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모든 소설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소설가다. <전쟁과 평화>의 작가를 달리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는가?
-버지니아 울프
하지만 다들 역사의 무의식적인 도구로서 그들에게는 감춰졌지만 현재의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을 수행해 나갔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모든 인간들의 변함없는 운명이고, 인간의 위계질서에서 높은 위치에 선 사람일수록 그들이 누리는 자유는 더 적어진다. -P202
톨스토이는 개인의 역할보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운명론을 더 강조한다. 이는 한 인간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과 자유의지일까? 아니면 그를 둘러싼 환경, 혹은 우리가 운명이라 부르는 그것일까?
위험이 임박할 때에는 인간의 영혼 속에서 언제나 두 가지 목소리가 똑같이 강하게 소리 높여 말하기 마련이다. 한 목소리는 인간에게 위험의 성질 자체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방도를 생각해내라고 매우 이성적으로 말한다. 또 한 목소리는 더욱 이성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예측하고 상황의 전체 흐름을 벗어나는 것은 인간 능력 밖의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위험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롭다. 그러니 위험이 닥칠 때까지는 괴로운 것을 외면하고 즐거운 것을 생각하는 편이 낫다." 고독 속의 인간은 대부분 첫 번째 목소리에 굴복한다. 반대로 집단 속의 인간은 두 번째 목소리에 굴복한다. -P348
톨스토이는 위대한 심리학자이다.
역사 사건의 원인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또 다른 대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대답은 하늘이 세상사의 흐름을 정하고 그 사건에 관여하는 인간들의 의지의 총합이 그 흐름을 좌우한다는 것, 이 사건들의 흐름에 대한 나폴레옹의 영향은 그저 표면적이고 허구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P436
흥미롭고 일견 타당한 관점이다. 나는 그 역도 옳다고 본다.
역사의 법칙을 연구하기 위해 우리는 고찰 대상을 완전히 바꾸어 황제와 대신과 장군은 가만히 내버려 두고 대중을 지배하는 동질적인 무한소의 요소들을 연구해야 한다. 인간이 이러한 방법으로 어느 정도나 역사의 법칙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지 누구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직 이 방법으로만 역사의 법칙을 포착할 수 있으며, 이 방법에 인간의 이성이 들인 노력은 역사가들이 온갖 황제와 장군과 대신들의 활동을 기술하고 그 활동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서술하는 데 들인 노력의 100만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P522
역사의 법칙을 연구하기 위해 대중을 연구하는 데에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함은 마땅해보인다. 하지만 정말 대중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된 요인일까?
세상이 존재하고 인간이 서로를 죽이게 된 이래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진정시키지 않고서 동족들에게 범죄를 저지른 인간은 이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생각이란 바로 공익, 즉 타인을 위한 가상의 행복이다. -P680
섬뜻하고 통찰력있는 견해다. 인간은 상상의 공익, 이념 등을 핑계로 얼마나 많은 학살을 저질렀는가.
'그래, 사랑이야.(다시 그는 완전히 또렷한 정신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기 위한 사랑, 어떤 목적이나 이유를 위한 사랑이 아니야. 죽어 가던 내가 나의 원수를 보고, 그럼에도 그에게 사랑을 품은 순간 난 처음으로 그 사랑을 경험했지. 영혼의 본질이자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랑을 맛본 거야. 나는 지금도 그 행복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어. 이웃을 사랑하는 것, 자신의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지. 모든것을 사랑하는 것, 즉 하느님의 모든 현현을 사랑하는 거야.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사랑으로도 가능해.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사랑으로만 가능하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그 남자를 사랑한다고 느꼈을 때 그런 기쁨을 맛보았던 거야. -p743
<전쟁과 평화>는 결국 그리스도적 사랑을 이야기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사랑할 때 우리는 행복한 감정을 경험한다. 책 제목의 대비처럼 인간에게는 증오와 사랑이 공존하는 것 같다.
<전쟁과 평화> 3권을 재밌게 읽었다. 뒤로 갈수록 더욱 재밌어진다. 4권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