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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니스 5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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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잔뜩 두려운데, 어떡해야 할까요



《해피니스 5》

 오시미 슈조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9.8.25.



“나도 죽여 줘. 스스로는 죽을 수 없어, 나. 틀렸어. 난 이제. 아아, 왜지?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53쪽)



  털어놓기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에 참으로 어렵겠지요. 힘이 들기도 할 테고요. 제발 빨리 지나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나, 차라리 죽어서 사라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죽으려 해도 도무지 스스로 못 죽겠구나 싶어 더욱 가슴이 조이면서 더더욱 두려웁기까지 합니다.


  뭔가 잘 해내거나 멋진 모습을 보였다면 ‘오늘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일이 없겠지요. 뭔가 안되거나 틀렸거나 일그러지거나 잘못되었다고 느낄 적에 ‘제발, 이 오늘이여 빨리 지나가 주오’ 하고 바라곤 합니다.


  참으로 그 털어놓기 어려운 일이 왜 찾아올까요? 왜 우리는 그런 일을 겪어야 할까요? 꼭 그런 일을 겪어야만 할 까닭이 있을까요?



“난 알아.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유우키, 네 잘못이 아니야. 넌 필사적으로 노력했어.” (58쪽)



  곪은 곳은 터지기 마련입니다. 곪은 곳이 터지는 까닭은 이제 고름덩이를 더는 안 품고 싶기 때문입니다. 낫고 싶어서, 곪은 살점이 아닌 말끔한 살점이 되어 싱그럽고 튼튼하게 살아나고 싶어서, 드디어 곪은 곳이 터집니다.


  뭔가 일그러지거나 틀렸구나 싶은 일을 스스로 저지르고 말았다면, 스스로 마음에 맺힌 어떤 응어리나 고름이 이제는 터져서 사라져야 할 때라는 뜻이지 싶어요. 다만 응어리나 고름이 터질 적에는 좀 아픕니다. 아니, 꽤 아플 수 있고, 어쩜 이다지도 아프냐 싶어, 차라리 죽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속으로 이렇게 속삭이거나 외쳐 봐요. ‘어디까지 아픈지, 얼마나 아픈지, 앞으로도 내내 아픈지, 다 맞아들여 주겠어’ 하고요. 기쁜 날에 이 기쁨을 한껏 누리듯, 슬프거나 괴로운 날에는 이 슬픔하고 괴로움을 고스란히 맞아들여서 삭여내고는 훌훌 날리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 봐요.



“지금까지 있었던 일 다 말해 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르쳐 줘요. 도망치면 안 돼요. 현실을 직시해야 해요!” “좀 닥치지 그래. 별것도 아닌, 무지몽매한 고깃덩이 주제에.” (79∼80쪽)



  《악의 꽃》이란 만화책이 있습니다. 모두 열한걸음에 이르는 이야기를 펴는데, 이 열한걸음을 읽어내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만화에 나오는 아이가 왜 그러한 짓을 저질렀는지, 이러면서 왜 그러한 말을 터뜨리는지, 이러고서 왜 그러한 길을 가는지, 모두 어지럽고 어수선합니다. 무엇보다도 왜 스스로 스스럼없이 털어놓거나 밝히지 못할까요? 어느 때에 어떻게 속내를 터뜨려서 털어놓아야 할까요?


  《악의 꽃》을 그린 분은 《해피니스》라는 이름을 붙인 만화도 그립니다. 《해피니스》는 이제 다섯걸음째 나옵니다. 《해피니스 5》(오시미 슈조/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9)까지 읽어내면서 ‘마음앓이·마음생채기(트라우마)’란 무엇이고 어떻게 씻거나 달랠 수 있는가를 고요히 곱씹습니다.


  스스로 뜻하지 않았으나 ‘흡혈 괴물’이 된 아이가 있다고 해요. 그런데 ‘흡혈 괴물’이 참말로 괴물인지, 흡혈 괴물을 괴물로 여기면서 바라보고 실험체로 삼는 어른들이 괴물인지 헷갈릴 노릇입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학교 안팎에서 ‘학교 폭력’이나 ‘학교 따돌림’ 같은 말을 꺼내곤 하는데, 학교가 배움터 아닌 입시싸움터인 흐름으로 치닫게 하기 때문에 폭력이나 따돌림이 불거진 셈 아닐까요? 또 어른들은 툭하면 ‘청소년 언어파괴’ 같은 말을 툭툭 내뱉는데, 정작 어른들부터 한국말을 엉터리로 쓰면서 망가뜨릴 뿐 아니라, 이 삶터에 불법이나 무법이 판치도록 하지 않았을까요?



“아, 아뇨. 정말 괜찮아요. 그냥, 10년 전 사고났을 때 상처예요. 자꾸 눈에 띄면 주위 분들도 신경 쓰일 테고, 폐가 되잖아요? 그래서 감췄던 건데, 덕분에 벗는 계기가 됐어요.” (178쪽)



  만화책 하나로 얼마나 마음앓이를 달래거나 마음생채기를 씻을 수 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잔뜩 두려울 적에는 그 두려움을 그대로 마주할밖에 없습니다. 참으로 무엇이 얼마나 두려운가를 똑바로 바라볼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에서 누구 잘못인가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잘못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잘못은 언제라도 따질 수 있습니다만, 먼저 살필 대목은 ‘오늘 이곳에서 어떤 마음’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어떤 마음’으로 다잡아야 스스로 두려움을 새로움으로 바꾸어 내면서 ‘사랑이란 마음’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이지 싶습니다.


  두려운 어떤 일이 우리 마음에 있다면, 우리 스스로 아직 사랑을 모르거나 사랑을 등졌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우리가 이웃이나 동무나 한식구를 사랑하려면, 먼저 우리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판에, 내가 누구를 사랑할까요?



