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맞춘 나막신



  고무신을 꿰다가 나막신으로 바꾼 지 두 달이 되어 갑니다. 6월 첫무렵에 첫 나막신을 맞추었고, 7월 끝무렵에 새 나막신을 맞춥니다. 두 나막신을 갈마들며 꿰면 더 오래 신겠지요. 첫 나막신은 ‘가장 무던하다’고 할 만한 끈을 대었다면, 새 나막신은 ‘마음에 확 드는 빛고운 끈’을 대기로 합니다. 제가 노란 꽃무늬 끈을 고르자 “왜 그런 끈을 고르느냐?”고 묻습니다. 이 말에 저는 “새 나막신은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끈으로 해야지. 그리고 나막신집 사장님 끈은 밝은 귤빛이야. 저기 봐.” 하고 대꾸합니다. 곁님은 나막신집 아저씨 끈을 보더니 “어머, 그러네. 사장님 끈도 그러네.” 합니다. 이른바 분홍이나 빨강이나 주홍 같은 빛깔을 사내가 입거나 꿰거나 두르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곱구나 싶은 누구나 즐겁게 입거나 꿰거나 두를 노릇이지 싶습니다. 2018.7.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파리를 보다



  언제 어디였는지 가물거리지만, 바다에서 해파리를 본 적 있습니다. 인천 앞바다였는지, 인천 장봉섬인가 영종섬이었는지, 동해였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만 해파리가 제 곁을 스치듯 지나갈 적에 매우 고요했어요. 해파리를 쳐다보느라 물결 소리도 사람들 소리도 바람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 오로지 해파리 헤엄짓을 지켜보는 데에 온마음이 팔렸습니다. 해파리가 무섭다거나 낯설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회나 언론에서는 해파리가 독을 쏜다고들 했지만, 막상 해파리를 곁에서 바라보자니 마음 깊은 곳을 짜르르 울리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이런 해파리를 일본마실길에 오사카에 있는 해유관(海遊館, 바다놀이집)에서 오랜만에 마주했습니다. 다만 해유관이란 데에서 처음부터 해파리를 보여주지 않고 맨 나중에 보여주더군요. 해파리만 보고 싶은 사람은 해파리만 보도록 하면 좋을 텐데 싶어 아쉬웠습니다만, 여러 바다 이웃을 만났으니 고마운 노릇이라고 여기기로 합니다. 개복치하고 고래상어를 눈앞에서 헤엄질로 만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오사카 바다놀이집에서 보여주는 해파리는 커다랗지 않습니다. 아주 작아요. 아기 손만큼 조그마한 해파리가 자그마한 유리집에서 아주 천천히 헤엄을 치는데 몸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요. 이곳에서 켜 놓은 등불도 있습니다만, 해파리 스스로 몸에서 빛을 내는데 확 사로잡힐 만합니다. 해파리란 어떤 숨결일까요? 해파리는 이 지구에서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려줄까요? 2018.7.2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종이책 아닌 이웃책을 읽는 나들이
― 숲에서 온 이야기를 새로 읽는다


  곁님 어머니를 모시고 일본 오사카로 배움마실을 나왔습니다. 아침 여덟 시에 길손집을 나선 뒤, 전철을 타고 스미노에타이샤(住吉大社) 역으로 갑니다. 이곳에 있는 blu room에 들러서 아침 아홉 시부터 낮 열두 시까지 배우고, 가까운 밥집에 들러 오붓하게 배를 채운 뒤에는, 스미노에타이샤 공원에서 두 시간 즈음 풀밭에 드러누워서 낮잠을 자거나 나무 그늘에서 싱그럽고 시원한 바람을 누려요.

  일본 오사카는 전남 고흥보다 온도가 높고 습도까지 높아요. 어느 가게나 건물에 들어가도 에어컨을 틀어놓습니다. 그런데 공원에 있는 우람한 나무를 찾아가서 그늘 밑에 앉거나 서면 등판을 옴팡 적셨던 땀이 곧 말라요. 참 대단하지요. 나무 그늘이란, 나무 그늘에서 맞이하는 바람이란, 에어컨은 견줄 수 없이 아주 시원할 뿐 아니라 싱그럽습니다.

  한여름에 모두 펄펄 끓는다고들 말하는데, 집이나 건물마다 에어컨을 켜기보다는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서 그늘을 드리우는 곳에서 지내거나 일한다면 더위를 모르면서 이 여름을 날 만하지 싶어요. 냉방시설을 갖추느라 애쓰기보다 숲정이를 가꾸는 길을 헤아려야지 싶어요.

  공원 숲에서 쉬면서 모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뿐 아니라 적잖은 사람들이 풀밭에 홀가분하게 앉거나 누워서 쉬어요. 매미를 잡으려고 애쓰는 일본 아이들이 많습니다. 송사리하고 금붕어를 구경하려고 시냇물이나 연못을 맴도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게다가 ‘바비큐 금지’라는 알림글이 있는데 고기를 구워먹는 일본사람이 있네요! ‘낚시 금지’라는 알림글이 붙은 곳에서 버젓이 금붕어를 낚는 일본사람도 있어요!

  깜짝 놀랍니다. 아니, 일본사람이라면 질서나 규칙을 빈틈없이 지키기로 이름이 높은데, 이곳에서는 질서나 규칙을 슬그머니 어기면서 노는 어른이 꽤 많군요!

