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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며 사전을 짓듯 읽고 쓰다
[삶을 읽는 눈] 백 번 읽을 책인가


  해마다 여름 한복판에 날씨가 폭 꺾이는 때가 있습니다. 틀림없는 여름 무더위입니다만, 어느 날 문득 새벽부터 선선하더니 낮에 땡볕이 내리쬐어도 땀이 흐르지 않다가 밤을 맞이하면 으슬으슬해서 이불을 꺼내어 덮어야 해요. 어제 바로 이런 날씨가 찾아왔습니다. 절기로 치면 중복하고 입추 사이입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시골하고 서울은 달라서, 시골에서는 밤이나 새벽에 살짝 춥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낮 내내 달구어진 기운이 식을 틈이 없어요. 시골에서는 흙하고 풀하고 나무가 있을 적에는 낮 내내 햇볕이 아무리 내리쬐어도 해가 넘어가면 ‘달구어진 기운’이 더는 없습니다. 돌이나 시멘트나 아스팔트는 밤이 되어도 뜨끈뜨끈할 테지만, 풀이나 흙이나 나무는 밤이 되면 식어요.

  나무 밑에 서면 에어컨을 쐴 적보다 훨씬 시원하다고 합니다. 이런 말은 어릴 적부터 곧잘 들었으나 막상 시골에서 살며 우리 집 나무를 곁에서 늘 누리기 앞서까지 살갗으로 느끼지는 못했어요. 서울 같은 곳에서 어쩌다가 한두 번 아름드리나무를 마주하며 참 시원하네 하고 느낄 적하고, 시골 보금자리에서 늘 아름드리나무를 바라보며 참말로 시원하구마잉 하고 느낄 적은 사뭇 달라요.

  시골에서 살며 낫으로 처음 풀을 벨 적에는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한 해 두 해 흐르고 세 해 네 해 가며 다섯 해 여섯 해를 지나는 동안 낫질은 하나도 안 대수롭다고 여깁니다. 서둘러서 할 일이 아닐 뿐더러, 결을 살펴서 슥슥 그으면 되는 일이라고 손으로 몸으로 눈으로 다리로 깨달아요.

  가게에서 사다 먹는 열매하고 손수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바로 따먹는 열매는 같은 맛이 아닙니다. 아이들도 바로 따먹는 열매맛을 누리고, 저도 바로 따먹는 열매맛을 누리면서 ‘맛이란 무엇인가’를 새삼스레 배웁니다.

  이른바 누리면서 배우는 삶입니다. 느끼면서 배우는 살림입니다. 그리고 나누면서 배우는 사랑이기도 해요.

  봄가을하고 겨울에는 마을 어귀 빨래터를 보름마다 치웁니다. 여름에는 이 빨래터를 열흘마다 치웁니다. 여름에는 물이끼가 더 빨리 넓게 자라요. 이제 마을 할매는 빨래터를 치우기 어려운 나이라 할 만하기에 저희가 여러 해째 빨래터 치우기를 도맡습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집집마다 물꼭지가 있고 빨래기계가 있으니 굳이 빨래터로 빨랫감을 이고 지고 나오는 일이 없어요. 지난날에는 빨래터가 늘 북적였겠지요. 물도 이곳에서 길었을 테고요.

  빨래터를 보면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물이 졸졸 흘러요. 겨울이라고 어는 법이 없습니다. 더욱이 여름에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좔좔 흐르고요. 못마다 물이 바닥까지 바짝 말라도 마을 빨래터에 흐르는 물줄기는 늘 같습니다. 참으로 한결같아요. 여름에는 더욱 시원하고 겨울에는 무척 따스한 물이에요.

  우리 식구가 시골에 보금자리를 틀지 않았다면, 마을에서 살며 이러한 살림살이를 곁에 두지 않았다면, 마을 분들이 모두 나이가 많아 빨래터를 못 치울 나이가 되지 않았다면, 빨래터 물줄기가 어떤 뜻인지 못 읽었으리라 생각해요.

  서울에서 살며 책을 읽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내 집을 장만하자면 벅차고, 다들 일터를 오가느라 바쁠 뿐 아니라, 먹을거리를 장만하랴, 이것을 하랴 저것을 하랴 참으로 부산하지요. 짧은 길을 자동차로 달려도 어디나 늘 자동차로 가득하니 머리가 곤두서요. 버스나 지하철은 사람들로 넘실대기에 마음을 가다듬어 책을 읽기에 안 만만하다고 할 만해요.

  시골에서 살며 책을 읽기란 수월할까요? 보기에 따라 다를 텐데, 쑥처럼 쑥쑥 올라오는 풀을 베기도 하고, 살림을 꾸리기도 하고, 아이들하고 어우러지기도 하고, 여기에 저기에 마음을 쓰고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등허리가 결리면서 마룻바닥에 벌렁 드러눕습니다. 땀을 몇 바가지 쏟고 나면 손가락을 까딱할 힘마저 남지 않아요.