“누나. 벌써 내가 있는 곳으로 오면 안 돼.” “토모오, 어째서? 이제 겨우 다시 만났는데. 하고 싶은 얘기가 진짜 많은걸.” “안녕. 누나.” (102쪽)



  ‘사람들’이라기보다 ‘어른들’이 보이는 앞뒤 다르거나 겉속 다른 모습에 펄펄 끓는 마음을 그냥 꾹꾹 누르던 ‘아이들’이 어느 날 하나둘 이 불길을 터뜨린다고 해요. 이 불길을 터뜨리면서 그만 이 불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몰라 헤맨다고 합니다. 이 불길에 맞아 일찍 삶을 마감한 여러 아이가 있고, 이렇게 삶을 마감한 아이를 동생으로 눈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모두 ‘기쁨’이나 ‘보람’하고는 멀다고 할 만한 노릇인데요, 이러한 삶길을 담아낸 만화책 이름이 《해피니스》입니다. ‘해피니스’ 아닌 ‘언해피니스’여야 알맞지 싶기도 하지만, 우리는 기쁨이나 보람을 찾으려다가 자꾸 헤매고, 넘어지고, 서로 생채기를 내거나 건드리면서, 끝내 두려움이란 마음을 쌓지 싶습니다. 늘 이 한 마디로 돌아오고야 마는데, ‘스스로 사랑하기’라는 마음으로 그 커다란 두려움을 찬찬히 바라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두려움한테 이렇게 속삭여 봐요. ‘두려움아, 넌 내가 아니야. 아니, 넌 또다른 나일 수 있지. 그런데 두려움아, 네 옷을 벗으렴. 넌 두려움이 아닌 사랑이잖아. 네 참모습을 보이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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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스포츠 이야기 - 스포츠를 통해 보는 세상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2
탁민혁.김윤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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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거리 스포츠’는 이제 그만



《10대와 통하는 스포츠 이야기》

 탁민혁·김윤진

 철수와영희

 2019.5.31.



  1982년이라는 해에 프로야구가 생겼어요. 곧이어 프로축구나 프로씨름이나 프로농구나 프로배구가 생겼는데요, ‘프로’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운동경기·스포츠는 이른바 웃돈이 오가면서 돈벌이가 되는 길로 확 달라집니다. 이런 이름이 붙기 앞서까지는 누구나 가볍게 배워서 즐거이 누리는 놀이판이었다고 할 만해요.


  저는 인천이란 고장에서 나고 자라면서 프로야구를 실컷 보았습니다. 그러나 프로야구 때문에 야구를 실컷 보지 않았고, 프로야구가 없었어도 마을야구를 했어요. 그무렵에는 어느 마을이든 아이가 넘실거렸는데요, 조금 살림이 좋은 집 아이라면 방망이를 챙겨 오고, 살림이 덜 좋으면 공을 챙겨요. 살림이 모자라면 맨손으로 오거나 국민학교에서 쓰는 갓, 이른바 학교 모자를 챙깁니다. 방망이 있는 아이가 안 오면 마땅한 나뭇가지를 주워서 공치기를 했어요. 어느 날에는 공 하나로 모여 공차기를 했고요.



한국이 올림픽 메달을 딸 정도로 잘하는 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우리들이 쉽게 배우고 접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아요. (33쪽)



  텔레비전이 이제 슬슬 집집마다 하나씩 놓이던 이무렵, 아버지 어깨너머로 여러 운동경기를 지켜보았고, 동무들하고 야구장 가까운 언덕을 찾아가서 먼발치로 경기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요새야 경기장을 판판한 터에 올립니다만, 예전에는 마을 한복판에 경기장이 선 터라, 언덕받이라든지 건물 옥상을 찾아가서 슬쩍슬쩍 넘겨다보곤 했어요.


  이무렵 야구장갑을 사주는 어버이는 드물었습니다. 야구장갑은 만지기도 어려웠는데, 아무튼 푼푼이 돈을 모아 공 하나를 장만하면, 이 공으로 온 아이들이 신나게 하루를 누릴 만했어요.



왜 축구 연맹은 힘이 센 ‘대기업’의 광고는 환영하면서도, 힘이 약한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골 세리머니는 ‘정치적’이라고 금지하는 걸까요? 당연히 돈 때문이에요. (92쪽)



  이제 텔레비전뿐 아니라, 셈틀로, 또 손전화로 운동경기를 볼 수 있습니다. 운동경기를 틀어주는 곳은 광고삯을 받는데, 경기를 틀어주는 틈틈이 광고를 곁들일 뿐 아니라, 운동선수는 옷에 온갖 광고를 덕지덕지 붙입니다. 오로지 돈으로 경기를 뛰고, 돈으로 경기를 이기거나 지며, 돈으로 이 지구별 곳곳에 운동경기 이야기가 퍼집니다.


  문득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이름난 사람이나 구단이 경기를 할 적에 이를 지켜보는 기자가 매우 많아요. 경기 이야기를 글로 담는 기자도, 사진으로 찍는 기자도 많지요. 그리고 이런 글하고 사진을 읽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거나 짚거나 챙기거나 알아보는 기자는 얼마나 될까요? 여느 삶터를 깊이 파고들거나 여느 삶자리를 두루 돌아보면서 글이나 사진으로 담아내는 기자는 몇이나 있을까요?



더 많은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더 잘하는 운동선수들이 필요하고, 그런 선수들을 키워 내기 위해서 학교는 어린이 때부터 맘껏 놀 틈도, 수업을 들을 기회도 주지 않고 운동만 시켰거든요. (60쪽)



  《10대와 통하는 스포츠 이야기》(탁민혁·김윤진, 철수와영희, 2019)를 읽으면서 ‘스포츠·운동경기’를 생각합니다. 1988년에 태어난 ㅎ신문은 ‘운동경기’라든지 ‘방송편성표’라든지 ‘주식시세표’를 다루지 않겠노라 했으나, 이 당찬 몸짓은 몇 해 가지 못했습니다. 운동경기를 안 다루는 신문이나 방송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로지 운동경기만 하는 이들이 늘면서 여느 사람들이 쉽게 누릴 수 있는 놀이판은 사라지고, 돈을 들여야 구경할 수 있는 커다란 경기장하고 돈을 들여서 이모저모 갖추어야 할 수 있는 운동경기가 퍼집니다. 그리고 운동경기 이야기만 다루는 신문이나 잡지가 무척 많아요.



