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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킨 꿈 - 땅에서 배운 십 년
한승오 지음 / 강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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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84



‘내 땅’을 가꾸려는 꿈

― 삼킨 꿈, 땅에서 배운 십 년

 한승오 글

 강 펴냄, 2012.5.16.



  시골에서 흙을 일구는 한승오 님이 쓴 산문책 《삼킨 꿈, 땅에서 배운 십 년》(강,2012)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기에, 한승오 님 글에는 시골내음과 흙내음이 흐릅니다. 시골에서 겪은 이야기를 쓴 글이고, 시골에서 바라보는 사회를 돌아보는 글입니다. 흙을 만지면서 배운 이야기를 쓴 글이며, 오래도록 흙을 만진 이웃 할매와 할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옮겨적은 글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살기에 땅한테서 배웁니다. 시골에서 나무를 만지면서 살면 나무한테서 배워요.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한테서나 배우고, 모두한테서 배웁니다. 풀 한 포기한테서도 배우며, 나비 한 마리와 벌레 한 마리한테서 배워요.



.. 한평생 농사만 지어 다섯 자식을 키운 팔순의 할머니가, 고추가 흙냄새를 맡았다고 그랬다 … 과연 저 어린 모가 생명의 춤을 파랗게 출 수 있을까 … 그 딱새가 작년과 같은 딱새인지 그 새끼인지는 모르겠다. 꼭 그 집에 날아들어 빈집을 고치고 거기에 다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  (11, 13, 20쪽)



  딱새를 바라본 한승오 님은 딱새한테서도 삶을 배웁니다. 그럼요, 그렇지요. 제비를 보았으면 제비한테서 삶을 배우고, 까치나 까마귀를 보았으면 까치나 까마귀한테서 배웁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예부터 지구별 모든 곳에서는 모든 이웃을 곁에 두면서 배웠습니다. 둘레에 있는 이웃사람도 나를 가르치는 숨결이고, 내가 먹는 밥도 나를 가르치는 숨결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뿐 아니라, 새와 벌레와 짐승과 물고기도 우리를 가르치는 숨결이에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학교만 다니면서 학교에서만 배웁니다. 학교 바깥에서 ‘우리는 둘러싼 모든 이웃사람’하고 ‘모든 숨결’한테서 배우는 길이 가로막힙니다. 더욱이,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학교에서 쓰는 교재와 교과서 언저리에서만 배워요. 다른 책이나 스승한테서 배울 길이 막힙니다.



.. 땅을 잃은 사람들은 돌아갈 땅이 없다. 땅을 떠난 사람들은 땅에 돌아가리라는 마음을 망각한다 … 대문 밖 벽에 걸어둔 호미가 없어졌다. 벽에 못을 박아, 거기에 삽, 낫, 호미 따위를 걸어두었더니, 이웃 아주머니가 도둑이 훔쳐갈지 모르니 그러지 말라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는, 설마 어떤 도둑이 낫이나 호미를 가져갈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호미가 없어졌다 ..  (56, 73쪽)



  스승이 훌륭하면 제자가 훌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이 훌륭하더라도 제자는 안 훌륭할 수 있습니다. 한편, 스승이 안 훌륭하더라도 제자가 훌륭할 수 있어요.


  학교를 다니면 학교에서 배웁니다. 스승한테서 배우려 하면 스승이 보여주는 몸짓과 말짓과 삶을 고스란히 배웁니다. 더 나은 배움이 없고, 덜떨어지는 배움이 없습니다. 모두 배움입니다. 무엇보다, 어느 배움이든 받아들이는 사람 몫입니다. 배우려 하는 마음이 없다면, 스승이 아무리 훌륭하거나 책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아무것도 못 배워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면서 살더라도 흙빛과 흙내음과 흙결을 제대로 살피려 하지 않는다면, 열 해를 살거나 백 해를 살거나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배우려는 마음이 있다면, 시골내기 아닌 도시내기라 하더라도, 흙 한 줌을 만지면서 이 땅이 우리한테 가르치려 하는 숨결을 넉넉히 배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도시에서도 땅을 배우고, 시골에서도 땅을 배워요. 우리는 대학생으로서도 배우고, 어린이로서도 배웁니다. 젊은이로서도 배우며, 할머니나 할아버지로서도 배웁니다.



.. 사오 년 전 우연히 보았다. 볍씨를 물에 담글 때 비닐하우스 옆 작은 벚나무가 꽃망울을 하얗게 터뜨리는 것을. 그것은 날짜의 옷을 훌훌 벗어던진 시간의 알몸, 바로 생명의 시간 … 지난봄 나에게 땅을 건네던 날, 최소한 오 년 동안은 계속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달라는 나의 말에 그는 말했다. 오 년이고 십 년이고 계속 지을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데 아내와 내가 일 년 농사 끝에 그 많은 피를 다 뽑아 놓으니 이제 와서 ..  (81, 87쪽)



  한승오 님은 시골에서 땅을 빌려서 피를 뽑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해 동안 애써서 피를 죄다 뽑았더니, 이듬해에 땅임자가 그 땅을 내놓으라고 했대요. 이런 일은 시골에서 흔히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 해이고 스무 해이고 빌려주겠다고 하지만, 막상 한 해가 지나서 입을 싹 씻는 일입니다.


  내 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삶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땅임자를 탓할 수 없어요. 빌린 땅이고, 땅을 빌리면서 ‘문서’로 몇 해 동안 빌리겠노라 하고 밝히지 않았으니까요. 문서로 밝혔다 하더라도, 땅임자가 우격다짐으로 나서면 손을 들어야 합니다. 땅임자가 우격다짐으로 나서지 않아도 ‘시골에서 살려’면 땅임자 말을 들어야 하기도 합니다.



.. 언제 옥수수를 따야 하는지를 몰라 허둥대는 내게 옆집 아주머니가 그랬다. 옥수수수염이 잘 익었을 때 따라고 … 펌프는 고장이 났다. 이번 한 번만 물을 대면 되는데. 고장 난 펌프를 뜯어내 읍내까지 가서 고쳐 오는 일이 번거로웠다. 대신 비를 기다리기로 작심했다 … 아주머니의 농약과 화학비료가 그 물에 섞여 내 논으로 들어온다. 나는 농약 한 방울 화학비료 한 점 논에 뿌리지 않건만, 내 논은 어쩔 수 없이 농약과 비료에 몸을 섞는 것이다 ..  (98, 145, 153쪽)



  그런데, 한승오 님은 ‘빌린 땅에서 애먼 품 팔기’뿐 아니라, 웃논에서 흘러드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일도 겪습니다. 참말 한승오 님한테는 왜 자꾸 이런 일이 닥칠까요? 시골에서 아름답게 삶을 짓고 싶은 사람한테 왜 이런 가시밭길이 끝없이 일어날까요?