  이런 하루를 보내면서 책을 손에 쥘 적에는 눈부신 빠르기로 책을 잡아먹을듯이 읽습니다. 몸을 쉬면서 마음을 살찌울 이야기를 느끼거든요. 그렇지만 때로는 책을 매우 느리게 읽습니다. 읽은 대목을 다시 읽기도 합니다. 줄거리만 훑자고 책을 읽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밍밍하거나 싱거운 대목은 빠르게 읽어내지만, 뒷통수에 벼락이 치듯 찌릿찌릿한 이야기가 흐를 적에는 글씨를 하나하나 새기면서 읽고 되읽어요.


  네 식구가 함께 모여 영화를 볼 적에도 이와 같습니다. 시골에는 극장이 없으니 디브이디나 파일로 영화를 사서 봅니다. 우리 식구는 ‘볼 만한 영화’를 한 번만 보고 끝내는 일이 없습니다. 더욱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처 보는 일이 없어요. 어느 대목을 다시 보려고 되감기 일쑤예요. 자막이 아무래도 틀린 듯해서 영어나 일본말을 새겨서 들으려고 자꾸 되감고요.

  볼 만한 영화라 한다면 적어도 다섯 번을 봐요. 다섯 번쯤 보는 동안 줄거리하고 배역에 얽힌 실타래를 헤아립니다. 열 번쯤 보면서 바탕자리를 둘러싼 속뜻을 헤아리고, 스무 번이나 서른 번쯤 보면서 영화 하나로 깊고 넓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어떤 분이 묻더군요. “어떻게 같은 영화를 서른 번이나 백 번을 볼 수 있어요?” 저는 그분한테 되물어요. “어떻게 백 번이나 이백 번쯤 볼 만한 영화를 즐겁게 안 보고, 딱 한 번 보고 그칠 영화만 자꾸자꾸 보시나요?”


  영화평을 쓸 만한 영화라면 적어도 서른 번쯤 보아야 한다고 느껴요. 영화평을 제대로 쓰려면 쉰 번쯤 보아야지 싶어요. 우리 이웃이 영화를 사랑하도록 북돋울 만한 영화평을 쓰려면 백 번 넘게 보아야지 싶고요.

  책을 다루는 글은 어떠할까요? 우리는 백 번쯤 되읽으면서도 늘 새롭게 배울 만한 이야기가 흐르는 책을 읽고서 느낌글(서평)을 쓸까요? 아니면 빨리빨리 책 한 권을 읽어치우고서 후다닥 느낌글을 쓸까요?

  백 번쯤 되읽어도 늘 새롭구나 하고 느끼는 책을 놓고서 쓰는 느낌글하고, 빨리 새로운 다른 책을 읽으려는 마음으로 어느 한 권 이야기를 딱 한 번만 읽고 나서 쓰는 느낌글은 달라도 아주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더 살펴본다면,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하구나 하고 여겨서 우리 집 책꽂이에 백 해쯤 건사할 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살펴서 읽을 적하고, 그냥 책을 읽을 적에도 느낌글을 쓰는 결이 달라요.

  저는 느낌글을 쓸 적에 어느 책이든 다섯 번쯤은 읽은 채 씁니다. 한두 번만 읽고서 느낌글을 쓸 수 있는 책은 없지 싶어요. 한두 번만 읽고서 더는 읽고픈 마음이 안 드는 책이라면, 이런 책으로는 굳이 느낌글을 쓸 뜻이 없다고 생각해요. 제 마음으로 스며들지 못하는 책을 괜스레 이웃님한테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몸하고 마음을 싸목싸목 깨워요. 낫질을 하고 물질을 하고 흙질을 하고 호미질을 하고 나무질을 하면서 받아들이는 숨결로 책을 여러모로 다르게 마주합니다. 글쓴이나 그린이나 찍은이(사진을 찍은 이)가 작품으로 빚은 책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글쓴이나 그린이나 찍은이가 어떤 삶을 바탕으로 어떤 살림을 다루되 어떤 사랑으로 풀어냈는가 하는 대목을 읽으려고 합니다.


  글 한 줄에 흐르는 바람소리를 함께 누리고 나서 이를 느낌글로 담아내려고 합니다. 그림 하나에 서리는 냇물소리를 나란히 누리고 나서 이를 느낌글로 옮기려고 합니다. 사진 하나에 감도는 노랫소리를 같이 누리고 나서 이를 느낌글로 삭이려고 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사전짓기입니다. 사전 가운데 한국말사전(국어사전)입니다. 이러다 보니 온갖 책을 골고루 읽어요. 책을 지식으로만 읽기보다는 제 삶으로 옮기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앞으로 새롭게 짓는 사전에 밑돌이 될 만한 이야기를 어떻게 다지면 좋을까 하고 헤아리면서 읽어요.

