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책으로 옮기는 손길

[작은 출판사를 사랑해] 자연과생태 출판사



  해마다 백 권이 넘는 책을 펴내는 큰 출판사가 있습니다. 한 해에 서른 권이나 쉰 권을 너끈히 펴내는 제법 큰 출판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열 권 즈음 알뜰히 내는 작은 출판사가 있어요. 한 해에 한두 권이 될 수도 있고 서너 권이 될 수 있는 책을 조용조용 내는 조그마한 출판사가 있지요.


  책을 많이 내기에 책마을을 더 북돋운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모든 책은 저마다 쓸모가 있고 보람과 값이 있어요. 더 많은 사람이 곧바로 사랑해 주는 책이 있을 테고, 두고두고 사람들이 꾸준히 알아보면서 기쁘게 사랑해 주는 책이 있습니다.


  책마을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요, 이 가운데 도서정가제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그런데 도서정가제를 놓고서 목소리를 내는 곳은 으레 큰 출판사입니다. 작은 출판사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못한다고 할 만합니다.


  적잖은 출판사는 모든 언론사에 새책 소개글을 보내지만, 한두 군데 언론사에만 새책 소개글을 보내는 출판사가 있고, 어느 언론사에도 새책 소개글을 안 보내는 출판사가 있어요. 언론사로서는 그곳에 새책 소개글, 이른바 보도자료를 보내는 책을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보도자료조차 보내지 않으면 작은 출판사에서 어떤 책을 냈는지 모르겠지요.


  이는 독자도 매한가지일 수 있어요. 언론에 소개가 거의 안 되거나 아예 안 되는 책을 독자 스스로 알아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밝은 독자요 이웃으로 살림을 지을 수 있다면, 제법 많은 출판사가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안 보내거나 한두 군데 매체에만 살짝 보도자료를 보낼 뿐, 차분하면서 조용하게 책을 펴내어 나누는 일에 온힘을 기울이는 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독자 스스로 새로운 책을 마주하고 살피면서 마음으로 새겨 읽을 수 있어요.


  자연과생태라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80호에 이르는 ‘자연·생태 주제 전문 잡지’를 펴내기도 한 곳입니다. 잡지는 80호에서 걸음을 멈추어야 했으나, 낱권책(단행본)을 내는 길로 출판사 얼개를 바꾸면서 차근차근 새롭게 기운을 내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내는 낱권책은 흔한 낱권책이 아닙니다. 자연하고 생태를 주제로 삼는 이야기책이 있고, 자연 도감이나 생태 도감을 하나하나 선보입니다. 참으로 품이 많이 들고, 땀을 많이 쏟아야 하며, 오래도록 살피고 손질해야 할 뿐 아니라, 돈까지 많이 들여서 선보이는 도감이에요.


  생태 자료나 정보를 오늘날에는 인터넷에서 퍽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오늘날에는 인터넷 자료에서 그치지 않고 종이책으로 묶어 도감 한 권을 내는 몸짓이 투박하다고 할 만해요. 그리고 이 투박함이 자연과생태라는 출판사가 걸어가는 멋이면서, 자연과생태라는 출판사가 책을 짓는 멋이기도 해요.


