 좋았다. 사랑은 능력이고 기술이라는 깨달음을 줬다. 이번 책은 영 아니었다. 이 책은 미발표 작품을 에리히 프롬의 사후에 엮어서 낸 책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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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3-11 15: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종종 유명한 철학자나 사상가의 유작이나 미발표 원고라고 마케팅을 하며 출간되는 경우가 있는데 미발표의 경우 그럴만한 이유가 있거나 초고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원고에 수정을 가하면 가하는대로 수정자의 해석이 들어가 좋지 않고 날 것 그대로를 출간하면 사실관계가 부정확하거나 심하게는 주요 사상과 배치되기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 오히려 원작자에게 누가 되는 것 같아요. ㅠㅠ

고양이라디오 2023-03-11 15:13   좋아요 1 | URL
저도 딱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글들은 초고에 불과하지 않을까, 에리히 프롬이 다시 본다면 수정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DYDADDY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transient-guest 2023-03-11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의 문제? 혹은 편집? 뭔가 어색하고 억지스럽게 보이네요. 영어로 된 원서와 비교하시기 전까지는 알 수 없을 듯…

고양이라디오 2023-03-11 15:14   좋아요 2 | URL
아스텍 부족 부분은 번역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ㅎ

전체적으로 번역의 질도 많이 떨어지는 거 같았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