  제가 앞으로 쓰려는 사전은 지식만 다루는 책이 아닌 ‘사람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다루는 책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을 적에 지은이가 어떤 사람으로서 어떤 사랑을 그리고 어떤 기쁨으로 살아가느냐 하는 대목을 읽고서 이를 느낌글로 적어 보려고 합니다.

  이러면서 이러한 느낌글을 ‘시골에서 아이들하고 오순도순 살림을 짓는 어버이 마음이랑 눈길’로 풀어내려고 하지요.

  백 번 남짓 즐겁게 볼 만한 영화를 함께 이야기해 보면 좋겠어요. 참말 우리 모두 영화 한 편을 백 번 넘게 보고서 조잘조잘 영화수다를 나눠 봐요.

  백 번 남짓 신나게 읽을 만한 책을 함께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요. 참말 우리 모두 책 한 권을 백 번 넘게 읽고서 재잘재잘 책수다를 나눠 봐요. 2017.7.27.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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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17-07-3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마음을 ˝싸목싸목 깨워요˝란 말을 써본 적이 없으니 어떤 뜻일까 궁금해집니다.^^

숲노래 2017-07-31 08:13   좋아요 0 | URL
전라남도 말로 ‘차근차근‘이나 ‘천천히‘를 ‘싸목싸목‘이라고 해요 ^^ 고맙습니다
 

(글쓴이 말) “삶을 읽는 눈”이라는 이름으로, 제가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물려줄 제 이야기이면서, 제 둘레에서 살아가는 여러 이웃님이 저한테 궁금해 하는 대목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부디 우리 젊거나 푸르거나 어린 이웃님이 씩씩하고 튼튼하고 사랑스럽고 넉넉하고 따사로운 마음결로 삶을 읽고 보고 느끼는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글은 포항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젊은 이웃님이 편지로 물어본 이야기가 있어서, 그 물음에 대답을 공개편지로 띄웁니다.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나요
[삶을 읽는 눈] 뜻·꿈·사랑을 스스로 짓기


  저는 1988년에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기 앞서 둘레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국민학교에서도 한 살 위인 언니한테 말을 놓았다가는 곧장 주먹이 날아왔습니다만, 중학교에서는 한 살 위라면 꼬박꼬박 높임말을 써야 한다고 했어요. 교사보다 선배가 더 무섭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들어간 중학교는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구석진 곳에 있었어요. 선배라고 할 이들이 ‘선배 없이’ 학교를 다니는 데에 익숙하다 보니 3회째로 들어간 우리(후배)를 그리 닦달하지 않았습니다. 귀여워했지요. 이와 달리 또래는 무척 거칠었엉요. 툭하면 싸움이고 걸핏하면 거친 말이나 주먹이 춤추었습니다.

  사내만 모아 놓은 중학교는 날마다 몇 차례쯤 주먹다짐이 있지 않고서야 하루가 지나가지 않습니다. 어디에선가 누가 맞고 누가 때리고 책걸상이 날아다니고 밀걸레가 춤추었어요. 다들 바보스럽네 하는 생각이었는데, 그렇다고 이 중학교를 뛰쳐나갈 만큼 씩씩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끝무렵에 중학교만 마치고는, 아니 중학교를 그만둔 ‘국졸’ 가방끈으로 무슨 일을 하며 돈을 벌며 살아갈 만한지 알 길이 없었어요.

  날마다 싸움판이던 중학교를 가까스로 마친 뒤 고등학교에 가는데, 고등학교도 새로 생긴 곳입니다. 우리 형이 1회로 이 학교를 마쳤고 사촌 형이 2회 선배로 다닙니다. 저는 4회 새내기로 들어갑니다. 1회 2회 선배가 한집 사람으로 버젓이 있는 터라 중학교 적하고 대면 아주 조용합니다. 그렇지만 답답한 가슴은 엇비슷해요. 오직 대학입시만 바라보는 중·고등학교에서는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갈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배울 틈도 나지 않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쳇바퀴질입니다.