  투박하지만 꼼꼼한 손길로 도감 한 권을 짓습니다. <한국 개미>, <화살표 버섯 도감>, <화살표 물속생물 도감>, <한반도 외래식물>, <한국 매미 생태 도감> 같은 책을 2017년에 냈습니다. <거미 이름 해설>, <화살표 새 도감>, <동굴 무척추동물>, <바닷물고기 남해편>, <잠자리 표본 도감>, <한국 식물 생태 보감 2>, <나방 애벌레 도감 2>, <국립공원 이해와 관리>, <화살표 식물도감>, <화살표 곤충도감>, <한국 양서류 생태 도감>, <사라진 뒤영벌을 찾아서> 같은 책을 2016년에 냈어요. <바다맛 기행 2>,, <다람쥐 해돌이, 잘 먹고 잘 놀기>, <거미 현미경 도감>, <자연 생태 개념수첩>, <민물고기 필드 가이드>, <해양보전생태학>,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 <한국의 하늘소>, <이산화탄소>, <식물혹 보고서>, <행동생태학> 같은 책을 2015년에 냈지요. 이 책들은 이 땅에서 숲을 헤아리는 손길을 따사로운 마음으로 보듬어서 책 한 권으로 묶은 열매라고 할 만합니다. 숲을 책 한 권으로 옮긴다고 할까요. 숲이 책 한 권에 고요히 흐르는 이야기를 짓는다고 할까요. 사람을 둘러싼 숲이 어떠한 숨결인가 하는 대목을 책 한 권으로 밝힌다고 할까요.


  사람은 밥을 먹습니다. 사람은 바람을 숨으로 쉽니다. 사람은 물을 마십니다. 사람은 꿈을 꿉니다. 사람은 사랑을 합니다. 사람은 말로 생각을 펼쳐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러한 사람살이를 책 한 권으로 엮자고 하는 뜻이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흐르지 싶습니다.

  뚜벅뚜벅 걷는 씩씩한 걸음걸이마다 새롭게 이야기꽃이 피어서 책 한 권이 태어납니다. 아름답게 빚는 책으로 즐겁게 나누는 삶입니다. 곱게 묶는 책으로 이 땅과 이 숲과 이 바다와 이 흙과 이 하늘과 이 지구를 새롭게 껴안는 살림입니다. ㅅㄴㄹ



ㄱ. 이 사랑스러운 출판사를 가꾸는 기쁨은?

“작고 색깔 있는 출판사를 가꾸는 기쁨이란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제 생각, 과거, 꿈 등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며 제가 하려는 일에 관해 동조나 공감을 끌어내려 했지만 이제는 차곡차곡 만들어 내놓는 책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나설 일도, 자랑할 일도, 영업을 뛸 일도 없습니다. 주제 선정, 저자 선정, 책 모양새를 다듬는 과정, 그리고 묵묵히 책을 펴내는 과정에 제 마음가짐이나 생각이 반영되니 저는 책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ㄴ. 자연과생태 출판사가 힘을 쏟아서 내는 책은, 그 뜻은?

“생물 도감입니다. 자연과학 교양서나 자연친화적인 생활문화를 다룬 책을 만들기도 하지만, 도감이야말로 “생물을 우리 삶을 이롭게 하는 환경으로서가 아니라 지구의 참 주인이자 동료로 인식하자.”는 자연과학 출판사를 만든 핵심 목적에 1차적으로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 그중에서도 생물 분야는 정보 생산자나 소비자가 매우 적습니다. 그래서 책을 만드는 곳도 적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쓰는이와 읽는이, 그 사이의 연결고리인 만드는이 측면에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쓰는이 측면에서 먼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생물 연구의 기초를 이루는 두 축은 분류학과 생태학이며, 이 두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주로 쓰는이가 됩니다. 생물 연구는 종을 정확히 인식하는 분류학의 기초를 잘 다진 뒤 종의 삶꼴을 이해하는 생태학으로 넘어가고 그 연구 결과를 우리 삶에 응용하는 순서로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학자들이 식민지 자원을 파악하고 활용할 목적으로 접근했던 분류학 방식을 이어받아 살을 덧붙이는 과정을 거쳤고, 생태학도 발돋움하려다 정체되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기초를 채 다지지 못한 상태인데도 세계적인 흐름에 발맞추려 분자생물학이나 유전자공학 같은 첨단 과학으로 건너뛰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학문을 이어가는 연구자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꼭 필요하지만 인기는 적은 이 분야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그들을 응원합니다.


