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이레에 한 꼭지는 하자고 생각하다가

그만 잊고서 지나갔다.

올해에

동시 일본글로 옮기기를

몇 꼭지 했을까?

부끄럽네.

오랜만에 하나 옮겨 보았다.


+ + +


冬場 (森歌/崔鐘圭)


冬が早く來れば

凍りついた川の水乘って

長い長いつららを取って

雪原で轉がるだろう


冬が身近に近づいてきたら

凍てついた川の水かいて食べて

長いつらら鼻に付けて

雪原にすっぽり埋まるでしょ


冬がさっさと訪ねてきたら

凍りついた手ふうふう息吹遊び

長い長いつらら箸

雪原には雪だるま遊び場


冬が もう 來たんだ

はだしで氷を踏んでみようか

素手で雪片を受けてみようか

ああ, 冷えるけど凉しい


+ + +


겨울 (숲노래/최종규)


겨울이 어서 오면

꽝꽝 얼어붙은 냇물 지치고

길쭉길쭉 고드름 따먹고

눈밭에서 구르지


겨울이 냉큼 다가오면

언 냇물 긁어서 먹고

길다란 고드름 코에 붙이고

눈밭에 폭 파묻히지


겨울이 얼른 찾아오면

언손 호호 입김놀이

길고 긴 고드름 젓가락

눈밭에는 눈사람 놀이터


겨울이 이제 왔어

맨발로 얼음 밟아 볼까

맨손으로 눈송이 받아 볼까

아아 시리지만 시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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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57. 가르다



  어릴 적부터 이쪽저쪽을 가르는 일은 내키지 않았습니다. 모두 하나가 되면서 어울리면 좋을 텐데요. 그렇지만 놀이를 하든 시험을 치르든 운동경기를 하든 언제나 ‘쪽가르기(편가르기)’를 해야 했습니다. 이때마다 머리를 싸맸어요. 언제나 같이 놀던 동무하고 다른 쪽으로 갈리면 어떡하지? 이때에는 남남처럼 굴어야 하나? 때때로 놀이동무하고 다른 쪽이 되어 맞붙어야 했고, 이때 놀이동무가 무척 세차거나 매몰차게 구는 모습에 힘들었습니다. 고작 국민학교 체육시간 편가르기 경기일 뿐이라지만, 어느새 사이가 틀어졌어요. 그 뒤로는 놀이 아닌 체육시간이나 운동경기가 매우 거북했고, 끼거나 하기 싫었습니다. 차츰차츰 자라며 ‘판가름’이란 말을 만났습니다. ‘가르다’하고 다르면서 비슷한 ‘가리다’란 낱말을 곱씹었어요. “똥오줌을 가리다”라든지 “옳고그름을 가리다”처럼 ‘가리다’를 쓰더군요. ‘갈래’나 ‘갈림길’ 같은 낱말을 혀에 얹고, 조금씩 생각을 뻗어 ‘가지·갖가지’나 ‘가다’ 같은 더 깊은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르든 가리든 좋거나 나쁜 길이 아닌, 우리가 무엇이든 몸으로 겪으면서 새롭게 헤아려서 알아내는 길이로구나 싶었어요. 가시밭길이든 꽃길이든 즐겁게 가자는 마음으로 ‘가르다’를 생각하면서 맞이하기로 합니다. 물살을 가르면서 나아갑니다. 하늘을 가르면서 날아갑니다. 앞을 잘 보려고 머리카락을 가르면서 눈을 반짝여요. 꿋꿋하게 가로질러요. 가로하고 세로가 만나면서 우리 자리가 새롭게 빛나요. ㅅㄴㄹ



가르다


가만히 있어도 알기에

그대로 있으며 좋기에

하나로 있어서 보기에

가르지 않고서 있구나


새롭게 알아갈까 싶기에

춤추며 놀러갈까 싶기에

다르게 보러갈까 싶기에

슬며시 가르면서 어울려


너랑 나랑 가르면서

재미나게 어울마당

너희하고 우리를 나누면서

더욱 넓게 푸르게 어울림판


어떤 느낌인지 판가름한다

어떤 결인지 가려내지

물살도 바람도 가르며 달려

가르마에 햇빛이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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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를 씁니다