  그나저나 일본 공원숲은 매미 노랫소리가 매우 우렁찹니다. 그냥 우렁차지 않아요. 귀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어마어마합니다. 매미 허물은 얼마나 많은지요. 땅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깨어난 매미 애벌레가 낸 구멍이 참 많습니다. 이 많은 구멍으로 빠져나와서 바위에도, 건물 벽에도, 걸상에도, 풀줄기에도, 나뭇줄기랑 나뭇잎에도, 허물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 두 아이는 매미 허물 찾느라 바쁩니다. 저쪽으로 달려갔다 싶으면 어느새 두 손 가득 매미 허물을 모았고, 이 허물을 한 자리에 쌓습니다. 때때로 길바닥에 덜어진 매미를 집어서 풀밭으로 옮겨 줍니다. “밟힐 뻔한 매미야. 우리가 알아보고 풀밭으로 옮겨 주니 고맙대.” 매미를 살며시 집어서 옮기면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입니다. 저도 맨발로 풀밭에 서서 나무하고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합니다. 어른 둘이 아름으로 안을 만큼 커다란 나무한테도 마음으로 말을 걸어 보기로 합니다.

  바람이 상냥하게 붑니다. 우리뿐 아니라 이 공원을 찾아온 모든 사람한테 싱그러우면서 시원한 손길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공원뿐 아니라 건물에 있는 사람한테도, 살림집에서 살림을 가꾸는 이웃한테도 상냥한 바람결이 찾아갈 테지요.

  이 여름에 종이책을 못 읽더라도 이웃책을 읽어 봅니다. 바람이라는 이웃책을 읽습니다. 구름과 나무 그늘이라는 이웃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공원이라는 이웃책을 읽어 볼 뿐 아니라, 한국 곁에 있는 섬나라 일본이라는 이웃책을 읽어 봅니다. 왜가리는 사람이 2미터 앞에까지 다가가도 얌전히 마주봅니다. 매미를 잡으려다가 놓친 아이들이 일본말로 뭔가 외칩니다. 아마 아쉽다고 외친 말일 테지요.

  책은 종이에도 있고, 종이가 되어 준 나무한테도 있습니다. 우리는 종이책을 펴면서 이 여름을 시원하게 나기도 하고, 종이책이 비롯한 너른 숲에서 피어난 싱그러운 바람을 읽으면서도 이 여름을 시원하게 즐깁니다. 2018.7.2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저하고 처음 얼굴을 마주하시는 분이라면 으레 나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젊거나 어려서 깜짝 놀랐다는 말씀을 으레 하십니다. 이런 말을 들을 적마다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왜 나이가 있거나 많아야 어떤 일을 제법 잘 한다고 여기는지 아리송하거든요. 제가 스무 살 무렵에는 마흔 살쯤인 줄 알았다고들 하고, 서른 살 무렵에는 쉰 살쯤인 줄 알았다고들 하더니, 마흔 살 무렵에는 예순이나 일흔 살쯤인 줄 알았다고들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며 늘 빙그레 웃고는 보태어 얘기하지요. 사람은 어느 일이든 나이로 하지 않고 길을 걸으면서 할 뿐이라고 말예요. 우리는 누구나 어느 길을 어떤 마음으로 걷느냐에 따라 일을 잘 하거나 못 할 뿐이라고 느낍니다. 열 살 나이라도 더 어려서부터 즐겁게 해 온 일이 있으면 일손이 붙어서 잘 해요. 서른 살 나이라도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이라면 열 살 어린이보다 훨씬 어설프겠지요. 우리는 나이로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걸음걸이로 일합니다. 우리는 나이값으로 발자국을 찍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림손으로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나이값으로 찍힌 발자국에서 눈을 거둘 노릇입니다. 살림손으로 가꾼 보금자리를 바라보는 눈을 키울 노릇입니다. 나이라는 숫자가 아닌, 겉모습이라는 허울이 아닌, 보금자리라는 살림을, 사랑이라는 씨앗을 바라보면 됩니다. 2018.7.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걸으면서



  언젠가 큰아이가 물어요. “아버지는 어떻게 걸으면서 글을 쓸 수 있어?” “응, 아버지는 오랫동안 그렇게 하며 살았어.” 생각해 보니 걸으면서 글을 쓴 지 서른 해 남짓입니다. 걸으면서 책을 읽은 지도 이즈음 됩니다. 걸으면서 책을 처음 읽던 무렵, 걸으면서 글도 썼어요. 그리고 걸으면서 꿈을 꾸었고, 걸으면서 노래했습니다. 오래 걷는대서 다리가 아프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걸으면서 읽고 쓰고 꿈꾸고 노래할 적에는 오직 이 생각만 하느라 그저 이 생각에 사로잡혀서 즐겁게 걸었어요. 다 걷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아 참 오래 많이 걸었네’ 했어요. 길그림책을 펴고 오늘 어디를 어떻게 걸었나 돌아보면 이렇게 길디긴 길을 신나게 걸었네 싶어 스스로 대견했어요. 오늘은 걸으면서 책숲집 소식종이를 접어서 봉투에 넣었습니다. 2018.5.10.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