읽는이 측면도 생각해 봅니다. ‘자연과생태’ 독자층은 매우 얇습니다. 자연과 생물(특히 곤충이나 식물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생물)을 좋아하는 어린이, 마니아, 연구자, 생태 교육자가 주축을 이룹니다. 독자 수가 적기 때문에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도 적고 따라서 책의 질도 좋기 어렵습니다. 이 분야의 독자들은 고급 정보를 원하지만 요구하기는 힘든 소수자의 피해를 받아들입니다. 반면 여러 번역서나 매스컴을 통해서 북극곰, 남극의 펭귄, 아프리카의 사자 같은 동물이나 기후변화, 대기오염 같은 지구적 환경 문제 등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까운 것에 대한 정보는 적고 현실과 먼 것에 관한 정보는 많은 부조화입니다. 이런 문제를 겪어 왔던 분들이 ‘자연과생태’의 책을 반가워하고 응원해 줍니다.


만드는이인 저희는 당연히 저자와 독자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저자층과 독자층이 얇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 분야의 출판사도 매우 적고(자연과학 전문 출판사는 저희뿐인 것 같습니다), 발행 종 수에 비해 매출도 낮은 편입니다. 하지만 구색으로 필요한 깍두기처럼 저희 출판사 하나쯤 생존할 정도의 시장은 되는 듯합니다. 저희는 수요와 공급 사이에서 이익을 내는 사업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같은 분야에 관심 갖는 저자, 독자, 출판사가 서로 도우며 공생하는 관계로 여깁니다. 서로 격려하며 분야의 위축을 막고 나아가 더욱 발전시키는 노력을 함께하는 관계라 생각합니다. 저자들은 항상 “독자도 적은 책을 내줘서 고맙다.” 말하고, 독자들은 항상 “이런 책을 내줘서 고맙다.” 말합니다. 저희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아서 고맙다. 비싸고 투박한 책을 당연한 듯 사 줘서 고맙다.”고 늘 말합니다. 이처럼 세 축이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며 동력이 되는 관계 같습니다.”


ㄷ. 책을 짓는 보람이라면?

“저희 출판사 성격 때문에 보편적인 책 짓기 보람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보람은 저자의 연구 결과를 완성도 있게 다듬어 신뢰도 높은 결과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글이나 구성의 완성도가 높은 저자가 없었습니다. 특정한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사람이 글까지 잘 쓴다면 대단한 능력자이겠지요. 연구자들은 연구를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틀을 짜고 교정·교열에 애를 먹는 부분 때문에 조금 아쉽지만 그래서 저희가 할 역할이 있는 것이겠거니 생각합니다. 그런 초고를 정갈하게 다듬어 책으로 내놓으면 저자와 출판사의 협업 결과인 듯해 보람을 느낍니다.


또 한 가지는 숨은 저자를 찾아낼 때입니다. 박사나 교수 같은 객관적인 타이틀은 없지만 무수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실력을 다진 분들이 많습니다. 자연과학 분야 특성상 현장 경험은 최고의 이력입니다.


마지막으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손대지 못한 분야의 책을 낼 때입니다. 무슨 경쟁이나 순위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책을 통해 얻게 된 자부심이나 뿌듯함이 저자, 독자, 출판사에게 큰 힘이 되어서입니다.”


ㄹ. 책 하나는 우리(사람)한테 무엇일까요? 또 숲한테는?

“‘책은 마음의 양식’ 같은 보편적인 책의 가치를 묻는 것이라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보서 위주인 저희 책 기준으로 말하자면 첫째, 정보의 사유화, 권력화에서 공유의 길로 나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정보를 독점한 사람이 권위를 가졌다면 요즘은 정보를 나눌 때 더 발전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아울러 정보 독식이 어려울 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둘째, 인식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일일이 체득해 쌓을 수 없는 경험, 존재, 다양성 등을 저희 책을 통해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숲한테는 무슨 의미일까’라는 질문에도 앞서와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저희 책 기준으로 말하자면 ‘친구 소개서’ 같습니다. 자연의 구성원을 동료로 인식하길 바라는 저희의 목적처럼 숲에 깃들어 사는 구성원을 알아 가길 바랍니다. 자연이 이용의 대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동료라는 미덕을 갖길 바랍니다.”


