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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무속논고 - 남국의 무속
진성기 지음 / 민속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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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기 님 이 책은 목록에 없는 만큼

아직 절판 안 된 다른 진성기 님 책에

이 느낌글을 걸쳐,

고마운 마음을 바칩니다.

 

..

 

 

사라진 책을 읽는다 2

 


쓰레기 버릴 때에 문화는 없다
― 제주민속의 멋 1
 진성기 글·사진
 열화당 펴냄, 1979.12.30.

 


  요즈음은 퍽 적은 돈으로 차릴 만한 수수한 밥상 이야기를 다루는 ‘밥책’이 곧잘 나옵니다. 예전에는 수수한 밥상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름부터 ‘밥책’이 아닌 ‘요리서적’이었습니다. 수수한 사람들이 먹는 수수한 밥이 아니라, 궁중사람이 먹는, 또는 임금님이 먹는 밥을, 아니 ‘요리’를 다루었습니다. ‘요리책’이라 할 적에는 여느 사람으로서는 꿈꾸기 어렵거나 손이 너무 많이 가서 도무지 여느 때에 마련해서 먹기 어려운 ‘요리’를 다루곤 합니다. 때때로 남다른 밥을 차릴 수 있다지만, 날마다 여러 끼니를 이처럼 차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집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밭일이나 논일에다가 길쌈이라든지 방아찧기라든지, 끝없이 갖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남다른 밥’을 아무 때나 덜컥덜컥 차릴 수는 없어요.


  생각해 보면, 한갓지게 밥상을 받을 수 있던 기득권이나 권력자 아니고서야 ‘전통요리’라는 ‘궁중요리’를 먹을 수 없습니다. 밥어미가 따로 있고, 심부름꾼이 따로 있으며, 애보개가 아이를 도맡아 돌보던 기득권이나 권력자 들이 먹던 요리를 역사나 문화로 쳐서 ‘전통요리’로 여기곤 해요.


  그러니까, 여느 살림집에서 으레 하는 ‘여느 밥짓기’와 ‘여느 반찬하기’와 ‘여느 국 끓이기’를 보여주는 ‘여느 밥책’은 뜻밖에 거의 안 나왔어요. 시골에서 수수하게 살아가며 수수하게 먹는 밥 이야기는 문화로도 역사로도 여기지 않았습니다.


.. 가죽감태는 겨울철에 주로 한라산의 노루사냥 때 많이 사용하여 왔다 … 가죽보선은 쇠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겨울철 사냥 때가 아니면 신지 않으며, 평상시에는 집안의 아궁이 위의 벽 같은 데에 매달아 둔다. 아궁이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가 쏘여지므로 좀이 스는 것을 예방하는 생활의 슬기라고 보여진다 … 가죽보선을 신고 이 위에 다시 초신(짚신)을 신는데, 그렇게 하면 겨울철 한라산 속의 추위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  (9, 11쪽)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여느 살림을 꾸리는 여느 사람들로서는 애써 밥책이든 요리책이든 들출 일이 없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며 익힌 대로 밥을 하고, 집집이 이어온 밥차림을 몸으로 배웁니다. 손으로 마련해 손으로 맛을 내지, 조미료나 요리책으로 마련하거나 맛을 내는 밥이 아닙니다. 입에서 입으로 밥을 물려줍니다. 몸에서 몸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삶에서 삶으로 밥을 물려주고 물려받아요.


  이제는 모조리 사라졌다 할 만한 지난날 일노래나 놀이노래는 어느 한 번도 ‘문화 다루는 책’에 적바림되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일본사람이 거의 처음으로 적바림하다가 나중에야 한국사람이 다시 적바림했어요. 한겨레붙이 스스로 한겨레붙이 삶과 넋과 말과 꿈을 고이 돌보지 않았어요. 예전에도 이러했고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으레, 맛집이니 멋집이니 하고 따지거나 찾지만, 막상 ‘내 어머니가 내 할머니한테서 배우고, 내 할머니는 또 이녁 어머니한테서 배운 밥’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짚으면서, ‘날마다 우리 집에서 먹던 여느 밥’이 무엇인가를 더듬는 일이란 몹시 드뭅니다.

  똑같은 밥하기라 하더라도 집집마다 밥물 맞추기가 다릅니다. 쌀을 일거나 씻을 때에도 물맞춤과 비빔질이 다릅니다. 밥을 안치고 불을 넣는 모양새가 다릅니다. 밥을 마친 다음 뜸들이기가 다르며, 주걱으로 섞어서 푸는 매무새가 달라요.


  이에 앞서 물맛이 고을마다 달라요. 바람맛이 마을마다 달라요. 바닷마을과 숲마을과 들마을이 쌀맛이 다릅니다. 집집마다 손맛 또한 다르지요.


  우리네 밥삶을 헤아린다는 문화학자나 문화인류학자 가운데, 또 요리연구가 가운데 이렇게 다 다른 ‘밥하기 매무새’를 낱낱이 가누면서, 왜 어찌하여 어떻게 어느 대목이 얼마나 다르면서 저마다 뜻과 즐거움이 깃들었는가를 살피는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슨무슨 통계를 내고 임금님 통치 햇수를 따지고 연표니 도표니를 만들지만, 막상 여느 살림집이 김치를 담글 때에 몇 포기를 담고, 배추는 크기가 얼마나 되고 무게는 어떠하며, 김치속으로 넣는 가짓수라든지 손질하는 품과 겨를이라든지, 김치를 담글 때에 들이는 푸성귀를 밭에서 일굴 적에 얼마나 걸리며 어떻게 거두어 건사하는지를 두루 살필 줄 아는 역사학자나 요리학자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갈옷’이란 ‘감옷’을 뜻하며, ‘감’은 ‘갈색’이란 데서 온 말일 것이나 한자말은 아닌 것이다 … 제주도사람이면 누구나 별다른 기술은 익히지 않더라도 이 갈옷을 손쉽게 짜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작업복이 이 고장 농어민의 생활에 얼마나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으며, 또한 일의 능률을 올리는 데도 큰 구실을 해 왔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 이 ‘갈옷’은 보통 6월과 7월 사이에 풋감이 익어 가는 시기를 맞아 여러 가지 옷감에 이 풋감의 떫은 물을 짜내어 염색한 것이다 … 제주도 남신(나막신)의 발굽 형태는 돌길을 멀리 걷는 데도 피곤하지 않고 걸음에서 경쾌한 율동을 일으켜 주게 되어 있다 ..  (17∼18, 33쪽)


  궁중사람 삶도 문화입니다. 틀림없이 궁중사람 삶도 문화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난날 여느 흙지기 삶도 문화입니다. 흙지기 삶 또한 어김없이 문화입니다.


  지난날 한겨레붙이 삶자락을 더듬는다면, 궁중사람은 아주 적었고, 거의 모두가 흙지기입니다. 양반은 몇 안 되고 머슴이나 밥어미가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궁중사람이나 양반 삶자락만 이야기하고 적바림합니다. 워낙, 글을 배워 책을 쓰는 사람이 궁중사람 아니면 양반일 테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배운 사람이니 지식인이니 권력자이니 교수이니 기자이니 하는 사람만 글을 배우지 않습니다. 여느 살림 꾸리는 여느 집에서도 글을 익혀 신문도 읽고 책도 읽습니다. 잘난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이녁 삶을 글로 쓸 만합니다.


  이제는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붙여 몇몇 훌륭한 장이를 일컫습니다만, 나무집을 짓거나 질그릇을 굽거나 궁중옷을 깁거나 종이를 뜨거나 해야 인간문화재이지 않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을 짓고 날마다 입을 옷을 기우며 날마다 지내는 집을 쓸고닦는 사람 누구나 사람문화재예요. 아니, 사람보배입니다. 사람빛이에요.