  시골살이가 힘들다는 뜻일까요? 그렇지만, 도시에서도 이처럼 힘든 일이 있어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안타깝거나 슬픈 일이 툭툭 불거집니다. 사랑스럽거나 아름다운 일도 샘솟고, 밉거나 괴로운 일도 찾아옵니다.


  《삼킨 꿈》을 덮습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누구나 ‘내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내 땅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집’을 누구나 숲으로 가꾸면서, 열매도 얻고 장작과 나무도 얻어서, 손수 집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마다 스스로 삶을 알차게 지으면서 이웃이 서로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부터 스스로 내 보금자리를 기쁘게 지으면서 다 함께 사랑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쓴맛을 보면서 꿈을 삼킵니다. 그러나, 바로 오늘 이곳에서 꿈을 이루고 싶기에 새롭게 꿈을 꿉니다. 슬픔이 찾아오면 슬픔대로 받아들이면서 삭입니다. 이러면서 다시 씩씩하게 일어나서 웃습니다. 왜냐하면, 땅은 늘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기다리거든요. 우리가 스스로 다시 일어나서 흙을 살뜰히 보듬어 주기를 기다려요. 4348.4.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사람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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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세상을 바꾸는 날
세반 스즈키 지음 / 아이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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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환경책 읽기 46

 


어른들 거짓말이 지구를 망가뜨려
― 당신이 세상을 바꾸는 날
 세반 스즈키 글,이혜원 옮김
 아이터 펴냄,2003.11.26./7500원

 


  마당에 놓은 평상으로 크레파스와 종이를 갖고 나갑니다. 아이들은 집안에서 베개놀이 이불놀이를 합니다. 무더운 한여름에 웬 베개놀이 이불놀이인가 싶지만, 놀고 싶으니 놀아야겠지요. 얼추 열흘만인가, 작은아이가 밤에 오줌을 두 차례 누었습니다. 지난 열흘 동안 밤에 쉬 마려우면 낑낑대는 소리를 냈기에 잘 알아채고 작은아이 안아서 오줌그릇에 쉬를 받았는데, 지난밤에는 두 차례나 그냥 바지에 싸서 방바닥을 흠뻑 적셨습니다.


  아침이 되어 두 아이 모두 일어난 뒤, 나무깔개를 걷어 마당에 내놓아 볕바라기 시킵니다. 큰 이불과 큰 베개도 볕바라기 시킵니다. 작은 이불과 작은 베개는 방에 그대로 두는데, 두 아이는 인형을 재우느니 서로 눕느니 하면서 베개와 이불로 놉니다.


  아이들한테는 무엇이든 놀이가 될 테지요. 아이들로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온갖 놀이 실컷 누리며 살아가야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까르르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혼자 조용히 나무그늘 평상에 앉아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놀면 되고, 나는 나대로 그림을 그리면 됩니다. 한창 그림을 그리려니, 작은아이가 먼저 알아채고 이내 큰아이가 알아챕니다. 둘 모두 뽀르르 마당으로 내려와서 아버지 둘레에 앉습니다. 종이를 한 장씩 내줍니다. 둘은 저마다 그림 그리는 시늉을 합니다. 작은아이는 조금 슥슥 그리다가 딴짓을 하고, 큰아이는 예쁜 그림 그리겠다며 그림에 빠져듭니다.


.. 오늘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떤 다른 의미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제가 환경운동을 하는 것은 제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은 선거에서 지거나 주식에서 손해를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글에서 뛰노는 야생 동물과 열대우림 속을 날아다니는 새들과 춤추는 나비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그것들이 우리 아이들이 볼 수 있을 때까지 살아남아 있을지 의문입니다 여러분은 저와 같은 나이에 이런 걱정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런 일들이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도 우리들은 아직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  (4, 9쪽)

 


  나무그늘 평상이 시원합니다. 한여름에 마당에서 풀바람 쐬면서 나무그늘에서 쉴 수 있으니 더없이 즐겁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마을이나 이웃 다른 마을을 살피면, 집안 마당에 나무그늘 드리우는 집이 거의 없습니다. 다들 마당에 그늘이 지지 않도록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쳐요. 집 뒤에만 나무가 자라도록 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래도 마당에서 곡식을 말린다든지 고추를 말린다든지 마늘을 말린다든지 하니, 마당에 그늘이 지면 안 좋아할 만하구나 싶습니다. 그늘에서 쉬자면 집에서 쉬면 되지, 굳이 마당에 나와서 쉴 까닭 없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우리 마을이나 이웃 다른 마을 시골집을 더 살피면, 집안과 집밖이 또렷하게 나뉩니다. 오늘날 어느 시골집이건 구멍을 꽁꽁 막습니다. 바람 들 틈을 두지 않아요.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 노랫소리 스며들 틈바구니가 거의 없기 일쑤입니다.


  먼먼 옛날 시골집을 떠올립니다. 유리창조차 없던 지난날 시골집은 종이 한 장으로 문을 대고는 겨울을 났어요. 대청마루나 툇마루에 샤시문이란 없었어요. 집안이더라도 웃목에서는 물이 얼었겠지요. 그래도 이런 시골집에서 모두 겨울나기를 했고,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았어요.


  먼먼 옛날 시골집은 바깥바람과 바깥내음과 바깥소리가 고스란히 집안으로 스며듭니다. 동이 트는 기운을 느껴요. 새들 노랫소리를 들어요. 햇살 기운을 받아요. 바람소리를 한껏 듣지요.


  곰곰이 헤아리자면, 먼먼 옛날 시골사람은 모두 흙사람입니다. 바람사람이고 햇살사람이며 노래사람이에요. 빗물사람이자 나무사람이고 풀사람입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시골사람은 농약사람입니다. 비닐사람입니다. 경운기사람이거나 텔레비전사람이에요. 예나 이제나 흙을 만지기는 똑같지만, 농약을 어마어마하게 뿌려요. 예나 이제나 흙에 씨앗을 심지만 비닐을 엄청나게 씌워요. 경운기나 기계 없으면 흙일을 못할 듯이 여깁니다. 텔레비전 아니면 쉬거나 놀지 못할 듯이 여깁니다.