  1980년대가 저물며 1990년대로 접어들지만, 아직 군사독재자가 대통령 자리에 있던 무렵이에요. 사회는 아프면서 어수선하고, 학교도 아프면서 어지럽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어떻게 이 고등학교를 그만두며 혼자 조용히 살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늘 젖어들었습니다. 우리 어버이가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분이었으면 굳이 학교를 안 다니고 흙살림으로 살아갈 만하지 않았나 하고도 생각했어요. 그러나 도시에서 나고 자란 몸으로 어느 시골에 어떻게 가야 하는가를 하나도 알 길이 없고, 이를 여쭐 어른도 없습니다. 담임 교사하고 진로 이야기를 할 적에 꼭 한 번 ‘농부’가 되는 길을 꺼내 보았다가 “농대 가려고? 거긴 뭣 하러 가?” 하는 소리에 다시는 ‘농부’ 되는 길을 입밖으로 내지 않았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저로서는 1994년에 처음 발을 디딘 대학교를 첫날부터 ‘이런 곳은 더 다닐 까닭이 없이 돈도 시간도 아깝다. 얼른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할 씨앗이 마음속에서 자랐다고 할 만해요. ‘새내기 새로 배움터(이무렵에 이런 말이 생겨서 대학교마다 퍼졌습니다. 줄여서 ‘새터’라고들 했습니다)’를 한다며 처음 대학교에 갔더니, 이날부터 술을 얼마나 무섭게 먹이던지요. 대학교에 첫발을 디뎠으니 ‘가볍게 소주 한 병을 대접이나 주전자에 가득 부어 한칼에 비우라’고 하네요.

  한 번만 치르면 되겠거니 하고, 이런 짓을 받아들였더니, 이튿날에도 다음날에도 이런 술자리는 이어집니다. 학기를 연 뒤로도 날이면 날마다 선배들은 새내기 대학생을 술자리로 이끕니다.

  어디에서 어떤 돈으로? 이렇게 저녁 너덧 시부터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면서 어떤 공부를? 이러면서 책을 한 권이라도 읽나?

  1994년 한 해 동안 선배가 날마다 마련하는 자리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나가 보았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한 해를 치러 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12월 31일까지 날마다 끝없는 술자리를 징하게 치르고 나서 1995년부터는 모든 술자리를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술자리에 가도 물만 한 모금 마시고 술상(술집이니까요)에 책을 척 올려놓고서 읽었습니다. 1995년 이해에는 집을 나와서 신문사 지국에서 먹고자면서 신문배달로 살림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새벽에 신문을 돌리려니 술을 마실 수 없기도 했어요. 신문배달은 술자리에서 빠져나오는 좋은 핑계였어요.

  이렇게 하며 1995년 11월에 군대에 스스로 들어갔고, 1997년 12월 31일에 사회로 돌아왔으며, 1998년 한 해 동안 대학교에서 부전공으로 신문방송학 과정 네 해치를 몽땅 듣고서 아쉬움 없이 자퇴서를 냈습니다. ‘고졸’이 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길을 어떻게 걸을 수 있었을까요? 두려움이 없었을까요? 네, 두려움은 따로 없었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며 교실이며 운동장이며 어디에서고 주먹다짐이나 거친 말이 춤추더라도 ‘내가 내 마음과 말을 지키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흔한 ‘○8’이라는 말을 한 번도 안 썼어요. 고등학교 세 해를 다닐 적에도 그 흔한 ‘개○○’라는 말을 혀에 한 번도 안 얹었어요. 같은 물에 섞이려는 마음이 없으니 누가 무어라 하든 한귀로 흘릴 수 있었어요. 내 입에서는 “그래? 그러냐? 그렇구나.” 하는 말만 흘렀어요.

  비록 우리 어버이한테서 자급자족을 배우지 못했고, 흙살림을 물려받지 못했습니다만, 돈이나 땅뙈기 하나 없는 몸이었으나, 저한테는 꿈이 있었어요. 제 몸뚱이조차 그리 안 튼튼하고 오랜 병을 마흔 살까지 달고 살기도 했습니다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저 스스로 이루려고 하는 뜻이 있었어요. 바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입니다.

  어른이 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하고 늘 생각하고 찾아보았어요. 어른이 되어 아이한테 삶을 물려주거나 보여주거나 가르치려면 스스로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가 하고 언제나 돌아보고 살폈어요. 오늘은 어설프거나 엉성하더라도 이튿날에는 조금씩 나아지면서 새롭게 태어나자고 생각했어요.

  어느 분은 저한테 “그대가 살아온 길은 ‘세상 기준하고 하나도 안 맞아’”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그렇게 살았어도 다른 사람더러 그렇게 살라고는 못 해.” 하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대가 그렇게 사는 일은 그대 자유인데, 그게 돈이 되나?” 하고 물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있지요, 저는 고졸 가방끈이지만 1999년 여름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뽑혔습니다. 스물다섯 살 일입니다. 2001년 1월부터는 ‘국어사전 짓는 편집장’ 일을 맡았습니다. 2003년 9월부터는 ‘돌아가신 이오덕 님 유고와 원고 정리 책임자’ 일을 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강사 노릇도 했고, 한글학회에서 ‘공공언어 순화 작업’을 할 적에 이러한 일을 업무책임자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6년에는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같은 한국말사전 한 권을 혼자 써내기도 했어요.

