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2.


《검은 여우》

 베치 바이어스 글/햇살과나무꾼 옮김, 사계절, 2002.2.28.



이레쯤 앞서부터 곁님이 바늘을 깎는다. 우리 집에는 이런 나무 저런 나무가 제법 있다. 뜨개질을 할 적에도 온하루를 쏟아서 길디긴 날을 한 땀 두 땀 나아가는 곁님은, 겨울볕을 먹으면서 여러 날에 걸쳐서 바늘을 깎고 다듬는다. 손수 깎은 뜨개바늘은 값을 매길 수 없겠지. 손수 지은 뜨개옷도 매한가지이다. 삶이 다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스스로 기쁜 하루를 누리려고 지은 살림에 어떤 값을 매길까? 나물 한 줌에, 무 한 뿌리에 어떤 값을 매겨야 알맞을까? 온사랑을 담아서 쓴 동시 한 꼭지나 책 한 자락에 어떤 값을 매겨야 걸맞을까? 사고파는 값이 아니라, 즐기거나 나누거나 사랑이 흐르는 빛일 적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오늘이 되겠지. 《검은 여우》를 처음 쥔 지는 여러 해 되었으나 그만 까맣게 잊었다. 책상맡에서 퍽 오래 먼지만 묵은 책을 탈탈 털어서 펴는데 어느새 마지막 쪽을 넘긴다. 여우하고 마음으로 생각을 나눈 아이 마음이 대견스럽고, 이 아이를 너그러이 살핀 어른들이 고맙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별이 꽝 하고 터지지 않는 까닭을 알겠다. 비록 총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총을 팔아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있지만, 맨몸으로 따사로운 빛을 나누는 아이들이 있기에, 이 별은 푸르게 빛나는 보금자리가 될 테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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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3.


《일하지 않는 두 사람 6》

 요시다 사토루 글·그림/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19.11.30.



다섯걸음이 나온 뒤 세 해 넘게 여섯걸음이 나오지 않던 《일하지 않는 두 사람》. 드디어 나왔구나. 살림돈을 푼푼이 모은 끝에 드디어 장만해서, 큰아이가 ‘쌓기밥 차림종이’를 그리는 동안 읽는다. 앞선 다섯걸음을 떠올리니, 여섯걸음은 그림결이 많이 바뀌었다. 어라, 너무 바뀌었는걸?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이끄는 틀도 제법 달라졌다. 아, 어쩐지 다섯걸음째까지 좋았고, 여섯걸음은 좀 군더더기가 많지 싶다. 여섯걸음부터 새로 나오는 예전 벗은 반가우나, 오빠 쪽 동무 여자친구는 그리 반갑지 않다. “일하지 않는 두 사람”은 맞되 “즐겁게 살려는 두 사람”인 만큼, 이 대목에 더 마음을 기울이고, 그림결도 섣불리 건드리지 말고, 굳이 새로운 사람을 더 끌어들이려 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본다. 무엇보다도 “돈을 버는 일”이어야 살아가는 보람이 아니라는 대목을 수수하면서 부드럽게 짚으려는 얼거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차분하기를 빈다. 그렇다면 일곱걸음이 한국말로 나오면 장만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살짝 망설이리라. 좋았을 때만 떠올리고 싶달까. 큰아이는 어느덧 차림종이를 다 그렸다. 손수 지어서 먹는 밥을 손수 차림종이로 옮겨내어 그리니 멋지네. 다음달 도서관 얘기종이에 같이 담아서 보낼까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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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0.


《니코니코 일기 2》

 오자와 마리 글·그림/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2002.9.30.



