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시대 - 지성과 문화가 피어난 곳, 그 역사를 읽다
강성호 지음 / 나무연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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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21.

인문책시렁 339


《서점의 시대》

 강성호

 나무연필

 2023.10.31.



  《서점의 시대》(강성호, 나무연필, 2023)는 우리나라에 책집이라는 곳이 어떻게 움터서 오늘날에 이르렀는가 하고 가볍게 훑는 얼거리입니다. 다만, 예나 이제나 책집이 얼마나 어느 곳에 있었는지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책집을 눈여겨보지 않기도 했고, 나라에서는 미워하거나 괴롭히기까지 했습니다.


  진작에 책을 새기거나 찍는 솜씨가 빼어난 한겨레였어도, 정작 임금과 벼슬아치와 글바치는 글힘을 거머쥘 뿐이었어요. 누구나 누릴 글살림이 아닌, 힘꾼이 내려보내는 글담이었어요. 게다가 훈민정음이 태어난 뒤로도 온나라 사람들이 고르게 글빛을 밝히는 길이 아닌, 조선이 무너질 때까지도 몇몇 글바치가 움켜쥐는 글담이 단단하기만 했습니다.


  잘 모르거나 지나치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예부터 임금과 벼슬아치와 글바치는 중국글인 한문을 ‘수클·수글’이라 했습니다. 훈민정음은 ‘암클·암글’이나 ‘아해글·아이글’로 여겼어요. 지난날 웃사내는 스스로 거들먹거리면서 중국글을 “숫놈끼리 쓰는 힘”으로 삼은 셈입니다. 곰곰이 보자면 “순이와 아이가 쉽게 익혀서 널리 쓸 만한 훈민정음”을 돌보거나 지킨 사람은 바로 순이와 아이란 뜻입니다. 이처럼 뼈아픈 굴레를 모두 깨뜨리고서 새길을 연 사람이 주시경이에요. 중국글로 붙인 ‘훈민정음’이 아닌, 우리말로 새로 이름을 붙인 ‘한글’을 가다듬고 널리 가르친 때부터 비로소 글눈이 깨어나고 책살림을 여는 길이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집자취(서점 역사)’를 읽자면 ‘한글’부터 제대로 볼 노릇입니다. 한말(우리말)을 한글(우리글)로 담으면서 스스럼없이 누구나 나누던 때부터 우리 책살림을 열었거든요. 그리고 우리 책살림은 새책집보다 헌책집이 어마어마하게 큰몫을 맡았습니다. 가난하지도 배고프지도 않은 이들은 한문으로 적은 중국책과 일본책을 쉽게 사읽었고,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은 조금 허름한 책을 값싸게 장만하는 헌책집에서 배움길을 닦았어요. 그리고 “나라 눈치를 안 보며 조용히 몰래 낸 책”은 새책집 아닌 헌책집에서 돌았습니다. 이른바 ‘비매품’이란 이름으로 낸 ‘독립출판물’과 ‘지역도서·간행물·문집’을 사람들 손에 안긴 곳은 헌책집입니다. 인문사회과학서점이 1980년 뒤로 태어나기 앞서, 또 태어난 뒤로도, 헌책집은 우리 삶터를 밝히는 길목 구실을 톡톡히 오래오래 했어요.


  우리나라는 새책집 자취도 제대로 안 남겼지만, 헌책집 자취는 더더구나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2004년에 나온 《모든 책은 헌책이다》하고 2006년에 나온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이라는 책이 ‘헌책집 자취’하고 ‘헌책집 벼리(목록)’를 처음으로 담았으니, 우리나라는 참으로 뒤처졌습니다.


  그래도 여러모로 애써서 《서점의 시대》를 내놓았구나 싶으나, 빠지거나 없거나 건너뛴 대목이 너무 많아요. “서울에 있던 책집”에 너무 기울었고, 몇몇 인문사회과학책집에 쏠리기도 했어요.


ㅅㄴㄹ


“정부는 무슨 이유로 1985년이라는 시점에 이념서적 파동을 일으킨 것일까(75쪽).”


