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문학과지성 시인선 498
서정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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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3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

 서정학

 문학과지성사

 2017.5.30.



  젊다는 이하고 늙다는 이가 쓴 시를 문득 돌아보면, 젊다는 이는 시마다 영어를 한두 마디씩 어떻게든 섞는구나 싶고, 늙다는 이는 시마다 한자를 드러내어 요리조리 섞는구나 싶습니다. 젊다는 이는 영어를 섞으며 가볍다거나 틀을 깨겠다는 다짐으로 보인다면, 늙다는 이는 한자를 섞으며 묵직하다거나 틀을 지키겠다는 다짐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쪽을 보든 저쪽을 보든 글치레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정작 시라고 하는 노래는 잘 안 보이기 일쑤입니다.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를 읽으며 내내 영어에 치입니다. 달리 본다면, 이 시집에 실린 영어에 치인다기보다, 우리 삶터가 이런 흐름이니 시인도 이런 흐름을 고스란히 담는구나 싶어요. 늙다는 이는 예전에 예전 삶터 흐름대로 한자를 신나게 드러내어 시를 썼지요. 다시 말해서, 삶터가 아늑하거나 따스하거나 사랑스럽다면, 시를 쓰는 이들 글결도 달라지겠지요. 다만 삶터가 이러거나 저러거나 시라고 하는 글을 쓰는 이는 삶터 흐름에만 따르거나 휩쓸리기보다는 스스로 새롭게 흐름을 지을 줄 안다면 반갑겠습니다. 남들이 다 그러하니까 시도 그러려니 하고 따르는 발걸음이 아니라, 서로 즐거이 부를 노래를 스스로 새로 일구어 가만히 펴는 손길이 될 노릇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물을 붓고 3분만 기다리면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떨리는 손으로 봉지를 뜯었다. 날은 추워지고 또 몸은 젖었으니 그것밖에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인스턴트 사랑주스/17쪽)


스무 개가 겨우 천 원이라는 상상 초월 대박 가격에 모든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다. (동네에서 제일 싼 프랑스/61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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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동자 창비시선 66
고은 지음 / 창비 / 198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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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50


《네 눈동자》

 고은

 창작과비평사

 1988.3.20.



  예전에 어떤 길을 걸었든 오늘 새롭게 길을 걷는다면, 지난 자취를 떨쳐낸 즐거우면서 고운 발걸음이 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누가 옛자취를 캐묻거나 따지면서 손가락질을 한다면 넙죽 절을 하면서 새삼스레 잘못을 빌고 더욱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겠지요. 《네 눈동자》라는 시집은 1988년에 나왔다 하고, 이 시집에 적힌 고은 시인 딸아이 고차령은 세 살이라 합니다. 이 시집을 읽으면 딸아이 이야기가 꽤 자주 나오는데 퍽 구성집니다. 고은 시인은 이녁 딸아이를 마주하면서 틀림없이 모든 앙금이 스르르 풀리면서 아름다운 빛을 보았다고 느껴요. 그런데 으레 이때뿐, 집 바깥으로 나돌면서 두 손에 술잔을 쥐었다 하면 말썽을 일으켰구나 싶어요. 왜 술잔을 즐겁게 못 들고 말썽쟁이 손길로 들었을까요? 딸아이 보기에 아름다운 술잔이 되기는 어려운 노릇일까요? 앞하고 뒤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길이 시를 쓰는 사람 참모습일까요? 두 손에서 술잔을 떼어놓고서, 앙금이란 앙금은 씻으려는 마음이 되고서, 모든 부끄러운 걸음걸이를 뉘우치며 새로 태어나겠다는 몸짓이 될 때에 비로소 시 한 줄을 쓰는 이름을 얻으리라 봅니다. 하늘을 보고도, 딸아이를 보고도, 스스로 부끄러운 줄 모른다면, 그이는 뭘까요? ㅅㄴㄹ



여기 지는 잎새 하나 받을 만한 손바닥 없이 / 그저 맨바닥으로 / 이 땅의 자손 자라났다 / 수많은 술집 빈 적 없나니 (낙엽/17쪽)


세살짜리 차령이 / 아침마다 노래하누나 / 네가 먼저 일어나 / 노래하누나 / 뭐라고 / 뭐라고 노래하누나 / 잠든 아빠 들으라고 / 엄마 엄마 들으라고 / 잘도 노래하누나 / 그제서야 새 한 마리 두 마리 노래하누나 (노래/19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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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 애지시선 49
유현아 지음 / 애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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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49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

 유현아

 애지

 2013.6.17.



  글 한 줄을 쓰면서 마음에 얹힌 것을 내려놓습니다. 굳이 글을 안 쓰더라도 입밖으로 말을 털어놓을 수 있으면 응어리를 풀어냅니다. 글로도 말로도 내어놓지 않으면 오래오래 얹히다가 그만 삭아서 속이 몹시 괴롭기 마련입니다. 말로 쉽게 털어놓기 어렵기에 글로 조용히 적어요. 하나하나 적은 글을 갈무리해서 엮으니 어느새 시 한 줄이 태어납니다.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을 읽으면 답답합니다. 시쓴이가 살아오며 속에 품은 답답한 이야기를 풀어내니, 이 이야기를 읽을 사람도 답답한 마음이 될밖에 없습니다. 속엣것을 털어내려고 시를 쓰고, 시집을 손에 쥔 사람은 마음으로 이웃이 되어 이 답답한 속엣것을 맞아들여 마음으로 토닥여 주는 얼거리로구나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한국이란 나라에서 답답한 응어리 아닌 신나는 살림을 시 한 줄로 노래하는 사람을 마주하기란 참 힘드네 싶어요. 어릴 적부터 잘못이나 말썽이나 굴레를 숱하게 지켜보고서 이를 마음에 담아요. 오래도록 고이거나 썩고 만 응어리를 찬찬히 풀어내려니 글로 옮기면서 더더욱 괴롭기 마련입니다. 앞으로 시를 쓸 분들은 답답한 속엣것이 아닌, 노래로 피어나는 씨앗을 풀어낼 수 있을까요? 그런 날은 언제쯤이 될까요?



