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독서모임 책이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 비해 감흥이 많이 떨어졌다. 밀란 쿤데라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고 싶다. <농담>, <불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사람들 평이 좋다. 

 


  "쓸데없기만 한 게 아니야. 해롭다니까.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돼.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거든. 버티지 않고 바로 자기를 내주면 안 될 것 같은 거지. 그런데 그냥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 줘.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거야. 재치 있어야 할 필요도 전혀 없어. 여자가 마음을 탁놓게 만들고, 그러니 접근이 더 쉬워지지. 아, 이쯤 하자. -p25


 이 글을 읽으면 예전에도 그랬지만 공감갔다. 독서모임에서 이 글을 가지고 이야기 나눠서 좋았다.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붙임성이 좋다. 처음보는 사람한테도 말을 잘 건다. 여자와 대화할 때도 여자의 경계심을 풀게하고 무장해제시키는 재주가 있다. 부러운 능력이다. 나는 책을 읽고 부터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도 줄어든 거 같다. 그러다보니 쓸데없이 진지해지고 점점 노잼이 되어가고 있다. 좀처럼 가볍고 편해지지 않는다. 디폴트 값이 어색함이다.



  "왜냐하면 그 주위 누구도 농담이란 게 뭔지 알지 못하게 됐으니까. 나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가 도래한 거라고 봐." -p31


 스탈린은 농담을 한다. 그러나 아무도 스탈린 말이 농담이라는 걸 모른다. 심지어 나도 그랬고, 독서모임 사람들 대다수도 그랬다. 스탈린이 농담을 한다고? 


 농담이 통하지 않는 세상. 작가는 왜 이를 새로운 역사의 위대한 시기라고 말했을까? 반어법이었을까? 


 

  그녀는 온힘을 다해 발버둥 쳐야 할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구하기 위해. -p50

 

 자신의 죽음을 구하기 위해라는 표현이 멋졌다. 모순적인 표현이다. 죽음을 구한다니. 한 여자는 자살하려고 물에 몸을 던졌다. 그런데 그것을 본 누군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상황이다. 



  아니, 어떻게? 결심을 잊은 것일까? 죽음을 훔쳐 가려던 이가 이제 살아 있지 않은데 왜 그녀는 물에 빠져서 죽지 않은 것일까? 마침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는데 왜 이제 죽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예상치 못하게 다시 찾은 삶은 마치 어떤 타격처럼 그녀의 확고한 의지를 내리쳐 부숴 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죽음으로 온 힘을 집결시킬 기운이 없었다. -p52


 자신을 구하려는 남자를 그녀는 죽인다. 그리고 힘이 빠져 죽으려던 것을 멈추고 물에서 헤엄쳐 나온다. 죽기 위해서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 의지를 소진하면 우리에게 남은 건 본능적인 생존욕구가 아닐까? 작가가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역설적이지만 살려는 의지가 필요한 게 아니다. 죽으려는 의지가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칼리방은 신비화하려 기를 쓰는 그런 짓이 모두 아무 소용없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됐는데, 왜냐하면 손님들이 그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또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만큼 무엇을 먹거나 마시고 싶고 간단한 몸짓을 할 뿐 그가 하는 말을 듣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관객 없는 배우가 되었다. -p67

 

 칼리방은 파키스탄인을 연기한다. 하지만 그의 장난을 아무도 눈치재지 못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우리의 페르소나를 연기하지만 사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게 아닐까? 우리는 관객 없는 배우가 아닐까?



  "내가 꿈꿨던 건 인류 역사의 종말이 아니야, 미래를 없애 버리는 게 아니라고, 아니, 아니, 내가 원했던 건 인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그들의 미래와 과거와 더불어, 그들의 시작과 끝과 더불어, 그들이 존재해 온 시간 전체와 더불어, 부처와 예수와 더불어, 다 사라지는 거였단다, 나는 최초의 여자의 배꼽 없는 작은 배에 뿌리 내린 그 나무의 전적인 소멸을 원한 거야, 자기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그 참담한 성교가 우리에게 어떤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할지 몰랐던 그 어리석은 여자, 쾌락을 가져다주지도 못했을 게 틀림없는 그 성교가......" -p104


 이 부분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 뒤를 다시 읽어도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건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 미래와 과거, 그들이 존재해 온 전부가 다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의 종말을 원하는 건 아니다. 아, 이제 이해가 간다. 역사의 종말이나 미래만 없애 버리는 게 아니라, 아예 과거까지 송두리채 사라지는 걸 원한 거구나.



  "벌써 세 번, 그래서 사실 여기에 샤갈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한 주 한 주 지나면 줄이 더 길어지는 걸, 그러니까 지구에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걸 확인하러 오는 거지, 저 사람들 봐! 저 사람들이 느닷없이 샤갈을 사랑하게 됐다고 생각해? 저 사람들은 오로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뭐든 다 할 준비가 돼 있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누가 하라는 대로 다 해. 기막하게 조종하기 쉽다고." -p136 


 과거 내 모습이 떠올라서 부끄러웠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혹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전시회를 가진 않았는지. 이제는 그래서 전시회를 잘 가지 않는다. 진짜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 이 징후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배 가운데,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 모든 에로틱한 욕망의 유일한 미래만을 나타내는 배 가운데 조그맣게 난 똑같은 구멍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섹스의 전사들인 거라고." -p139


 공감가진 않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거 같다. 저자는 여자들의 배꼽은 다 똑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배꼽은 배꼽을 지닌 여자에 대해 말해주지 않고 태아에 대해 말해준다고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여자를 사랑했지만 이제는 태아를 생각해서 섹스를 한다는 걸까? 잘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중략)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 작품 속에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인물이 한 페이지에 걸쳐 말을 한다. 저자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독자에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김이 좀 샜다. 최근에 하루키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소설 속에서 저자가 진술을 하는 순간 끝장이라고. 그 글을 읽고 위 구절을 읽어서 그런지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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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3-04-04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보면 저자와 대화하고 작중 인물과 대화하고 은유와 의미를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사람과 멀어지게 되고 말수가 적어져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줄어들더군요. 하지만 그 간극을 글쓰기로 메우고 감상에 대해 공감하다보면 일상의 무의미한 대화보다 더 큰 감정적 교류를 하는 것 같아요. ^^

고양이라디오 2023-04-04 11:2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공감합니다ㅎ

그런데 아주 가끔은 무의미한 대화, 하찮은 대화가 하고 싶을 때도 있는 거 같습니다. 친한 친구들하고만 할 수 있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