  젊은 대학생 눈으로 보기에 아직 사회살이가 두렵거나 까마득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어야 집삯을 내고 살림돈을 댈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어요. 돈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리라 생각할 수 있어요.

  틀린 생각은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 삶은 언제나 우리 ‘뜻’하고 ‘꿈’이 가장 밑바탕이라는 대목을 헤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은 우리가 스스로 ‘사랑’할 적에 즐거울 길을 씩씩하게 찾아낼 수 있다고 알아채면 좋겠어요.

  우리 길은 남이 알려주지 않아요. 스스로 생각을 기울여서 수수께끼를 풀어야 우리 길을 찾아내요. 우리가 스스로 수저를 들어 밥을 떠먹어야 배가 부르듯, 우리가 스스로 생각을 지어 삶을 이끌어야 꿈이나 뜻을 시나브로 이루어요.

  저는 갓 스물이 넘을 무렵 ‘스무 살까지 학교를 다니며 배운 모든 것은 아무 쓸모가 없네’ 하고 느꼈어요. ‘스무 살까지는 학교에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을 쓸모없이 가르쳤구나 하고 몸으로 아로새긴 나날이었네’ 하고도 느꼈어요.

  저로서는 스무 살 적부터 0살이라고 생각했어요. 스무 살 나이를 모두 버리고, 그때부터 스스로 0살이니 처음부터 모조리 새로 하자고 다짐했어요. 남이 알려준 책이 아니라, 스스로 도서관하고 새책방하고 헌책방에 파묻혀서 책시렁에 가득 꽂힌 수많은 책을 통째로 읽어내자는 마음으로 날마다 새로 배우며 살았어요. 1994년에 0살인 셈이니 2017년은 스물세 살인 셈일까요? 이제 겨우 스물세 해째 삶을 배우는 셈이라고 할 만해요.

  사회가 일그러졌다고 느낀다면 이 일그러진 사회를 펴려고 애쓰면 된다고 생각해요. 또는 스스로 이 일그러진 사회에서 뛰쳐나와 새로운 사회를 짓는 길을 걸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 이웃님한테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이제껏 몸으로 먹은 나이를 모두 털어내자고요. 우리 모두 0살이라는 마음으로 새롭게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차근차근 다시 배우자고요. 이렇게 해 보면 되어요. 두려움이나 걱정을 마음에 심지 말아요. 즐거운 뜻과 기쁜 꿈을 고운 사랑으로 심어요. 둘레에서 부는 바람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을 읽어 봐요. 2017.5.2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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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타고 넘어와 쑥 캐는 마을 할매
[삶을 읽는 눈] 먹는 쑥, 흙으로 돌아갈 쑥


  봄을 맞이한 우리 집 밥상은 날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봄은 삼월하고 사월하고 오월이 사뭇 다르다 할 만큼 며칠 사이로 빠르게 달라지거든요. 하루하루 달라지는 결을 살펴서 나물을 훑습니다. 며칠마다 새로운 나물을 하고, 며칠마다 새로운 밥을 합니다. 저녁에 먹고 남은 밥이 있으면, 이 식은 밥으로 이튿날 아침에 볶음밥을 해서 따뜻하게 먹는데, 그냥 볶음밥이 아닌 ‘쑥볶음밥’을 합니다.

  쑥떡이나 쑥국이나 쑥밥이나 쑥지짐이는 익숙한 분이 많을 텐데, 쑥볶음밥은 낯선 분이 많을 수 있어요. 볶음밥을 하면서 쑥을 넣는다는 생각을 못할 분이 많을 테니까요.

  쑥볶음밥은 쉽습니다. 볶음밥을 할 적에 볶을 여러 가지를 밑손질을 먼저 해 놓습니다. 쑥도 미리 뜯어서 잘 헹군 뒤에 체에 놓고 물을 말립니다. 센불에 당근이며 감자이며 마늘이며 함께 볶다가, 양파하고 버섯을 넣어 더 볶고, 달걀을 풀어서 바지런히 섞은 뒤 불을 살살 줄여서 쑥을 잘게 썬 뒤에 넣어서 섞습니다.

  쑥볶음밥을 하면 아이들이 놀랍니다. “쑥을 그렇게 많이 넣어?” 하고요. 빙그레 웃으며 대꾸하지요. “많아 보여? 그렇지만 숨이 죽으면 아주 적지. 이만큼도 되게 적게 넣었단다.”