직업 없고 큰소리만 쥐고 있던 아버지가 정말 싫었어 죽도록 일만 하고 경제력은 아버지한테 쥐어준 엄마는 더 싫었어 기타를 옆에 끼고 노래 따위나 흥얼거렸던 아버지 앞에서 엄마는 궁상스럽게도 비굴했어 그리고 까스명수를 마셨지 (까스명수/46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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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에서 쓴 편지
고정희 / 미래사 / 199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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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래책시렁 46


《뱀사골에서 쓴 편지》

 고정희

 미래사

 1991.11.15.



  나는 꽃이다, 하고 입술을 달싹이면 참말 나 스스로 꽃이 된 듯합니다. 나는 꽃이다, 이 말이 수줍어 좀처럼 터뜨리지 못하곤 하는데, 살며시 터뜨리고, 거듭 읊고, 자꾸자꾸 말하다 보면 어느새 노래처럼 가락을 입고 흥얼흥얼 즐거워요. 나는 바보이다, 하고 입술을 놀리면 참으로 나란 녀석은 바보가 된 듯합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했으니 이렇게 말하지만, 정작 이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 아픕니다.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슬픈 말은 하지 말자고 여겨요. 《뱀사골에서 쓴 편지》를 읽으면, 노래님 스스로 꽃이 되다가 바보가 되는 가락이 넘실거립니다. 때로는 눈부신 꽃으로 피어나고, 때로는 슬픈 바보로 가라앉습니다. 때로는 수줍은 꽃이었다가, 때로는 슬기로운 바보이고 싶은 마음을 느껴요.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 참모습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디에 설까요? 우리 참길이란 참삶이란 참사랑이란 어떤 그림일까요? 진눈깨비가 흩날리다가 함박눈이 퍼붓는 겨울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을 수 있지만, 겨우내 꽁꽁 얼다가도 포근한 볕하고 바람을 맞이하면서 기지개를 켤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 길이요 삶이요 노래이면서 하루입니다. 두 팔을 펼쳐 바람을 안습니다. ㅅㄴㄹ



잔설이 분분한 겨울 아침에 / 출근버스에 기대앉아 / 그대 계신 쪽이거니 시선을 보내면 / 언제나 / 적막한 산천이 거기 놓여 있습니다 (묵상/90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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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건드려주었다 시작시인선 203
이상인 지음 / 천년의시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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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70


《툭, 건드려주었다》

 이상인

 천년의시작

 2016.5.25.



  겨울이라는 철은 추위가 오르내리는 결이 재미있습니다. 꽁꽁 얼어붙는 날씨가 한바탕 지나면, 포근한 기운이 얼마나 반가운가 하고 새삼 느껴요. 처음 겨울에 들어설 무렵보다 훨씬 바람 찬 날이라 해도 꽁꽁추위 뒤끝에는 꽤 지낼 만하네 하고 느껴요. 겨울에 더 눈부신 별빛하고 밤바람을 쐬며 생각합니다. 우리한테 겨울이 있고 봄이며 여름이 있기에 노래하는 삶이 이곳에 있고, 여름하고 겨울 사이에 가을이 있어 더욱 싱그러이 노래하는 살림이 여기에 있지 싶어요. 《툭, 건드려주었다》는 하루하루 툭 건드리는 말이며 벗이며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찬찬히 짚습니다. 무밭에서 만난 나비를, 할머니 무덤에서 받은 제비꽃을, 얼핏 스치려다가 한동안 지켜보고서 두고두고 마음으로 담아서 가락을 얹습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바람을 마시며 하루를 마감했을까요. 우리는 이 밤이 지나고 나면 어떤 햇볕을 먹으며 하루를 열까요. 한겨울에는 나비가 모두 잠들어 없을 테지만, 아직 대롱대롱 남은 억새 씨앗이 마치 나비처럼 춤추며 하늘을 뒤엎습니다. 문득 한 송이씩 날리는 눈도 마치 나비 날갯짓처럼 조용히 찾아들면서 온누리를 하얗게 덮으면서 춤춥니다. 눈춤을 마주하는 아이들은 온몸으로 뛰고 달리면서 눈을 맞이하고요. ㅅㄴㄹ



나비 한 마리가 무밭을 뒤집다. / 손바닥 푸른 손금 안에, 생각을 낳는지 / 소리도 없이 몇 초씩 머물러서 / 내 등허리 간지럽다. (둥근 하늘/21쪽)


할머니 무덤에 갔다. / 반가운 손자가 왔다며 / 제비꽃 한 묶음 슬며시 내미셨다. (제비꽃 무덤/84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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