  옛 어머님들이 쓰던 걸레 한 장이야말로 고마운 문화재입니다. 먼지떨이 하나가, 빗자루 하나가, 밥그릇 하나가, 숟가락 하나가, 섬돌 하나가, 짚신 하나가, 댕기 하나가, 부젓가락 하나가, 문고리 하나가, 새끼줄 한 꾸리가 모두 문화재요 문화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우리 삶이요 빛이니까요.


  오늘로 치자면 무엇이 문화재이거나 문화라 할 만할까요. 까만 비닐봉지? 손전화? 낡은 셈틀이나 자판? 망가진 빨래기계나 라디오? 빈 페트병나 소주병? 오늘날 우리 삶에서는 무엇을 문화재나 문화로 여길 수 있으려나요?


  해묵은 담배갑이나 우유병이나 복권이나 우표나 이름표나 교과서가 문화재가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 누구나 골목에서 갖고 놀던 딱지나 구슬이 꽤 비싸게 사고팔리기도 합니다. 어쩌면, 문화재이기 앞서 골동품처럼 되지 않느냐 싶은데, ‘추억’이라는 이름을 걸어 ‘화폐경제’에 걸맞게 돈벌이를 하는 연모가 되는 셈입니다. 살림살이마다 배거나 스민 이야기를 나누기 앞서 돈값이 먼저가 됩니다.


.. ‘봇디창옷’이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처음으로 입게 되는 옷의 한 가지로서 … 봇디창옷의 소재를 삼베로 하는 것은, 삼베가 연약한 아기의 살결을 튼튼하게 한다는 데 연유한다고도 한다 … ‘애기구덕’은 아기를 눕혀 재우는 요람이다. ‘구덕’이란 대바구니를 말한다 … 구덕의 높이 중간 부분을 끈으로 얽어매어 그물을 만들고, 그 위에 보릿대를 깔고, 다시 그 위에 요에 해당하는 헝겊을 깐 다음 아기를 눕힌다. 보릿대를 깐 것으로 아기의 체온이 조절되며 오줌을 싸도 아래로 새어나와 버린다 … 제주도의 어머니들은, 애기를 재우기 위해 입으로 노래를, 발로는 애기구덕을 흔들며, 손으로는 길쌈을 하는 등, 발과 입과 손이 제각기 다른 일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다. (48∼49, 61, 64쪽)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어려운 말로 하면 ‘생활문화’일 테고, 쉬운 말로 하자면 ‘삶문화’요 ‘삶빛’이며 ‘삶’일 텐데, 생활문화이든 삶문화이든 삶이든, 살림살이를 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나 오래오래 쓰고, 두고두고 건사하며, 길이길이 물려줍니다. 어려운 말로 하면 ‘재활용’이나 ‘재사용’일 터이나, 이런 어려운 말은 모르더라도 따로 버릴 것이 없습니다. 궁중사람이나 양반한테는 쓰레기가 있지만, 여느 흙지기한테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흙을 돌보는 사람이 수천 수만 해쯤 살림을 이었는지 수십만 수천만 해쯤 살림을 일구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흙지기가 쓰레기를 만들어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없습니다. 흙지기는 모든 밥과 옷과 집을 숲에서 얻은 뒤, 즐겁게 누리다가, 숲에 거름으로 돌려줍니다. 이와 달리 궁중사람이나 양반은 이녁 물건을 숲에서 얻지 않아요. 그러니, 궁중사람과 양반은 늘 쓰레기를 낳습니다. 궁중사람과 양반이 남긴 쓰레기를 오늘날에 와서는 ‘문화재’로 삼지만 말이에요.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은 바로 오늘 우리 도시사람입니다. 도시가 생기면서 쓰레기가 생기고, 스스로 흙을 일구지 않는 동안 쓰레기가 넘칩니다. 전기 먹는 물건을 돈으로 사서 쓰는 때부터 쓰레기가 흘러넘칩니다. 자동차를 몰고 회사를 다니며 대학교를 마치는 사이 갖은 쓰레기가 춤을 춥니다.


  여느 도시사람은 날마다 먹고 마시는 밥뿐 아니라 똥오줌마저 쓰레기입니다. 차려서 먹는 밥을 말끔하게 비워 밥쓰레기 한 알 안 나오도록 하는 도시사람이 있는가요. 먹은 밥을 똥이나 오줌으로 내놓을 적에 똥거름·오줌거름이 되도록 애쓰거나 마음쓰는 사람이 있는지요.


  삶부터 삶이라기보다 죽음입니다. 삶이 삶답지 못하면서 쓰레기만 낳습니다. 이런 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삶이라 하겠으며, 어떠한 삶인지 알쏭달쏭한 터에 무슨 문화를 밝힐 수 있겠습니까. 영수증도 차곡차곡 모으면 놀라운 ‘기록’이 됩니다만, 문화까지는 되지 않습니다. 전기세 고지서도 하나하나 갈무리하면 엄청난 ‘기록’이 될 테지만, 문화는 될 수 없습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수많은 신문과 잡지와 인터넷 ‘기사’는 ‘기록’입니다. 어마어마한 정보들은 하나같이 기사이면서 기록입니다. 그렇지만, 이들 신문 기사나 잡지 기사 가운데 ‘문화’가 될 만한 ‘글’은 아주 드물거나 아예 없습니다. 어쩌면 ‘역사’로 갈무리할 수 있겠으나 ‘삶’이라 말하기는 힘듭니다.


.. 먼 옛날부터 높은 산과 푸른 바다에서 어떻게 활동했으며, 그 활동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 내려왔나 하는 전통의 문제를 놓고 골똘한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 우리가 우리끼리 서로 밀고 끌고 일하는 것이 그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  (94∼95쪽)


  쓰레기를 버릴 때에는 문화가 없습니다. 쓰레기가 나오는 살림집은 살림도 집도 아닙니다.


  즐거이 살다가 즐거이 죽을 수 있어야 할 목숨이요 사람입니다. 누구나 고맙게 살다가 고맙게 죽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삶이며 죽음이라 말하고, 이러한 삶과 죽음을 문화나 역사로 아로새깁니다. 이야기 있는 삶이자 죽음이 되며, 이야기 있는 삶이자 죽음은 곧 아름다운 목숨이기에, 저마다 너른 이야기를 품습니다. 너른 이야기를 품는 사람들은 저마다 사뭇 다른 문화입니다.


  살림 이야기를 길어올리기에 삶문화입니다.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기에 삶빛입니다. 살아숨쉰 나날을 돌이키기에 삶이에요. 흙을 일구고 고기를 잡으며 푸나무와 벗삼으면서 먹을거리와 땔감과 보금자리를 얻는 나날은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공장을 세워 값싼 물건을 척척 찍는 일은 돈벌이는 되지만, 삶이나 문화는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두 다리로 서서 두 손을 움직이며 살림을 꾸릴 적에 비로소 삶이면서 문화입니다. 손을 쓰고 몸을 움직이는 사람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아니, 쓰레기가 나올 수 없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쓰레기가 태어나고, 돈이 아닌 삶을 꾸리는 사람한테서는 사랑과 믿음과 아름다움이 배어나옵니다.