.. 제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낭비가 심합니다. 사고는 버리고, 버리고는 다시 삽니다. 하지만 사고 버리기를 반복하는 나라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 전쟁에 쓰이는 돈을 전부 빈곤과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한다면 이 지구는 정말 멋진 곳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  (18, 23쪽)

 


  논이나 밭에 농약을 치면 무엇을 죽일까요? 잘 길러서 내다 팔아야 할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뺀 다른 풀을 몽땅 죽일까요? 그러면, ‘나물’이 될 풀도 다 죽이겠지요. 나물이 될 풀이 죽으면서, 풀밭에 알을 깔 나비와 벌과 온갖 벌레 모두 죽이겠지요. 개미도 죽이고, 벌레를 먹고 살아가는 작은 새도 죽일 테며, 개구리도 나란히 죽일 테지요. 요즈음 웬만한 시골에 제비가 찾아들지 못하는 까닭은, 애써 제비가 찾아들어도 농약 먹고 해롱거리다가 죽는 벌레나 지렁이를 제비가 물어서 먹고는 모두 함께 죽기 때문입니다. 수천 킬로미터 바닷길을 날아서 한국땅 밟은 제비가 농약 때문에 꼴까닥 하고 죽어요.


  시골사람은 나쁜 벌레와 잡풀을 죽이겠다며 농약을 칩니다만, 농약을 치기에 개구리와 제비도 죽고 나비와 벌도 죽습니다. 시골에 시골다운 소리가 흐르지 않고, 시골에 시골맛 고소한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시골사람은 이토록 농약을 자꾸 칠까요. 왜 시골사람은 농약과 비닐 안 쓰는 오래된 흙일을 내팽개칠까요.


  도시에서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 사다 먹는 사람들이 돈으로만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사다 먹으니, 시골에서는 농약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사람 스스로 흙을 일구지 않을 뿐 아니라,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가 어느 때에 맛있고 몸에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니, 시골사람은 농약에 찌들 수밖에 없습니다.


  시골사람만 삶과 숲과 흙을 슬기롭게 깨닫는대서 달라지지 않아요. 도시사람이 앞장서서 삶과 숲과 흙을 슬기롭게 바라보고자 힘쓴대서 달라지지 않아요. 도시사람 스스로 도시에서도 텃밭을 일구려고 마음을 기울이면서 몸을 움직일 때에 천천히 달라져요. 도시사람 스스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갈 꿈을 품고 뜻을 이루려 할 때에 시나브로 달라져요.


  밥을 먹어야 목숨을 잇는 사람이면서, 막상 밥을 어떻게 얻는지 살피지 않으면, 도시에서건 시골에서건 어떻게 살겠습니까. 바람을 마시고 물(빗물과 냇물)을 들이켜야 목숨을 건사하는 사람이면서, 정작 바람과 물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돌아보지 않으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 어른들은 말합니다. 다른 아이들과 싸우면 안 된다고.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고. 자기가 어지럽힌 것은 자기가 치워야 한다고. 다른 생물에게 상처를 입히면 안 된다고. 그리고 욕심 부리지 말고 서로 나눠 가져야 한다고. 그런데 어째서 어른들은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한 일들을 하고 있는 건가요 ..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  (25, 27쪽)

 


  열두 살 어린이 세반 스즈키 님이 1992년에 브라질에서 외친 말마디를 갈무리한 다음, 이 어린이가 대학생이 된 뒤에도 숲과 지구별 사랑하는 넋 잇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이야기책 《당신이 세상을 바꾸는 날》(아이터,2003)을 읽습니다. 지구별을 지키자는 세계모임에서 막상 ‘어린이 대표’는 하나도 없이 ‘어른 대표’만 모여서는 슬기롭거나 올바르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리라 생각한 어린이 세반 스즈키 님과 동무들은 스스로 여러 일을 하면서 경비를 모았다고 해요. 딱 6분 자리를 얻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데, 이 6분 동안 어른들한테 들려줄 말을 알뜰살뜰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 자연이야말로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진정한 전문가인 것입니다. 생태계를 이루는 어떤 한 부분을 조사해 보아도, 모든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조화롭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은 꽉 짜여진 구조 속에서 모든 요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서로 밀접하게 작용하여 전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서 자연을 느껴 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자연 환경과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을 유지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생물이 아닌 것이 있을까요? 우리는 호흡하지 않고 몇 분이나 견딜 수 있을까요? 또 우리가 마시는 물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  (46∼47쪽)


  내 손은 지구를 살리는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품고 아름답게 살아가려고 마음을 먹으면, 내 손은 언제나 지구를 살리는 손길입니다.


  내 손으로 지구를 죽이는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잊고 아름다움하고 동떨어진 채 쳇바퀴 걸음을 걷는다면, 내 손은 늘 지구를 죽이는 손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북돋우기에 내 손이 지구를 살리는 손길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따라 내가 스스로 내미는 손길입니다. 다른 사람이 등떠밀기에 내 발걸음이 지구를 죽이는 길을 걷지 않습니다. 늘 나 스스로 걷는 길입니다.


  어른들은 으레 다른 사람 탓을 합니다. 어른들 스스로 하면 될 일을 으레 다른 사람 핑계를 댑니다. 다른 사람이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른 스스로 옳고 바르며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면 돼요. 전쟁을 일으킬 까닭도 전쟁무기를 만들 까닭도 없어요. 이웃나라에서 전쟁무기를 저렇게 잔뜩 만드는데 어떡하느냐 하고 둘러대면서 전쟁무기 똑같이 잔뜩 만들 까닭 없어요. 참말 평화를 생각하면서 바란다면, 우리부터 스스로 평화로운 길 걸어가면서, 평화로운 길 걸어갈 때에 이렇게 아름답고 환하게 빛나면서 즐거운 줄 느끼도록 하면 돼요. 전쟁무기로는 아무것도 못 얻고, 전쟁무기 따위로는 오직 죽음만 있는 줄 깨닫도록 하면 돼요.