ㅁ. 자연과생태 출판사가 걸어가는 10년째, 20년째, 30년째 모습을 그려 보신다면?

“큰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많은 것이 급변하는 요즘 수십 년 뒤의 변화를 예측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만 개인의 의지로 유지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자연과생태’와 저는 자연과학 분야의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갈 것입니다.


‘자연과생태’의 향후 계획은 명확하며 출판 분야, 독자 서비스 분야, 독자층 확대로 나눠 발전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동떨어지지 않고 상호 보완작용이나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유기적 구조로 설계했습니다.


출판에서는 첫째 생물 도감 시리즈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아마도 제가 실무를 하는 한 이 분야의 담당 편집자로 지낼 것입니다. 나이가 들며 업무 소화량이 줄겠지만 그러면 그런 대로 마냥 이어갈 생각입니다. 아울러 어린이 청소년 분야와 자연친화적인 생활문화(에코 리빙)로 분야를 확대할 예정입니다. 같은 주제로 눈높이만 달라지는 것이며, 팀을 이뤄 담당자들에게 업무를 맡길 예정입니다. 외국의 훌륭한 자연과학 교양서를 번역하는 외서팀도 계획에 넣었다 뺐다 하지만 아마도 지금처럼 국내 자연과 생물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독자 서비스에 관해서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늘 우호적인 독자들께 마땅히 마음을 써 줄 것이 없어서입니다. 도서정가제 이전에는 공동구매 할인으로 어느 정도 보답한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책값을 최대한 낮게 책정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료 강좌 서비스를 제공하고 저자와 독자, 출판사 간 교류를 이어갈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구상에서 공간의 필요성이 발생했고 그래서 자연과학 중고서점을 열 생각도 했습니다. 중고서점에서는 저희의 반품 도서나 수집한 중고 도서를 팔고, 필요한 자료는 복사해 갈 수 있게도 하며, 정기적으로 강좌도 열 계획입니다.


독자층 확대는 ‘자연과생태’의 운명과 직결됩니다. 저희 독자의 성향은 대체로 아날로그적이며 연령도 높은 편입니다. 어리거나 젊은 독자의 유입이 매우 적은 편이어서 자칫 독자와 출판사가 함께 늙어가다가 자연스레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낍니다. 따라서 기존 독자가 이탈하지 않게 하면서도 신규 독자를 끌어들이는 방안이 필요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분야와 생활문화 분야를 추가하는 것, 무료 강좌를 개설하는 것, 서점을 만드는 것도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는 방안이지만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 소식지를 만들려 합니다. 저희는 이것을 ‘자연과생태’ 사외보라 부릅니다.


사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사외보 시장도 무너졌습니다.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이럴 때가 해 볼 만한 때라고도 생각합니다. 사외보는 저희 책이 정보서라서 담지 못하는 저자들의 삶과 편집자의 후기 위주로 구성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나비도감을 내는 저자는 도감의 목적에 맞춰 정확한 정보만 담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나비를 쫓는 그에게는 숱한 에피소드가 있겠지요. 잡지를 만들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책에 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이 사외보가 독자 서비스를 넘어 독자층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보는 것은 누구나 신청만 하면 무료로 배포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적겠지만 10만이 되든 20만이 되든 배포할 예정입니다. 주소와 전화번호, 이메일 등 독자 DB를 확보하면 그 이상의 활용도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며, 저희 신간 소개와 도서목록을 싣는 광고비로 환산할 때 많이 배포할수록 이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의 계획들을 3~10년 사이에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그 후로는 그 모양새를 유지해 나가길 기대합니다.”


