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집게 놀이



  빨랫줄에 손닦개를 집을 적에 틀림없이 빨래집게 둘을 썼는데, 어느새 빨래집게가 넷이 된다. 응? 누구니? 누가 이렇게 집었니? 너희들 마당에서 놀다가 받침대를 디디고 올라서서 이렇게 했니?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야물딱지게 집어 준 셈이니? 4347.5.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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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길 빨래기계



  아이들과 마실을 나온 지 이틀째 된다. 첫날은 인천 큰아버지네에서 묵으며 손빨래를 한다. 저녁에 빨래한 옷은 이튿날 아침에 바짝바짝 마른다. 둘째 날은 일산 이모네에서 묵으며 빨래기계한테 맡긴다. 아이들을 씻기고 나도 씻은 뒤 빨래기계가 다 돌 때까지 기다린다. 아이들 씻기며 흐르는 물로 비빔질을 하고, 내 몸을 씻으며 나오는 말로 헹굼질을 하곤 하던 빨래인데, 따로 빨래기계를 쓰니 손품은 덜지만, 물은 많이 드는구나 싶다. 빨래가 다 될 때까지 한참 기다린다.


  마실길에는 아이들 옷가지를 여러 벌 챙기지 않는다. 두 벌씩 챙기더라도 가방 한 짐 된다. 저녁마다 아이들 옷을 벗겨서 빨래를 한다. 아이들은 새 옷을 입고 하루를 누린다. 아침마다 옷가지를 털고 갠다. 일산 이모네 집에서 빨랫대에 옷가지를 너는 동안 두 아이가 이부자리로 기어든다. 아침부터 낮 두 시 반까지 쉬잖고 놀던 두 아이가 비로소 졸음이 몰린 듯하다. 제법 나이를 먹은 아이들은 몸이 퍽 고단하면 스스로 이부자리로 기어든다. 척 보기로도 고단해 보여 제발 조금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놀라 하더라도 눕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스스로 더 견딜 수 없을 때에 스스로 드러눕는다.


  옷가지를 다 넌다. 아이들 목소리가 잦아든다. 어느새 두 아이 모두 눈을 감고 꿈나라로 갔다. 이마를 쓸어넘기고 이불깃을 여민다. 조용하다. 일산 대화역 둘레에 있는 이모네 집 창밖으로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어온다. 고흥집에서는 멧새와 나뭇잎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이곳에서는 복닥복닥 소리를 듣는다. 4347.3.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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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 바지저고리 빨래하기

 


  작은아이는 왜 갑자기 바지저고리(한복)를 입고 싶다 말할까. 설날에 챙겨서 가려고 옷장에 고이 두기만 했다가, 하도 입혀 달라 하기에 입혀 준다. 곁님이 문득 말한다. 이 아이가 곧 설날인 줄 알고는 입겠다 말하지 않았을까 하고. 그럴까? 어쩌면 그러한지 모른다. 큰아이도 한가위나 설날을 앞두고 꼭 치마저고리를 입겠다 말했다. 여느 때에도 되게 자주 입지만, 한참 입다가 안 입을 때가 있는데, 어김없이 설이나 한가위를 앞두고 다시 치마저고리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이렇게 치마저고리를 꺼내서 입히다가 빨래를 하는데, 설과 한가위 앞두고 꺼내어 입고 빨아야 비로소 설이나 한가위 때에 깨끗하면서 고운 옷을 입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작은아이가 여러 날 입은 바지저고리를 벗겨 빨래를 한다. 빨래를 하는데 작은아이 바지저고리에서 폭폭 찌든 때 냄새가 난다. 며칠 동안 흙바닥에서 뒹굴고 이 놀이 저 놀이를 하느라 옷에서 고린내가 나네. 다른 옷은 한 번만 빨지만 작은아이 바지저고리는 세벌빨래를 한다. 엊저녁부터 말리다가, 아침에 바람 살랑이고 햇볕 포근해서 마당에 내놓는다. 이불도 펑펑 털어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시킨다. 4347.1.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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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씻으니 빨래를

 


  서울에서 바깥일을 마치고 먼 길을 달려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은 기차를 탄다. 순천역에서 내려 고흥읍으로 시외버스를 갈아탄다. 기차와 버스에서 배를 살살 어루만진다. 멀미를 안 하고 배앓이를 안 하기를 빈다. 읍내에 내린 뒤 택시를 불러 시골집으로 간다. 요 며칠 하늘이 뿌옇다. 그래도 시골 하늘은 서울 하늘보다 훨씬 맑고 깨끗하지만, 별이 몇 안 보인다.


