끙끙 털어내고 빨래하기



  올들어 두 차례째 모진 몸살을 앓고 이제 슬슬 털어내려 한다. 왜 몸살이 오는가 하고 자리에 드러누워 밤새 돌아보았더니, 두 차례째 찾아온 몸살은 큰아이를 ‘집에서 함께 배우고 가르치도’록 하려고, 면내 초등학교와 면사무소하고 연락하면서 ‘사무 처리’와 ‘서류 처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이다. 면내 초등학교나 면사무소에서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안 보낸다’고 하는 어버이가 없는 터라, 이런 일을 처음 겪는 듯하다. 이 시골에서는 죄다 도시로 보내기에 바쁘니, 우리 집 같은 어버이를 본 일이 아직 없을 만하다.


  아직 밥이나 물을 입에 댈 수 없으나 이럭저럭 몸을 움직일 만해서 아침에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한테 감을 깎아 준 뒤에, 마루와 부엌을 치운다. 천천히 치운다. 오늘 못 치운 몫은 다음에 더 치우자고 생각한다. 섣불리 몸을 많이 쓰지 말자고 생각한다. 이제 마루와 부엌을 치웠으니 옷을 갈아입고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면서 아침을 지어야지. 오늘은 빨래를 기계한테 맡길까? 기계에 빨래를 맡기더라도 손으로 다 비벼서 맡기니, 헹굼과 물짜기만 기계가 하는 셈이기는 하더라도.


  고흥은 오늘 겨울볕이 아주 포근하다. 마당에 담요를 석 장 널었고, 빨래를 마쳐서 널면 곧 마르겠다고 느낀다. 자, 새로운 몸과 마음이 되어 하루를 기쁘게 누리자. 4347.12.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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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히고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는다. 잠옷을 벗고 놀이옷을 입는다. 아이들이 입는 옷은 모두 놀이옷이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놀기 때문에, 아이들 옷은 언제나 놀이옷이다. 이쁘장한 옷이든 투박한 옷이든 아이로서는 그저 놀이옷이다. 놀면서 흙을 묻히고, 놀다가 땀으로 적신다. 놀다가 넘어져서 찢어지고, 놀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튿어진다.


  아이들이 벗은 옷을 주섬주섬 모은다. 머리를 감으면서 아이들 옷가지를 적신다. 머리를 다 감고 나서 아이들 옷을 조물조물 비비면서 빨래를 한다. 다 빤 옷가지는 마당에 넌다. 섣달이 저물며 새해가 다가온다. 고흥 시골자락은 겨울볕이 포근해서 아침에 마당에 너는 옷을 낮이 기울 무렵 집에 들이면 조금 뒤 보송보송하다. 포근한 볕을 받아먹는 옷가지에는 싱그러운 기운이 감돌고, 이 옷을 찬찬히 개서 옷장에 두었다가 다시 아이들한테 입힐 적에 내 손으로 햇살 같은 숨결이 흘러나온다. 하루가 새롭게 찾아와서 흐른다. 4347.12.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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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빨래



  동짓날을 지나면 해가 조금씩 길어진다. 동짓날이 다가올 때까지 해가 조금씩 짧아지다가 동짓날을 고빗사위로 삼아서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데, 이 햇살을 언제나 살뜰히 느낀다. 빨래를 마치고 마당에 널면서 ‘아아, 해가 길어지니 참으로 좋네!’ 하고 노래가 나온다. 해마다 처음 찬바람이 불 무렵부터 동짓날을 생각하고, 동짓날을 맞이하여 긴긴 밤을 지내고 나면 ‘오오, 이제부터 빨래가 잘 마르도록 해가 길어지겠네!’ 하고 웃음이 솟는다. 동짓날 빨래를 하면서 복복복 힘이 잘 들어간다. 동짓날 빨래를 널면서 팔랑팔랑 개운하다. 4347.12.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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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4-12-23 21:06   좋아요 0 | URL
요즘 계속 빨래를 집안에 널었더니 햇볕에 말리고 싶어요

숲노래 2014-12-24 05:57   좋아요 0 | URL
해가 날 적에 즐겁게 해님 누리시기를 빌어요~~
 



빨래하는 뒤에서 부르는 소리



  복복북북 비비면서 한창 빨래를 하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네 살 작은아이가 바지를 살살 흔들면서 “여기, 바지.” 하고 한 마디 한다. “무슨 바지?” 하니까 “젖었어.” 한다. 젖은 바지를 작은아이 스스로 벗은 다음 새 바지로 갈아입은 듯하다. 바지 갈아입자면 안 갈아입더니, 바지를 벗자 하면 혼자 못 벗는다느니 혼자 못 입는다느니 하고 징징거리던 작은아이인데, 혼자 벗고 혼자 입었다.


  빨랫감이 한 점 늘지만 재미있다. 아직 오롯이 혼자 벗고 입지는 못할 테지만, 작은아이는 이렇게 차근차근 하나씩 새롭게 익히면서 자란다. 씩씩하게 자라고 멋지게 큰다. 바지를 혼자 벗고 입으니 이듬해에 다섯 살이 되면 혼자 웃옷도 벗고 입을 수 있을까? 잘 해 보렴, 모두 다 할 수 있어. 4347.12.2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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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빨래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앓고, 수요일에는 제법 나은 듯하다. 그래서 묵은 옷을 벗고, 묵은 몸을 씻는다. 여러 날 쌓인 옷가지를 복복 비빈다. 아직 몸이 오롯하지 않으니 오늘은 빨래기계한테 일을 맡기기로 한다. 빨래기계야, 너를 늘 집에 두면서 제대로 안 써서 서운하지? 오늘 신나게 일을 해 주렴. 우리 식구 옷가지를 네가 말끔하게 빨아 주고, 물기도 족족 짜 주렴. 겨울볕이 포근하기는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부니, 네가 물기를 잘 짜야 제대로 마른단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빨래이다. 빨래를 마치면 새로 밥을 지어야지. 새로 밥을 다 지을 무렵 작은아이는 낮잠에서 깨어 배고프다고 노래하겠지? 바람이 싱싱 불어 구름이 흐르고, 구름 사이사이 햇볕이 비추다가 숨다가, 재미난 하루가 흐른다. 4347.12.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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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17 15:36   좋아요 0 | URL
진짜 빨래랑 청소하는 날은 하루가 휙 가는 느낌이예요.

숲노래 2014-12-17 17:33   좋아요 0 | URL
즐겁게 하지 않으면
아주 힘들고 지치지만
노래하고 웃으면서 하면
새롭게 이야기가 솟는 일이에요.

아무쪼록 그저좋은휘모리 님은
즐겁게 노래하면서 누리셔요.
저도 늘 노래하면서 빨래하고 청소합니다 ^^

수이 2014-12-17 17:41   좋아요 0 | URL
멋진 함께살기님 인생사용법~^^

숲노래 2014-12-18 07:30   좋아요 0 | URL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집에서뿐 아니라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도
모두한테 고단할 뿐이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