‘스포츠는 남자들만의 것’이라고 담을 쳐 놓고 오랫동안 거기에 여성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 아닐까요? (123쪽)



  몸을 튼튼히 다스리면서 마음을 맑게 북돋우려는 뜻으로 운동경기를 한다는 말을 이제는 더 안 하지 싶습니다. 이름을 더 날리고 돈을 더 버는 길로 치우치는 운동경기이지 싶습니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면 나라사랑이 되고, 더 빼어난 솜씨인 몇몇 사람을 지켜보면서 손에 땀을 쥔다는데, 이러다 보니 메달에 눈이 멀어 주먹다짐이나 뒷돈이 불거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운동경기에 돈을 걸고, 운동선수 스스로 뒷돈을 받아서 경기를 이리저리 꾸미는 일까지 벌어져요. 또, 갖가지 볼썽사나운 일을 터뜨리기도 하고, 어린이나 푸름이를 마치 ‘메달 기계’가 되도록 다그치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어느 누구라도 약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기사도라고 하면 어떨까요? (134쪽)



  《10대와 통하는 스포츠 이야기》는 참으로 드문 책입니다. 푸름이한테 스포츠가 무엇인가 하고 알려주는 책도 드뭅니다만, 어른 사이에서도 ‘사랑받는 운동선수나 기록’이 아닌 ‘스포츠하고 얽힌 숱한 삶과 삶터 이야기’를 짚는 책도 드뭅니다. 생활체육이란 이름이 낡은 말이 되어 버렸구나 싶은 흐름을, 입시지옥 못지않게 또아리를 튼 엘리트체육이라는 흐름을, 앞으로는 같이 어울리고 함께 아끼면서 나아갈 길을 새로 찾자고 하는 목소리를 내는 책이 참으로 드뭅니다.



(뉴질랜드는) 농장에서 일하다 장화를 신고 와서 골프를 치는 현지 사람들도 있었어요. 한국이었으면 격식에 어긋난다며 쫓겨났을 텐데 말이죠. (219쪽)



  어떤 옷이나 연장을 챙겨야 그 운동경기를 할 만한 터전인지, 아니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가볍고 즐겁게 몸을 움직이면서 하루를 누릴 만한 터전인지를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돈을 치러서 구경하러 가는 경기장이 더 커져야 하는지, 집 가까이 너른터에서 누구나 마음껏 여러 가지 운동을 누릴 수 있어야 즐거울는지를 헤아려야지 싶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자동차를 줄이고 찻길을 줄여서 마을마다 너른터를 넓히면 좋겠습니다. 나무를 심는 빈터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어른도 가볍게 공을 차거나 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숱한 운동선수가 풋풋한 나이에만 전문 운동선수로 뛰다가 아주 젊은 나이에 그만두는 흐름은 사라지면 좋겠어요. 엄청난 돈을 퍼붓고 아름드리 숲을 짓밟으면서 큰 경기장을 짓는 세계대회나 올림픽은 이제 그만해도 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아늑하면서 즐거운 삶을 지을 터전이 있고 난 뒤에라야 큰 경기장을 짓든 세계대회를 치를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생활체육이 없이 엘리트체육만 넘실댄다면, 아이들이 어떤 놀이라도 신나게 벌일 빈터나 풀밭이 없이 우람한 경기장만 늘리려 한다면, 우리 몸이며 마음도 그리 안 튼튼하고 썩 안 아름답겠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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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평화가 뭐예요? 어린이 책도둑 시리즈 7
배성호 지음, 김규정 그림 / 철수와영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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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아저씨’, 이 책을 같이 읽어요



《선생님, 평화가 뭐예요?》

 배성호 글

 김규정 그림

 철수와영희

 2019.6.25.



영어 단어 ‘peace’의 어원이기도 한 pax는 힘이나 군사력을 써서 지키는 평화를 뜻하기도 해요. 이런 평화는 위험할 수도 있어요. 힘으로 이룩한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16쪽)



  흔히들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책’으로 잘못 압니다. 그러나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읽는 책’입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이렇게 느꼈고, 이처럼 느끼는 이웃님들이 오랫동안 이 뜻을 널리 밝히기도 했으며, 요새는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을 놓고서 ‘0살부터 100살까지 읽는 책’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도 합니다.


  자, 그래서 저는 2019년 늦여름을 떠들썩하게 하는 한복판에 선 ‘조국 아저씨’한테 어린이책 한 자락을 같이 읽자고 여쭈려고 합니다.


  저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아닌 ‘조국 아저씨’로 부를 생각입니다. 벼슬자리에서는 ‘법무부장관 후보자’일는지 모르나,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는 이웃으로 본다면, 그대는 저한테 조국 아저씨일 뿐이거든요.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평화로운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에요.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여성이기 때문에 또는 생김새가 달라서 등등 여러 이유로 일상에서 차별을 받는다면 평화를 느낄 수 없을 테니까요. (18쪽)



  같이 읽자고 여쭐 책은 《선생님, 평화가 뭐예요?》(배성호·김규정, 철수와영희, 2019)입니다. 150쪽이니 가볍습니다. 사이에 그림이 꽤 많고 글밥이 적어서, 어른으로서는 매우 쉽고 빠르게 다 읽어낼 만하기도 합니다.