.. 어쩌면 농촌의 피서는, 도시인이 선풍기나 에어컨으로 몸을 식히는 방법과는 대조적으로,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사딧소리(김매는 소리)로 김매는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 과학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나무방아도 그 기능을 점차 잃게 되어, 농촌에서는 한때 이 방아를 소의 쇠죽통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유행은 돌고돌아 근래에 와서는 고급주택의 고급골동품으로서 안방 응접실에 옮겨지면서 귀중한 테이블 노릇을 하게 되었다. 천 년 동안이나 자랐을 아름드리 나무가 잘리워 남방아로 만들어지고, 농촌 생활의 귀중한 연장으로서 쓰임을 다할 때 들려주던 방아 찧는 노래의 흥겨운 가락, 이 가락이 남방아를 테이블로 사용하고 있는 현대인의 귀에도 들릴는지 ..  (27, 31쪽)

 


  제주사람 넋을 갈무리한 조그마한 책 《제주민속의 멋 1》(열화당,1979)를 읽습니다. 이 조그마한 책을 쓴 분은 제주섬에 제주민속박물관을 1964년에 세운 진성기 님입니다. 제주섬에서 1936년에 태어나 1958년부터 제주사람 살림살이와 이야기와 말을 그러모으는 일을 했습니다. 제주민속박물관 또한 진성기 님 혼자서 일구어 열었습니다. 1958년부터 등사판으로 《제주도민요》와 《제주도속담》과 《남국의 설화》 같은 자료책을 내놓았고, 1970년대에 이르러 ‘열화당미술문고’로 《제주민속의 멋》 두 권을 내놓았으며, 《보배를 지키는 마음》(열화당,1982)을 써내어 제주사람 살림살이를 그러모으며 제주민속박물관을 꾸리던 눈물과 웃음을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 사람들은 제사를 기회로 해서 귀신도 위하고 이웃도 사귀는, 다시 말하면 귀신도 즐기고 사람도 즐기는 복합적인 의미의 행사라고 할 수 있다 … 통통하면서도 귀엽게 생긴 아이들을 만나면, 이곳 노인네들은 “어! 그놈 부시개기같이 북시락하다.”고 칭찬하기도 하는데, 이렇듯 부개기(씨앗주머니)의 통통한 맵시는 귀엽고 앙징스러운 매력이 있다 .  (39, 50∼51쪽)


  이 땅에 “서울살이 멋”이나 “부산살이 멋”을 갈무리할 사람이 있는가요. 이 땅에 “강릉살이 멋”이나 “고흥살이 멋”을 그러모으는 사람이 있을까요. 임금님이나 양반님들 노리개 아닌, 수수한 여느 시골사람 흙삶을 가꾸던 살림살이를 헤아리면서 “사람살이 멋”을 들려줄 사람이 있으려나요.


  가만히 보면, 고장말이나 고을말이나 마을말이나 집말을 알뜰히 지키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신문과 방송 때문에, 학교와 책 때문에, 아주 빠르게 고장말과 고을말과 마을말이 사라지고 집말이 스러집니다. 말높이나 말씨로 살피는 고장말조차 흐릿합니다. 고장과 고을과 마을마다 다 다르게 가리키던 풀이름과 나물이름이 모조리 잊혀집니다. 학자들은 이런 이름을 캐거나 모으려고 부산했지만, 정작 수많은 풀이름과 나물이름이, 물고기이름과 벌레이름이, 나무이름과 새이름이, 마을이름과 들이름이, 표준말과 한자말에 밀려 없어집니다.


  어느새 시골살이가 쓰레기처럼 버려진다고 할까요.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는 몽땅 도시로 가서 돈벌이 일만 찾고, 시골에는 늙은 할매와 할배만 남아서 이녁이 언제 흙으로 돌아갈까만 손꼽아 기다리는 셈이 된다고 할까요.


  예부터 논일은 가을에 갈무리한 나락 가운데 씨나락(볍씨)을 따로 건사해서 이듬해 봄에 모를 내어 새로 심으며 했습니다. 수천 해나 수만 해나 수십만 해에 이르도록 고장과 고을과 마을과 집마다 ‘스스로 돌보고 건사하던 씨앗’이 있었어요. 시골에서 씨앗을 지킨다 할 적에는 삶, 곧 문화를 지키는 셈입니다. 시골에서 씨앗을 모두 중앙정부(농협)와 재벌(다국적 씨앗재벌)한테 빼앗겨 돈을 주고 해마다 새 씨앗을 사다가 심어야 한다면, 시골에는 삶도 문화도 모두 빼앗기거나 짓밟힌 셈입니다. 농협이나 씨앗재벌한테서 사들여 쓰는 씨앗은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이 아니고는 제대로 자리지 않아요. 흙일을 하면 할수록 비료푸대와 농약병 쓰레기가 나와요. 게다가 흙을 비닐로 덮으며 비닐 쓰레기가 나와요. 도시도 쓰레기투성이가 되는데, 시골도 쓰레기밭이 돼요. 쓰레기가 나뒹굴면서 플라스틱 그릇을 쓰고, 플라스틱 그릇은 햇볕에 바래 쉬 망가지면서 새로운 쓰레기 돼요. 독재정권이 부추긴 새마을운동 바람 때문에 지붕을 슬레트와 시멘트기와를 얹었는데, 이 또한 새삼스레 쓰레기 돼요. 짚으로 잇던 지붕은 한 해나 두 해마다 걷어서 논밭에 내놓아 거름으로 삼았지만, 슬레트도 시멘트기와도 모두 쓰레기가 될 뿐입니다. 요즈음 많이 올리는 양철기와도 서른 해나 쉰 해쯤 지나면 모조리 쓰레기가 됩니다.


.. 그밖에도 우장은 물건을 덮어 두는 데도 쓰인다. 제주민의 조상이 자연물을 재료로 해서 슬기롭가 만들어 놓은 이 우장은 편리하고 실용적이기 때문에,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많이 애용되어 온 생활필수품 중의 하나이다 … 소를 기르는 농가에는 대개 소의 진드기를 제거하는 기구의 하나로서 ‘부그리글갱이’라는 일종의 빗을 갖추어 놓고 있는데, 이 부그리글갱이로 진드기를 긁어내릴 때마다 쇠털이 조금씩 빠져나오게 된다. 농부들은 이렇게 뽑혀 나오는 쇠털을 모았다가 분량이 많아지면 이것을 가지고 벙거지를 만드는 것이다. (68∼69, 86쪽)


  박물관 으리으리하게 지어 지난날 흙지기가 빚은 옷이나 살림살이를 모신다고 해서 문화재나 유물이 되지 않습니다. 풀에서 얻은 실로 짠 옷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풀이 돋을 거름이 되어야 옳습니다. 옷은 새로 돋은 풀에서 새로운 실 얻어 새롭게 지어서 입어야 옳습니다. 바구니도 둥구미도 섬도 씨오쟁이도, 해마다 새로운 짚으로 새롭게 엮어야 맞습니다. 박물관에 유물로 가두어 둔대서 유물이 안 되고 문화재란 이름을 붙일 수도 없습니다.


  문화재가 되자면,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내는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절구질을 하고 방아를 찧으며 베틀을 밟을 적에 문화와 문화재가 됩니다. 우리 삶에서는 죄 사라졌는데 박물관이나 기념관을 짓는대서 역사나 문화로 남지 않아요. 이를테면, 골목동네를 모조리 삽차로 부수어 아파트만 올려세운 뒤 ‘달동네박물관’ 짓는대서 골목문화가 남을까요? 구경거리는 남겠지만 삶이나 문화는 안 남습니다.


  조그마한 이야기책 《제주민속의 멋》은 바로 이 대목을 건드립니다. 살아서 싱그러이 숨쉬는 이야기 아닌 박물관에 가두는 유물로는 아무런 이야기가 샘솟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박물관장이나 박물관지기나 박물관 일꾼 어느 누구도 새끼를 꼬지 못하면서 여느 시골사람 짚살림 잔뜩 그러모으면 어떤 문화나 역사가 될까요? 어떤 이야기 들려줄 만할까요?


  날마다 지어서 먹는 밥이 문화입니다. 날마다 아이들과 복닥이며 노는 하루가 역사입니다. 날마다 하늘숨 마시고 빗물 맞으며 흙 만지고 밟는 삶이 교육입니다. 쓰레기 아닌 이야기 있는 삶이 문화입니다. 문명이나 물질이 아닌 사랑과 꿈이 감도는 이야기가 웃음꽃으로 피어날 때에 비로소 문화요 역사이며 교육입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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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예술 기행 / 반고비 나그네 길에 김현 문학전집 13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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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책을 읽는다 1

 


책은 사라져도 빛은 밝다
― 김현 예술기행
 김현 글
 열화당 펴냄, 1975.10.30.