조선은 금속활자 기술이 일찍이 발달한 나라였지만, 중기까지는 국가가 인쇄를 엄격히 통제하고 책의 제작과 유통도 독점했다. (21쪽)


이성의가 고서 수집에서 고활자본 연구로 나아간 사례라면, 방종현은 연구자로서 고서점을 차린 독특한 사례다. (86쪽)


앞서 식민지 해방은 곧 책의 해방이었다고 했다. 여기서 책의 해방이란 출판의 자유뿐만 아니라 값어치 있는 헌책들이 다시 빛을 보며 되살아나는 것도 포함한다. (92쪽)


+


금속활자 기술이 일찍이 발달한 나라였지만

→ 쇠글 솜씨가 일찍이 발돋움한 나라이지만

→ 쇠글씨가 일찍이 피어난 나라이지만

21쪽


족보를 편찬하는 경우에만 만들어졌다

→ 핏줄책을 엮는 때에만 나왔다

→ 밑뿌리를 여밀 때에만 내놓았다

21쪽


사회운동에 조응하는 활동도 함께 벌여 나갔다

→ 들꽃물결에 발맞추는 일도 함께 벌여 나갔다

→ 너울과 어우러지는 일도 함께 벌여 나갔다

38쪽


시대 분위기에 맞추어 계몽 서적을 중점적으로 출간했다

→ 둘레 흐름에 맞추어 배움책을 눈여겨보며 펴냈다

→ 삶터 물결에 맞추어 깨우침책을 더 내놓았다

44


압수한 뒤 소각할 계획을 세웠다. 결국 이들 책을 전부 불태워 없앴는데

→ 빼앗뒤 불타우려고 했다. 끝내 이 책을 모두 불태워 없앴는데

54


이 사건은 일종의 전초전이었다

→ 이 일은 이른바 맛보기였다

→ 이 일은 그저 첫발이었다

54


폐가식으로 운영했기에 이용자가 직접 책을 골라 볼 수 없었을 뿐더러

→ 빌림칸으로 했기에 사람들이 스스로 책을 골라 볼 수 없을 뿐더러

→ 닫힌칸으로 꾸렸기에 사람들이 손수 책을 골라 볼 수 없을 뿐더러

69쪽


특별 코너의 효시는

→ 도드람칸은 첫발은

→ 첫 빛시렁은

→ 첫 톡톡칸은

13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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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에 쓴 창업일기 - 남들은 하던 일도 접는다는 나이
이동림 지음 / 산아래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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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책숲마실 2023.11.5.


책집지기를 읽다

21 《일흔에 쓴 창업일기》와 대구 〈산아래詩〉



  어떤 분은 요새 ‘소설’이 안 읽힌다고 말씀하지만, 새뜸(신문)에서 소설책을 안 다루는 일이란 없습니다. 갈수록 ‘철학책·역사책·사회사상책’이 안 읽힌다고 여기는 분도 있으나, 이러한 책은 꾸준히 나옵니다. ‘문학비평’이 몇쯤 팔리는지 모르겠다고도 말하지만, 이럭저럭 지며리 나와요.


  우리나라에서 ‘시’를 쓰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시집’은 참 안 읽힌다고도 하는데, 다르게 보면 몇몇 펴냄터에서 나오는 ‘시집’은 안 팔리지 않습니다. 한켠으로 치우친 시집은 불티나게 팔리고 읽히며, 이런 시집에서 시를 쓰는 결대로 시쓰기를 흉내내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 팔리는 갈래는 이쪽도 저쪽도 그쪽도 아니에요. ‘사진책’이 가장 안 팔립니다. 게다가 이제 사진책은 아예 안 나온다고 여길 만합니다. 다들 손전화를 많이 쓰면서 사진책이 팔릴 일이 없지는 않아요. 손전화를 안 쓰던 무렵에도 사진책은 띄엄띄엄 나왔고, 사진책을 새뜸(신문)에서 새책이라며 알리는 일조차 없다시피 했습니다.


  문학비평이 안 읽힌다고 푸념을 하지만, 사진비평을 읽는 사람은 그야말로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면 사진비평을 왜 안 읽을까요? 사진책을 안 읽으니 사진비평도 안 읽을 만하지만, 우리나라 사진비평은 ‘읽은 눈으로 삶을 헤아리는 글’이 아니라, ‘서양 예술이론’을 일본 한자말하고 옮김말씨(번역체)로 뒤섞고 꾸미고 멋부린 허울스러운 짜집기이거든요.


  대구에 마을책집 〈산아래詩〉가 태어났습니다. 대구 한켠에 나즈막이 숲을 이루는 삶터에 깃듭니다. 푸르게 흐르는 멧바람을 맞이하면서 노랫가락을 나누는 이음터라고 할 만합니다. 노래(시)를 쓰는 사람들이 아로새긴 노래책(시집)을 이웃한테 잇는 자리입니다.


  우리말은 먼 옛날부터 ‘노래’입니다. 일하는 어른은 일노래요, 놀이하는 아이는 놀이노래입니다.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입니다. 말을 담아서 흥얼흥얼한다면 노래요, 따로 말이 아닌 소리를 얹으면 가락입니다. 말하고 소리가 어우러지도록 부르면 노랫가락이나 노랫소리입니다.