  삼월에는 봄까지꽃이나 곰밤부리나 갈퀴덩굴을 잘게 썰어서 볶음밥을 할 수 있습니다. 사월에 갓 돋은 감잎이라든지 뽕잎으로도 볶음밥을 할 수 있어요. 모시나 민들레나 소리쟁이로도 볶음밥을 할 수 있습니다. 어느 풀이든 맛난 볶음밥 ‘풀양념’이 되어요.

  쑥이 한창 돋을 무렵 마을 할매들이 자꾸 우리 집 뒤꼍이나 마당을 넘봅니다. 우리 집은 농약을 한 방울도 안 치는 터라, 풀이 자라도 웬만하면 그대로 두었다고 잘 클 즈음 낫으로 톡톡 끊어서 눕히는 터라, 봄이면 온통 쑥밭이 되어요. 우리 집 쑥을 몰래 가져가려는 마을 할매가 많습니다.

  마을 할매는 허리가 구부정한 채 걸으시면서도 밭을 가르는 돌담을 타고 넘어와서 쑥을 몰래 캐려 합니다. 마을 할매는 이녁 밭에서는 쑥을 못 캐지요. 쑥을 따로 키우지도 않을 뿐더러, 할매 밭은 온통 농약투성이일 터이니 쑥을 섣불리 캘 수도 없습니다.

  우리 집에 아무 말도 안 하고 담까지 타고 몰래 들어와서 쑥을 캐는 할매를 말립니다. “할매, 여기는 저희 밭이에요. 밭에 호밀씨를 잔뜩 뿌려서 호밀이 이렇게 올라왔는데 호밀을 마구 밟으면서 쑥을 함부로 뜯으시면 안 돼요.” “쑥 저렇게 놔두면 누가 먹나? 좀 가져가면 안 되나?” “안 되지요. 저희가 먹을 쑥을 할매들이 몰래 다 캐 가면 저희는 뭘 먹어요? 좀 먹을 만하게 크면 몰래 들어와서 샅샅이 캐 가니 저희는 못 먹어요. 게다가 할매가 선 그 자리에는 옥수수를 심었는데, 옥수수싹이 다 밟혀요. 생각해 보세요. 제가 할매 밭에 몰래 들어간 적 있나요? 제가 할매 밭에 몰래 들어가서 저 마늘이나 배추 몰래 뽑아 가도 되겠어요? 이렇게 몰래 마구 캐 가시면 안 돼요. 저희한테서 쑥을 얻고 싶으면 얘기하세요. 그러면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만큼 저희가 캐서 드릴 테니까요.”

  저희는 쑥을 캐서 먹기도 하지만, 쑥꽃이 필 때까지 그냥 두기도 합니다. 꽃이 피는 쑥은 꽤 크게 자랍니다. 쑥꽃이 피고 쑥씨가 맺는 쑥대는 잘 베어서 말려 놓으면 쑥불을 피울 적에 아주 좋습니다. 씨앗을 맺은 쑥대를 말리면, 쑥대가 마르면서 나는 냄새로도 무척 향긋하지요. 잘 마른 쑥대를 태워서 쑥불을 피우면 모깃불도 되고 집안에 고운 내음이 퍼집니다. 쑥불을 태우고 나온 재를 밭에 주면 흙이 좋아해요. 따로 쑥불을 피우지 않고 쑥대를 베어 눕혀 놓으면 다른 풀이 거의 안 돋기도 합니다.

  먹을 쑥은 철을 살펴서 알맞게 먹으면서 누립니다. 굳이 안 먹고 두는 쑥은 쑥불을 피우는 쑥대 구실을 합니다. 쑥불을 안 피우고 그대로 베어 놓기만 해도 땅을 살리는 거름 구실을 하지요.

  마을 할매는 저희처럼 쑥대나 다른 풀이 흙으로 저절로 돌아가서 거름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농약을 치고 비료를 칩니다. 저희는 이 땅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고 나무를 타며 놀기를 바라기에 쑥을 고이 건사하면서 알맞게 누립니다.

  낮밥으로 쑥지짐이를 합니다. 두 아이는 쑥지짐이를 석 장을 먹습니다. 두 장을 더 해서 접시에 옮깁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주전부리로 먹도록 둡니다. 여기에 석 장을 더 합니다. 쑥지짐이 석 장은 마을회관으로 들고 갑니다. 낮밥을 자시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며 쉬는 마을 할매들한테 주전부리로 쑥지짐이를 드립니다. “이 귀한 것을 주시오? 이녁 아이들 주셔야 하지 않소?” 하고 말씀하시는 마을 할매들한테 “봄이니까 봄맛으로 했어요. 저희도 배불리 먹었어요. 주전부리로 드셔요.” “그라오? 그러면 고맙게 먹겠소. 자 다들 한 점씩 잡솨 봐. 맛나네.” 2017.4.2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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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당살롱 2017-04-2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쑥을 아이들과 마을 어르신들과 누리며
건강도 봄도 챙기시네요
사진으로 눈도 즐겁고
글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