ㅂ. 언론사 서평이나 서평단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전혀 관심 없습니다. 다만 책을 읽고 그 소감을 작성하거나 문제를 지적한 독자의 서평은 고맙습니다. 앞의 질문 항목에서 사외보를 발행하겠다는 구상을 한 데는 신간 출판 때 드는 프로모션 비용을 사외보로 전환하겠다는 데서 가능했습니다. 보통 신간이 나오면 보도자료 배포를 포함해 홍보비를 400~500만 원 씁니다. 저희는 이것을 사외보 제작으로 전환해 계간 정도의 작은 소식지를 만들고자 합니다.


보도자료를 베껴 쓰거나 대충 살펴보고 일처럼 서평을 쓰는 분들, 그런 것을 마케팅에 이용하는 출판사가 적어지길 바랍니다.”


ㅅ. 책을 펴내는 책지기로서 한국 책마을을 어떻게 보는가요? 한국 책마을에 한 말씀을 들려주신다면?

“사양 산업의 끝자락에서 살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좋은 방향으로 안착할 것이라고 믿습니다(최소한의 시장에 최소한의 출판사가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할 것 같다는 의견은 아닙니다).


인문 교양 출판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출판사들이 책을 만들고 판매한다는 생각보다는 콘텐츠를 다루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길 바랍니다. 근원적인 소스를 개발하고 관리하며, 대상에 따라 재가공해 상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 된다면 장치(device)가 바뀌는 것은 오히려 기회의 확장일 수도 있습니다. 가치 있는 콘텐츠를 종이로도, 리더기로도, 웹으로도 선보일 수 있으니 잘 됐다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복제 배포권을 위임받아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로 돈을 버는 전통적인 출판은 수명을 다해 간다고 생각합니다. 뚜렷한 색깔을 지니고, 가치 있는 내용을 생산하고자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출판 유통 부분에서도 이슈가 많은 듯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소비자의 요구나 시대적 흐름에 따라 개선되거나 퇴출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근원적인 고민거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ㅇ. 출판사 이름을 지은 이야기를 들려주셔요.

“2005년 잡지사로 시작할 때, 앞선 사업의 실패로 신용불량 상태였기 때문에 직접 회사를 차릴 수 없었습니다. 저의 첫 책을 발행했던 황소걸음 출판사에서 받아들여 주셔서 창간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여러 후보 중 황소걸음 대표께서 제안하신 ‘자연과생태’로 확정했습니다. 다소 투박하지만 설명이 필요 없는 직설적인 이름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잡지 창간 1년 뒤 회사를 독립하며 회사 이름도 ‘자연과생태’로 등록했고 이후 출판등록을 할 때도 ‘자연과생태’로 했습니다. 그래서 잡지사, 출판사, 잡지의 이름이 모두 ‘자연과생태’가 되었습니다.


2005년에는 인터넷에서 ‘생태’를 검색하면 ‘생태탕’ 밖에 나오질 않았습니다. 생태라는 말이 보편화된 요즘 감회가 새롭습니다.”


ㅈ. 자연과생태 출판사는 한국 책마을에서 어떤 길을 걸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려는 마음인지 들려주셔요.

“앞서 충분히 말씀드렸다 생각합니다.”


ㅊ.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그동안 내신 책 가운데 꼭 다섯 가지를 골라서 100자평을 해 주셔요.


1. 한반도의 나비 (신유항·백문기, 2010)

‘자연과생태’의 첫 책. 분단 이전부터 연구해 온 노학자와 젊은 연구자의 협업. 과거의 눈으로 고증하고 현대에 맞게 재분류. 단절되고 왜곡됐던 한반도 나비 연구사를 복원한 역작.


2. 한국 잠자리 유충 (정광수, 2011)

전 세계 잠자리 연구자들을 놀라게 한 역작.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잠자리를 유충으로 분류하는 명확한 체계 정립. 세계 최초 잠자리 후진 비행 원리 기재. 한국산 신종(1종) 발표.