  아이들한테 자연그림책이나 자연다큐영화 보여주는 일은 그만두기를 바라요. 그림책이나 다큐영화 아닌 우리 삶에서 자연을 느끼고 어깨동무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요. 도서관에 아름다운 생태그림책 많이 갖춘대서 도시에서 생태와 환경과 자연을 지키지 못해요. 숲이 있어야 숲을 지키고, 나무를 돌봐야 나무를 지키며, 풀밭을 가꾸며 꽃송이 하나 아낄 때에 자연을 지킬 수 있어요. 아프리카 사자나 코끼리를 보여준들 달라질 일 없어요. 우리 곁 조그마한 짐승과 벌레와 새를 아끼며 사랑하는 길을 걸어가야지요. 쇠우리에 가둔 동물원 아닌, 넓은 숲과 시원한 들과 깨끗한 멧골이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지요.


  고속도로를 하나라도 더 내려고 애쓰지 말아요. 숲을 한 곳이라도 더 지키도록 애써야지요. 공항 한 곳 더 지으려고 하지 말아요. 정갈한 시골숲 조용히 돌봐요. 관광단지 한 군데 더 늘리려고 하지 말아요. 아름다운 시골마을 고즈넉히 가꾸어요.


  거짓길 아닌 참길 걸어가기를 바라요. 거짓말 아닌 참말을 나누고, 거짓삶 아닌 참삶을 다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라요. 숲과 들과 멧골과 냇물이 망가지면 누구한테 나쁠까요? 바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한테 나빠요. 경제성장율 100%가 된다 한들 맑은 물과 바람과 흙과 숲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죽은 목숨입니다. 4346.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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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7-19 16:08   좋아요 0 | URL
"고속도로를 하나라도 더 내려고 애쓰지 말아요. 숲을 한 곳이라도 더 지키도록 애써야지요."

공감합니다.

숲노래 2013-07-20 00:02   좋아요 0 | URL
언제쯤 이런 일
한국에서도 이루어지려나요..
 
애니미즘이라는 희망 - 삼라만상에게 길을 묻다
야마오 산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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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누리는 삶이 ‘희망’
[시골사람 책읽기 007] 야마오 산세이,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

 


  어른들이 텔레비전을 쳐다보면 아이들도 텔레비전을 쳐다봅니다. 어른들이 들판에 서면 아이들도 들판에 섭니다. 어른들이 집안일을 어머니한테만 시키면 아이들도 집안일은 으레 어머니가 해야 하는 줄 압니다. 어른들이 서로 살가우며 따사로운 말마디로 이야기꽃 피우면, 아이들도 서로 살가우며 따사로운 말마디를 배우고 나누면서 즐겁게 얼크러져 놉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학교에 넣어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여느 때 여느 삶자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어른들 살아가는 매무새가 바로 ‘교과서’이고 ‘책’입니다. 돈을 벌러 새벽부터 밤까지 바쁘게 몰아치는 어른들 삶이 바로 아이들한테 ‘교과서’ 구실을 하고 ‘책’ 노릇을 합니다. 어른들이 돈벌이 때문에 집에 발 들일 겨를 없을 뿐 아니라, 아이하고 말 한두 마디 섞을 틈 없이 보내는 삶을 늘 바라보면서, 아이들은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돈벌이를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고 가를 수 없습니다. 돈을 더 벌어야 좋다거나 돈을 적게 벌기에 나쁘다거나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면서 어떻게 쓸 돈을 어떻게 어디에서 벌려고 하는가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아이들과 즐거이 살아가고 싶은가요? 그러면 아이들과 즐거이 살아갈 만큼 넉넉히 겨를을 내면서 돈을 벌 만한 일자리를 다니는가요? 아이들하고는 ‘나중에 돈을 좀 많이 번 다음’ 어울려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아이들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제 어버이 따순 손길을 받고 싶다 말하는데, 이런 목소리에는 귀를 안 기울이면서 회사 사장님이나 웃사람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나날은 아닌가요?


.. 달밤에 달을 보면 그 옆으로 구름도 흘러가고 구름은 또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듭니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충만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긴 시간이 아니더라도 5분, 10분 하는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달을 바라보세요. 숲속에서 달을, 그리고 모양을 바꿔 가며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노라면, 그 5분 10분 하는 짧은 시간 안에 달과 구름이라는 위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  (37∼38쪽)


  즐겁게 누리는 삶이 희망입니다. 즐겁게 누리지 못하는 삶이라 하면 괴로움입니다. 희망이란 먼 데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돈 많이 버는 데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마흔 평 아파트나 쉰 평 아파트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새까만 자가용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서울이나 도시에 없습니다.


  희망은 언제나 내 가슴에 있습니다. 나 스스로 가슴속에서 길어올리는 사랑이 바로 희망입니다. 이웃들과 따숩게 주고받는 말마디가 희망입니다. 대통령으로 아무개를 뽑는 일은 희망이 아닙니다. 그저 대통령 뽑기입니다.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는대서 내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다스린다는 정치판이 조금 움직일 뿐입니다. 내 삶이 아름답게 달라지도록 일구고 싶다면, 내 삶이 어떤 모습인가를 참답게 바라보면서 슬기롭게 돌보아야 합니다.


  달걀 한 알로 아이들과 활짝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돌멩이 하나로 아이들과 까르르 웃으며 신나게 뛰놀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으로 아이들과 차분히 가라앉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햇볕 한 줌으로 아이들과 나란히 해바라기 하면서 하루를 실컷 누릴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로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샘솟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희망이란 즐겁게 누리는 삶입니다. 즐겁게 누리는 사람은 스스로 희망을 일굽니다. 남들이 선물처럼 갖다 안기는 희망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일구고 돌보며 가꾸면서 자라나는 희망입니다.


.. 숲이나 산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입니다. 나무를 심고 자르는 것은 기분 좋은 작업 중 하나입니다 … 오키나와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없기 때문에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전체 문명의 향유자로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플루토늄에 책임이 있습니다 ..  (120, 203쪽)


  가난이란 무엇일까요. 돈이 없으면 가난일까요. 돈이 많으면 가난이 아닐까요. 아마, 돈이 많고 적음으로 나누는 가난도 있을 테지요. 그러나, 가난은 돈셈으로만 헤아리지 않아요. 가난 또한 희망처럼 ‘내 마음자리’에 따라 헤아려요.
 

 한손에 일억 원을 쥔 사람도 스스로 가난하다고 여기곤 합니다. 한손에 십억 원을 쥔 사람도 돈을 더 그러모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스스로 아직 가난하다고 여기곤 합니다. 백억 원을 거느리거나 천억 원을 주무르는 사람조차 돈을 악착같이 더 붙잡으려고 합니다. 백억 원이 있으면서 백 원 한 닢 살가이 나누지 못하기 일쑤예요. 천억 원이 있으면서 동냥하는 거지한테 천 원 한 장 기쁘게 나누지 못하기 일쑤예요.


