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빨래



  설날 아침에 빨래를 한다. 두 아이를 먼저 씻긴 뒤, 두 아이가 밤새 입은 옷을 벗겨서 빨래를 한다. 씻은 아이들은 새옷을 입고, 새옷을 입은 아이들은 새로운 아침에 새롭게 웃으면서 논다. 나도 머리를 감고 나서 옷가지를 널고, 마룻바닥을 쓴다. 오늘 충청북도 음성에는 눈이 가볍게 쌓였다. 고흥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눈을 이 아이들이 모처럼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겠네. 4348.2.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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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면



  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면 일손이 준다. 다만, 비비고 헹구고 짜는 일손이 줄 뿐, 빨래를 마친 옷가지를 꺼내어 너는 일손은 고스란히 있다. 손으로 옷가지를 빨면, 다 빨고 나서 곧바로 마당에 내다 너는데, 기계한테 빨래를 맡기면, 빨래가 다 된 줄 모르는 채 여러 시간이 흐르기 일쑤이다. 기계에 뜨는 ‘몇 분 남았다’는 알림글을 보면서도 다른 일손을 잡느라 그만 잊기 일쑤이다.


  빨래를 기계한테 맡기면, 이동안 밥을 짓거나 걸레질을 할 수 있다. 빨래를 기계한테 맡기는 사이 책을 몇 줄 읽을 수 있다. 빨래를 기계한테 맡기기에 아이들과 몇 분 더 어우러져 놀 수 있다. 그런데, 손으로 빨래를 하면 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기면서 집살림을 보여주거나 가르칠 수 있다. 손으로 빨래를 하기에 아이들은 ‘빨래란 이렇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고, 어린 나이에도 손수 제 옷가지를 빨고 싶은 마음이 솟는다. 때로는 ‘어머니 옷’이나 ‘아버지 옷’이나 ‘동생 옷’을 빨아서 주고 싶은 마음이 솟는다.


  이불이나 청바지를 손으로 빠니까 힘들까? 아니다, 힘들지 않다. 혼자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다. 어버이는 집에서 아이한테 빨래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여느 어른은 학교에서 아이한테 빨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4348.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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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씻으면서 빨래



  인천에 온다. 큰아버지 댁에서 하룻밤 잔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잔다. 나는 문득 네 시에 잠을 깬다. 어제 하루 내 몸이 퍽 고단했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굳이 더 눕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서 조용히 일어난다. 큰아버지 곁에 누워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여민다. 씻는방에 들어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다음, 빨래를 천천히 한다. 두 아이가 허물을 벗은 옷을 빨고, 세 사람 양말과 내 바지를 한 벌 빤다. 내 웃옷도 마저 빨아야 하는데, 이따 아이들을 씻기면서 나올 새 빨랫감과 함께 빨자고 생각한다.


  빨래를 마치고 나서 옷걸이에 꿰어 넌다. 내가 내 어버이와 함께 살던 무렵에는 빨래기계가 옷을 빨아 주었다. 그무렵에는 ‘몸을 씻으며 흐르는 물’에 옷가지를 적셔서 곧바로 손빨래를 한다는 생각을 못 했다. 제금을 나서 혼자 살림을 꾸리던 때부터 저절로 이렇게 씻고 빨래를 한다. 누구나 제금을 나서 홀로 지낼 적에는 이러한 몸짓이 될까. 먼 옛날부터 사람들 몸에 밴 버릇이나 삶일까. 곧 동이 트겠구나. 겨울이 거의 저문다. 4348.2.6.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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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2-07 23:36   좋아요 0 | URL
`제금을 나서`는 무슨 뜻인가요? 그리고 손빨래를 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

숲노래 2015-02-08 04:12   좋아요 1 | URL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길에 살림을 따로 나는 일이 `제금`입니다.

빨래는 옛날부터 누구나 손으로 했을 뿐이에요. 그뿐입니다. 삶을 손으로 짓듯이 빨래도 손으로 하지요~

민들레처럼 2015-02-08 10: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시집 장가를 가다와 비슷한 말이네요. 자꾸 몸이 편해지려고만 하는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숲노래 2015-02-09 18:38   좋아요 1 | URL
시집 장가를 간다고 할 적에는 `그냥 그렇게 짝을 만난다`이고,
`제금`을 난다고 할 적에는,
나이와 얽매이지 않고
`홀로서기`를 하도록 스스로 일어선다는 뜻입니다 ^^
 

빨래하느라 전화 못 받는 아버지



  오늘은 큰가방을 빨 생각이었다. 큰가방에다가 곁님 옷가지랑 이럭저럭 꾸려서 빨래기계를 쓰려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하늘이 꾸물거린다. 이런 날에는 가방을 빨지 못한다. 가방이 잘 마르려면 해가 나야 하니까. 하는 수 없이 빨래를 하루 미룰까 하다가, 자잘한 옷가지 몇은 손으로 빨까 싶어서 조물조물 주무른다. 아마 이동안에 전화가 온 듯하다. 그렇지만, 빨래에 마음을 듬뿍 쏟느라 전화기 울리는 소리를 못 듣는다. 빨래를 하면서 생각을 가다듬는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내가 하는 일이 어떠한 숨결인지 헤아린다. 빨래를 마치고 기쁘게 넌다. 방바닥에 큰아이가 바이올린을 펼쳐 놓았기에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큰아이를 불러서 나즈막하게 타이른다. 얘 얘, 이렇게 바닥에 널브러뜨리면 밟을 수 있잖니, 얼른 상자에 담으렴. 척척 빨래를 너는 동안 쪽글이 온다. 빨래를 널 적에는 비빔질도 헹굼질도 안 하니 쪽글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빨래를 모두 널고 나서 홀가분하게 쪽글에 답글을 보낸다. 4348.1.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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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빨래란



  밀린 빨래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앞으로 해야 할 빨래가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빨래를 해서 옷을 깨끗하게 바꾸면, 나는 앞으로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다. 옷 한 벌을 깨끗하게 빨면, 나는 깨끗한 몸에 깨끗한 옷을 입혀서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다. 빨래는 오늘 하루에 모두 해치울 수 있지만, 굳이 모든 빨래를 하루에 다 해치우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이듬날 즐길 빨래를 오늘 모두 해치우면, 이듬날에는 재미난 놀잇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못 해서 빨래가 밀리면, 이듬날 즐길 빨래가 있다는 뜻이다. 이듬날에 빨래를 다 못하면 또 하루 뒤에 즐길 빨래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지어서 하루를 누린다. 4348.1.2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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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20 21:49   좋아요 0 | URL
너무 많이 밀려서 민망할 때도 있어요. ㅎㅎ

숲노래 2015-01-21 11:46   좋아요 1 | URL
ㅋㅋㅋ 그렇지요~ ㅋㅋ
빨래란 참 재미난 선물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