숲노래 2017-04-24 20:44   좋아요 0 | URL
할머니들이 담타기를 안 하시면서
서로 아끼며 즐거이 나누는 살림으로
차츰 달라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찔레무침 한 접시
[삶을 읽는 눈] 제철을 먹으려는 살림


  겨울이 저물고 봄이 찾아올 무렵 우리 식구는 우리 보금자리에서 돋는 풀이나 겨울눈을 찬찬히 살핍니다. 바야흐로 새봄에 어떤 기쁨을 누리면서 살림을 지을 만한가 하고 헤아립니다. 매화나무에 꽃이 피고 지면 머잖아 매화알이 익을 테니, 매화알을 재워 둘 큰 유리병을 챙기고 햇볕에 말립니다. 매화알은 꽃이 먼저 피고 지는 만큼 먼저 익으니 먼저 훑어서 건사합니다. 이다음으로 모과꽃이 피고 지기에 모과알을 건사해서 모과잼을 졸이려고 부산하지요.

  봄을 알리는 숱한 들꽃은 우리한테 나물도 되고, 봄내음을 베푸는 향긋한 숨결도 됩니다. 흰민들레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삼월 한복판에 찔레나무에 새잎이 돋습니다. 새잎이 돋으면서 새 줄기가 뻗으려고 싹이 오르지요. 찔레싹은 사월 한복판에 살짝 훑습니다. 한 번 훑고서 다시 한 번 훑을 수 있습니다.

  여느 봄나물은 꽃이 피어도 꽃이 달린 채 무쳐서 먹지만, 찔레싹은 조금이라도 때를 놓치면 곧 단단해지면서 줄기로 거듭나요. 보드라운 때에 얼른 훑어야 합니다. 더욱이 찔레싹은 사람만 좋아하지 않아요. 진딧물이나 풀벌레도 좋아합니다. 우리가 하루나 이틀쯤 찔레싹 훑기를 미루면 진딧물하고 풀벌레가 찔레싹에 잔뜩 달라붙어요. 찔레싹은 이런 진딧물하고 풀벌레한테 이기려고 더 바삐 단단하게 굳겠지요.

  찔레싹을 훑어서 나물로 무칩니다. 전라도 고흥에서는 ‘찔구’라고 하는 찔레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찔레나무 곁에 서서 찔레싹을 훑습니다. 아이한테 찔레싹을 어떻게 훑는지 보여줍니다. 잔가시나 큰가시가 있으니 잘 살펴야 한다고 이릅니다. 한 손으로는 길다란 가지를 잡고서 다른 한 손으로 찔레싹을 뽁뽁 뽑듯이 살짝 눕혔다가 잡아당기면 이쁘게 훑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막상 말로 들어도 몸으로 옮기자면 잘 안 될 수 있어요. 해 보고 또 해 보아야 손에 익힐 만합니다. 가시가 정 두려우면 가위를 써서 자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게 맨손으로 찔레싹을 훑습니다. 이러다가 마음을 살짝 딴 데 팔면 그만 가시에 주욱 긁혀서 피가 나요.

  어느 모로 본다면 찔레싹 훑기를 비롯한 나물하는 일은 스스로 고요한 마음이 되어 살림을 짓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로는 제철에 누리는 봄나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깊이 보자면 제철을 살피고 누리자는 살림살이입니다. 넓게 바라본다면 제철에 맞는 제일을 하면서 제대로 바람을 마시고 볕을 쬐면서 흙을 밟자는 뜻입니다.

  찔레싹을 훑을 적에도, 훑은 찔레싹을 흐르는 물에 헹굴 적에도, 한동안 그늘에서 물을 말릴 적에도, 큰 냄비에 물을 끓여서 찔레싹을 1분 30초나 2분 즈음 데칠 적에도, 잘 데친 찔레싹을 집게로 건질 적에도, 바야흐로 고추장이랑 된장으로 따로 무칠 적에도, ‘우리 신나는 봄살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된장으로 한 소쿠리를 무치고, 고추장으로 한 소쿠리를 더 무칩니다. 두 가지 찔레무침을 아이 입에 넣어 줍니다. 된장찔레무침도 고추장찔레무침도 맛나다고 합니다. 두 가지 찔레무침을 접시에 덜어서 마을회간으로 들고 갑니다. 우리가 짓는 봄살림을 이웃 할매하고 가붓이 나눕니다. 마을논에서 흐드러지는 유채꽃내음을 담아 봄찔레맛을 품습니다. 2017.4.2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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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민들레로 꽃밭을 이룰 꿈
[삶을 읽는 눈] 재미난 살림짓기를 바라는 길


  우리 식구가 전남 고흥에 깃들던 2011년을 떠올려 봅니다. 그즈음 마을 어디에서나 흰민들레를 보았습니다. 고샅에서도 논둑에서도 길가에서도 흰민들레는 매우 흔했습니다. 이무렵에는 제비가 매우 많이 찾아왔어요. 우리 집 대문 바로 앞에도 흰민들레가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서 하얀 꽃을 피우고 동그랗게 고운 씨앗을 맺었습니다.