  노래하기에 놀이합니다. 놀이하기에 노래합니다. ‘놀다’는 ‘손놀림·발놀림·몸놀림’처럼, 우리 몸이 새롭게 어떤 삶을 짓는 살림으로 나아가려는 결을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아기가 목을 가누려고 놀고, 아기가 몸을 뒤집으려고 놀지요. 이 모습에서 태어난 말이 ‘놀이’입니다. 아기가 내는 소리는 모든 어버이 마음을 사랑으로 녹여요. 모든 사람이 아기한테서 배우는 가락인 노래입니다. 그리고 사람 곁에서 보금자리를 짓거나 둥지를 트는 새가 노래를 베풀어요. 새노래입니다. 새가 들려주는 노래는 늘 ‘새롭’습니다. 숲과 마을 ‘사이’에서, 또 하늘과 땅 ‘사이’에서 모든 숨빛을 노래로 잇기에 ‘새’라는 이름입니다.


  이뿐 아니라, 개구리하고 풀벌레가 마을로 깃들고 시골집으로 스며서 노래합니다. 매미도 나무에 매달려 노래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모든 노래는 모름지기 숲에서 비롯했습니다. 사랑을 담은 아름다운 노래란 ‘숲노래’입니다. 푸른별이 이름 그대로 푸르게 살아나는 바탕인 노래는 ‘숲노래·숲바람’이에요.


  ‘새하늬마높’이라는 이름에서 엿보고, ‘높녘’은 ‘높다’를 가리키듯, ‘노래’는 마음을 높이 띄우고 북돋웁니다. 아침저녁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처럼, 언제나 춤추는 기운찬 물결인 놀(너울)처럼, ‘노’라는 밑동은 우리말 곳곳에 스미면서 ‘노느메기(노느다)’를 지나고 ‘나누다’를 돌고 ‘넉넉하다·너른’을 스치기도 합니다.


  우리 발자취를 더듬으면 ‘시’라는 이름인 글을 쓴 지는 고작 온해(100년)입니다. 중국 섬기기(사대주의)를 모르던 시골지기(농민)는 그저 삶말로 삶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한테 삶과 말을 물려주었어요. 이 노래를 누구나 부르고 나누기를 바라요. ‘시’가 아닌 ‘노래’를 부르면서, 넉넉하게, 노을빛으로, 너울결로, 너른숨으로, 놀이하는 일손으로 즐겁게 마주하면, 우리는 서로서로 숲을 품는 바람처럼, 새를 이웃하고 풀벌레랑 개구리를 동무하는 ‘사이’에서 사람으로 사랑을 하며 살아가겠지요.



《일흔에 쓴 창업일기》(이동림, 산아래詩, 2023.8.1.)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이런 냉혹한 현실을 기꺼이 참고 견디며, 거뜬히 극복하기 위해서 ‘일흔’이 다시 ‘호기심과 열정의 나이’가 되도록 눈빛을 초롱초롱 밝힐 것이다. (17쪽)


앞으로 내가 이 나이에 책방으로 성공했다는 소문과 함께, 요즘 한 집 건너 한 집 생기는 카페나 동네마다 골목골목 들어서는 편의점보다 크고 작은 책방들이 우리 주위 여기저기에 자꾸만 늘어나면 좋겠다. (39쪽)


이 책방은 미리 사고 싶은 시집 콕 찍어 와서 “그 시집 있어요?”라고 묻는 책방이 아니다. 들어와서 둘러보다가 “이 시집 좋네요.”라며 한 권 뽑아 들고 돌아가는 책방. 그런, 시집 전문 책방이다. (82쪽)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이 책방은 개업일이나 개업 행사가 따로 없다. 내가 ‘이제 그럭저럭 준비가 다 됐다’ 싶으면 그다음 날이 바로 개업일이다. (133쪽)


+


문학성이 있거나 교양서적은 결코 아닙니다

→ 아름답거나 배우는 책은 아닙니다

→ 달콤하거나 익힐 만한 책은 아닙니다

2쪽


자기도취에 헷갈리고 있는 건 아닌지

→ 내멋대로에 헷갈리지는 않은지

→ 제멋에 헷갈리지는 않은지

→ 겉멋에 헷갈리지는 않은지

2쪽


아무리 백세시대라 하지만 무리라는 게다

→ 아무리 온살림날이라지만 어렵단다

→ 아무리 온살림길이라지만 힘들단다

15쪽


이런 우려들은 나도 이미 다 알고 있다

→ 이런 걱정은 나도 이미 다 안다

→ 이런 근심은 나도 이미 다 안다

15쪽


어찌 보면 순리였다

→ 어찌 보면 마땅하다

→ 어찌 보면 맞다

30쪽


생명불식(生命不息) 전시회가 최근 서울에서 있었다. 生命不息.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몫을 다해야 한다