 


  사라진 책을 읽습니다. 새책방에서 사라진 책을 읽습니다. 새책방에서 사라진 책 가운데에는 도서관에서 사들여 알뜰히 갖춘 책이 있을 테지만, 도서관이라고 해서 모든 책을 차곡차곡 사들여 갖추지 않습니다.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지고 도서관 책꽂이에 없는 책을,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다니면서 하나둘 살핍니다.


  도서관은 종이로 된 온갖 것들을 갈무리한 책터라 할 만한데, 한국에서는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이 무척 많습니다. 처음 도서관 건물을 지은 뒤, 책 둘 자리를 꾸준히 넓히는 도서관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대학교 가운데 도서관을 새로 짓는 데는 한국에 거의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가운데에도 도서관으로 삼을 교실을 넓히려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초등학교 가운데에도 빈 교실을 새 도서관으로 꾸미려고 힘을 쏟는 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공공도서관·대학도서관·학교도서관 모두 책을 버립니다. 헌책을 버려야 새책을 꽂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헌책을 없애야 새책을 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책 가운데에는 예전에 사라진 책을 되살린 판이 있어요. 오래된 이야기는 껍데기로는 새책이라 하지만, 줄거리와 알맹이로는 헌책입니다. 이를테면, 성경도 오래된 헌책입니다. 김시습도 이규보도 정약용도 모두 오래된 헌책이에요.


.. 우리는 아직도 세계 문명의 앞길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솔직이 인정할 때, 한국이라는 내 조국의 비참함이 가슴 깊숙이 차오르면서 나를 뜨겁게 불태웠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자칫하면 식민교육이 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외국에 나가는 것이다. 조국의 산하와 풍속, 그리고 가족을 떠나서 조국을 미워하기 위해 외국에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 로마에서, 나는 내가 처음 서울에 내렸을 때 느낀 이후로, 전연 느껴 본 적이 없는 당황감과 초조감을 느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서울에 처음 내렸을 때, 그 휘황찬란하던 불빛과 전차 선로 등이 나에게 준 충격을 나는 근 20년을 서울에서 살면서 습관으로 만들어 버렸다. 충격은 습관이 되면서 놀람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상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  (11, 20∼21쪽)


  책이란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도 처음부터 이야기를 씁니다. 쓸 만한 이야기가 있기에 책을 쓰고, 읽을 만한 이야기라 여겨 책을 읽습니다.


  책에 담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 스스로 즐겁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괴롭게 날마다 부대끼거나 겪는 삶을 찬찬히 되새기면서 갈무리할 적에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머리로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굴려 이야기를 지을 수 있겠지요. 스스로 겪지 않은 일을 머리로 생각해서 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떤 이야기라 하더라도 사람내음이 깃들어요. 어떻게 지어낸 이야기라 하더라도 사람빛이 서립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이녁이 몸소 겪으며 살아온 나날을 바탕으로 삼아 새로운 이야기를 꾸밉니다. 글을 읽는 사람은 이녁이 몸소 겪으며 살아온 나날을 바탕으로 두며 새로운 이야기를 맞아들입니다. 한 사람은 겪은 대로 쓰고, 한 사람은 겪은 대로 읽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겪은 열 사람이 글을 쓰더라도 열 가지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똑같은 책을 열 사람이 읽더라도 열 가지 느낌이 샘솟습니다.


  구름이나 노을이나 무지개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비나 눈을 맞는 사람들도 저마다 다 다른 느낌을 키웁니다. 바람이 불 적이든 바람이 가라앉을 적이든,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온 나날을 돌이키면서 맞아들여요.


.. 구라파에서는 대부분의 오래된 도시들이 강을 끼고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아름답다 … 내 방에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검은 외투를 입은 두 명의 성인이 자전거를 나란히 타고 가는 것을 가로수 가지 사이로 발견하였다 … 유럽 미술관에서 내가 놀란 것은, 대부분의 미술관이 사람들이 제일 많이 구경 오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무료이거나 반 정도로 입장료를 할인해 준다는 사실이었다. 미술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러니까 국민이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무료나 혹은 반값으로 그들에게 봉사해야 한다. 매우 논리적인 발상이지만 나 같은 이방인에게는 잘 이해가 안 되는 처사였다 ..  (26, 33, 63쪽)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누구나 ‘아이사랑’을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이사랑은 어버이마다 모두 다른 빛으로 나타납니다. 아이들이 모두 다른 숨결이니 아이사랑도 모두 다른 빛이 될 테지만, 두 어버이가 한 아이를 바라보더라도 두 어버이가 이제껏 살아온 나날이 다른 만큼,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이 달라요. 두 할머니와 두 할아버지 또한 이녁이 이제껏 살아온 나날이 다르니, 저마다 아이를 바라보며 느끼는 사랑이 달라요.


  열 사람이 무리를 지어 자전거마실을 할 적을 생각합니다. 열 사람 모두 같은 길을 달린다 하더라도 열 사람이 다 달리 삶을 느끼겠지요. 누군가는 어느 언덕길에서 숨이 가빠 둘레 모습을 하나도 눈여겨보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어느 언덕길에서 숨이 가쁘더라도 둘레를 가만히 살피며 새로운 빛을 누립니다. 누군가는 도심지를 씽하니 지나가고 싶다 생각하고, 누군가는 처음 들어서는 어느 도심지를 두리번두리번 재미나게 둘러봅니다.


  두 어버이와 두 아이로 이루는 네 식구가 밭일을 할 적에, 네 식구는 저마다 무슨 생각을 할까요. 네 식구가 밭일을 마치고 바닷가로 물놀이를 하러 갈 적에, 네 식구는 저마다 무슨 느낌이 들까요. 네 식구가 하루를 마무리지으며 잠자리에 들 적에, 네 식구는 저마다 무슨 꿈을 꿀까요.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살면서 다 다른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 다르게 살아가는 결에 따라, 다 다른 이야기를 몽실몽실 키웁니다. 이리하여,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가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여행기’로 태어납니다.


.. 발레리 전시관 앞에는 ‘예술 작품은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을 우리가 정말로 보지 못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 그의 단장이 새겨져 있었다. 그의 수첩과 수채화, 데상, 그리고 드가와 말라르메의 조상은, 글쟁이가 되기 위해 선배를 부지런히 쫓아다니다가 그 뒤에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해 버리고 문인이라는 이름만을 즐기는 한국 문인들의 나태함과는 다른, 질신 정신의 자기 단련을 보여주었다 … 예술가는 사실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본 진실을 그린다. 그의 진실은 세계를 순진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30∼31, 59쪽)


  1974∼75년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로 배움길 떠난 김현 님이 적바림한 글(일기)로 조그맣게 묶은 책 《김현 예술기행》(열화당,1975)을 읽습니다. 이 조그마한 책은 살그마니 태어나 이럭저럭 사랑받다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새책방에서 사라지며 헌책방에서도 잊힌 책이 되었는데, 1991년부터 ‘김현 문학전집’이 나오면서, 1993년에 ‘김현 문학전집 13번’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제는 ‘사라진 책’이나 ‘없어진 책’이 아닌 ‘다시 태어난 책’입니다. 그렇지만, 문학전집 가운데 하나로 스민 《김현 예술기행》에는 1975년에 태어난 조그마한 책에 감도는 빛이 흐립니다. 문학전집으로 나온 만큼, 묶음책으로 내면서 겉그림을 모두 똑같이 맞출밖에 없다 할 수 있겠지요. 《김현 예술기행》은 아주 조그마한 책인 터라, 다른 책 몇 가지를 붙여 사뭇 다른 책이 나올밖에 없을 수 있어요.


