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궁금해? - 익숙한 듯 낯선 이웃
채희영 지음, 김왕주 그림 / 자연과생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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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54


《참새가 궁금해》

 채희영 글·사진

 김왕주 그림

 자연과생태

 2019.8.16.



참새 학명은 ‘산 참새’, 영명은 ‘숲 참새’라는 뜻입니다. (16쪽)


어른 참새는 식물 씨앗을 주로 먹으며, 특히 곡류를 좋아합니다. 물론 동물성 먹이도 먹습니다. 나비목(40%)을 가장 많이 먹으며, 이어서 딱정벌레목과 집게벌레목, 메뚜기목(각각 15%)을 비슷하게 먹고, 그 다음으로 잠자리목(5%), 기타(10%)로 조사되었습니다. (48쪽)


번식기에 암컷은 수컷 노랫소리를 듣고서 짝을 고르기 때문에 암컷 선택을 받으려면 수컷은 여러 소리로 노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61쪽)


우리나라에서 참새가 줄어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질 좋은 먹이를 구하고, 둥지를 안정적으로 틀 수 있는 환경이 감소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80쪽)


참새가 줄면 참새 먹잇감인 진딧물이 늘어납니다. 진딧물은 식물 잎 등에 붙어 영양분을 빨아먹기 때문에 진딧물이 많아지면 시들어 죽는 식물도 그만큼 늘어날 거예요. (81쪽)



  한가을에 접어들어 들판이 누렇습니다. 이 누런 들판 가을볕을 듬뿍 머금으면서 나락이 익는 냄새를 퍼뜨립니다. 일찍 심은 들은 일찍 베겠지만, 나중 심은 들은 가을볕을 더 머금으면서 벨 날을 기다려요. 벼베기를 마친 나락은 시골길 한켠에 길게 펼칩니다. 논자락에서는 볕을 먹고 익는다면, 길자락에서는 볕을 담으면서 곱게 마르지요. 볕으로 곱게 마른 나락은 다음 한 해를 살뜰히 이을 먹을거리로 건사할 수 있습니다.


  가을날 벼베기철이 되면 참새가 낟알을 쪼느라 부산한 모습을 곧잘 봅니다. 또 벼베기를 마친 빈들에 내려앉은 참새떼를 어렵잖이 만날 수 있습니다. 자, 이때에 문득 생각해 볼 만해요. 나락이 잘 여물어 날로 먹을 만한 때는 한가을입니다. 그렇다면 한가을에 이르기까지 참새 같은 새는 무엇을 먹으며 살림을 이을까요?


  《참새가 궁금해》(채희영, 자연과생태, 2019)는 매우 단출합니다. 몸무게가 20그램이 될락 말락 하다는 참새라는데, 이 단출한 숲책은 96쪽이에요. 조그마한 참새를 이야기하는 가벼운 숲살림 꾸러미입니다. 그러나 아흔여섯 쪽에 걸쳐 참새 한살이를 비롯해 참새하고 얽힌 우리 살림살이를 잘 펼쳐 놓습니다. 마치 가을볕을 머금는 가을나락 같다고 할 만합니다.


  가을이 깊어 나락을 벨 즈음 낟알을 찾는다는 참새라지만, 이때까지 참새 먹이는 나비에 나방에 애벌레에 풀벌레라지요. 잠자리랑 거미도 많이 잡아서 먹고요. 아마 파리랑 모기도 꽤 많이 잡아채어 먹지 않을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가을에 벼를 벤 빈들에서 이삭을 쪼려는 참새를 귀엽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봄여름 내내 애썼고, 첫가을에도 힘쓴 참새더러 조그맣게 누리라고 내미는 우수리가 될 수 있어요. 겨울에도 눈밭 한켠에 모이그릇을 놓고서 참새가 겨울나기를 잘 하라며 아낄 수 있습니다. 참새를 비롯한 마을 텃새는 마을 논밭에서 애벌레랑 나비 나방을 알맞게 줄이는 큰몫을 맡거든요.


  예전에 적잖은 나라에서 ‘참새가 많아 곡식을 쪼니 싫다’고 여겨 참새잡이를 일삼은 적 있다는데, 이렇게 참새잡이를 일삼아 ‘참새가 사라진 마을’이 된 뒤에는 벌레가 엄청나게 끓어대어 아예 흙짓기가 무너졌다지요. 논밭뿐 아니라 아무까지 온통 벌레한테 잡아먹혔다고 해요. 이리하여 부랴부랴 다른 고장이나 나라에서 참새를 얼른 데려와서 풀어놓았다 하고, 참새가 돌아온 마을은 ‘벌레 들끓어 흙짓기가 망가지는 일’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논밭에는 애벌레도 나비도 어느 만큼 같이 살아야 아름다운 셈입니다. 갖가지 숨결이 고루 어우러지기에 아름드리숲이 되고, 이 아름드리숲에서 사람도 아름답게 살아갈 만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참새 한 마리는 대단한 이웃이에요. 사람들 곁에 머물며 한 해 내내 노래를 베풀고, 꾸준히 벌레잡이를 하는 멋진 동무이기도 합니다. 노래벗이요 벌레잡이인 참새를 조금 더 상냥히 바라보면 좋겠어요. 단출한 이야기책 《참새가 궁금해》를 곁에 놓으면서.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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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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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배를 엮다”, 한국은 “숲을 짓다”



《배를 엮다》

 미우라 시몬

 권남희 옮김

 은행나무

 2013.4.10.