  제가 이 책을 같이 읽자고 여쭈려는 까닭은 아주 쉽고 단출해요.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아닌, 아이 어버이로서, “평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를 묻고 싶거든요.


  총칼이 춤추고 미사일이 오가는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으면 평화일까요? 그대가 벼슬자리에 서야 비로소 사법 개혁을 이룰 수 있을까요? 어느 분이 말하기도 했습니다만, 사법 개혁을 이룰 참하고 슬기로우며 곧바른 분이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예전 정부나 이 정부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더라도, 대쪽같으며 착하고 아름답게 법을 다스리려고 하는 분은 어김없이 있다고 여겨요.



우리나라 최전방 248km에 이르는 군사 분계선에는 무려 100만 개가 넘는 지뢰가 묻혀 있어요. 이로 인해 해마다 지뢰 사고가 끊이지 않는답니다. 피해자 수는 1000명이 넘어요. 우리나라는 단위 면적당 지뢰 수가 가장 많은 불명예 국가예요. (75쪽)



  저는 1995∼1997년에 강원 양구에서 군대살이를 했습니다. 요즘 강원 양구에서 장사하는 분들이 서울까지 찾아가서 어느 군부대를 없애지 말라면서 모임을 하고 목소리를 낸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있지요, 군부대 곁에서 군인 주머니를 날름날름 울궈낸 양구 분들이 참 많았어요. 우리 어버이가 1996년 여름에 꼭 하루 저를 보려고 무척 먼걸음을 하신 적 있는데, 그때 ‘허름한 여인숙’에서 두 어버이하고 저하고 세 사람이 묵는데, 한 사람 앞에 6만 원씩 받았답니다. 2019년이 아닌 1996년에 ‘세 사람 6만 원’이 아닌 ‘세 사람 따로 6만 원, 그러니까 18만 원’을 받더군요. 그무렵 양구에서 군인한테 장사를 하는 가게에서는 새우깡 과자 하나에 1000원을 받았고, 소주는 한 병에 5000원을 받았어요. 참 재미난 셈을 하던 분들이지요. 군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우리 아버지가 면회를 놓고서 한숨을 쉬셔요. 고작 하루 면회를 다녀오는 길에 100만 원을 써야 했다더군요.


  조국 아저씨, 같이 생각해 보겠어요? 군대 곁에서 군인한테 장사를 하는 그분들은 왜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바가지를 씌워야 했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씌운 바가지는 ‘법에는 딱히 어긋나지 않는다는 장사’인지요? 법을 잘 아신다면, 법이 아름답게 흐르도록 다스리려는 길에 서겠다면, 이 대목을 좀 또렷하게 밝혀 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법에는 딱히 어긋나지 않는다는 장사’를 바꾸어 낼 마음이 있는지 묻고 싶기도 해요.


  아무튼 저는 군대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아름드리숲에 낫하고 삽을 한 자루씩 챙겨서 오른 뒤에 나무를 마구마구 베어내고 삽질을 마구마구 해서 새 지뢰를 묻고 새 철조망을 까는 일을 했습니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일이지만, 그런 일이 바로 군인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지만 미국인들은 2400조 원을 퍼부은 이 전쟁이 실패했다고 결론 내렸어요. 미군 4500명, 이라크인 18만 명이 숨진 데다 폭격을 퍼부었던 곳에선 기형아 출산 같은 2차 피해가 일어나는 동 전쟁으로 인해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기 때문이에요. (86쪽)



  나라를 이끄는 길(법)을 바로세우려 한다면, 나라에 앞서 마을을 먼저, 또 마을에 앞서 집을 먼저, 그리고 집에 앞서 우리 스스로 바르게 나아가는 길에 서야 한다고 느낍니다.


  생각해 보셔요. 조국 아저씨가 그대 아이를 어떤 ‘좋은 대학교나 대학원’에 보내려고 한 일은 틀림없이 ‘법에는 딱히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 일이면서 ‘둘레에서 으레 하는’ 일이었다고 느낍니다. 그 일에 ‘법에 어긋났다’면 그런 일을 섣불리 할 사람도 없을 테고, 그런 일을 해서 대학교나 대학원에 들어가는 일도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더 깊이 생각해 보기로 해요. 조국 아저씨가 그대 아이한테 시켰던 그 일을 ‘이 나라 모든 수험생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까요?


  법에 안 어긋났다고 해서 ‘착하거나 옳거나 아름다운’ 일이 되지 않습니다. 법만 안 어겼을 뿐 ‘매우 나쁘거나 그릇되거나 슬픈’ 일이 수두룩합니다. 벼슬자리란, 법을 안 어기기면 하면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몸하고 마음을 바쳐서 착하고 옳으며 아름답게 나아가는 자리라고 느낍니다. 이름값도 내려놓을 뿐 아니라, 주머니에 든 돈도 다 내려놓아야 할 테고요, 그동안 이름값하고 돈으로 얻은 것도 모조리 내려놓은 뒤에라야 벼슬자리에 설 노릇이라고 느껴요. 이렇게 한 뒤에 비로소 ‘사법 개혁’을 할 만하겠지요.



어린이 친구들도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요. 장난감 총 같은 무기를 가지고 놀지 않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장난감 무기를 책으로 바꿔 주는 행사가 있었어요. 어린이들이 총이나 칼을 가지고 놀면서 폭력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생각하면서 놀이 문화를 바꿔 나가는 것이지요. (92쪽)



  미국은 2400조라고 하는, 참으로 터무니없다 싶은 돈을 들여서 이라크하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2400조라고 하는 돈을 이렇게 써야 이 지구에 평화가 깃들 수 있는지 아리송한데요, 우리는 어떤 평화로 나아가야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어떤 민주와 평등으로 거듭나야 즐거울까요?


  아무리 장난감이라고 하더라도 총은 총이고 칼은 칼입니다. 장난감 총으로 겨누어도 ‘사람을 죽이는 짓을 흉내내’는 셈입니다. 장난감 칼을 휘둘러도 ‘사람을 짓이는 짓을 따라하’는 꼴입니다.