.. 고호를 보고 나서 느낀 최초의 감정은, 현대 미술이라는 이름 밑에서 가짜 미친 짓을 하는 수많은 화가들에 대한 증오였다. 고호가 그의 생명을 소진해 가며 보여준 이 사회의 한 징후를, 머리로 이해하여 그것을 재구성하려는 가짜 미친놈들의 그림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대하는 것일까. 미쳐서 결국은 자살까지 한 한 미치광이 예술가에게서, 그의 고통과 아픔을 보는 대신에, 미치는 시늉을 함으로써 그를 이해·모방하려고 하는 예술가들의 제스처 … 진짜로 아프지 않고 어떻게 남에게 진짜 아픔의 소리라고 느껴질 소리를 내지를 수 있을까 ..  (52, 53쪽)


  꼭 예전 판을 찾아서 읽어야 예전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다. 예전 판이나 요새 판이나 ‘이야기’는 똑같습니다. 이야기로 읽자면, 1975년에 나온 책이나 1993년에 나온 책이나 똑같아요. 1975년에 나온 책을 2013년에 읽든, 1993년에 나온 책을 2013년에 읽든, 책손이 맞아들일 이야기는 한결같습니다. 누가 내 곁에서 이 책을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읽어 줄 때에도, ‘몇 년도에 나온 이야기’ 아닌 ‘책에 감도는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헌책방마실을 하다가 1975년판 조그마한 책을 보았습니다. 헌책방 책시렁 한쪽에 곱게 꽂힌 이 조그마한 책을 알아보았습니다. 아주 얇은 책입니다. 크기도 작은 책입니다. 크고 두꺼운 책 사이에서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책인데, 헌책방마실을 하던 어느 날, 이 얇고 작은 책이 불현듯 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1975년은 내가 태어난 해입니다. 내가 태어난 1975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릅니다만, 철이 들 무렵 도서관마실을 바지런히 하며 1975년치 신문을 샅샅이 읽었고, 여러 역사책을 두루 살폈습니다. 아름다운 일도 있었을 테고 궂은 일도 있었을 텐데, 역사책에서는 1975년을 놓고, ‘유신헌법 철폐와 정권퇴진을 바라는 민주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이를 억누르려고 유신독재정권은 긴급조치 9호를 내렸고, 1975년 5월에 나온 긴급조치 9호는 집회·시위를 비롯한 정치활동을 모두 막았고, 이를 어기면 영장 없이 붙잡을 수 있도록 했’다고 적습니다.


  그래요. 이런 해가 1975년이었을 테지요. 그렇지만, 바로 이 1975년은 《김현 예술기행》이라는 조그마한 책도 태어난 해입니다.


  헌책방 책시렁 앞에서 조그마한 책을 끄집어 냅니다. 간기를 펼칩니다. 마침 이 책은 첫 판입니다. 1쇄이건 2쇄이건 대수롭지 않지만, 1975년에 나온 책일 뿐 아니라, 1975년에 찍은 책입니다. 겉도 속도 아주 정갈한 묵은 책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너는 어떻게 마흔 해 가까운 나날을 이렇게 정갈하게 살아올 수 있었니. 내 나이와 똑같이 묵은 종이가 어쩜 이렇게 보들보들 깨끗하니.


.. 프랑스의 도시치고 그렇게 가로수가 적은 도시를 나는 별로 보지 못했다. 물과 나무를 그렇게 좋아한 바슐라르가 그것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 소르본에서의 첫 강의가 끝난 이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촌(시골) 철학자예요.” 촌 철학자라는 말 속에 그가 숨기고 있는 자연에 대한 사랑을 그는 디종 대학의 루프넬에게서 배웠다 ..  (83, 89쪽)


  1942년에 태어난 김현 님은 1974년, 그러니까 서른세 살이던 해에 프랑스로 다시 배움길을 떠났습니다. 1975년에 태어난 《김현 예술기행》은 서른두어 살 무렵 프랑스에서 새롭게 누린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입니다. 이녁한테 서른두어 살이란 어떤 나이였을까 헤아립니다. 이녁한테 1975년은 어떤 해였을까 되뇝니다. 어떤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프랑스를 배우려 했을까요. 어떤 사랑을 느끼면서 1975년을 살아냈을까요.


  김현 님은 프랑스 배움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긴급조치 9호’ 이야기를 신문으로 읽으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긴급조치 9호’ 이야기가 떠도는 한국에서 김현 님은 어떤 글을 쓰고 어떤 학생들한테 어떤 지식을 가르칠 수 있었을까요.


  시골(전라남도 진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시골을 떠나 도시(서울)로 나온 뒤 스무 해를 지나며 어느덧 도시사람(서울사람)이 되고 말았다 했는데, 한국 아닌 프랑스에서 마주한 시골을 어떻게 느끼고 삭혔을까요.


.. 그는 끝까지 그가 읽는 저자를 따라가지 않는다. 어떤 책을 읽다가, 그의 생각을 자극하는 대목이 나오면 그때부터 그는 그 책을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그의 상상력을 따라간다. 그에 의하면 책이 좋은 것은 언제든지 그것을 덮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그가 읽는 책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책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이점이다 … 그렇다면 남의 책을 ‘피상적으로’ 다시 말해서 ‘잘못’ 읽는다는 것은 그것을 쓴 저자 속에 갇히지 않겠다는 독창적인 사고의 표현이 아닐까 ..  (103∼104, 105쪽)


  2013년에 서른아홉 살 살아가는 나는 전라남도 고흥에서 살림을 꾸립니다. 2011년부터 고흥에서 살림을 꾸렸으니 서른일곱 살부터 이곳에서 지냈습니다.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지내며 이웃 어린이와 푸름이를 지켜보니, 초등학교부터 도시로 떠나는 아이들이 있고, 중학교 적에 도시로 떠나는 아이들이 있으며, 고등학교에 이르러 도시로 떠나는 아이들이 있는데,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이면 거의 모두 도시로 떠납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젊은이 가운데 시골마을에 남는 아이는 아주 드뭅니다. 대학교를 가거나 공장이나 회사에 들어가려고, 시골마을 거의 모든 젊은이가 도시로 떠납니다.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김현 님처럼 대학교수가 되기도 합니다.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삼성전자 노동자가 되어 백혈병을 앓다가 시골로 조용히 돌아오기도 합니다.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고만고만하게 시집장가 들어 아이 낳고 고만고만하게 도시사람 되어 명절 때에만 시골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인천시장이 되기도 하고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며 장관이나 의사나 판사가 되기도 하며, 공장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기도 합니다.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는 축구선수가 되기도 하고, 널리 이름난 화가가 되기도 합니다.


  모두들 여행길을 나섭니다. 삶이 곧 여행이니, 프랑스로 갈 때에만 여행이 아닙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 모든 아이들은 여행길에 나선 셈입니다. 삶길이랑 여행길입니다. 여행길에서 누리거나 느끼는 이야기가 있다면, 삶길에서 누리거나 느끼는 이야기가 있겠지요.


  책은 사라져도 빛은 밝습니다. 시골에 아이들 모조리 떠나도 시골빛은 밝습니다. 헌책방 책시렁에 드문드문 나타나더라도, 낡은 책 하나에 깃든 빛은 밝습니다. 시골에 젊은이 모습 자취를 감추지만, 숲은 푸르고 가을들은 누르며 바다와 하늘은 파랗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과 마당 평상에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과 마당 평상에 책을 내려놓고 마당 풀밭에서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며 놉니다. 4346.9.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책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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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26 09:18   좋아요 0 | URL
한 사람은 겪은 대로 쓰고, 한 사람은 겪은 대로 읽습니다.-
정말 그런 듯 해요. ^^
오래된 헌책, <김 현 藝術紀行>을 읽으시고 쓰신 느낌글을
마음으로 쏙쏙 읽으며 그 속에 골골샅샅 숨어있는 아름다운 생각 따라
함께 걸었던 좋은 아침입니다.
또 찜하기 해서 제 서재에 살뜰히 간수하네요~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09-26 09:22   좋아요 0 | URL
저 책을 헌책방에서 더 만날 수 있다면
작고 예쁜 옛책을
선물하고 싶어요..

oren 2013-09-26 12:58   좋아요 0 | URL
오래된 헌 책 얘기가 참 재미나네요. 저런 책들을 헌 책방에서 마주치는 기쁨은 얼마나 클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저 책이 태어난 1975년을 곰곰 되짚어 보니 저는 '중학교 1학년'에 진학한 해네요. 난생 처음으로 책가방이며 운동화도 샀고, 영어 알파벳을 배우느라 잉크와 펜도 샀고, 그 펜을 잉크에 찍어 알파벳을 연습하다가 펜 끝으로 공책을 여러 번 찔러댔던 기억도 나네요.