→ 삶빛 보임마루를 얼마 앞서 서울에서 했다. 삶빛. 산다면 산 몫을 다해야 한다

→ 살림꽃 보임터를 요사이 서울에서 했다. 살림꽃. 살아간다면 몫을 다해야 한다

32쪽


성공했다고 소문난 동종업체를 여기저기 수소문해가며 찾아다닌다고 한다

→ 잘된다고 이름난 이웃가게를 여기저기 찾아다닌다고 한다

→ 잘한다고 알려진 옆가게를 여기저기 찾아다닌다고 한다

35쪽


온종일 독서삼매에 빠져 사는 친구도 있다

→ 온하루 책읽기에 빠져 사는 벗도 있다

→ 온통 책하루인 동무도 있다

38쪽


이 불경기에 초기 비용이 많으면 안 되니

→ 이 돈고비에 밑천이 많이 들면 안 되니

→ 이 고비에 밑돈이 많이 들면 안 되니

46쪽


책장 등 집기만 적당하게 들여놓으면

→ 책꽂이나 세간만 알맞게 들여놓으면

→ 책칸이나 살림만 잘 들여놓으면

51쪽


반색하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동의를 보였다

→ 반색하며 속에서 우러나오듯 끄덕였다

65쪽


이웃 가게에 부담되지 않는 업종이라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 이웃 가게가 꺼리지 않는 일이라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 이웃 가게와 부딪히지 않아서 마음이 한결 느긋하다

76쪽


시집 전람회장이라고 보는 게 맞다

→ 노래책 보임터라고 보아야 맞다

→ 노래책잔치라고 보아야 맞다

82쪽


수익에 연연치 말라고 다독인다

→ 돈에 매이지 말라고 다독인다

→ 벌이에 끌리지 말라고 다독인다

137쪽


오픈을 앞두고 그동안 판매된 시집에 대해 정산을 한다

→ 첫날을 앞두고 그동안 판 노래책을 돌아본다

→ 첫단추를 앞두고 그동안 판 노래책을 셈한다

170쪽


개업일이나 개업 행사가 따로 없다

→ 첫날이나 첫잔치가 따로 없다

133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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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책집 '산아래시'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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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시작이다
오사다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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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우리말숲 / 다듬읽기 2023.7.2.

인문책시렁 308


《책은 시작이다》

 오사다 히로시

 박성민 옮김

 시와서 2022.11.15.



  《책은 시작이다》(오사다 히로시/박성민 옮김, 시와서, 2022)를 읽었습니다. 이제는 책을 말하는 사람도 책도 많습니다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책나래’보다는 ‘책굴레’에 머물고, ‘책숲’보다는 ‘책나라’에 기우는구나 싶습니다.


  ‘나래(날개)’란 스스로 날개돋이를 하면서 새롭게 나아가려는 씨앗을 심는 길을 가리킵니다. 나래는 애벌레가 옛몸을 녹이면서 스스로 짓습니다. 풀잎이나 나뭇잎만 갉으면서 눈코귀가 없이 입만 있던 애벌레는, 한참 덩치만 키우다가 어느 날 ‘입놀림(먹기)’을 멈춰요. 이러고서 제 몸에서 실을 자아내어 고치를 짓고는 깊이 잠듭니다. 꿈길로 가지요. 꿈길로 나아가는 애벌레는 눈물을 여미고서 고요히 생각을 짓고, 이 생각은 미움도 시샘도 놀림도 불길도 아닌 그저 오롯이 피어나는 사랑이라는 빛씨앗입니다.


  빛씨앗을 마음에 심는 생각을 오롯이 편 애벌레는 ‘입으로 먹기만 하던 토실한 애벌레라는 몸’을 모조리 녹입니다. 죽이거나 없애지 않아요. 녹입니다. 옛몸을 미워하지 않고, 눈코귀가 있는 다른 숨붙이를 시샘하지 않아요. 그저 ‘나란 누구인가’ 하나만 바라보면서 꿈을 그리기에 어느새 ‘옛몸을 다 녹이고서 날개를 몸에 맺는 새몸’은 나비나 나방으로 깨어납니다. 이러한 길이 ‘날개돋이’요 ‘책나래’라 할 만합니다.