  돈있는 사람이 외려 더 노랭이 같다고 하는 까닭을 잘 생각해 봐요. 얼핏 보기에는 돈이 많다 싶지만, 그이한테는 그 돈조차 가난하다고 여겨요. 그러니까 이이는 돈 백억 원을 손에 쥐었든 돈 천억 원을 손에 주었든 가난뱅이입니다.


  돈없다는 사람끼리 되레 더 밥술을 나누는 까닭을 잘 돌이켜봐요. 밥 한 술씩 나누며 어깨동무하는 이웃은 누구일까요. 어려울수록 서로 어깨동무한다면서 빙그레 웃는 동무는 누구인가요.


  희망은 대통령이 만들어 주지 않아요. 희망은 국회의원이 선물보따리로 안겨 주지 않아요. 희망은 시장님이나 군수님이 짠 하고 내놓지 않아요. 희망은 늘 내 조그마한 마을 내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내 자그마한 아이들하고 알콩달콩 보듬는 자그마한 살림살이에서 피어납니다.


  텃밭에 심은 시금치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텃밭에서 자라는 배추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내가 심지 않아도 쑥쑥 자라나는 쑥이랑 부추랑 냉이랑 씀바귀가 희망입니다. 내 사랑을 듬뿍 받으며 꽃을 피우는 후박나무랑 동백나무랑 매화나무랑 감나무가 희망입니다.


.. 살면서 새로운 말 하나를 배운다는 건 그만큼 내 영혼의 재산이 늘어나는 일입니다. 좋은 말은 보물과 같거든요 ..  (210쪽)


  우리 마을 할머니들이 서로 품을 팔아 마늘밭을 한 군데씩 천천히 돌며 마늘을 심습니다. 마늘을 심으며 노래를 부르고, 바지런히 심고는 참을 먹으며, 실컷 심다가 막걸리 한 잔 마십니다. 햇살은 따사롭게 마늘밭을 비춥니다. 찬바람 솔솔 부는 겨우내 마늘은 씩씩하게 푸른 잎 냅니다. 한겨울에도 눈바람 거의 없는 고흥이지만, 어쩌다 눈발 살포시 내려앉아 마늘밭을 덮더라도, 마늘잎은 눈송이 고이 짊어지고도 푸른 빛을 감추지 않습니다.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도 마늘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힘차게 줄기를 올립니다. 마늘은 저희 희망이 저기 먼 데가 아닌 바로 저희 가슴에 있는 줄 알거든요.


  아이들도 희망이 저희 가슴에 있는 줄 알아요. 스스로 희망인 아이들은 한겨울에도 개구지게 뛰어놉니다. 호호 입김을 만들면서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며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 아이들입니다. 우리 어른들도 스스로 희망인 줄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바로 이곳에서 오늘부터 스스로 아름다운 사랑을 영글 수 있기를 빌어요. 일본 깊은 시골숲에서 살다가 조용히 숨을 거둔 야마오 산세이라 하는 분은 당신 한몸을 곱게 누인 시골숲이 얼마나 아름다운 희망이었던가를 느끼며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과 같은 책을 우리한테 예쁘게 남겨 줍니다. 4345.12.4.불.ㅎㄲㅅㄱ

 


― 애니미즘이라는 희망 (야마오 산세이 글,김경인 옮김,달팽이 펴냄,2012.9.21./15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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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04 15:15   좋아요 0 | URL
애니미즘을 배워 갑니다.

"텃밭에 심은 시금치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텃밭에서 자라는 배추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내가 심지 않아도 쑥쑥 자라나는 쑥이랑 부추랑 냉이랑 씀바귀가 희망입니다. 내 사랑을 듬뿍 받으며 꽃을 피우는 후박나무랑 동백나무랑 매화나무랑 감나무가 희망입니다."
- 이 글에 마음이 가닿네요.

숲노래 2012-12-04 15:23   좋아요 0 | URL
'애니미즘'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해서 아쉽기는 한데,
나중에 이 책은 더 꼼꼼히 살핀 느낌글로 다룰 생각이에요.

아무튼, '애니미즘'이란 '땅사랑'이나 '흙사랑',
또는 '숲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른바 '지구별사랑'이나 '온누리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다른 출판사'에서는 야마오 산세이 님 책을
자꾸 절판시키지만...
달팽이 출판사는 외려 새책을 번역해 주니
참으로 고맙다고 느껴요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 인권 운동가 오창익의 거침없는 한국 사회 리포트
오창익 지음, 조승연 그림 / 삼인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고흥에만 있는 아름다움이란
[시골사람 책읽기 006] 오창익,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삼인,2008)

 


  순천에 있는 헌책방으로 마실을 다녀오려고 읍내로 나갑니다. 읍내 우체국에 들러 편지 두 통을 부칩니다. 우체국에서 나오다가 걸상 옆에 놓인 〈고흥 군민광장〉이라는 ‘고흥군 소식지’가 있어 한 부 집습니다. 큰아이하고 읍내 버스역으로 걸어갑니다. 길가에는 마을에서 딴 유자를 파는 할머니들이 줄지어 앉아 손님을 기다립니다. 굵고 노란 유자가 고운 내음 퍼뜨립니다.


  순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고흥 군민광장〉을 읽습니다. 유자밭 사진이 실린 겉장을 넘깁니다. 모두 16쪽짜리 ‘고흥군 소식지’인데, 겉장 사진과 끝장 고흥 지도를 뺀 14쪽에 걸쳐 ‘고흥군수’님 사진이 자그마치 18장 실립니다. 〈고흥 군민광장〉은 이름 그대로 ‘군민광장’이니 군민 이야기가 실려야 마땅할 텐데, 정작 군민 이야기는 한 줄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군청에서 꾀한 행사 이야기만 열네 쪽에 가득할 뿐입니다.


  이를테면, 고흥에서 가을날 가을걷이를 한 농사꾼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는 한 줄로도 실리지 않습니다. 고흥에서 바지락을 캐거나 김을 거두거나 매생이를 돌보는 바닷가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 또한 한 줄로도 나오지 않습니다. 고흥에서 살아가며 책을 내놓은 사람들 이야기라든지, 문학을 빚거나 문화를 나누는 사람들 이야기라든지, 고흥에서 예쁜 보금자리 돌보며 어여삐 살아가는 ‘여느 군민’ 이야기는 한 줄로도 나오지 않습니다.