숲노래 2013-09-26 19:00   좋아요 0 | URL
그때에 처음 책가방과 운동화를 사셨군요~
오래된 책에서 읽는 발자취는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새롭게 느끼도록 해 줘요.
 
갈매기의 꿈 에버그린북스 1
리처드 바크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조나단은 갈매기 아닌 사람 이야기
[헌책방에서 찾아 읽기 1] 리처드 바크, 《갈매기 조나단》



- 책이름 : 갈매기 조나단
- 글 : 리처드 바크
- 옮긴이 : 김진
- 펴낸곳 : 삼중당 (1975.7.1.)



[130쪽] “한 마리의 새에게, 그가 자유롭고, 조금만 시간을 들여 연습하면 제 힘으로 그걸 실시할 수 있다는 걸 납득시키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니. 이런 일이 왜 그처럼 어려운 것일까?”

[131∼132쪽] “플레처, 너는 그런 게 싫겠지! 그건 당연해, 증오나 악의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너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그리고 갈매기의 본래의 모습, 즉 그들 모두 속에 있는 좋은 것을 발견하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 돼. 그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도록 도와야 해. 내가 말하는 사랑이란 그런 거야. 그 점을 터득하기만 하면, 그건 그것대로 즐거운 일이야. 나는 거칠고 젊은 갈매기를 기억하고 있어. 이름은 그렇지, 가령 플레처 린드래도 좋아. 추방당해서, 죽도록 싸울 각오로, ‘먼 벼랑’에 자신의 괴로운 지옥을 세우려 했었지. 그게 지금 여기서는 어떤가, 지옥 대신 자신의 천국을 만들어 가고 있고, 그 방향으로 갈매기떼를 인도하고 있지 않아.”

[132∼133쪽] “이미 네게는 내가 필요치 않아. 네게 필요한 것은, 매일 조금씩 자기가 진정하고 무한한 플레처임을 발견해 가는 일이야. 그 플레처가 네 교사야. 네게 필요한 것은, 그 스승의 말을 이해하고, 그가 명하는 바를 행하는 일이야 … 그들에게 나에 관해 어리석은 소문을 퍼뜨리거나, 나를 신처럼 받들게 하지 말아 주게. 알겠나, 플레처? 나는 갈매기야. 나는 그저 날으는 것을 좋아해, 아마 … 알겠지, 플레처. 너의 눈이 가르쳐 주는 것을 믿어선 안 돼.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허위야. 너의 마음의 눈으로 보는 거야. 이미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찾아야 해. 그러면 어떻게 날으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


 ★ ★

 내가 태어난 해에 태어난 책을 처음 알아본 때는 아마 국민학교 5학년이나 6학년 무렵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천도서라느니 명작이라느니 고전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습니다. 마침 우리 집에 삼중당문고로 조그마한 책이 하나 있었고, 이 책을 찬찬히 새겨 읽었습니다. 아버지가 읽은 책이었기에 집에 있었겠지요. 자유를 말한다느니, 자유로이 살아가는 넋을 말한다느니 하는 《갈매기 조나단》이라 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갈매기 한 마리처럼 훌훌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책을 덮고 나서, 갈매기라 하면 갈매기이지 왜 이런저런 ‘사람이름 같은 이름’을 붙이나 하고 궁금했습니다. 더욱이 갈매기 이름은 온통 서양사람 이름입니다.

 예나 이제나 ‘조나단’이라는 이름에 꽤 걸립니다. 내가 갈매기라 할 때에 어떤 이름을 얻을는지를 헤아리고, 갈매기는 서로서로 무엇이라 부를까를 생각하면, 갈매기 이름은 좀 달리 붙여야 어울리겠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씽씽이라든지, 날쌘이라든지, 미끈이라든지, 큰날개라든지, 작은부리라든지, 매서운눈이라든지, 하얀구름이라든지, …….

 자연에서 자연 가운데 하나로 살아가는 목숨이라면 자연에서 얻은 이름을 붙이며 살아가리라 생각합니다. 지난날 북중미 토박이가 쓰던 이름처럼 말예요.

 《갈매기 조나단》을 돌이켜보면, 이 책을 쓴 분은 갈매기에 빗대어 사람살이를 이야기했다고 느낍니다. 책에는 갈매기들만 나오지만, 갈매기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사람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해야 걸맞지 싶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다툼이나 미움이나 사랑이나 꿈이나 아름다움을 조곤조곤 나누고 싶었기에 이러한 책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스물 몇 해만에 다시 들추어 읽다가 덮습니다. 나는 내 아이한테 이 책을 물려줄 만할까? 내 아이한테 이 책을 읽혀야 할까? 썩 정갈하거나 깔끔하지 못한 옮김말이 내키지 않고, 굳이 책으로 읽히지 않더라도 시골자락 숲과 들에서 홀가분한 꿈을 하루하루 곱새기도록 이끌면 넉넉하지 않을까? (4344.6.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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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꿈 과학에 실어 - 대동문예 6
이승기 지음 / 대동 / 199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한테 싣는 꿈 한자락
― 이승기, 《겨레의 꿈 과학에 실어》



- 책이름 : 겨레의 꿈 과학에 실어
- 글 : 이승기
- 옮긴이 : 김남현
- 펴낸곳 : 대동 (1990.5.10.)



 일본 제국주의한테서 식민지살이를 풀려난 지 예순 해가 지났습니다. 해방둥이로 태어나신 분들은 어느덧 예순을 넘기고 일흔 가까운 나이가 되며 머잖아 여든 아흔이 되겠지요. 앞으로 몇 해 지나지 않아 해방둥이였던 분들은 모두 흙으로 돌아가고 없겠구나 싶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나날 맛보던 아픔과 쓰라림을 떠올릴 수 있는 분들은 그예 자취 없이 사라질 테지요.

 그러면, 우리들은 일제강점기에 어떠했는지, 또 해방이 되고 난 뒤 어떠했는지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그때 이야기를 얼마나 적바림해 놓았을까요.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담은 책이 ‘제대로’ 팔리거나 ‘널리’ 읽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우리가 겪은 이야기와 거쳐야 했던 이야기를 얼마나 알뜰하게 남겼을까요. 북쪽사람이 ‘북침’이라고 하든 뭐라고 하든, 북조선은 어떠하고 남한은 어떻다고 하든, 우리들 남녘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라도 우리네 이야기를 얼마나 갈무리해 놓았는가요.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 채 서로 반쪽짜리 정보와 생각과 슬기로 일구는 문화와 사회는 이대로 또 얼마나 넉넉히 남녘끼리든 북녘끼리든 알뜰살뜰 주고받으면서 서로서로 제 살림을 키우는가요.