  책나래라 할 적에는, 인문책도 정보·지식도 아닌, 잘난책(베스트셀러)이나 오래책(스테디셀러)조차 아닌, ‘숲책·푸른책’을 스스로 품어서 스스로 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이와 달리 ‘책굴레’는 숱한 이름값·힘·돈에 얽매여 굴레에 스스로 가둔다는 뜻이에요. 이름난 책을 읽는들 우리 스스로 이름을 드날리지 못 합니다.


  ‘책나라’는 ‘책(정보·지식)을 내세우는 나라(정부)’라는 뜻입니다. 나라(정부)는 종이(자격증·졸업장)에 얽매이지요. 우리는 종이꾸러미라는 책을 읽되, ‘글쓴이 솜씨종이(자격증·졸업장)가 아닌 글종이(원고지)’만 바라볼 노릇입니다. 그런데 ‘책나라’일 적에는 허울을 쓰고 말아 알맹이를 잊어요. 열매를 못 봅니다. 또한 모든 나라(정부)는 서울(도시)을 세웁니다. 서울은 시골을 짓밟으면서 힘·이름·돈을 홀로 차지하는 굴레예요.


  우리가 책을 곁에 둔다고 할 적에는 ‘책나라 아닌 책숲’일 노릇입니다. 풀꽃나무랑 해바람비가 어우러지는 숲을 품는 ‘책숲’을 바라보고 돌보는 몸짓일 적에, 비로소 열매랑 씨앗을 나란히 누리고 나누는 길을 열어요.


  《책은 시작이다》는 어린이책 이야기도 꽤 다룹니다. 어린이책이란, 어린이부터 누구나 사랑을 나누고 누리는 길잡이를 이루는 이야기밭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린이책에 담는 글처럼 온누리 모든 곳에서 ‘어린이 눈높이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길’을 펼 노릇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책을 안 읽는다면 ‘어른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을 늘 읽고 새기면서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쉬운말(살림말)로 생각을 펴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어른이에요.


  책으로 삶길을 열자면, 스스로 책나래를 이루면서 책숲으로 갈 일입니다. 책나라도 책굴레도 아닌, 책빛을 책씨로 맺으려면, 숲책을 읽으면서 숲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쓰는 매무새여야겠지요. 숲말이란 마을말(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입니다. ‘지식용어·전문용어’나 ‘문화·예술·문학’이 아닌, ‘삶·살림·사랑’을 ‘숲’에서 ‘사람’으로서 펴고 나누고 짓고 그릴 적에는, 온누리가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ㅅㄴㄹ


지금 우리는 전부 다 똑같아지고, 전부 다 똑같은 책을 읽고, 전부 다 똑같은 노래를 듣고 있는데도, 오히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70쪽)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말 안에서 태어나고 어떤 말에 의해서 자라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76쪽)


말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합니다. 말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풍요로운 사람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84쪽)


도대체 언제부터 어린이책은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또 어째서 어른들은 어린이책을 읽지 않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른이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존재일까요? (97쪽)


어린이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려운 점은 어린이책의 세계를 모르는 어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103쪽)


음악에서 말하는 기술혁신은 전부 ‘나눔’ 문화의 기술혁신이었습니다. (207쪽)



#長田弘 #読書からはじまる


오늘날을 특징짓는 것 중의 하나로

→ 오늘날을 보여주는 하나로

→ 오늘날을 나타내는 하나로

7쪽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친구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 먼저 ‘누가 동무인가’를 생각해야겠습니다

→ ‘동무란 누구인가’부터 생각해야겠습니다

15쪽


인간이 늘 필요로 해 왔던

→ 사람이 늘 바라던

→ 사람이 늘 곁에 두던

19쪽


전승을 통해, 문자를 통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 말로, 글로, 책으로 우리한테 내려온

→ 이야기로, 글로, 책으로 우리한테 내려온

25쪽


무엇을, 즉 소프트웨어를 묻습니다

→ 무엇을, 곧 속을 묻습니다

→ 무엇을, 곧 빛을 묻습니다

→ 무엇을, 곧 마음을 묻습니다

41쪽


왜 독서의 경우에는 맨 먼저 하드웨어를 묻지 않을까요

→ 왜 읽을 적에는 맨 먼저 겉을 묻지 않을까요

→ 왜 글읽기는 맨 먼저 몸을 묻지 않을까요

→ 왜 책읽기는 맨 먼저 옷을 묻지 않을까요

41쪽


식품에 비유하자면 유통기한이 대단히 깁니다

→ 먹을거리에 대면 쓰임날이 대단히 깁니다

→ 밥에 견주면 마감날이 대단히 깁니다

45쪽


점점 더 가속적으로 발전해 온

→ 더 빠르게 발돋움한

→ 더욱 빨리 자란

45쪽


비로소 번호를 써넣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 제대로 기입되기까지 무려 천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 비로소 값을 써넣었다는데 … 제대로 써넣기까지 자그마치 즈믄 해가 넘었답니다