  나는 고흥에서 살기 앞서 충청북도 음성에서 다섯 해를 살았고, 이에 앞서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일 때문에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기도 했습니다. 세 군데 다른 터에서 나오던 ‘지역 소식지’를 돌아보면, 음성에서든 인천에서든 서울에서든 군수나 시장이나 군의회나 시의회 이야기가 꽤 크게 실리기는 하더라도, 군민이나 시민 목소리라든지, 군 역사와 문화라든지 시 역사와 문화를 밝히는 글이 한두 쪽이라도 깃들기 마련이었어요. 〈고흥 군민광장〉처럼 온통 군수님 이야기로만 가득한 지역 소식지는 처음 봅니다.


.. 국민교육헌장을 배우고 외우는 일도 웃기지만, 글자 수까지 외우게 하면서 그걸 ‘도덕’ 교육으로 생각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지 지금도 궁금하기만 하다 … 한국에서 교육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국민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 어린 학생, 청소년들이 밤샘 노동으로 내몰려야 하는 나라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은 많은 나라들이 일찍이 깨달은 바다 … 조교 제도를 왜곡한 가장 큰 책임은 역시 교수들에게 있다. 조교들을 종처럼 부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얼굴을 들고 학문을 가르칠 수 있는지 가끔은 신기하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이해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학문을 연구하고 강의를 한다는 것인지 의아하다 ..  (21, 44, 71, 160쪽)


  다도해 국립공원이 아니더라도 정갈하고 어여쁜 고흥군에 핵발전소를 들이밀려던 움직임은 지나갔고, 뒤이어 화력발전소를 밀어붙이려던 움직임도 지나갔습니다. 고흥에서 나고 자라 서울이나 이웃 도시로 떠난 분들은 고흥이 얼마나 정갈하고 어여쁜가를 새삼스레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 살다가 고흥으로 들어와 살아가는 사람도 고흥이 한국에서 얼마나 정갈하고 어여쁜가를 남달리 느끼리라 생각해요.


  김 양식을 해서 돈을 얼마나 번다든지, 친환경 농사를 짓거나 어떤 높은소득 농사를 지어 돈을 얼마나 번다든지, 하는 대목은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김을 거두어 돈을 만지든, 흙을 일구어 돈을 얻든, 땅과 햇살과 바람과 물과 숲이 정갈하고 어여쁘니까, 이처럼 살림을 꾸릴 수 있습니다. 정갈하지 못한 땅과 햇살과 바람과 물과 숲이라 한다면, 오늘날처럼 고흥 갯것·뭍것·바닷것이 두루 사랑받을 수 없으리라 느껴요.


  우리 식구가 고흥으로 들어와 살기로 한 까닭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첫째, 고흥에는 고속도로가 들어오거나 지나가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몰지 않는 우리 식구한테는 안타깝게도 2012년 12월에 고흥으로 들어오는 나들목이 생긴다고 하는데, 고흥이 고흥답게 정갈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면, 바로 고흥으로 들어오는 길목이 좁고, 고속도로가 지나가지 않아서입니다. 고속도로가 지나가거나 고속도로가 가까이 있는 다른 시·군은 바람이 매캐하고 햇살이 눈부시지 않습니다. 자동차 배기가스란 바람과 햇살을 아주 더럽히니까요. 고흥은 고속도로 피해를 안 받는 ‘한국에 몇 안 되는, 어쩌면 꼭 한 군데밖에 없다 할’ 아주 아름다운 시골입니다.


  둘째, 고흥에는 골프장이 없습니다. 골프연습장 비슷한 시설이 한 군데 있는 듯하지만, 골프장은 없습니다. 땅이 그리 넓지 않다는 한국이지만, 골프장 넓이는 ‘땅넓이하고 견주어 지구별에서 가장 넓다’고 해요. 한국은 봄부터 겨울까지 뚜렷하다고 하는 나라예요. 이런 나라에서 골프장 잔디밭을 건사하자면 농약을 어마어마하게 뿌리고, 지하수 또한 엄청나게 뽑아서 써야 해요. 제주에 있는 골프장에서 쓰는 지하수는 제주삼다수에서 뽑아서 쓰는 지하수보다 훨씬 많기까지 해요. 고흥에는 골프장이 없어 마을마다 지하수를 맛나게 길어서 마실 수 있어요.


  셋째, 고흥에는 공장이 없다 할 만합니다. 시멘트 만드는 데가 있고, 곡식이나 물고기를 다듬는 시설은 있지만, 공산품을 만들어 큰도시에 내다 파는 공장은 거의 없다 할 만하구나 싶어요. 이런 공장이 한 군데라도 있을까요? 고흥은 골프장과 공장을 찾아보기 어려우니까 냇물이며 바다며 숲이며 들이며 햇살이 맑고 눈부실 수 있어요.


  넷째, 고흥에는 기찻길이 안 지나가요. 고흥에서 지내며 서울이나 부산으로 나들이를 가자면 순천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야 하니 번거롭지만, 조금 번거롭기 때문에 고흥살이가 한결 싱그럽습니다. 말이야 번거롭다 하지만, 푸른 숲을 누리며 천천히 순천으로 나가는 길이 퍽 예뻐요.


.. 이런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쏟아내었던 김수근이 악명 높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건물은 김수근의 작품 연보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 명절만 그런 것도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내의 가사 노동 시간은 3시간 28분인데, 남편은 겨우 32분이었다. 평균 텔레비전 시청 시간(2시간 6분)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시간이다. 맞벌이를 해도 아내가 남편보다 6.5배나 더 가사 노동을 하는 거다 … 한국은 골프장 개수에서는 세계 16위이고, 국토 면적 대비 골프장 넓이는 세계 정상이다. 그런데도 모자란단다 … 운동 삼아 걷거나 뛰는 인구는 국민의 절반쯤 된다. 가장 힘들다는 마라톤 인구만 해도 200만 명이다. 그런데도, 잘 걷고 잘 뛰고, 또는 자전거 타기 좋게 하기 위해서 농사짓는 땅에 오솔길이나 자전거 도로를 만들겠다는 말은 없다. 그저 골프만이 좋은 운동이고, 그저 골프만이 진흥해야 할 운동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권력을 차지한 탓이다 ..  (49, 134, 236∼237쪽)


  고흥 농어민이 ‘한 해 벌이 오천만 원’이든 ‘한 해 벌이 일억 원’이든 할 까닭은 없으리라 느낍니다. 고흥에는 돈으로는 도무지 사거나 얻을 수 없는 기쁨과 이야기가 훨씬 크고 많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이 왜 하와이로 놀러갈까 생각해 봐요. 사람들이 왜 필리핀으로 나들이를 가는지 생각해 봐요. 호주나 뉴질랜드나 캐나다로 떠나는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거나 느끼는지 생각해 봐요.