.. 해방이 되어 조국에 돌아온 후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미제국주의의 통치하에서는 와이셔츠 하나 만족스럽게 살 수 없었다. 하물며 양복, 외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나의 생활이었다. 조국을 빼앗겼다고 하는 그것 때문에 25년 동안 이국땅에서, 운명의 갈림길에 세워진 옥중생활로부터 해방되어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사 제쳐놓고 귀국한 고향땅, 남조선. 그곳은 지배자가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인 식민지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서는 구속과 박해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  (81쪽)


 젊은 날 읽고서 헌책방에 내놓았던 책을 하나둘 다시 사 모읍니다. 예전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아예 거들떠보지 않던 책까지 하나둘 사 모으며 읽습니다. 저로서는 제 깜냥껏 제 생각과 마음을 키우며 이 땅에서 살아가면 됩니다. 좋아하지 않으니 애써 안 읽어도 됩니다. 그러나 제가 아닌 제 아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는 제도권학교를 다니면서 교과서로 공부할 수 있고,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저와 옆지기한테 물어 볼 수 있습니다. 아이 스스로 이것저것 찾아보고 싶을 수 있습니다. 아이 스스로 이리 살피고 저리 헤아리고 싶을 수 있습니다. 어버이로서 옳고 바른 생각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도 좋지만, 아이 스스로 이 책 저 책 돌아보면서 스스로 깨우치는 일도 좋습니다. 먼 뒷날을 헤아리면서, 아이 스스로 도움이 될 만한 책이든, 아이가 궁금해 할 만한 책이든 갖춥니다. 이문열 문학도 갖추고, 김동인 소설이나 서정주 시집도 건사해 놓습니다. 허영만 님이 그린 《오! 한강》뿐 아니라 《퇴색공간》 같은 전두환·노태우 정권 부역만화도 챙깁니다. 노무현 님이 대통령으로 뽑히자 봇물처럼 터져나온 만화책이라든지 이명박 님이 대통령이 되니 숱하게 그려지는 만화책이라든지 하나하나 갈무리합니다.

 이 책들을 읽어내거나 받아들이는 몫은 아이한테 있습니다. 다만,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자료가 아닌 이쪽저쪽 골고루 모아 놓는 자료를 함께 보여주면서, 아이 나름대로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맞고 어느 쪽이 아름다운가를 찾아나가도록 길동무 노릇을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니, 맞고 옳고 틀리고 그르고를 떠나, 참다운 삶인지 착한 넋인지 고운 길인지를 알아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 “그만, 이제 충분해. 정치 얘기는 그 정도로 하세. 우리는 정치가가 아니니까……. 그저 곰곰히 생각해 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일뿐이야. 해방된 조국이 이런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정치는 그렇다치고 교육계의 사정은 어떻게 돼 있는지 말해 주지 않겠나?” ..  (36쪽)


 오늘날 한국 사회는 ‘책이 버려지는’ 사회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늘 꾸준하게 있습니다. 제법 많습니다. 다만, 오늘날 한국 사회는 한쪽으로 치우친 책만 읽습니다. 또한, 제 삶에서 잘못되거나 뒤틀린 대목을 바로잡도록 이끄는 책은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입으로는 ‘날씨가 미쳐서 걱정이야, 기름값이 하늘 높은 줄 치솟아서 큰일이야.’ 하고들 말하지만, 정작 날씨가 왜 미쳐 가는지를 알아보는 책은 읽지 않습니다. 이러한 책을 읽었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고치거나 추스르지 않습니다. 기름값이 오를 때 우리 삶을 어떻게 다스려야 좋은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기름값이 오르는 만큼 돈을 더 벌어서 기름값을 대면 그만이지, 하고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이리하여 한국 사회에서는 ‘책이 버려집’니다. 새로 나오는 책도 서너 달쯤 지나면 새책방 책꽂이에서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판이 끊어지기도 하고 출판사가 문을 닫기도 합니다. 때를 놓치고 못 장만하면, 그 책을 다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나라 도서관에서 ‘새로 나오는 모든 책’을 갖추고 있느냐? 아니지요. 그렇게 못 하잖습니까. 더구나,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을 뺀, 전국 곳곳에 있는 지역도서관 형편은 어떠한가요.

 ‘책이 안 버려지’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주 적습니다. 무척 조그맣습니다. 그래도, 제 나름대로 하나하나 눈을 밝히면서 찾아내고 캐내려 합니다. 김지하 수필책도 사 놓고, 하길종 수필책도 사 놓으며, 이경자 수필책도 사 놓고, 천상병 수필책도 사 놓습니다. 프랭크 기브니 책도 사 놓고, 타르코프스키 책도 사 놓으며, 스콧 버거슨 책도 사 놓습니다. 간디 님이 남긴 《날마다 한 생각》뿐 아니라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도 사 놓고, 고암 이응로 님 이야기책도 장만해 놓습니다. 김환기 님 이야기책도, 추송웅 님 이야기책도 들여놓습니다. 제가 이 모든 책을 다 읽어내면 저로서는 더 아름다워질 수 있으리라 믿고, 제가 이 모든 책을 못 읽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아이가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으면 되지, 하고 믿습니다. 우리 아이가 못 읽어내더라도, 우리 동네 이웃들이 도서관에 찾아와서 읽어 줄 수 있다면 되지, 하고 믿습니다.


.. 이날 밤 나는 막내 종민이를 안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고향 생각을 했다. 내가 가져온 섬유를 조금씩 손에 쥔 채로 혜인이도, 종과도, 종택이도, 혜경이도, 혜숙이도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내 아내도 잠들었다. 가족 모두가 행복한 잠에 빠져 있었다. 나만 혼자 가벼운 숨소리를 내고 있는 막내를 안고 남쪽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행복한데 내 누나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남반부에 있는 과학자들의 일도 끊임없이 생각났다. ‘○○박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과학계의 거물인데 그 재능이 때를 못 만나 …….’ ..  (108쪽)


 일제강점기 한복판을 살다가 해방을 맞이하고 어수선한 때에 북녘땅으로 가서 보금자리를 틀던 과학자 이승기 님 삶을 담은 책 하나를 읽습니다. 이런 책이 용케 남녘에서 나와 정식으로 나오기도 했구나 싶어 놀랍습니다. 아마 6·29선언 뒤끝으로 북녘 이야기 몇 가지가 풀리면서 나올 수 있던 책이지 싶은데, 과학자는 과학을 이야기하지 정치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정치빛이 아예 없을 수 없다지만 과학은 과학입니다. 집에서 아이를 낳아 살림하는 어머니는 집에서 아이를 낳아 살림하는 사람이지, 남녘사람 북녘사람 일본사람 미국사람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오롯하고 튼튼한 아이로 자라야 합니다. 씩씩하며 다부진 아이로 커야 합니다. 착하며 어여쁜 아이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아이로 어깨동무해야 합니다.

 똑똑한 아이보다는 착한 아이이기를 꿈꿉니다. 잘난 아이보다는 살가운 아이이기를 바랍니다. 돈 잘 버는 아이보다는 사랑 예쁘게 나누는 아이이기를 비손합니다.

 누군가는 우리 겨레 꿈을 과학에 싣고, 누군가는 우리 겨레 꿈을 우리 아이가 살아갈 앞날을 헤아리며 멧골자락 조그마한 보금자리에 싣습니다. (4341.5.2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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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거운 책가방 - 개정판 교육시선집 담쟁이 문고
조재도.최성수 엮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학교를 박차고 나오며 읽던 시
― 교육출판기획실 엮음, 《내 무거운 책가방》