  법그물에 맞게 어떤 일을 하는 몸짓이라면 사법 개혁을 할 수 없지 싶습니다. 개혁이란, 뜯어고치기인데, 뜯어고치자면 법을 새로 손질하는 일일 텐데요, 법무부장관 후보자란 자리가 아닌, 아이 어버이란 자리에서 사람들 앞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를 먼저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하버는 평화로운 시기에는 과학자가 세계에 속하지만 전쟁 중에는 자신의 국가에 속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면서 아내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하버는 1915년 자신이 개발한 염소 가스를 벨기에에서 사용해 연합군 수천 명을 죽였어요. 임머바르는 하버를 비난했어요. 그로부터 10일 뒤 하버가 독가스로 러시아군을 공격하러 떠나는 날 아침, 임머바르는 과학자는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그럼에도 하버는 끝내 독가스를 사용했고,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었어요. (101쪽)



  노벨상을 받았다는 하버란 이는 ‘나라사랑’이 끔찍한 나머지, 그 똑똑한 머리로 독가스란 화학무기를 만들어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버란 이이는 ‘과학자는 싸움판에서 더 센 무기를 만들어 내야 나라사랑이다’ 하고 외쳤답니다. 하버란 이를 곁님으로 둔 임머바르란 분은 ‘화학무기 발명가’로 바뀐 이이를 돌려세우려고 무던히 애썼으나 끝내 손쓸 수 없어 슬픔에 잠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요.


  나라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아름나라가 되도록 사법을 제자리로 돌리는 일은 누가 어떻게 할 노릇일까요. 조국 아저씨는 왜 이녁 아이한테 ‘논문 이름값’에 ‘대학교 이름값’에 ‘대학원 이름값’에 ‘장학금’을 안기려고 했는지요? 굳이 그런 이름값이 있어야 아이가 이 땅에서 즐겁고 아름다운 길을 걸어가는 어른으로 클 수 있다고 여기셨는지요?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아닌, 아이 어버이란 자리로 오시면 좋겠습니다. 아이 어버이란 자리에 서서 어린이책을 새삼스럽게 같이 읽고 아름다운 마음을 차근차근 같이 가꾸면 좋겠습니다. 가을로 접어들려는 풀밭마다 가득한 풀벌레 노랫소리를 같이 듣고서, 아름나라는 어떤 길로 나아갈 적에 다같이 즐겁게 노래할 만한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풀밭에서 노래하며 가을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풀벌레는 이름값을 내세우거나 거머쥐지 않습니다. 개혁이란, 사법 개혁이든 교육 개혁이든 문화 개혁이든 정치 개혁이든, 착하고 상냥한 어버이 마음으로 할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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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킨 꿈 - 땅에서 배운 십 년
한승오 지음 / 강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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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84



‘내 땅’을 가꾸려는 꿈

― 삼킨 꿈, 땅에서 배운 십 년

 한승오 글

 강 펴냄, 2012.5.16.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한승오 님이 쓴 산문책 《삼킨 꿈, 땅에서 배운 십 년》(강,2012)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기에, 한승오 님 글에는 시골내음과 흙내음이 흐릅니다. 시골에서 겪은 이야기를 쓴 글이고, 시골에서 바라보는 사회를 돌아보는 글입니다. 흙을 만지면서 배운 이야기를 쓴 글이며, 오래도록 흙을 만진 이웃 할매와 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옮겨적은 글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살기에 땅한테서 배웁니다. 시골에서 나무를 만지면서 살면 나무한테서 배워요.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한테서나 배우고, 모두한테서 배웁니다. 풀 한 포기한테서도 배우며, 나비 한 마리와 벌레 한 마리한테서 배워요.



.. 한평생 농사만 지어 다섯 자식을 키운 팔순의 할머니가, 고추가 흙냄새를 맡았다고 그랬다 … 과연 저 어린 모가 생명의 춤을 파랗게 출 수 있을까 … 그 딱새가 작년과 같은 딱새인지 그 새끼인지는 모르겠다. 꼭 그 집에 날아들어 빈집을 고치고 거기에 다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  (11, 13, 20쪽)



  딱새를 바라본 한승오 님은 딱새한테서도 삶을 배웁니다. 그럼요, 그렇지요. 제비를 보았으면 제비한테서 삶을 배우고, 까치나 까마귀를 보았으면 까치나 까마귀한테서 배웁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예부터 지구별 모든 곳에서는 모든 이웃을 곁에 두면서 배웠습니다. 둘레에 있는 이웃사람도 나를 가르치는 숨결이고, 내가 먹는 밥도 나를 가르치는 숨결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뿐 아니라, 새와 벌레와 짐승과 물고기도 우리를 가르치는 숨결이에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학교만 다니면서 학교에서만 배웁니다. 학교 바깥에서 ‘우리는 둘러싼 모든 이웃사람’하고 ‘모든 숨결’한테서 배우는 길이 가로막힙니다. 더욱이,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학교에서 쓰는 교재와 교과서 언저리에서만 배워요. 다른 책이나 스승한테서 배울 길이 막힙니다.



.. 땅을 잃은 사람들은 돌아갈 땅이 없다. 땅을 떠난 사람들은 땅에 돌아가리라는 마음을 망각한다 … 대문 밖 벽에 걸어둔 호미가 없어졌다. 벽에 못을 박아, 거기에 삽, 낫, 호미 따위를 걸어두었더니, 이웃 아주머니가 도둑이 훔쳐갈지 모르니 그러지 말라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는, 설마 어떤 도둑이 낫이나 호미를 가져갈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호미가 없어졌다 ..  (56, 73쪽)



  스승이 훌륭하면 제자가 훌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이 훌륭하더라도 제자는 안 훌륭할 수 있습니다. 한편, 스승이 안 훌륭하더라도 제자가 훌륭할 수 있어요.