  마을 어디에나 흔하던 흰민들레는 차츰 줄어듭니다. 마을 어느 집이나 농약을 많이 쓰기도 하고, 논둑이나 길가를 차츰 시멘트로 덮으면서 이제는 웬만해서는 흰민들레를 구경하지 못합니다. 이러면서 제비까지 해마다 매우 크게 줄어들어요. 제비가 흰민들레를 보려고 이 나라를 찾아오지는 않을 테지만(그러나 우리가 모를 뿐, 제비가 꽃을 보려고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 이 땅을 오래도록 지켜 온 작은 숨결이 사라지는 흐름하고 제비가 줄어드는 흐름하고 맞물린다고 느껴요.

  수많은 들풀이나 들꽃이 사라지듯이 흰민들레도 삶터를 지키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수수하게 흔하던 목숨은 아주 조그마한 삽질에도 쉬 힘을 잃거든요. 찻길을 낸다며, 아파트를 세운다며, 공장이나 골프장을 지어야 한다며, 큰 발전소하고 송전탑이 들어서야 한다며, 여기에 관광지를 꾸려야 한다며, 작고 수수한 목숨은 하루아침에 밀려서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우리 식구가 건사할 수 있는 땅은 아직 넓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가 건사하는 보금자리와 뒤꼍하고 도서관학교에서 피고 지는 흰민들레는 우리 손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해마다 씨앗을 받아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에 새로 심거나 씨앗을 날립니다. 우리 도서관학교에서도 곳곳에 흰민들레씨를 심습니다.

  이 흰민들레는 꽃받침이 꽃을 감싸는 노란민들레와 함께 무척 오래된 이 나라 들풀·들꽃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 집 뒤꼍에는 오랜 노란민들레가 한 포기 함께 있습니다. 이 오랜 노란민들레를 퍼뜨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아직 여러 포기로 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해마다 어김없이 피어나 노란 꽃송이를 베풀어요. 해마다 봄에 물끄러미 바라보고, 봄이 저물 무렵 고맙다고 절을 합니다. 가을볕에 따사로울 적에 다시금 꽃을 피우는 이 민들레를 마주하면서, 이 따순 고장에서는 한 해에 두 차례씩 찾아오니 참으로 좋아라 하고 노래를 합니다.

  오랜 들풀·들꽃이기에 흰민들레하고 노란민들레를 가꿀 마음이지 않습니다. ‘므은들레’라는 옛이름처럼 온 들에 흐드러지던 민들레가 우리 보금자리에 흐드러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이른바 보릿고개라 할 만한 봄철에 맛난 잎을 내어주면서 고운 꽃을 피우는 민들레가 새롭게 가득한 민들레밭을 한켠에 일구고 싶은 마음입니다.

  곰곰이 보면 민들레는 다른 어느 풀꽃보다 ‘아이 손을 타면서 씨앗을 퍼뜨립’니다. 어느 풀꽃도 민들레처럼 아이들이 곳곳에 흩뿌려 주지 않습니다. 민들레뿐 아니라 박주가리도 솜털을 매단 씨앗이라 바람을 타고 잘 날아가요. 그런데 민들레씨는 아이들이 냉큼 알아보고 냉큼 꺾어서 냉큼 후후 불어서 날려 주지요. 이곳에도 날려 주고 저곳에도 날려 주어요. 개미가 제비꽃씨를 물어서 곳곳에 심어 주듯이, 아이들은 민들레씨를 후후 날려서 온 들이며 숲에 푸른 숨결이 깃들도록 북돋웁니다.

  잎이 오를 적에는 나물로 삼고, 꽃이 돋을 적에는 꽃으로 반가우면서 향긋하다가는, 씨앗을 맺을 적에는 더없이 즐거운 놀잇감이 되어 주는 풀꽃이 민들레이지 싶어요. 흰민들레 꽃밭이 한쪽에 퍼지면, 다른 한쪽은 노란민들레 꽃밭이 퍼지기를 빌면서 밭자락을 돌봅니다. 민들레가 자라는 집, 이른바 ‘민들레집’이 되는 일도 재미난 살림짓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2017.4.1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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