숲노래 노래꽃 ― 56. 떡



  우리 집 떡순이가 참 오래도록 떡노래를 부르더니 한두 해쯤 갑자기 떡노래를 끊었어요. 이러다가 요즈막에 다시 떡노래를 슬금슬금 부릅니다. 떡노래를 부르는 떡순이한테 너희 아버지가 바깥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네가 바라는 떡을 한 꾸러미 장만해 주마 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돌아봅니다. 아마 오늘날 아버지란 자리에 있는 분들은 으레 “그래, 떡이 먹고 싶구나. 그러면 떡집을 찾아야겠네.” 하는 말을 먼저 꺼내리라 느껴요. 그렇지만 밥이든 떡이든 예전부터 다 집에서 해서 누렸어요. 빵이나 케익도 그렇지요. 사다가 먹는 밥이나 떡이나 빵이나 케익이 된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이리하여 떡순이한테 떡을 노래하는 글자락을 써서 들려주기로 합니다. 이 노래꽃은 떡순이한테뿐 아니라 아버지 스스로 새롭게 살림을 생각하려는 뜻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꽃에서 ‘떡’을 다른 낱말로 바꾸어도 마찬가지예요. 무엇이든 쉽게 바깥에서 돈을 치러서 우리 것으로 삼으려 하기보다, 우리가 손수 짓는 길을 먼저 헤아리고, 우리 살림을 손수 지으려면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마음을 쓰면서 하나하나 돌보면 되려나 하고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지을 적에 가장 빛날 테지요. 그렇지만 사다가 누릴 적에도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이 될 수 있으면 초롱초롱 빛날 수 있어요. 기쁨에 보람에 노래에 사랑이 되도록 떡 한 조각을 마주합니다. ㅅㄴㄹ




떡을 먹고 싶으면

떡집을 다녀오자는 아버지

떡이 먹고프면

찹쌀반죽에 팥고물 쑤라는 어머니


떡이 좋은 떡순이

떡이 맛난 떡돌이

가게떡도 제법 맛있는데

집떡맛은 어느 떡도 못 따라


할아버지가 우리 얘기 듣다가

“그럼 찹쌀 심어 보련?”

할머니는 한 마디 거들며

“찹쌀 맺으면 낫으로 베어 보련?”


우리가 손수 심어 기르고

늘 들여다보며 돌보고서

바로 우리 손으로 거두고 말리면

그 찹쌀떡이 으뜸맛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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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55. 늑대



  늑대라고 하는 이웃은 사납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어느 눈으로 보면 그렇게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늑대 눈으로 사람을 보면 어떠할까요? 사람이야말로 더없이 사납거나 거칠거나 모질거나 괘씸하거나 무시무시하거나 끔찍하거나 지저분하거나 터무니없을 수 있어요. 늑대가 사람을 보기에는 이렇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사람은 ‘먹이’로 삼을 뜻도 아닌 그저 ‘재미’로 온갖 짐승을 마구 잡아서 죽입니다. 사람은 ‘보금자리’로 꾸밀 뜻이 아닌 그저 ‘돈벌이’를 노리면서 숲을 마구 허물거나 망가뜨립니다. 사람이 이룬 나라는 저마다 평화를 외치면서도 군대하고 전쟁무기를 어마어마하게 갖추어서 으르렁거려요. 평화를 바란다면서 왜 군대하고 전쟁무기에 그토록 돈을 엄청나게 쏟아부을까요? 과학자는 왜 이렇게도 군사무기를 새로 짓는 데에 온힘을 쏟을까요? 이제 늑대를 오롯이 늑대 마음으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스스로 늑대 눈으로 보고, 스스로 늑대 발로 달리고, 스스로 늑대 머리로 생각하고, 스스로 늑대 털로 느끼고, 스스로 늑대 입으로 노래하고, 스스로 늑대 느낌으로 별빛을 읽는 길을 헤아리면 좋겠어요. 이 별을 이룬 여러 이웃 가운데 하나인 늑대를 참말로 이웃으로서 마주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고스란히 사람살이에도 맞물려 놓고서, 사람인 이웃도 상냥하고 아름답게 마주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면 좋겠어요. 우리들 사람은 이 별에서 즐겁게 배우고 새롭게 익혀서 곱게 나누는 보람을 노래하려고 살아가지 싶습니다. ㅅㄴㄹ