  학교를 다니면 학교에서 배웁니다. 스승한테서 배우려 하면 스승이 보여주는 몸짓과 말짓과 삶을 고스란히 배웁니다. 더 나은 배움이 없고, 덜떨어지는 배움이 없습니다. 모두 배움입니다. 무엇보다, 어느 배움이든 받아들이는 사람 몫입니다. 배우려 하는 마음이 없다면, 스승이 아무리 훌륭하거나 책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아무것도 못 배워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더라도 흙빛과 흙내음과 흙결을 제대로 살피려 하지 않는다면, 열 해를 살거나 백 해를 살거나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배우려는 마음이 있다면, 시골내기 아닌 도시내기라 하더라도, 흙 한 줌을 만지면서 이 땅이 우리한테 가르치려 하는 숨결을 넉넉히 배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도시에서도 땅을 배우고, 시골에서도 땅을 배워요. 우리는 대학생으로서도 배우고, 어린이로서도 배웁니다. 젊은이로서도 배우며, 할머니나 할아버지로서도 배웁니다.



.. 사오 년 전 우연히 보았다. 볍씨를 물에 담글 때 비닐하우스 옆 작은 벚나무가 꽃망울을 하얗게 터뜨리는 것을. 그것은 날짜의 옷을 훌훌 벗어던진 시간의 알몸, 바로 생명의 시간 … 지난봄 나에게 땅을 건네던 날, 최소한 오 년 동안은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나의 말에 그는 말했다. 오 년이고 십 년이고 계속 지을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데 아내와 내가 일 년 농사 끝에 그 많은 피를 다 뽑아 놓으니 이제 와서 ..  (81, 87쪽)



  한승오 님은 시골에서 땅을 빌려서 피를 뽑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해 동안 애써서 피를 죄다 뽑았더니, 이듬해에 땅임자가 그 땅을 내놓으라고 했대요. 이런 일은 시골에서 흔히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 해이고 스무 해이고 빌려주겠다고 하지만, 막상 한 해가 지나서 입을 싹 씻는 일입니다.


  내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삶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땅임자를 탓할 수 없어요. 빌린 땅이고, 땅을 빌리면서 ‘문서’로 몇 해 동안 빌리겠노라 하고 밝히지 않았으니까요. 문서로 밝혔다 하더라도, 땅임자가 우격다짐으로 나서면 손을 들어야 합니다. 땅임자가 우격다짐으로 나서지 않아도 ‘시골에서 살려’면 땅임자 말을 들어야 하기도 합니다.



.. 언제 옥수수를 따야 하는지를 몰라 허둥대는 내게 옆집 아주머니가 그랬다. 옥수수수염이 잘 익었을 때 따라고 … 펌프는 고장이 났다. 이번 한 번만 물을 대면 되는데. 고장 난 펌프를 뜯어내 읍내까지 가서 고쳐 오는 일이 번거로웠다. 대신 비를 기다리기로 작심했다 … 아주머니의 농약과 화학비료가 그 물에 섞여 내 논으로 들어온다. 나는 농약 한 방울 화학비료 한 점 논에 뿌리지 않건만, 내 논은 어쩔 수 없이 농약과 비료에 몸을 섞는 것이다 ..  (98, 145, 153쪽)



  그런데, 한승오 님은 ‘빌린 땅에서 애먼 품 팔기’뿐 아니라, 웃논에서 흘러드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일도 겪습니다. 참말 한승오 님한테는 왜 자꾸 이런 일이 닥칠까요? 시골에서 아름답게 삶을 짓고 싶은 사람한테 왜 이런 가시밭길이 끝없이 일어날까요?


  시골살이가 힘들다는 뜻일까요? 그렇지만, 도시에서도 이처럼 힘든 일이 있어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안타깝거나 슬픈 일이 툭툭 불거집니다.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일도 샘솟고, 밉거나 괴로운 일도 찾아옵니다.


  《삼킨 꿈》을 덮습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누구나 ‘내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내 땅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집’을 누구나 숲으로 가꾸면서, 열매도 얻고 장작과 나무도 얻어서, 손수 집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마다 스스로 삶을 알차게 지으면서 이웃이 서로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부터 스스로 내 보금자리를 기쁘게 지으면서 다 함께 사랑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쓴맛을 보면서 꿈을 삼킵니다. 그러나, 바로 오늘 이곳에서 꿈을 이루고 싶기에 새롭게 꿈을 꿉니다. 슬픔이 찾아오면 슬픔대로 받아들이면서 삭입니다. 이러면서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서 웃습니다. 왜냐하면, 땅은 늘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기다리거든요. 우리가 스스로 다시 일어나서 흙을 살뜰히 보듬어 주기를 기다려요. 4348.4.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사람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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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세상을 바꾸는 날
세반 스즈키 지음 / 아이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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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환경책 읽기 46

 


어른들 거짓말이 지구를 망가뜨려
― 당신이 세상을 바꾸는 날
 세반 스즈키 글,이혜원 옮김
 아이터 펴냄,2003.11.26./7500원

 


  마당에 놓은 평상으로 크레파스와 종이를 갖고 나갑니다. 아이들은 집안에서 베개놀이 이불놀이를 합니다. 무더운 한여름에 웬 베개놀이 이불놀이인가 싶지만, 놀고 싶으니 놀아야겠지요. 얼추 열흘만인가, 작은아이가 밤에 오줌을 두 차례 누었습니다. 지난 열흘 동안 밤에 쉬 마려우면 낑낑대는 소리를 냈기에 잘 알아채고 작은아이 안아서 오줌그릇에 쉬를 받았는데, 지난밤에는 두 차례나 그냥 바지에 싸서 방바닥을 흠뻑 적셨습니다.