→ 비로소 눈금을 써넣었다는데 … 제대로 넣기까지 자그마치 즈믄 해가 걸렸답니다

46쪽


인생을 심호흡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 삶을 들이켤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 오늘을 들이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면

61쪽


‘기량이 좋다’라는 말은 겉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릇이 좋다’는 말은 겉모습을 말하지 않습니다

→ ‘됨됨이가 좋다’는 말은 겉을 말하지 않습니다

87쪽


도대체 어른이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존재일까요

→ 참말로 어른이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숨결일까요

9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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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 - 출판과 문화를 지키는 도서정가제 바로 알기
백원근 지음, 한국출판인회의 엮음 / 한국출판인회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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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인문책 / 숲노래 책읽기 2023.6.19.

인문책시렁 305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

 백원근

 한국출판인회의

 2020.10.8.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백원근, 한국출판인회의, 2020)를 읽었습니다. 책값이 2000원인데, 이 값으로 내놓아도 될 만하다고 여겼는지 궁금합니다. 이 책이 다루는 이야기가 틀리지는 않다고 느끼지만, ‘할인·유통질서’라는 이름만 내세우기에는 어쩐지 허술하구나 싶어요. ‘소모적인 할인행세’나 ‘끼워넣는 굿즈’는 큰펴냄터에서 여태 오래도록 잔뜩 해온 짓입니다. 큰펴냄터에서 여태 해온 ‘도서정가제 흔들기’부터 제대로 따지고 짚고 나무라지 않고서 ‘도서정가제는 지켜야 합니다’라는 말만 외친다면, 여느 사람들한테는 너무 뜬구름을 잡는 목소리라고 느끼기 쉽습니다.


  누리책집(인터넷서점)이 왜 ‘값장난’을 칠 수 있을까요? 작은펴냄터에서 누리책집하고 손잡고서 ‘잘난책 장난(베스트셀러 조작)’을 하던가요? 여태껏 ‘잘난책 장난’은 모두 큰펴냄터에서 해왔고, 아직도 합니다. 큰펴냄터는 ‘서평단’이란 이름으로 100∼500 자락이 넘는 책을 거저로 풀기 일쑤입니다. 여기저기 ‘서평단’에 이름을 넣으면 웬만한 ‘잘난책’은 거저로 받기 좋은 얼거리를 큰펴냄터가 꾸리는 판에, 여느 사람들이 제넋으로 책을 제값을 치르면서 사읽겠다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게다가 큰펴냄터는 ‘북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덤(굿즈)을 사람들한테 쏟아붓습니다.


  책을 오롯이 책으로만 다루면서 이웃을 만나려고 하는 글꾼은 큰펴냄터 등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출판평론가·출판기자’라는 자리에 있는 이들은 작은펴냄터에서 아무런 서평단도 굿즈도 없이 ‘오직 이야기’ 하나만으로 펴낸 책을 눈여겨보지 않기 일쑤입니다. 그들은 ‘오직 이야기’만 흐르는 책을 읽을 겨를이 없기에, ‘오직 이야기’만으로 이웃하고 삶·살림·사랑·숲을 노래하는 책을 알아보지 않고, 알리지 않고, 여느 사람들은 이런 책을 알아볼 틈이 더더욱 없기까지 합니다.


  적잖은 글꾼은 ‘큰펴냄터 이름’에 기대어 책을 내고 돈을 벌고 이름값을 얻습니다. 가만히 보면, ‘책은제값에(도서정가제)’를 외치지만 정작 ‘책을제값에’하고 동떨어진 이들이란, 누구보다 숱한 글꾼입니다. 숱한 글꾼 가운데 주머니를 털어서 온돈으로 책을 사읽는 이는 몇일까요? 거저책(증정도서) 사이에서 춤추면서 입으로만 ‘책은제값에’라고 벙긋거리는 얼거리라고 느낍니다. 책마을 사람들 스스로 ‘거저책 장난질’을 한몫에 멈추고, 덤(굿즈)을 내지 않기로 다짐을 하지 않는다면, ‘책을제값에’를 한결같이 이어오는 숱한 책동무는 내내 바보가 될 뿐이겠지요.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 같은 말은 허울스럽습니다.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란 무엇인지요? 우리는 어느 책을 읽고 싶은가요? 아름책을 챙기는 사람은 ‘책은제값에’란 틀이 없더라도 언제나 ‘책을제값에’ 사읽어 왔습니다. 여느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기를 바라요. 여느 사람들한테 책마을 민낯과 속내를 환히 드러내고서, 책마을부터 뜯어고치는 길을 밝힌 뒤, ‘책은제값에’를 이루를 길을 새로 찾을 노릇이라고 봅니다.