  집 앞에서 택시를 내린다. 짐칸에 실은 귤상자와 여러 가지를 내린다. 작은아이는 잠들었고, 큰아이는 어머니 곁에서 논다. 먹을거리를 마루와 부엌으로 옮기고 나서 씻는다. 서울에서 몸에 묻은 때를 벗긴다. 서울에서 입은 옷을 벗어서 바닥에 깔고는 빨래를 한다. 어제 나온 아이들 옷가지도 함께 빨래를 한다. 물을 마시고, 빨래를 옷걸이에 꿰어 방에 넌다. 큰아이는 잘 놀았으니 포근히 잘 수 있도록 옷을 갈아입히고 이불을 여미어 준다. 곯아떨어진 작은아이 이불을 다시 여민다. 나는 속이 니글니글해서 함께 드러눕지 않는다. 책상맡에 앉아서 몇 가지 일을 한 뒤에 누워야지 싶다. 고작 하루 서울로 바깥일을 보러 다녀왔지만, 저녁에 몸을 씻으며 하는 빨래가 새삼스럽다. 참말 하루만 집을 비워도 며칠이나 몇 해가 지난 듯하다. 참말 하루만 아이들 얼굴을 안 보아도 며칠이나 몇 해가 훌쩍 흐른 듯하다.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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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고 빨래하는 겨울

 


  겨울에는 아침에 밥을 할 적에 춥다. 겨울에는 저녁에 밥을 차릴 적에도 춥다. 가스불을 켜니 가스 냄새가 밖으로 나가도록 문을 열어 밥을 지으니 추울밖에 없다. 여름에는 늘 문을 활짝 열어 놓으니 밥을 차리면서 덥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여름에는 불가에서 일해야 하니, 밥을 차리면서 땀이 흐른다.


  겨울에 아침을 차리면, 다 차리기까지 춥지만, 따순 밥과 국을 밥상에 올리고 아이들을 부를 무렵 해가 하늘 높이 올라가는 때라 차츰 포근한 기운 감돈다. 놀면서 먹는 아이들 입에 이것저것 떠먹여 주다가 바야흐로 다 먹였구나 싶으면 기지개를 켠다. 등허리를 편다. 오늘은 제법 썰렁한 날이기는 하지만 햇볕이 좋으니, 설거지를 마치고서 바로 빨래를 한다. 이불을 널어 볕바라기 시키려 했지만 바람이 제법 불어 이불을 널지는 않는다. 모레쯤이면 한결 따스할 테니 모레에 이불을 말리자고 생각한다.


  담가 놓은 빨랫감이 몹시 시리다. 따순 물을 튼다. 따순 물로 빨랫감과 손을 녹이면서 비누를 묻힌다. 비빔질을 할 적에도 손이 시려 따순 물로 손과 빨랫감에 조금씩 붓는다. 문득 며칠 앞서 혼자 본 영화 〈오싱〉이 떠오른다. 아이들하고 함께 볼 만한지 살피려고 먼저 혼자 보았는데, 영화에 나오는 어린 가시내는 ‘영화라고는 하지만’ 흰눈 수북하게 덮은 멧골짝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긷는다. 눈보라 몰아치는 숲속을 맨손과 홑옷차림으로 걷는다.


  얼마나 시릴까. 얼마나 추울까. 옛날 사람은 고무장갑 따위 없이 맨손으로 한겨울 기저귀 빨래를 해야 했으니, 손이 빨갛게 꽁꽁 얼다가 허옇게 되어도 꾹 참거나 견디었을까. 언손 녹일 겨를이 없이 불을 때고 절구질을 하여 겨를 벗기고는 쌀을 안쳐 밥을 지으면서, 또 반찬을 차리면서, 겨우내 어떤 모습으로 살림을 꾸렸을까.


  예전 사람들은 늦가을부터 새봄까지 한 벌 옷을 갈아입지 않고 씻지도 못했다고 하나, 아기한테까지 이렇게 지내지는 않았으리라 느낀다. 아기들 누는 똥기저귀와 오줌기저귀를 그대로 둘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아기가 이불에 쉬를 하거나 똥이라도 누었으면 이불도 빨아야 한다. 한겨울 눈밭에서도 기저귀 빨래뿐 아니라 이불 빨래까지 해야 한다. 양반집에서 일하는 머슴이라면 한겨울에도 양반네 옷가지를 빨아야 한다.


  이 나라에서 나오는 역사 영화나 역사 연속극에서는 ‘빨래하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한겨울에 밥하거나 빨래하는 사람 모습은 이 나라 영화나 연속극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영화나 연속극에만 없을 뿐, 모두들 그렇게 겨우내 언손 비비고 녹이면서 햇살 한 조각 고마이 여기고, 새로 찾아올 봄을 애타게 기다렸겠지. 4347.1.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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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2014-01-13 13:44   좋아요 0 | URL
빨래 널고 걷는 것도 일이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할머니께서 '이 것(정도)도 안하냐'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세탁기가 다 빨아주는데 기껏 빨래줄에 널고 걷는 것을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이셨죠.
냇가에서 얼음 깨서 언 손 불어가며 비누도 없이 빨래하던 것을 생각하면 손주며느리 배 부른 소리를 그냥 들어 넘기기 힘드셨을 거에요.
함께살기님 글을 읽으니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숲노래 2014-01-13 18:13   좋아요 0 | URL
아, 할머님이 들려준 말씀이 오래도록 가상 님 마음에 남았군요.
요새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할머님은
몇 분쯤 남았을까요.

길쌈도 절구질도 방아질도 베틀밟기도 안 하는 오늘날이니
'일'은 참 수월하다 할 만하지요. 하모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