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232. 언제


입시지옥 얼개를 그대로 따르면서 꿈을 키우는 어린이나 푸름이가 많다. 어쨌든 초·중·고등학교를 마쳐야 하는 줄 여겨, 꿈은 고등학교까지는 마치고서, 또는 대학교를 다니고서 펴려고도 한다. 꿈꾸는 모든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한마디 들려주고 싶다. “언제 그 학교 그만둘래? 언제 네 꿈대로 살래? 하루라도 그 학교를 더 다니면서 꿈을 미뤄야겠니? 하루라도 그 학교를 빨리 그만두고서 네 꿈을 하루라도 더 누릴래?” 만화를 그리고 싶은 아이라면 이렇게 한마디 들려줄 만하다.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만화라면, 하루라도 만화를 더 그릴래, 아니면 하루라도 만화를 덜 그리면서 그냥 학교에 다니며 학교가 시키는 대로 시험공부 하면서 보낼래?” 꿈길을 언제 가려는 지 생각해야 한다. 사랑길을 언제 첫걸음을 떼려는 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삶길을 언제 지으려는 지 헤아릴 노릇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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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31. 겉절이


배추를 세 포기 장만했다. 어제 장만했으나 어제는 겉절이를 할 기운이 없어 하루를 묵혀 오늘 낮에 한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노느라 바쁘시고, 아버지가 밥을 하건 무엇을 하건 쳐다볼 겨를이 없다. 놀이가 좋고 놀이가 신나니 배고픈 줄도 모른다. 무 손질에 배추 손질을 마쳐서, 먼저 무를 썰어 절여 놓는다. 이제 배추를 썰어 절일 즈음 큰아이가 “뭘 도울까요?” 하고 묻는다. “응, 이제 낮꿈을 꾸면 돼.” 아이들이 낮꿈을 누리고서 일어나고 저녁을 먹고 나면 무도 배추도 폭 숨이 죽으면서 깍두기도 겉절이도 즐거이 담글 수 있으려나? 깍두기나 겉절이는 곁밥살림 가운데 매우 손쉽다고 느낀다. 손질해서 썰고 절이고 풀이랑 양념을 넣어서 잘 섞어서 통에 옮겨 차게 두면 끝. 가만 보면 어려운 집일이나 살림이란 없다. 품을 들이고 마음을 쓰고 차분히 노래하면서 맞이하면 다 되기 마련. 때로는 쓴맛을 보고, 때로는 참맛을 누리면서 배우는 하루.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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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30. 기다려



  글 하나를 마무리짓기 앞서 큰아이가 불쑥 부른다. 다섯 줄로 한 자락을 마치면 될 글이다. 아이가 부른대서 마음이 살짝이라도 흐트러질 일은 없으나, 뭔가 아이한테 알려줄 일이 생겼다고 뼛속 깊이 짜르르 번쩍거린다. 글마무리를 멈추고 아이를 두 손으로 품에 안고서 속삭인다. “사름벼리야, 어머니가 뜨개할 적에 너희가 안 건드리지?” “응.” “너희가 책짓기 하거나 그림 그리거나 뭔가 쓸 적에 아버지가 안 건드리지?” “응.” “아까 아버지가 한창 밥할 적에 동생이 이것 좀 보라고 불렀지만 아버지는 밥을 지켜봐야 하니까 그쪽으로 고개도 돌릴 수 없잖아?” “응. 그래.” “아버지는 곧 마무리를 지어야 할 글이 있어. 조금 더 쓰면 끝나거든. 그런데 마무리를 지을 적에 누가 말을 걸면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어. 그때에는 기다려 주렴. 얼른 끝내고 다시 이야기하자.” 큰아이하고 함께 살아온 열두 해를 돌아보니, 큰아이가 바랄 적에 ‘기다려’ 하고 말한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없다시피 하다. 다만 이제는 아이도 뭔가 기다리고서 제 할 말을 하면 좋겠구나 하고 느낄 때이지 싶다. 기다리는 사람이란 너그러운 사람이란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란 엄청나게 넉넉한 사람이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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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29. 다들 안다



지켜보면서 살아가면 된다. 서두르려 하면 서두르는 마음이 퍼진다. 섣불리 달려들면 섣부른 마음이 흐른다. 느긋하게 함께 걸으면 느긋한 마음이 스민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살림을 지으면 즐겁게 노래하는 살림이 가만가만 녹아든다. 무엇을 가르치느냐는 참으로 대수롭겠지. 그러나 이보다 대수로운 대목이 있으니 어떻게 마주하느냐이다. 아무리 알차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어떻게 들려주느냐를 헤아려야 한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서로 옷차림이나 겉모습에 마음을 기울이려 한다. 아무리 속마음이 아름답더라도 ‘어떻게 = 겉차림’으로 여겨 버릇하니까. 이쯤에서 곰곰이 돌아보자. 아무 옷이나 걸치면 안 되는 셈일까? 두 눈을 감고 볼 적에는 무엇을 걸치든 무엇이 대수로울까? 눈으로 보기에 예뻐야 더 맛날 수 있으나, 눈으로 보는 느낌에 속아넘어간다면? 예뻐 보이지만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물이 깃들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독버섯이 이와 같겠지. 예쁠수록 섣불리 만지지 말라는 독버섯을 모르는 이가 드물 텐데, 막상 예뻐 보이는 겉모습일수록 그이 마음이 어떠할는지를 살피는 사람도 꽤 드물지 싶다. ‘어떻게 = 겉차림’이 아니다. ‘어떻게 = 마음을 쓰는 숨결’이다. 마음을 쓰는 숨결은 옷차림이나 얼굴이나 몸매나 머리카락이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고 마주하며 받아들여서 헤아려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눈을 떠야 할 곳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아야 할 곳에서 눈을 감는 길, 이 길이 마음으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살림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이 물려주고 물려받는 보금자리일 테지. 다들 안다고 하지만 정작 모르는, 다들 얼마든지 알 수 있기에, 두 눈을 제대로 건사할 노릇이라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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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28. 하나가 둘로



아이들을 낳아 돌보는 살림길이 아니었으면 도무지 못 배웠을까 싶은, 그러나 꼭 아이들을 낳아 돌보는 살림길을 걷기 때문에 배우지는 않았을, 즐거운 한 가지를 아침에 느낀다. 신나게 배우려 하면서 활짝 웃는 아이들한테는 하나만 가르치지 못한다. 둘도 셋도 넷도 열도 잇달아 노래하면서 가르쳐 준다. 이렇게 가르치면서 나부터 까르르 웃는 몸짓이고, 배우는 아이들은 히히히 노래하는 마음짓이네. 배움이란 늘 웃음꽃이네. 배움이란 참말로 노래잔치이네. 배우는 삶이란 더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답네. 아이들한테 한 마디를 보탠다. 사랑해. 참 아름답구나. 하루가 맑고 좋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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