우리의 언어로 된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고, 펴내고, 보급하고, 추천하고, 판매하고, 읽을 수 있는 독서문화 생태계를 살리는 과정에서 더는 소모적인 ‘할인 논쟁’과 ‘할인 시비’는 자제해야 합니다. (8쪽)


할인 폭이 커지면 당장은 싸게 사는 것 같지만 출판사들은 어쩔 수 없이 할인을 염두에 두고 책값을 더 높일 수밖에 없어요. (14쪽)


할인 마케팅이나 공짜 경품을 많이 줄 수 없는 자본력 없는 출판사, 상대적으로 할인율이 낮은 서점들의 생존율이 매우 낮을 것이란 점은 명약관화하다. (27쪽)


비영어권 문화 선진국들이 한결같이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것은 문화 다양성의 유지, 언어 정체성의 제고, 유통질서 확립을 통한 출판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이다. (4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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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 생활 수집
김정희 지음 / 탐프레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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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3.6.17.


책집지기를 읽다

20 《책방지기 생활 수집》과 대구 〈서재를 탐하다〉



  대구·경북에 계신 적잖은 분들이며 부산·경남에 계신 숱한 분들은 그 고장에 꼴통에 꼰대가 많다고 말씀하는데, 광주·전남이며 전주·전북에도 꼴통에 꼰대는 많습니다. 어느 쪽(정당)을 ‘묻지 마’처럼 밀기만 하는 분들은 어느 고장에나 적잖습니다. 경상도나 전라도나 서울도 매한가지입니다. 가만 보면, 온나라에 꼴통에 꼰대가 넘실거립니다.


  참하거나 바르거나 깨끗하거나 밝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일하려는 사람만 벼슬을 얻어야 나라가 아름다워요. 벼슬자리란 대수롭지 않습니다. ‘닭벼슬’이 대단할 수 없어요. 대수롭거나 대단한 곳은 언제나 ‘우리 스스로 짓는 오늘 하루라는 삶’입니다.


  누가 저지른 잘못이나 말썽을 잊어야 할 까닭은 없으나, 보아줄(봐줄) 수는 있어야 어른입니다. 나이만 먹는 사람은 어른이 아닌 늙은이입니다. 어른이라는 자리는 철이 들면서 온누리를 오롯이 사랑으로 돌보는 마음하고 몸이 어우러진 빛줄기인 사람을 가리켜요. 이 나라에는 어른이 드물고 ‘어른 시늉을 하는 늙은이’가 흘러넘친다고 해야 옳습니다.


  대구 한켠에서 작은 아줌마로 일하는 이웃님 한 분이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이란 책을 2022년 겨울에 선보였습니다. 참 놀라운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어제·오늘·모레를 잇는 실타래를 풀꽃나무에서 찾아보는 눈썰미가 사랑스럽습니다. 곰곰이 보면 전라도는 들하고 바다가 넓되 멧골은 그리 깊지 않습니다. 경상도는 바다가 멀거나 무척 깊어 가까이하기 쉽지 않은데다가 들이 썩 넓지 않은데, 멧자락이 꽤 깊고 넓습니다. 뚝딱터(공장)가 경상도에 몰렸다지만, 전라도에도 뚝딱터가 알게 모르게 무척 많아요.


  전라도 너른들은 예부터 ‘이웃하고 넉넉히 나누는 살림터’가 아닌 ‘벼슬아치·우두머리가 사람들 피고름을 짜내는 눈물터’였어요. 살림터 아닌 눈물터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팍팍하지요. 경상도 멧골은 벼슬아치·우두머리가 피고름을 짜낼 만한 터전하고 멀어요. 다들 오종종 뭉쳐서 힘을 모아야 살아낼 만한 터전입니다.


  대구 마을책집 〈서재를 탐하다〉 지기님은 대구랑 서울 사이를 오가다가 대구에 깃들면서 책모임을 동무하고 오래 꾸렸고, 어느새 책집을 열고 펴냄터를 차려서 이야기꽃을 손수 일굽니다. 2022년부터는 서울책잔치(서울국제도서전)에도 나가서 책판을 살며시 열어 책이웃을 새롭게 만나기도 하지요.