  아침이 되어 두 아이 모두 일어난 뒤, 나무깔개를 걷어 마당에 내놓아 볕바라기 시킵니다. 큰 이불과 큰 베개도 볕바라기 시킵니다. 작은 이불과 작은 베개는 방에 그대로 두는데, 두 아이는 인형을 재우느니 서로 눕느니 하면서 베개와 이불로 놉니다.


  아이들한테는 무엇이든 놀이가 될 테지요. 아이들로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온갖 놀이 실컷 누리며 살아가야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까르르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혼자 조용히 나무그늘 평상에 앉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면 되고, 나는 나대로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한창 그림을 그리려니, 작은아이가 먼저 알아채고 이내 큰아이가 알아챕니다. 둘 모두 뽀르르 마당으로 내려와서 아버지 둘레에 앉습니다. 종이를 한 장씩 내줍니다. 둘은 저마다 그림 그리는 시늉을 합니다. 작은아이는 조금 슥슥 그리다가 딴짓을 하고, 큰아이는 예쁜 그림 그리겠다며 그림에 빠져듭니다.


.. 오늘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떤 다른 의미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제가 환경운동을 하는 것은 제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은 선거에서 지거나 주식에서 손해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글에서 뛰노는 야생 동물과 열대우림 속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춤추는 나비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그것들이 우리 아이들이 볼 수 있을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지 의문입니다 여러분은 저와 같은 나이에 이런 걱정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런 일들이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도 우리들은 아직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  (4, 9쪽)

 


  나무그늘 평상이 시원합니다. 한여름에 마당에서 풀바람 쐬면서 나무그늘에서 쉴 수 있으니 더없이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마을이나 이웃 다른 마을을 살피면, 집안 마당에 나무그늘 드리우는 집이 거의 없습니다. 다들 마당에 그늘이 지지 않도록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쳐요. 집 뒤에만 나무가 자라도록 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마당에서 곡식을 말린다든지 고추를 말린다든지 마늘을 말린다든지 하니, 마당에 그늘이 지면 안 좋아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그늘에서 쉬자면 집에서 쉬면 되지, 굳이 마당에 나와서 쉴 까닭 없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우리 마을이나 이웃 다른 마을 시골집을 더 살피면, 집안과 집밖이 또렷하게 나뉩니다. 오늘날 어느 시골집이건 구멍을 꽁꽁 막습니다. 바람 들 틈을 두지 않아요.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 노랫소리 스며들 틈바구니가 거의 없기 일쑤입니다.


  먼먼 옛날 시골집을 떠올립니다. 유리창조차 없던 지난날 시골집은 종이 한 장으로 문을 대고는 겨울을 났어요. 대청마루나 툇마루에 샤시문이란 없었어요. 집안이더라도 웃목에서는 물이 얼었겠지요. 그래도 이런 시골집에서 모두 겨울나기를 했고,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았어요.


  먼먼 옛날 시골집은 바깥바람과 바깥내음과 바깥소리가 고스란히 집안으로 스며듭니다. 동이 트는 기운을 느껴요. 새들 노랫소리를 들어요. 햇살 기운을 받아요. 바람소리를 한껏 듣지요.


  곰곰이 헤아리자면, 먼먼 옛날 시골사람은 모두 흙사람입니다. 바람사람이고 햇살사람이며 노래사람이에요. 빗물사람이자 나무사람이고 풀사람입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시골사람은 농약사람입니다. 비닐사람입니다. 경운기사람이거나 텔레비전사람이에요. 예나 이제나 흙을 만지기는 똑같지만, 농약을 어마어마하게 뿌려요. 예나 이제나 흙에 씨앗을 심지만 비닐을 엄청나게 씌워요. 경운기나 기계 없으면 흙일을 못할 듯이 여깁니다. 텔레비전 아니면 쉬거나 놀지 못할 듯이 여깁니다.


.. 제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낭비가 심합니다. 사고는 버리고, 버리고는 다시 삽니다. 하지만 사고 버리기를 반복하는 나라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 전쟁에 쓰이는 돈을 전부 빈곤과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한다면 이 지구는 정말 멋진 곳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  (18, 23쪽)

 


  논이나 밭에 농약을 치면 무엇을 죽일까요? 잘 길러서 내다 팔아야 할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뺀 다른 풀을 몽땅 죽일까요? 그러면, ‘나물’이 될 풀도 다 죽이겠지요. 나물이 될 풀이 죽으면서, 풀밭에 알을 깔 나비와 벌과 온갖 벌레 모두 죽이겠지요. 개미도 죽이고, 벌레를 먹고 살아가는 작은 새도 죽일 테며, 개구리도 나란히 죽일 테지요. 요즈음 웬만한 시골에 제비가 찾아들지 못하는 까닭은, 애써 제비가 찾아들어도 농약 먹고 해롱거리다가 죽는 벌레나 지렁이를 제비가 물어서 먹고는 모두 함께 죽기 때문입니다. 수천 킬로미터 바닷길을 날아서 한국땅 밟은 제비가 농약 때문에 꼴까닥 하고 죽어요.


  시골사람은 나쁜 벌레와 잡풀을 죽이겠다며 농약을 칩니다만, 농약을 치기에 개구리와 제비도 죽고 나비와 벌도 죽습니다. 시골에 시골다운 소리가 흐르지 않고, 시골에 시골맛 고소한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시골사람은 이토록 농약을 자꾸 칠까요. 왜 시골사람은 농약과 비닐 안 쓰는 오래된 흙일을 내팽개칠까요.


  도시에서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 사다 먹는 사람들이 돈으로만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사다 먹으니, 시골에서는 농약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사람 스스로 흙을 일구지 않을 뿐 아니라,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가 어느 때에 맛있고 몸에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니, 시골사람은 농약에 찌들 수밖에 없습니다.