“뭐어? 국어학이라고? 뭐냐, 그건? 너 우리말 할 줄 알잖아?” (9쪽)



  긴머리를 치렁거리기도 하고, 고무줄로 묶은 뒤에 꽃집게로 여미기도 한 채, 80리터들이 큰 등짐을 짊어지고 앞에는 수첩을 담는 어깨짐을 둘 가로지르고는 끌짐까지 곁들인 차림새로 다니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도 민소매에 깡동치마를 두르고 고무신을 꿰기에 “저기 뭐 하는 사람이래?” 하는 수다가 들릴 만큼 쳐다보는 이가 있습니다. 이러거나 말거나 가득 지고 지르고 끄는 짐으로 씩씩하게 걷다가 수첩을 꺼내어 뭐를 쓰고, 또 버스나 전철을 기다리며 책을 꺼내어 읽는데 연필을 쥐어 또 뭐를 바지런히 쓰기도 합니다. 때로는 책을 집어넣고 동시를 신나게 씁니다. 무슨 일을 하는 아저씨일까요?



“한창 활동하는 남성이 중심이 되어 편찬을 추진하는 일이 많아서 패션이나 가사와 관련된 용어가 불충분한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앞으로의 사전은 그러면 안 됩니다. 취미도 관심 분야도 다 제각각인 남녀노소가 모여 한 권의 사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만.” (59쪽)



  소설책 《배를 엮다》(미우라 시몬/권남희 옮김, 은행나무, 2013)는 일본에서 무척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리 널리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소설을 넘어 영화가 나왔고, 만화영화가 나오기도 했을 뿐 아니라, 이제 만화책으로까지 새로 나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소설책 《배를 엮다》는 어떤 이야기를 담았기에, 영화에 만화영화에 만화책으로 결을 넓혀서 일본에서 크게 바람을 일으킬까요? 또 한국에서는 이 이야기를 살피는 분이 꽤 있기는 해도 왜 그다지 눈여겨보지는 않을까요?



니시오카는 사전에 매료된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먼저 일을 일이라고 생각하긴 하는지부터 궁금했다. 월급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자비로 자료를 구입하기도 하고, 마지막 전철을 놓친 사실도 모르고 조사를 하느라 편집부에서 자는 날도 있다. (152쪽)



  앞서 밝힌 알쏭달쏭한 차림새인 아저씨는 바로 제 모습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가며 저 같은 차림인 사내를 아직 본 적이 없고, 저처럼 갖은 짐을 이고 지고 들고 끌고 다니는데, 손이 비면 이 빈손에는 어김없이 책이나 수첩이 들리는 사람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걸어다닐 적에도 책을 읽거나 수첩에 글을 옮기거나 동시를 씁니다. 불빛이 없는 한밤에는, 서울에서라면 길거리를 밝히는 등불에 기대고, 시골에서라면 별빛에 기대어 책을 읽거나 글을 씁니다. 그리고 꽤 자주 책이며 수첩을 집어넣고서 눈을 감고 풀잎이나 나뭇잎이나 꽃잎하고 속삭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빗방울하고 이야기를 하고, 마실길에 너럭바위가 보이면 가만히 너럭바위에 앉거나 누워서 이 바위가 살아온 나날을 마음으로 듣곤 해요.


  사전이라는 책을, 이 가운데 한국말사전이란 책을 쓰기에 이런 차림에 저런 몸짓을 합니다. 제가 가시내란 몸을 입고 태어났으면 아마 바지만 둘렀을 수 있다고 여기는데, 사내란 몸을 입고 태어났기에 ‘치마’란 낱말을 뜻풀이를 제대로 하자면 치마를 입고 살아가는 결을 몸으로도 익혀서 받아들여야 비로소 뜻풀이를 제대로 합니다. 중·고등학교 다니며 바짝 깎은 머리로 살았으니, 이제는 치렁대는 긴머리로 살며 ‘치렁치렁하다’란 말을 몸으로 느끼고, 집안일을 도맡으면서 도마질이든 칼질이든 채치기이든 국이며 찌개이며 밥하고 얽힌 살림살이를 몸으로 받아들여서 이러한 낱말을 찬찬히 뜻풀이를 하는 길을 찾습니다.


