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바쁜 빨래

 


  늦가을 짧은 해를 안고 아이들 데리고 도서관에 들렀다가 이웃마을 나들이를 자전거 끌고 나가려 했는데, 씻는방에 빨랫거리 잔뜩 있다. 아침에 옆지기가 씻고 나서 나온 옷가지들이로구나. 집일을 할 수 없는 옆지기를 만났기에 빨랫거리 언제나 수북수북 맞아들인다. 아이들 옷가지만 조금 있으면 저녁에 빨아서 자는방 한쪽에 걸어서 집안에 물기가 살며시 흐르도록 할 생각이었으나, 수북하게 쌓인 옷가지를 보니 빨래를 안 할 수 없다. 어른이 입는 옷은 크고 두꺼우니 해가 하늘꼭대기에 걸린 때에 바지런히 해서 널어야 저녁에 물방울 안 떨어질 만큼 마른다. 복복복 비비고 헹군다. 따순물 받을 수 있지만, 아이들 낯 씻기거나 밑 씻길 때에 쓰자고 생각하며 아낀다. 찬물로 씩씩하게 빨래를 하고 걸레 두 점 함께 빤다. 4346.11.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마을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 마른 옷가지 개기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서천여고에 우리 말글 이야기를 들려주러 마실을 가는 새벽이다. 두 아이를 옆에 끼고 새근새근 재우다가 나 또한 스르르 곯아떨어지는데, 밤 세 시에 눈을 뜬다. 엊저녁에 미리 챙긴 짐을 살피고 글을 몇 가지 쓴다. 엊저녁에 씻어서 불린 쌀을 살핀다. 물갈이를 한다. 새벽 네 시에 머리를 감으며 빨래 몇 점 한다. 묵은 빨래가 없도록 한다. 내 머리를 말리는 천은 시골집으로 돌아와서 빨자고 생각하며 헹굼물에 담가 놓는다. 새로 빨래를 한 옷가지를 옷걸이에 꿰어 넌다. 잘 마른 옷가지를 걷는다. 아침 일곱 시 오 분에 첫 군내버스가 마을 앞으로 지나가니, 그때까지 집일 마무리지어야 한다. 새벽 여섯 시 사십 분부터 옷가지를 갠다. 아이들이 아직 달게 자니, 갠 옷가지를 옷장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여섯 시 오십팔 분에 큰아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어제 아버지가 멀리 일하러 간다는 얘기를 듣더니 일찌감치 깨는구나. “아버지 어디 가요? 가게요?” “응, 잘 다녀올게.” 큰아이가 두 팔을 벌린다. 살포시 안는다. 가방을 하나둘 멘다. 앞가방 둘 등가방 하나를 멘다. 또 팔을 벌리는 큰아이를 안아 번쩍 든다. 이제 사진기를 목에 걸고 섬돌로 내려서려는데 작은아이가 부시시 일어난다. 작은아이도 누나 말씨를 흉내내며 아직 안 뜨이는 눈으로 “가게요?” 하고 묻는다. “응, 잘 다녀올게. 자 쉬 해. 벼리야, 동생 쉬 하도록 도와줘.” “알았어요. 자, 보라야, 쉬 하자, 쉬.” 손을 흔든다. 대문을 열고 집을 나선다. 바지런히 달려 마을 어귀 버스 타는 곳으로 간다. 4346.10.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들 기저귀는

 


  큰아이가 밤오줌을 뗀 뒤로 큰아이가 쓰던 기저귀를 쓸 데가 사라진다. 작은아이가 태어난 뒤 큰아이 기저귀를 물려쓸까 했으나 너무 많이 해져서 도무지 쓸 수 없어 새로 장만한다. 작은아이도 이제 밤오줌을 거의 잘 가리니 작은아이한테 기저귀 쓸 일이 사라진다. 두 아이 모두 기저귀를 안 쓸 수 있으니, 아이들과 마실을 다닐 적에 짐이 크게 줄어든다. 집에서는 빨랫거리가 확 준다. 그리고, 이 기저귀들 쓸 일이 사라지면서, 기저귀는 오래도록 덩그러니 놓인다.


  아이들이 기저귀를 떼었다 한다면 아이들 어머니는 젖물리기도 떼었다는 소리이다. 곧, 아이들 어머니는 다시 달거리를 한다. 젖을 물리는 동안에는 달거리를 안 하지만, 젖을 떼면 바로 달거리를 한다. 이리하여, 더는 안 쓰는 아이들 기저귀가 시나브로 옆지기 기저귀로 바뀐다. 아이들은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였고, 옆지기는 핏기저귀이다.


  오줌기저귀와 똥기저귀도 잘 비벼 빨아 햇볕에 말려야 보송보송 산뜻하다. 핏기저귀도 핏물 잘 빼내면서 비벼 빨아 햇볕에 말려야 보송보송 상큼하다.


