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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통해 도스토예프스키를 알게 됐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그의 전작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백치>까지 재밌게 읽고 <악령>에서 진도가 멈췄다. <악령>이 잘 읽어지지 않았다.
막히면 돌아가라 했던가.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이다. 20대 초반에 쓴 처녀작이지만 천재의 탄생을 알리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다. 서간체 소설이라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내 두 사람의 편지 속에 빠져들었다.
가난, 이 소설에서 묘사하는 것은 지독한 가난이다. 당장 내일의 의식주를 걱정해야하는 가난이다. 입에 풀칠하는 가난, 월세가 밀려 항상 주인의 눈치를 보고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가난, 다 떨어지고 헤진 옷을 입고 밑창이 너덜너덜한 신발을 신고 초라함에 움츠려드는 가난이다.
절대 숨길 수 없는 것이 세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가난이라고 했다. 나머지 두 개는 짝사랑, 재채기였던 거 같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독한 가난을 직접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도 경험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가끔 책이나 뉴스에서 가난으로 인해 전기나 가스가 끊기고 일가족이 함께 자살하거나 하는 뉴스를 접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가난은 접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상대적 빈곤은 더욱 더 접하기 쉬워졌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그렇게 가난하진 않았다. 하지만 여유는 없었다. 부모님은 검소했다. 초등학교 때 내가 신은 신발은 비메이커였다. 캐릭터가 그려진 낡은 신발이었다. 나는 그게 부끄러웠다. 모두가 내 신발을 보고 있는 거 같았다. 모두가 메이커 신발을 신고 있었다. 나보다 안 좋은 신발을 신은 아이들은 없었다. 어쩌다 나와 비슷한 신발을 신은 아이를 발견하면 반가움과 나뿐만은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도 나의 신발을 신경쓰지 않았던 거 같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항상 의식을 했다. 왜 그 때 부모님께 새 신발을 사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난 부모님께 뭘 요구해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를 사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적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신발을 사달라고하는 선택지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원해서 사달라고 한 건 고3 때였다. 아이리버 mp3가 갖고 싶었다.
가난은 분명 비참하고 부끄러운 현실이다. 누구도 자신의 구멍난 양말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난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가난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