열두 살 어린이한테 어떤 만화책을 새로 알려주면 좋을까 하고 헤아리다가 《니코니코 일기》를 오랜만에 집는다. 여느 학교를 다니면서 여느 영화나 연속극을 본 열두 살이라면 이 만화책도 좋을 만하겠는데, 살짝 아슬아슬하다 싶은 대목도 보인다. 그린님이 워낙 착한 만화를 빚는 분이기는 한데, 착한 만화를 그리려다가 곧잘 ‘생채기나 멍울을 어떻게 달래거나 씻는가’를 보여주려고 곁들이는 ‘생채기나 멍울’이라는 대목이 조금 걸린다. 곰곰이 본다면 이런 곁그림조차 없이 어떻게 줄거리를 엮겠느냐 말할 만하겠지. 열다섯 살 즈음이라면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할 텐데 싶으면서도, 열두 살이라고 얕게 보지는 말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다시 펴는 《니코니코 일기》는 더없이 아름답다. 이 만화가 한국말로 나온 지 열 몇 해가 흐르는데, 아직 이만큼 탄탄하면서 곱게 담아내는 한국만화를 찾기가 어렵다. 이제는 ‘난 아프거든!’ 하는 데에서 맴도는 한국만화는 봐주기 어렵다. ‘난 사랑해!’ 하고 노래하는 길목으로 한 칸씩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가시밭길도 꽃밭길로 바라보면 좋겠다. 생각해 보라. 얼핏 보면 가시이지만, 이 가시가 돋은 푸나무일수록 꽃이 훨씬 향긋하고 곱다. 찔레, 딸기, 장미, 탱자, 유자.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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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9.


《나는 초민감자입니다》

 주디스 올로프/최지원 옮김, 라이팅하우스, 2019.8.20.



전주에서 하룻밤 묵고 일어나서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까 하고 살피는데 누가 은행나무 이야기를 쓴 글을 읽었다. 그이는 은행알이 더없이 ‘역겨운’ 냄새라고, 이 나무를 매우 싫어하는 빛을 드러냈고, 이 글에 참 많은 이들이 손뼉을 치며 반기더라. 이렇게 말하는 분은 바로 이런 말이 ‘따돌림(차별)’이자 ‘금긋기(적으로 여기는 매도)’인 줄 못 느낀다. 못 느끼니까 나무이든 사람이든 함부로 따돌리고 금긋는 말을 쏟아내겠지. 숲 어디에서도 은행알을 고약하게 안 여긴다. 그러나 숲은 시멘트 아스팔트 플라스틱 화장품 석유 배기가스 농약 비닐을 끔찍하게 여긴다. 더구나 숲은 이 모두를 끔찍히 여겨도 고이 품고 오래오래 삭여서 정갈한 알갱이가 되도록 바꾸어 낸다. 《나는 초민감자입니다》라는 책을 읽는데,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초민감자’ 가운데 아주 으뜸이더라. 어릴 적부터 늘 어디서나 그랬다. 사람 아닌 것이 으레 말을 걸고, 무생물이라 여기는 것도 언제나 속삭인다. 글판이, 연필이, 버스 손잡이가, 라면 빈 자루가 말을 건다. 나무도 풀도 벌레도 모기도 말을 건다. 아직 덜 배웠을 적에는 이 갖은 소리가 고단하고 무서웠으나, 이제 이 소리를 하나하나 가르면서 새롭게 배운다. 은행나무야, 부디 마음을 풀어 주렴.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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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8.


《쵸가 말한다》

 강혜숙 글·그림, 상, 2014.11.15.



바쁘게 움직이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짐이 무거우면 택시를 부르자는 생각을 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서울마실을 하며 길손집을 미리 잡지 않았다. 모임자리를 마치고 가도 되겠거니 하는 생각은, 여느 날이면 틀리지 않았겠으나, 토요일 밤은 참말 틀렸네. 그래도 셈틀칸을 겨우 찾아내어 눈을 조금 붙였고, 날이 밝기 무섭게 전철을 타고 용산역으로 가서 기차를 탔다. 원주 〈터득골북샵〉에서 만난 《쵸가 말한다》를 떠올린다. 이 그림책을 장만해서 우리 집 아이들하고 읽으면 재미있겠네 하고 생각했으나, 이 책을 놓은 책시렁에 ‘예약도서’란 손글씨가 붙었더라. 아하, 그렇구나. 마을책집에 미리 여쭈어 이 그림책을 장만하시는 분이 즐거운 숨결을 누리겠네 하고 생각한다. 숲에서 태어나 자라는 자그마한 아이는 깊이 사랑을 받으면서도 근심걱정도 한몸에 받는다. 아이 어버이는 ‘왜 아직 말을 안 하지?’ 하고 안타까이 쳐다본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아이는 입으로 말을 안 할 수 있고, 느즈막히 터뜨릴 수 있다. 어버이는 아이 숨결을 읽고서 나누면 된다. 곱상히 생겼든 말든 대수롭지 않다. 마음빛이 바로 목숨이요, 마음결이 바로 우리 모습일 테니까. 아이는 홀로 숲에 깊이 깃들며 새로운 길을 스스로 배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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