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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이은희 지음 / 궁리 / 2002년 7월
평점 :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통해 국내의 과학자, 과학저술가 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리하라 이은희씨도 그 중 한 분입니다. 이은희씨가 작가로 데뷔하게 되고 과학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야기가 상당히 인상깊습니다. 이은희씨는 평소 자신의 전공 분야인 생물학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연재하다가 책 섭외가 왔고 그로 인해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닙니다. 평소 꾸준히 오랫동안 칼럼을 연재해왔습니다. 정확히 몇 년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충분히 수긍이 가는 기간이었습니다. 아무튼 책이 나왔고 과학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작가도 놀랐다고 합니다. '아니 내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하지만 웃프게도 과학분야는 독자층이 매우 얇습니다. 나머지 순위 권의 책들이 <코스모스>, <이기적 유전자>, 정재승씨의 <과학콘서트> 였다고 합니다. 과학분야의 나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책들입니다. 이은희씨는 과학분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그 후로 전업작가로 전환하여 좋은 과학책들을 많이 쓰셨습니다. 이 책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는 이은희씨의 첫 책입니다.
저자는 평소 이야기들을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신화를 가장 좋아합니다. 때문에 첫 책을 쓸 때 가장 좋아하는 것을 써보자 해서 그리스 신화와 생물학을 결합해서 책을 썼습니다. 36가지 신화 속에 생물학 이야기를 잘 녹여냈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2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책입니다.
이은희씨의 장점은 어려운 과학 내용을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서 알기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준다는 점입니다. 자세하게 설명하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데 이은희씨는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부러운 능력입니다. 저는 자세히 설명하면 금방 상대방이 지루해하는데...
저는 독자가 알기 쉽게 책을 쓰는 것을 쓰는 사람의 의무이자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요. 글을 어렵게 쓰면 멋져 보이고 대단해보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글을 이해하진 못합니다. 글의 목적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전달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글이 어렵다는 것은 분명 자신의 의도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잠시 삼천포로 빠져봅시다. 알라딘에서 정희진씨를 비판하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제 생각을 밝혀보겠습니다. 정희진씨의 글은 훌륭하지만 어렵습니다. 정희진씨의 글은 저자의 날카로운 사유와 깊은 내공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어렵습니다. 일상어가 아닌 단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한 번 읽어서 해석 안 되는 문장이 많습니다. 전공 논문이나 학술서가 아닌 이상 일반 독자들을 생각했을 때 글이 좀 더 쉽게 읽혀야지 않을까요? 저자와 독자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는 독자의(혹은 아둔한 저의) 푸념일 수 있습니다. 정희진씨는 대중을 독자로 생각해서 책을 낸 것이 아닐 수도 있고요.
난해하기로 소문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논고>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학술 논문, 전문가들을 위한 책이었습니다. 칸트의 저서는 어렵기로 소문났지만 대중서는 쉽게 썼다고 합니다.
이은희씨는 어려운 생물학 개념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풀어서 차근차근 설명해줍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이야기해주듯이요. 저는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내용이 쉽다거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의 절대 고전 <코스모스>는 중학생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이 그 책을 읽고 과학에 매료 되고 과학에 빠져들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진화론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파격적으로 설명합니다. 노벨 물리학상의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을 언어로 표현하는 천재입니다. 그의 강의는 학생들로 강의실이 가득찼다고 합니다. 파인만은 학생들에게 양자역학의 개념 중에 한 가지를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자 자신이 그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의 논문을 쓰면서 고등학생정도의 수학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썼다고 밝혔습니다.(물론 제가 읽어본 봐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만...)
물론 정희진씨의 문체에는 색깔이 뚜렷합니다. 정희진씨의 글을 쉽게 읽는다는 것은 왠지 어색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저의 바람은 정희진씨의 글에 담긴 사유가 보다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희진씨는 약자의 시선을 대변합니다. 폭력과 불평등, 억압에 저항합니다. 이렇게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독자들이 어려워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게 아쉽습니다.
결론을 다시 말씀드리면 이 모든 것은 저의 아둔한 머리 때문에 발생한 사견입니다. 정희진씨의 <페미니즘의 도전> 세일즈포인트는 29508 입니다. 저는 저 책이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어려워하고 어려우니깐 책도 널리 읽히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정반대입니다. 죄송합니다. 나름 반전을 포함한 글이었습니다.
정희진씨의 사유과 글은 참 좋습니다. 제겐 어렵지만요. 이은희씨의 책은 쉽고 재밌어서 좋습니다. 최종 결론은 둘 다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