3. 나방 애벌레 도감 (허운홍, 1권 2012 / 2권 2016)

15년째 아이 돌보듯 나방 애벌레를 길러 어떤 어른벌레가 되는지 확인. 식물학에서는 애벌레를, 곤충학에서는 어른벌레를 따로 연구하며 생긴 동종이명 규명. 나방의 먹이식물 규명.


4. 한국 식물 생태 보감 (김종원, 1권 2013 / 2권 2016)

식물 간 유기적 관계를 파악하며 그 사회를 이해하려는 노력. 숲과 들, 습지 등을 구성하는 식물 종 간의 상호작용을 살피는 방향 제시. 우리말 식물 이름의 뿌리를 찾는 작업.


5. 한국 개미 (동민수, 2017)

최연소 저자(21살). 국내 첫 개미 도감. 실력과 열정은 나이와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 곤충을 좋아하는 청소년에게는 용기를 주고 나태한 어른은 반성하게끔 하는 책.


ㅋ. 어떤 작가를 사랑하나요? 작가를 꿈꾸는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들려주고 싶은 도움말은?

“겸손한 저자, 현장조사와 이론을 겸비한 저자를 원합니다. 책은 자랑이나 한풀이가 아니라 공유를 실천하는 것이란 걸 알면 좋겠습니다.


간혹 인생의 말미에 한 분야를 총 정리한 완결판을 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인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변화무쌍한 자연을 속속들이 파악하겠다는 것은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소비하는 사람에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경우도 있고, 5년, 10년, 30년 등 경험의 차이가 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자 중에도 1년, 5년, 10년, 30년 경험한 저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자들에게 ‘지금 내는 책은 이제까지의 과정과 알아낸 것을 정리하는 것’이라고 늘 말합니다. 한 분야의 완결판이 아니라 중간 정리라는 뜻입니다. 조금 앞서 간 선배가 후배들이 헛고생하지 않도록 친절을 베푼다는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저자의 태도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제가 정보가 빈약한 한 분야에서 5년간 좌충우돌하며 얻은 결과물을 정리해 드립니다. 저보다 늦게 시작한 독자께서는 저처럼 고생하시지 말고 이 책을 통해 효과적으로 접근하시고 5년을 단축하시길 바랍니다.’”


ㅌ.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책 한 권을 내기까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 이야기해 주셔요. (기획, 편집 기간이나 원고 검토, 디자인, 인쇄, 배본에 이르기까지)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기획해서 저자를 찾아 의뢰하는 경우와 저자가 출판사로 출간을 의뢰한 경우가 있는데, 저희는 앞의 경우가 많습니다(약 80%). 우선 수소문하거나 블로그, SNS를 통해 저자를 관찰합니다. 정보가 드문 경우에는 같은 분야의 평판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주 착실하게, 바른 방식으로 접근하는지, 현장조사를 지속하는지가 중요한데 그런 태도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후에는 원고를 의뢰하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기다리는 시간이 길 때가 많습니다. 간혹 5년이 넘기도 하고, 학생일 때는 학위를 취득하거나 유학을 끝내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리 두고 간간이 근황을 체크하다 보면 때가 되어 하나씩 원고가 들어옵니다.


편집 단계 진행은 다른 출판사와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실은 다른 출판사의 편집 과정을 잘 모릅니다). 우선 원고가 들어오면 본문에 소개되는 전체 종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그리고 목, 과, 속 등 종의 분류체계가 적합한지, 국명과 학명의 적용은 합리적인지, 오탈자는 없는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인지 등을 검토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분류체계와 다르다든지, 학명 적용에 이견이 있는 경우가 보이면 분류체계를 재정리한 이유, 여러 이름(異名) 중 왜 그 이름을 채택했는지 등을 저자에게 묻고 상의합니다. 타당하다면 그리 한 이유를 일러두기나 본문 해당 위치에서 설명해 줍니다.