  서울이나 인천이나 경기도에서 왜 ‘고흥 물고기’를 사들여 새벽같이 큰 짐차로 실어나르는지 생각해 봐요. 고흥에서 나는 바지락이나 유자나 석류를 왜 이웃 도시로 내다 팔 수 있는지 생각해 봐요. 울릉섬 시골이나 제주섬 시골에서 고흥군 시골만큼 밤하늘 별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해 봐요. 사람들이 울릉섬이나 제주섬으로 여행을 많이 간다 하지만, 여행 손님이 많은 곳일수록 외려 들과 숲과 바다가 더 더러워지는 모습을 헤아려 봐요.


  넓은 길이 뚫리거나 비행기가 오가거나 빠른기차가 달린대서 ‘시골살이가 나아질’ 일은 없어요. 넓은 길이 뚫리거나 비행기가 오가거나 빠른기차가 달리면, 이 빠르기만큼 시골살이가 무너지기 마련이에요.


  고흥에는 고흥에만 있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고흥 시골사람은 미리내를 언제나 볼 수 있어요. 고흥 시골사람은 무지개도 볼 수 있어요. 고흥 시골사람은 봄날 제비춤 흐드러지는 하늘놀이를 볼 수 있어요. 삶을 북돋우는 아름다움이 무엇일까요. 삶을 살찌우는 사랑이 무엇인가요. 삶을 이끄는 꿈이란 어떻게 세우는가요.


.. 여론 조사 회사들 중에서 어떤 곳도 한글 명칭을 쓰지 않는 것은 가히 ‘영어 왕국’, 국교가 영어인 나라에 사는 신민다운 발상이 아닌가 … 돈 내고 전철을 이용하는 내가 왜 저런 광고의 표적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푸른 산이나 나무, 강과 바다, 꽃 같은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서 다닐 수는 없는 걸까 ..  (55, 274쪽)


  오창익 님이 쓴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삼인,2008)을 읽습니다. 한국에 깃든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터무니없는 얄궂은 이야기를 그러모은 책입니다. 바보스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멍청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밝히며, 어리석게 살아가는 모습을 알립니다.


  아마, 고흥에도 ‘어디에도 없이 고흥에만 있는 얄딱구리한 모습’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 식구가 고흥에서 살아가려는 까닭을 생각하면, 고흥에서 나고 자라며 고흥을 품에 안은 이웃들 삶을 생각하면, 고흥에는 ‘바로 고흥이기에 이곳에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으리라 느껴요.


  고흥 아이들 앞에 선 고흥 어른들 스스로 ‘고흥에 깃든 아름다운 꿈과 사랑과 이야기’를 하나하나 보듬어 어여삐 보여줄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1.24.흙.ㅎㄲㅅㄱ

 


―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오창익 글,조승연 그림,삼인 펴냄,2008.5.6./11000원)

 

(최종규 . 2012 - 시골사람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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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희재 지음 / 청년사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받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
[시골사람 책읽기 005] 이희재,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청년사,2003)

 


  만화책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청년사,2003)는 바스콘셀레스 님 글에 이희재 님이 그림을 붙였습니다. 만화책 끝자락에 “전 아이들에게 가끔 딱지와 구슬을 나누어 주곤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인생이란 별로 위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전 어린 시절의 저를 만났습니다(370쪽).”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소설책으로든 만화책으로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책이 우리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란 바로 이 대목이라고 느낍니다. 누구나 삶에 사랑이 있어야 빛납니다. 누구라도 삶에 사랑이 없으면 빛나지 않습니다.


  사랑을 찾아 이 지구별에 태어나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누리려고 이 지구별에서 이야기꽃 피우는 사람입니다.


  돈을 벌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을 쓰려고 삶을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름을 얻으려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름을 떨치려고 삶을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사랑을 받아 태어나는 사람이요, 오직 사랑을 즐기면서 하루를 빛내는 사람입니다.


  갓난쟁이한테뿐 아니라 어린이한테도 돈은 덧없습니다. 어린이한테뿐 아니라 푸름이한테도 돈은 부질없습니다. 오늘날 어린이는 돈이 있으면 과자를 산다든지 피자를 산다든지 피시방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든지 여길는지 모르나, 이런저런 주전부리나 피시방 게임이란 사랑하고 동떨어집니다. 콜라 한 병을 사다 마신대서 사랑이 싹트지 않아요. 초콜릿 하나를 사다 먹는대서 사랑이 피어나지 않아요. 한동안 배가 부르다 하지만, 사랑으로 빚은 밥 한 그릇이 아닐 때에는 마음이 넉넉해지거나 따스해지지 않아요. 따순 손길로 어루만지는 어버이가 반가운 아이들이에요. 고운 눈길로 바라보는 어른이 좋은 아이들이에요.


.. ‘히히히, 아무도 너(라임오렌지나무)와 내가 친구가 된 것을 몰라. 식구들이 우리가 얘기를 하게 된 걸 알면 까무라칠 거야.’ ..  (98쪽)


  우는 아이한테는 젖을 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냥 젖이 아닌 사랑이 담긴 젖을 주어야 합니다. 아픈 아이한테는 몸을 다스리는 약을 주든 누워서 쉴 자리를 주든 해야 할 텐데, 약이든 무엇이든 처방전 아닌 사랑이 깃든 것을 주어야 합니다.


  사랑이 감돌지 않으면 밥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서리지 않으면 책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어리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없는 채 이루어지는 교육은 교육 아닌 훈육이나 지도편달이 될 뿐입니다. 훈육이나 지도편달로는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꿈이나 슬기를 빛내도록 이끌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입시공부 여섯 해를 보내면서 대학교에 붙는들 무슨 보람이 있을까 생각해야 해요. 대학교에 붙으려고 보내야 하는 여섯 해 푸른 삶이어야 할까요. 참으로 푸르게 누리면서 빛낼 여섯 해 삶이 아닐까요. 어른들은 돈을 많이 벌면 즐거운 삶일까요? 돈을 벌려고 태어나서 돈을 쓰면서 살아야 하는 어른일까요?