  모름지기, 아이들 아버지 되는 사람은 다른 일은 잘 못하더라도 기저귀 빨래만큼은 씩씩하게 도맡아야 하리라 느낀다. 아이들 똥오줌을 받고 옆지기 피를 받으면서 삶과 살림과 사랑을 어떻게 돌보고 보듬으면서 하루를 맞이할 때에 아름답게 흐를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리라 느낀다. 4346.10.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빨래하는 삶

 


  하루나 이틀쯤, 또는 사흘이나 나흘쯤 빨래를 안 한대서 입을 옷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빨래는 날마다 한다. 하루 빨래 안 하면 그만큼 하루치 빨랫거리 늘고, 이틀 빨래 안 하면 그만큼 이틀치 빨랫거리 는다. 무엇보다 날마다 빨래를 해야, 날마다 밥을 하고 날마다 비질과 걸레질 하는 결을 맞춘다. 꼭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는 틀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다잡거나 다스리는 즐거움 누리고 싶기에 빨래를 한다.


  퍽 바쁘거나 부산스럽다 할 만하지만, 차근차근 받아들일 수 있으면 모든 일을 다 즐겁게 해낼 수 있다. 즐겁게 해내는 일은 ‘잘’ 해낸다거나 ‘훌륭히’ 해내는 일하고는 좀 다르다. ‘잘못’ 해내거나 ‘어설피’ 해낼 수 있다. 그렇지만, 즐겁게 어떤 일을 할 적에는 웃음이 묻어나고 이야기가 태어난다.


  나는 내 삶에서 ‘빨래’를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겼다. 남한테 맡기지 말자고, 아픈 옆지기가 차근차근 몸과 마음이 나으면 옆지기 스스로 빨래를 잘 맡을 테니까 그때까지 씩씩하게 도맡자고, 또 아이들이 자라면 아이들이 저마다 저희 옷가지를 스스로 맡아서 빨래할 테니, 그날까지 기다리며 재미나게 도맡자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모로 빨래하는 즐거움을 누리려고 생각한다.


  먼저, 맑고 시원한 물로 빨래를 하고 싶다. 다음으로, 밝으며 따사로운 햇볕에 옷가지를 말리고 싶다. 이런 뒤, 보송보송 잘 마른 옷가지에 코를 부비면서 까르르 웃는 얼굴로 정갈하게 개서 옷장에 놓고 싶다.


  맑고 시원한 물로 빨래를 하면, 손과 몸과 얼굴 모두 맑으면서 시원한 기운이 감돈다. 밝으며 따사로운 햇볕을 누릴 마당에 빨래를 널면, 나 또한 밝으며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즐겁다. 보송보송 잘 마른 옷가지를 걷고 나서 갤 적에, 이 보드랍고 살가운 기운 살갗으로 살뜰히 스며드는구나 하고 느낀다.


  빨래하는 삶을 되새겨 밥하는 삶과 비질하는 삶을 북돋운다. 빨래하는 삶을 돌아보면서 글쓰고 책읽는 삶 살찌운다. 빨래하는 삶을 밝혀 사랑과 꿈이 우리 보금자리에 깃드는 길을 연다. 4346.10.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마을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빨래기계한테 맡기다

 


  올해는 여름과 가을에 비가 거의 안 내리는 전남 고흥이다. 이러다 보니, 빨래하기에는 더없이 좋으며 즐겁다. 아이들 옷가지 빨래가 날마다 쏟아지는 살림으로서는, 이런 날씨도 어느 모로는 고맙기까지 하다. 가문 날씨로 논물이 바짝바짝 타는데, 이불도 옷가지도 보송보송하게 마른다. 그런데 며칠 비가 오고 날이 궂던 날, 작은아이가 그만 자다가 이불과 평상에 쉬를 잔뜩 누었다. 이불을 빨아야 하고 평상을 말려야 하는데 여러 날 이도 저도 하지 못한다. 잠자리에 작은아이 쉬 냄새가 그득한 채 여러 날 지낸 끝에 오늘 드디어 이불을 빨래한다. 날이 궂고 비가 이어졌기에 손빨래도 많이 하지 않았다. 날마다 열 점에서 열두 점 즈음 손빨래를 하며 집안에서 천천히 말렸다. 이러면서 쌓인 옷가지가 퍽 많아, 오늘 모처럼 아침에 빨래기계를 한 번 돌린다. 언제나 손빨래를 하는 사람한테는 빨래기계에 전기를 먹여 돌리는 일이 큰 일거리, 또는 놀잇거리가 된다.


  빨래기계 돌아가는 동안 아침을 차린다. 한참 아침거리 마련하는 사이 빨래가 다 된다. 불을 작게 줄이고는 옷가지와 이불을 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아이들이 빨랫줄을 가지고 논다. 그래, 그 빨랫줄은 너희 가지렴. 아버지는 다른 데에 널지.


  여러 날만에 찾아드는 가을볕 고맙게 바라본다. 오늘 하루 이 이불과 빨래 잘 말려 주렴. 비오느라 가을걷이 미처 못 하는 논에도 나락에 맺힌 물기 바짝바짝 말려 주렴. 4346.10.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빨래순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