그 다음으로는(내용이나 저자에 따라서는 마지막으로) 참고 또는 인용 문헌 목록을 살핍니다. 저자가 인용한 것이 많은지, 스스로 생산한 정보가 많은지, 그 비율은 어떤지 등을 살핍니다. 그 정도에 따라 책의 모양새가 많이 달라지고 추가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도 많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분류체계도 조금 바뀌고 학명 채택 이유에 저자의 분석과 판단이 강하며 저자가 발굴한 정보량이 많다면, 그것을 비난하거나 의심할 수도 있는 독자를 고려해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이 끝나면 원고 교정·교열과 편집 포맷팅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은 여느 출판사와 같을 듯합니다. 추가적인 것은 책의 특성상 사진이 너무 많다 보니 사진 정리와 보정에 시간이 많이 듭니다. 2천 장 미만이면 적은 경우로 보며 5천 장 이상인 경우도 많습니다. 아쉽게도 해당 종의 특징이나 색감을 잘 알아야 보정이 가능해서 그 생물을 아는 편집자가 보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디자이너에게 보정을 맡기면 종 본래의 색을 몰라 과감히 보정하지 못할 뿐더러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립니다.


편집이 끝나갈 무렵 표지 시안을 준비할 때 저자에게 저자소개 내용을 받습니다. 그때서야 저자의 객관적인 현황을 알게 됩니다. 간혹 대단한 이력을 보내 오는 이도 있고, 초라해 민망하다며 보내 오는 이도 있습니다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용으로만 판단하려는 저희 방침이기도 합니다.


그 외의 과정은 평범합니다. 손을 댔을 때부터 헤아리면 전체 편집 기간은 2~4달, 교정은 파일 3교, 대지 3교, 회람 3회를 기본으로 하며, 늘 5~10권이 동시에 진행되는 편입니다. 대체로 초반 3교는 팩트 체크 과정입니다. 언제 원고가 올지 모르지만 집필을 의뢰해 놓은 것은 100여 건입니다.”


ㅍ. 자연과생태 출판사를 사랑하는 분과 아직 자연과생태 출판사 책을 모르는 분한테 한 마디 소개나 인사를 들려주셔요.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아직 저희를 모르는 분이 많은 건 희망입니다. 천천히 알아봐 주시길 바랍니다. 끝까지 인연이 닿지 않는 분들도 많겠죠. 할 수 없죠.”


ㅎ. 다른 출판사 책 가운데 참으로 아름답거나 훌륭하다고 느끼신 세 가지를 추천해 주셔요.

1. 에코리브르_ <까마귀의 마음>(베른트 하인리히, 2005)

2. 사계절_ <곤충의 행성>(하워드 E. 에번스, 2015)

3. 돌베개_ <야생동물 흔적도감>(최태영·최현명, 2007)


+ 1. 한국은 어떤 나라로 나아갈 때에 아름다울까요?

“합리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나라.”


+ 2. 잡지를 내던 즐거움, 아쉬움은?

“잡지만 내던 시기, 잡지와 단행본을 함께 내던 시기가 있었고, 지금은 단행본만 냅니다. 개인적으로는 동적인 시기와 정적인 시기로 인식합니다. 잡지는 무척 활달한 반면에 단행본은 무척 차분합니다. 호흡이 다르더군요.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큰 차이를 느낍니다. 광고를 싣지 않는 잡지였으므로 매달 단행본을 한 권씩 낸다는 느낌이었는데, 돌아보니 같은 돈을 들여 한 달 팔 책을 만드는가, 여러 해 팔 책을 만드는가의 차이네요. 물론 지금이 한결 수월합니다.


방식이 다를 뿐 주제는 같아서 다른 일을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단지 그 당시의 저는 활달해서 잡지가 어울렸고, 지금의 저는 조금 나이가 들고 차분해져서 단행본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해 보고 싶은 대로 다 해 봤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습니다.”


(숲노래/최종규 . 작은출판사 작은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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