- 책이름 : 내 무거운 책가방
- 엮은이 : 교육출판기획실
- 펴낸곳 : 실천문학사 (1987.4.20.)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 작은 방에서 대학생 형들이랑 먹고자면서 신문배달을 하던 때, 헌책방마실을 참 신나게 했습니다. 신문딸배 일을 한대서 학비벌이는 꿈조차 꾸지 못하고 술값벌이조차 안 되었으나, 새벽에는 신문 돌리고 낮에는 대학교 구내서점이랑 도서관에서 쉴새없이 일을 하며 푼푼이 돈을 모은 다음, 저녁나절 도서관 문닫을 즈음부터 신문배달 자전거를 몰아 헌책방마실을 했습니다. 가난할 뿐 아니라 똥구녕이 찢어지는 신문딸배 살림이지만 대학교 2학년이니 후배가 있다고 후배한테 술을 사 주어야 하는데, 신문딸배 달삯이나 근로장학금으로는 낮밥 한 끼니 사 줄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때면 언제나 신문배달 짐자전거 바구니에 책을 싣고 싱싱 달리며 조그마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이곳저곳을 누볐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려 강의실에 닿아 들어간 다음 1분이라도 아껴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낮밥 때가 되면 짐자전거를 부리나케 몰아 신문사지국으로 돌아옵니다. 동무들하고 낮밥을 사먹을 돈도 없으나 후배한테 낮밥 사 줄 돈 또한 없으니까요. 아침에 신문사지국 형들과 지국장님하고 먹다 남은 반찬이랑 찌개하고 밥을 후다닥 먹습니다. 후다닥 먹고는 지국 방바닥에 드러누워 책을 읽거나, 자전거를 몰아 학교 앞 헌책방에 찾아가 새로운 헌책을 살폈습니다. 하루에 오천 원이나 만 원어치만 새로운 헌책을 사서 읽자고 생각하고 다짐합니다. 오천 원이나 만 원밖에 못 쓰니까, 이 돈으로 되도록 많이 사서 읽어야 하니까, 더 낡고 더 지저분한 책으로 골라서 사들입니다. 이렇게 하면 더 눅은 값으로 한 권이나마 더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두툼한 책도 좋으나 퍽 묵은 예전 손바닥책이 훨씬 반갑습니다. 작고 낡으면 더 값이 눅으니까요. 그리 사랑받지 못하는 자그맣고 해묵은 시집은 한결 값이 쌉니다. 이제는 이런 책들이 옛책으로 떠받들리며 비싸구려 책으로 탈바꿈하지만, 1995∼1999년 사이에는 꽤 값싼 책이었습니다.


..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작품이 씌어진다는 것은 문학에 있어 보편적 진리이다 ..  (책머리에)


 고등학교 3학년이던 때에 《내 무거운 책가방》을 헌책방에서 만납니다. 이때에도 《내 무거운 책가방》은 새책방에도 있었으나 꽤나 많이 팔리고 읽히며 버려졌기에 헌책방에서도 곧잘 눈에 뜨였습니다. 여러 사람들 시를 한두 가지 또는 여러 가지 그러모아 엮은 시집이라서, 이 시집을 읽으며 이 시집에 실린 시가 담긴 낱권 시집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읽으려고 애씁니다. 대학교 2학년이던 1995년 봄께, 드디어 이 작은 시집에 실린 시가 담긴 낱권 시집을 모조리 찾아내어 읽었고, 이 가운데 〈우리들 소원〉이 실린 《우리들 소원》(풀빛,1985)을 만났을 때에는 참으로 기뻤습니다. 《내 무거운 책가방》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우리들 소원》을 만났을 테지만, 《내 무거운 책가방》에 실린 〈우리들 소원〉 때문에 이 시가 실린 시집을 만나려고 무던히도 헌책방 책시렁을 훑고 살피며 뒤졌습니다.


.. 16세에 안내원 생활 시작해 벌써 2년 / 같은 또래 여학생 실었을 때 굴욕스럽고 / 되지 못한 손님 만나 욕도 많이 먹고 / 하루 17∼18시간 중노동에 시달린 몸은 / 그저 소원이 실컷 잠자는 것이다 ..  (101∼102쪽/최명자-우리들 소원)


 국민학교 5학년 어린이가 쓴 〈내 무거운 책가방〉이라는 이름 그대로 시집 이름이 되었는데, 지나온 나날을 돌이키면 나 또한 국민학생 때에 가방이 몹시 무거웠고, 중학생 때에는 더 무거웠으며, 고등학생 때에는 역기 하나보다 무거운 가방을 끙끙 짊어지면서 어깨가 무너지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이십 킬로그램쯤 되는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면 몸이 기우뚱기우뚱합니다. 등에 메는 가방에는 다 넣기 힘들 만큼 교과서와 사전과 참고서와 문제집을 챙겨서 다녀야 하니까 언제나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그래도 이런 가방에 교과서 아닌 책을 여러 권씩 챙기면서 틈틈이 읽었습니다. 대학생 때에는 터무니없다 싶은 강의를 구태여 들을 까닭이 없었지만, 전공 과목을 가르치는 분 가운데에는 어처구니없구나 싶은 강의를 하는 분이 있어서 이런 강의라면 차라리 안 들어야겠다 싶어 강의를 안 듣고, 이동안 골마루에서 다른 책을 꺼내어 읽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헌책방 책꽂이를 찬찬히 살폈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교과서 하나로 한 해를 때운다더라도 거의 날마다 수업이 있었다지만 대학생 때에는 얄팍한 교재 하나로 한 학기를 때우면서 한 주에 기껏 한두 시간 수업만 있으니, 이런 엉터리 수업은 받아들이기 퍽 힘들었습니다. 얄팍한 교재는 휘리릭 읽으면 그만인데, 이 교재를 외우다시피 해야 하면 대학교 수업이란 도무지 무슨 보람이 있나 궁금했습니다. 대학생쯤 되면 날마다 새로운 책을 스스로 먼저 읽어 와서 깊이 따지거나 파헤치거나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과서이든 교재이든 ‘가르치는 책’이라지만, 막상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아무래도, 가르치는 책이라기보다 주어진 틀대로 지식을 외우도록 하는 책인지 모를 노릇이요, 지식만 주워섬기면서 정작 한 사람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슬기는 보여주지 못하는 셈 아닌가 여겼습니다. 대학생으로 지내는 노릇 그만두자고 아주 자연스레 다짐합니다. 1998년 12월에 마지막으로 강의를 들은 다음 휴학계를 내고는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 선생이 되고, 아비가 되어 / 아무 걱정도 없이 어느새 / 우리는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고 / 뉘우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 가르치지 않아도 / 식민지 시인의 토혈 같은 싯구를 / 아이들은 곧잘 외워대는데 / 꽃이 피고 지는 참담함으로 / 오월은 오고 ..  (199∼200쪽/최동현-오월에)


 2010년 12월, 《내 무거운 책가방》이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납니다. 그예 헌책방 책시렁에서 고이 잠들려나 싶던 시집이 새삼스레 다시 태어납니다. 아마, 1987년이나 1997년이나 2007년이나 2017년이나 아이들 책가방은 무거울 뿐 아니라 갖은 짐덩어리만 가득 차니까, 이 시집이 읽혀야 한달 수 있습니다. 좋은 배움터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 나라이니, 언제까지나 《내 무거운 책가방》 그대로 우리들 무거운 책가방이 되고 만다고 느낍니다.

 2010년 12월에 새로 나온 《내 무거운 책가방》은 1987년판하고 사뭇 다릅니다. 책이름은 똑같으나, 시집에 실린 시는 거의 모두 바뀝니다. 버스 차장 최명자 님 시는 빠집니다. 2010년대에 걸맞는다는 새로운 시들이 넘실넘실합니다. 아무래도 서른 해쯤 묵은 시들은 서른 해쯤 묵은 이야기를 다룰 테니까 오늘날하고는 걸맞지 않을 만합니다. 새로운 터전 새로운 나날에는 새로운 시집을 읽힐 노릇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시집에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지 않나 하고 갸우뚱갸우뚱합니다. 《내 무거운 책가방》은 내 무거운 책가방이네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하던 1987년 앞뒤 이야기일 텐데, 새로 내놓을 새로운 시들로 엮인 새 시집이라면 새 이름을 붙이는 한편, 예전 시집은 예전 시집대로 고스란히 되살려야 알맞은 일 아닌가 갸웃갸웃합니다.

 이제 버스 차장이야 모조리 사라졌으니 버스 차장이 쓴 시쯤이야 읽거나 읽힐 값이 없다고 느낄는지 모릅니다. 버스 차장은 없어졌어도 보충수업과 자율학습과 입시지옥은 그대로이니까, 이런 삶자락대로 시집을 새로 엮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2010년 《내 무거운 책가방》에는 대안학교 다니는 아이들이나 학교를 박차고 나온 아이들 모습도 몇 자락 담아야 할 텐데요. 아, 학교 문턱은 예나 이제나 몹시 높습니다. 시인이 되어 시를 쓰는 담벼락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참말 까마득합니다. (4344.2.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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