  〈서재를 탐하다〉는 처음 연 곳을 떠나 새터를 잡았습니다. 숱한 마을책집은 ‘우리 집(자가소유)’이 아니라서 삯(임대료)을 치르면서 빌려씁니다. 숱한 마을책집은 가게삯을 대면서 일삯을 벌기에 만만하지 않은 얼거리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만만하지 않은 길을 꿋꿋하게 걸어갑니다. 꿋꿋하되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조잘조잘 수다판을 엽니다. 책집살림을 여미기가 수월하지 않대서 찡그리며 살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글 한 줄에 서린 빛을 느끼고 누리고 나누고 어깨동무하려는 길이기에 마을책집입니다. 더 많이 팔거나 더 돈을 벌려는 마을책집이지 않습니다.


  “마을책집 으뜸이(동네책방 성공사례)”가 굳이 나와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낳아서 어버이로서 돌보는 아이들이 ‘훌륭이(성공사례)’가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자 삶이며 살림인 사랑입니다. 비록 전라숲은 작고 조촐하지만, 경상숲하고 다르게 푸릅니다. 경상숲은 강원숲보다는 작을 테지만 무척 크고 깊으면서 아름답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뜻을 이룰(성공)까요? 어떤 책을 곁에 두기에 사랑을 속삭일까요? 어떤 책을 손수 쓸 적에 눈망울을 빛내면서 이야기꽃을 피울까요? 어떤 마음으로 이웃을 사귀고 만나면서 두런두런 마음을 나누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고장을 아름터로 가꾸는 실마리를 찾아낼까요?


  모든 책집은 ‘책집지기 책마루(서재)’입니다. 책집마실을 할 적에는 ‘책집지기 책마루’를 누리는 셈입니다. 이러한 책을 품으면서 하루를 그리고 삶을 노래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오늘을 사랑하는구나 하고 느낄 ‘책마루’를 활짝 여는 마을책집입니다. ‘아줌마 책집지기’가 선보인 ‘아줌마 이야기’는 더없이 상냥합니다.



《책방지기 생활 수집》(김정희, 탐프레스, 2023.6.5.)



적어도 삶이란, 목표와 계획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선택과 행동 그리고 구체적인 사건이 있을 뿐이었다. (20쪽)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내게 ‘취미’냐고 물어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 보이는 모습 때문일 거다. 책방 문을 4시에 닫는다는 것, 커피 마시며 책을 읽는다는 것, 모임인지 수다인지 늘 모여 뭔가를 하는 것 등 모든 것이 이유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고 말이다. (34쪽)


내가 신발가게 주인인데 손님이 와서 “여기 있는 신발 빌려줄 수 있나요?”라던지 “아……, 이 신발 판매하는 거였어요?”라고 말하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인데 말이다. (43쪽)


확실한 건 책방지기는 시간과 노동과 가치를 파는 사람이며, 내가 하는 일의 쓸모와 값어치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5쪽)


우리는 생각하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 기존의 삶에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다. (131쪽)


이번 도서전을 통해 알게 된 게 있다. 독자의 손에 들리는 데 중요한 것은 이야기였다. 다소 투박하고 어설퍼 보여도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에 독자들은 반응했다. (193쪽)


+


책을 사랑하는 문학소녀도 아니었던 내가

→ 책을 사랑하는 아이도 아니던 내가

→ 책순이도 아니던 내가

→ 글순이도 아니던 내가

→ 글꽃순이도 아니던 내가

8쪽


수많은 사물 중에 왜 책이 좋은 건지

→ 숱한 살림 가운데 왜 책이 좋은지


사방이 통창인데 어두운 구석에서 혼자만의 시간에 흠뻑 빠져 있었다

→ 둘레가 트였는데 어두운 구석에서 혼하루에 흠뻑 빠졌다

→ 온통 틔움인데 어두운 구석에서 혼누리에 흠뻑 빠졌다

18쪽


잃어버린 나를 찾아 삼만리라도 떠나야 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 잃어버린 나를 찾아 먼길이라도 떠나야 할 듯 싶었다

19쪽


꼭 들르게 된다

→ 꼭 들른다

27쪽


분기별로 돌아오는 도시락데이 때 일이다

→ 철마다 돌아오는 도시락날 일이다

54쪽


우리 잘살고 있는 거 맞지?

→ 우리 잘살지?

57쪽


대구로 내려가야겠다고

→ 대구로 가야겠다고

82쪽


남편에게 어떻게든 수익을 만들어 보겠다고 결단을 내보였다

→ 짝한테 어떻게든 돈을 벌어 보겠다고 다짐을 내보였다

→ 곁님한테 어떻게든 밥벌이를 하겠다고 다잡아 보았다

9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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