늑대


있는 힘껏 들을 달려

바람을 즐기거든

귀 쫑긋 숲을 갈라

잎새 스치는 느낌 누리거든


달빛보다는 별빛을 봐

작은 꽃빛을 눈여겨보고

들풀에 어린 이슬을 읽고

안개에 서린 물방울을 느껴


아이가 태어나면

씩씩하되 상냥한 마음을

당차되 부드러운 걸음을

밝으며 꿰뚫는 눈망울을


여기에다가

서로 돌볼 줄 아는 숨짓을

놀이로 가르치고서

들녘사랑을 물려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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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수수께끼

숲노래 수수께끼 71


말끔히 씻고서 키우려고

한꺼번에 치우고서 돌보려고

모두 처음부터 가꾸려고

내가 찾아가


누구나 속에 품지

무엇이나 가슴에 안고

스스로 지어서 살고

어디서나 일어나며 움직여


사랑할 적에는 무지개로 피고

미워할 때에는 활활 타올라

아름다울 적에는 해님으로 되고

슬퍼할 때에는 끝없이 태워


속에 다 있으니 따뜻해

어느 곳에나 살기에 숨결

스스로 지으니 엿보지 마

아무 곳에나 퍼뜨리지 마


+ + +


숲이나 들이나 마을에 지저분한 것이 있으면, 숲은 스스로 불을 일으킵니다. 때로는 벼락을 불러서 불을 일으킵니다. 불은 땅 위쪽에 있는 모든 것을 고스란히 녹여서 새로운 몸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입니다. 그래서 불이 아무리 드세게 일어나도 땅 밑쪽은 아랑곳하지 않아요. 땅 밑쪽은 고요하지요.


땅 위쪽에 지저분한 것이 많아서 잔뜩 씻어내거나 걷어내야 한다면, 비가 세차게 잇달아 내리더라도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숲이나 들이 스스로 일으킨 불이거든요. 그런데 숲이나 들이 때때로 그만 드센 불길을 일으키면서 이 불길에 잡아먹히기도 해요. 이때에는 사람이 나서서 불길을 잠재워 주어야 합니다.


불길은 어떻게 잠재울 만할까요? 비를 부르면 잠재울까요? 어느 때에는 빗물로 잠재울 만하지만, 어느 때에는 빗물로 안 됩니다. 기름밭을 건드린 불길은 빗물로는 안 되어요. 그렇다면 이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람을 부르면 되어요. 불길이 사나운 곳에 바람이 한 줄기도 흐르지 못하도록 닫으면 되지요. 아무리 드센 불길이어도 바람을 마시지 않으면 더 타지 못하고 바로 죽어요. 기름불도 그렇답니다.


그리고 모든 풀하고 나무는 속에 물을 듬뿍 머금었어요. 그래서 굳이 빗물을 부르지 않더라도 풀하고 나무가 스스로 저희 몸에 머금은 물을 한꺼번에 내놓으라고 시키면, 이러면서 풀하고 나무가 모든 바람길을 막도록 이끌면, 비바람이 하나가 되어 불길을 훨씬 빠르게 잠재울 만해요.


모든 숨결은 속에 물하고 불을 같이 품습니다. 물만 품으면 그만 녹아버리고, 불만 품으면 그만 타버려요. 우리 몸뿐 아니라 돌이나 바위나 풀이나 나무는 물하고 불을 알맞게 다스리면서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무지개이지만, 미워할 적에는 활활 타올라서 무시무시하고 스스로 목숨을 갉아먹어요.


+ +


(아마존 불길한테, 마음으로 물어봤습니다. "너 왜 일어났니?" "그 뜻을 너희가 스스로 찾아야 해. 그리고 수수께끼 하나는 알려주지." 하고 알려준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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