  아침에 씩씩하게 일어난 우리 집 다섯 살 아이가 어머니랑 뒷밭으로 가더니 까마중을 따서 먹습니다. 고흥 시골마을에서는 12월이 코앞이라 하지만 빈 들과 빈 밭 한켠에 까마중이 자랍니다. 곱게 둔 밭자락 한켠에는 가을쑥이 아직 푸른 빛 마음껏 뽐내며 자라다가는 잎 끄트머리가 붉게 물들며 쑥꽃을 피웁니다.


  마을 어디를 가도 쑥을 잡풀로만 여겨 베어 없애거나 약 뿌려 죽이려고만 합니다. 쑥내음 맡으며 예쁘게 바라보다가 쑥꽃 곱다라니 줄지어 달린 모습을 지켜보기란 참 힘들어요. 그러고 보면,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라 하더라도 풀꽃 한 송이 살뜰히 구경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망초를 보면 밭 다 망가뜨린다고 얼른 잡아서 뽑으려고만 하지, 달걀처럼 하얗고 노란 봉우리를 느끼려 하지 않아요. 아이도 어른도 너무 바쁩니다. 아이도 어른도 느긋한 마음이 못 됩니다. 아이도 어른도 너무 한 가지만 바라봅니다. 아이도 어른도 삶을 누리는 기쁨을 미처 생각하지 못합니다.


.. “이대로는 학교에 갈 수가 없으니 집으로 데려다주마. 며칠 쉬면 금방 아물 거야. 정말 잘 참았구나. 나는 네가 그렇게 용기가 있는 아이인 줄은 몰랐다. 난 너와 친구가 되고 싶은데 말이다. 정말로 커서 내게 앙갚음을 할 생각이니?” ..  (207쪽)


  시골마을마다 따로 돈을 들이고 품을 들여 빈 논자락에 유채씨를 뿌려야 예쁜 꽃을 구경할 수 있지 않습니다. 아무 돈을 안 들이고 아무 품을 안 들여도, 빈 들을 가만히 두면, 온갖 들꽃이 저마다 다른 빛과 무늬를 뽐내며 얼크러집니다. 들에 잡풀 많이 자라 걱정스럽다고요? 하나도 걱정스럽지 않아요. 어차피 요즈음은 경운기나 트랙터를 써서 논갈이를 하잖아요. 외려 온갖 풀 잔뜩 자라면 온갖 풀이 저마다 다른 거름 노릇을 해요. 괭이밥풀은 괭이밥풀대로 거름이 됩니다. 씀바귀는 씀바귀대로 거름이 됩니다. 냉이는 냉이대로, 보리뺑이는 보리뺑이대로, 지칭개는 지칭개대로, 미나리는 미나리대로, 고들빼기는 고들빼기대로 저마다 거름이 되어요. 논갈이를 해서 거름으로 바뀌기 앞서는 맛난 풀이 됩니다. 맛있는 봄나물 봄풀이에요.


  유채는 잎이란 줄기를 맛나게 먹을 수 있기는 한데, 유채만 먹고는 어떻게 살아요. 유채도 먹고 비름나물도 먹어야지요. 갓도 먹고 돗나물도 먹어야지요. 쌀밥만 먹고는 못 살잖아요. 국도 먹고 김치도 먹으며 무랑 배추랑 시금치랑 골고루 먹어야지요. 보리밥도 먹고 수수밥도 먹어야지요.


  도시 한복판에 애써 나무를 심거나 꽃을 심어야 예쁜 길이 되지 않습니다. 관청에서 돈을 들여 나무를 심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능금씨 하나 심고, 배씨 하나 심으며, 감씨 하나 심으면 돼요. 빈터를 마련하고, 도시에서도 동네마다 곳곳에 마을밭이 있으면 됩니다.


  능금씨 한 알은 천천히 자라 처음에는 새끼손가락만 하게 자라고, 이윽고 어른 팔뚝만큼 자라다가는, 열 해쯤 지나면 어른보다 키가 클 테고, 스무 해쯤 되면, 또는 열다섯 해쯤 되면 열매를 내어줄 수 있겠지요.


  하루아침에 뚝딱 우지끈 짓는 건물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할 수 없어요. 오백 해를 살아온 나무로 집을 지으면 오백 해를 가고, 이천 해를 살아온 나무로 집을 지으면 이천 해를 간다고 해요. 우리 스스로 어떤 삶을 일구고 싶은가를 헤아리며 집을 지을 노릇이요, 나 스스로 어떤 사랑을 나누고 싶은가를 헤아리며 살림을 꾸릴 노릇입니다.


.. “푸른 이파리가 낙엽이 되어 떨어져도 사라지지 않고 다음해에 싹으로 되살아나는 것처럼, 무엇이든 사라지는 것은 없단다. 하잘것없는 풀이 겨울엔 건초가 되어 치즈를 만드는 데 쓰이지 않니? 제제, 기운을 내렴. 누구라도 서로 잊지 않고 가슴속에 깊이 품고 있으면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단다.” ..  (322쪽)


  사랑받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입니다. 사랑받고 싶어서 자라는 풀입니다. 사랑받고 싶어서 아침마다 해가 새롭게 뜹니다. 사랑받고 싶어 들새와 멧새는 새벽에도 낮에도 밤에도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받고 싶은 가을바람이 때로는 서늘하게 때로는 따사롭게 붑니다.


  고흥 어른들은 고흥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싶은가 궁금합니다. 고흥 아이들은 어떤 사랑을 받아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는가 궁금합니다. 고흥이라는 마을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사랑이 넘치는 곳인지 궁금합니다. (4345.11.22.나무.ㅎㄲㅅㄱ)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J.M.바스콘셀레스 글,이희재 그림,청년사 펴냄,2003.3.25./15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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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3-06-12 15:22   좋아요 0 | URL
뽀르뚜까 아저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제제는 어찌 할 줄을 모르죠. 너무 슬퍼해서 저도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읽었네요. 몇년전인데 아마도 제 딸아이가 제제 나이쯤이었을거예요. 그래서 제제의 슬픔이 그리 크게 느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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