  시골사람만 삶과 숲과 흙을 슬기롭게 깨닫는대서 달라지지 않아요. 도시사람이 앞장서서 삶과 숲과 흙을 슬기롭게 바라보고자 힘쓴대서 달라지지 않아요. 도시사람 스스로 도시에서도 텃밭을 일구려고 마음을 기울이면서 몸을 움직일 때에 천천히 달라져요. 도시사람 스스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갈 꿈을 품고 뜻을 이루려 할 때에 시나브로 달라져요.


  밥을 먹어야 목숨을 잇는 사람이면서, 막상 밥을 어떻게 얻는지 살피지 않으면,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어떻게 살겠습니까. 바람을 마시고 물(빗물과 냇물)을 들이켜야 목숨을 건사하는 사람이면서, 정작 바람과 물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돌아보지 않으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 어른들은 말합니다. 다른 아이들과 싸우면 안 된다고.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고. 자기가 어지럽힌 것은 자기가 치워야 한다고. 다른 생물에게 상처를 입히면 안 된다고. 그리고 욕심 부리지 말고 서로 나눠 가져야 한다고. 그런데 어째서 어른들은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한 일들을 하고 있는 건가요 ..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  (25, 27쪽)

 


  열두 살 어린이 세반 스즈키 님이 1992년에 브라질에서 외친 말마디를 갈무리한 다음, 이 어린이가 대학생이 된 뒤에도 숲과 지구별 사랑하는 넋 잇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이야기책 《당신이 세상을 바꾸는 날》(아이터,2003)을 읽습니다. 지구별을 지키자는 세계모임에서 막상 ‘어린이 대표’는 하나도 없이 ‘어른 대표’만 모여서는 슬기롭거나 올바르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리라 생각한 어린이 세반 스즈키 님과 동무들은 스스로 여러 일을 하면서 경비를 모았다고 해요. 딱 6분 자리를 얻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데, 이 6분 동안 어른들한테 들려줄 말을 알뜰살뜰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 자연이야말로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진정한 전문가인 것입니다. 생태계를 이루는 어떤 한 부분을 조사해 보아도, 모든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조화롭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은 꽉 짜여진 구조 속에서 모든 요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서로 밀접하게 작용하여 전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서 자연을 느껴 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자연 환경과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을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생물이 아닌 것이 있을까요? 우리는 호흡하지 않고 몇 분이나 견딜 수 있을까요? 또 우리가 마시는 물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  (46∼47쪽)


  내 손은 지구를 살리는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품고 아름답게 살아가려고 마음을 먹으면, 내 손은 언제나 지구를 살리는 손길입니다.


  내 손으로 지구를 죽이는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잊고 아름다움하고 동떨어진 채 쳇바퀴 걸음을 걷는다면, 내 손은 늘 지구를 죽이는 손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북돋우기에 내 손이 지구를 살리는 손길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따라 내가 스스로 내미는 손길입니다. 다른 사람이 등떠밀기에 내 발걸음이 지구를 죽이는 길을 걷지 않습니다. 늘 나 스스로 걷는 길입니다.


  어른들은 으레 다른 사람 탓을 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하면 될 일을 으레 다른 사람 핑계를 댑니다. 다른 사람이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른 스스로 옳고 바르며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면 돼요. 전쟁을 일으킬 까닭도 전쟁무기를 만들 까닭도 없어요. 이웃나라에서 전쟁무기를 저렇게 잔뜩 만드는데 어떡하느냐 하고 둘러대면서 전쟁무기 똑같이 잔뜩 만들 까닭 없어요. 참말 평화를 생각하면서 바란다면, 우리부터 스스로 평화로운 길 걸어가면서, 평화로운 길 걸어갈 때에 이렇게 아름답고 환하게 빛나면서 즐거운 줄 느끼도록 하면 돼요. 전쟁무기로는 아무것도 못 얻고, 전쟁무기 따위로는 오직 죽음만 있는 줄 깨닫도록 하면 돼요.


  아이들한테 자연그림책이나 자연다큐영화 보여주는 일은 그만두기를 바라요. 그림책이나 다큐영화 아닌 우리 삶에서 자연을 느끼고 어깨동무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요. 도서관에 아름다운 생태그림책 많이 갖춘대서 도시에서 생태와 환경과 자연을 지키지 못해요. 숲이 있어야 숲을 지키고, 나무를 돌봐야 나무를 지키며, 풀밭을 가꾸며 꽃송이 하나 아낄 때에 자연을 지킬 수 있어요. 아프리카 사자나 코끼리를 보여준들 달라질 일 없어요. 우리 곁 조그마한 짐승과 벌레와 새를 아끼며 사랑하는 길을 걸어가야지요. 쇠우리에 가둔 동물원 아닌, 넓은 숲과 시원한 들과 깨끗한 멧골이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지요.


  고속도로를 하나라도 더 내려고 애쓰지 말아요. 숲을 한 곳이라도 더 지키도록 애써야지요. 공항 한 곳 더 지으려고 하지 말아요. 정갈한 시골숲 조용히 돌봐요. 관광단지 한 군데 더 늘리려고 하지 말아요. 아름다운 시골마을 고즈넉히 가꾸어요.


  거짓길 아닌 참길 걸어가기를 바라요. 거짓말 아닌 참말을 나누고, 거짓삶 아닌 참삶을 다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라요. 숲과 들과 멧골과 냇물이 망가지면 누구한테 나쁠까요? 바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한테 나빠요. 경제성장율 100%가 된다 한들 맑은 물과 바람과 흙과 숲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죽은 목숨입니다. 4346.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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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7-19 16:08   좋아요 0 | URL
"고속도로를 하나라도 더 내려고 애쓰지 말아요. 숲을 한 곳이라도 더 지키도록 애써야지요."

공감합니다.

숲노래 2013-07-20 00:02   좋아요 0 | URL
언제쯤 이런 일
한국에서도 이루어지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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