  ‘풀·꽃·나무’를 풀이하자니 풀이며 꽃이며 나무하고 수다를 떨어야 합니다. 빗물이나 냇물이나 바닷물이란 낱말을 풀이하자니 마땅히 비나 내나 바다하고도 사귀면서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돌이나 바위란 낱말을 풀이하려고 돌하고 바위랑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지요.



말이 갖는 힘. 상처 입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고 누군가에게 전하고 누군가와 이어지기 위한 힘을 자각하게 된 뒤로, 자신의 마음을 탐색하고 주위 사람의 기분과 생각을 주의 깊게 헤아리려 애쓰게 됐다. (258쪽)



  소설책 《배를 엮다》를 읽으면 일본이란 터전에서 여느 일본사람하고 달라도 참으로 다른 ‘사전을 짓는 길을 가는 사람’ 모습이 제법 잘 나옵니다. 사전쓰기를 하는 이는 다른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깔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눈치를 안 보고 딴짓을 안 한다는 뜻입니다. 겉치레를 안 하고 겉모습에 안 휘둘린다는 뜻입니다.


  ‘멋·사랑·아름다움’을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요? 겉으로 꾸민 멋이나 사랑이나 아름다움에 휩쓸려서야 제대로 뜻풀이를 못 하겠지요? 멋이나 사랑이나 아름다움은 겉모습이나 겉치레나 꾸밈결이 아니에요. 속에서 우러나오는 결을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멋있다’나 ‘사랑스럽다’나 ‘아름답다’ 하고 말합니다.


  사전이란 책을 쓰자면 바로 이 대목, 겉읽기는 겉읽기대로 하되, 언제나 바탕은 속읽기를 제대로 하는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은, 말을 낳는 마음은 권위나 권력과는 전혀 무연한 자유로운 것입니다.” (288쪽)



  말을 홀가분하게 다루어 책으로 엮으니 사전입니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엮을 수 없습니다. 어느 대학교나 연구소 입김에 휘둘릴 수 없습니다. 몇몇 전문가 마음대로 뜻풀이를 바꿀 수 없습니다. 숨을 쉬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말씨 하나에 생각을 나타내어 나누는 기쁨이며 보람이 있’는 줄 깊고 넓게 느끼면서 살가이 어루만질 줄 아는 눈빛이어야지 싶습니다.


  누가 돈을 얹어 준대서 어느 낱말 뜻풀이를 바꾸지 않습니다. 누가 주먹다짐을 한대서 어느 낱말 뜻풀이를 고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가고 살림하며 사랑하는 결을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속내를 환히 밝히는 길을 살펴 뜻풀이를 붙입니다.


  가만히 따지면, 배라는 탈거리는 ‘뭇다’라는 낱말로 그려요. ‘배무이’라 하지요. 그런데 소설책 《배를 엮다》는 일본말로도 ‘엮다’를 쓰더군요. 처음에는 이 말을 넣은 대목이 아리송했지만, 마치 그물을 엮듯이, 씨줄날줄을 고르면서 반듯하게 엮듯이, 어디에 얽매이거나 휩쓸리지도 않은 채, 넓디넓은 바다를 아름다이 가로지르는 마음으로 사전이란 책을 쓴다는 뜻으로 ‘엮다’란 낱말을 골랐구나 싶더군요.


  자, 그러면 한국에서 한국말사전을 쓰는 저는 어떤 낱말을 고를까요?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이기에 “배를 엮다”가 어울립니다. 이와 달리 한국은 멧자락이 골골샅샅 우거진 나라입니다. 한국은 아름드리인 나무가 빼곡하던 누리였어요. 그래서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가는 사람한테 어울리는 이름이라면 “숲을 짓다”라고 느낍니다. 한국은 숲나라입니다. 한국은 숲에서 살림이며 사랑을 지어서 삶을 이루는 생각을 슬기롭게 새로 짓는 기쁨으로 웃음짓는 나라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이름을 2014년부터 ‘숲노래’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한국말사전을 한국말사전답게 쓰자면, 이 땅에서는 ‘숲을 노래하는 숨결’이 되어야 하는구나 싶었고, ‘숲말’을 ‘숲책’으로 새로짓는, 숲길을 걷고, 숲사랑이 되노라면, 어느새 “숲을 짓다”라는 이야기 한 자락이 태어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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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말들 - 엑소포니, 모어 바깥으로 떠나는 여행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돌베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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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잘하고 싶다면 한국말부터 잘하자



《여행하는 말들》

 다와다 요코

 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9.7.



어디에서나 통하는 얕은 영어로 하는 따분한 비즈니스 토크가 세계를 뒤덮으면 참 시시할 것이다. 나는 영어를 험담하고 싶지도 않고 프랑스어를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묘한 장소성이, 농밀한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국경을 넘고 싶다고 느낀다. (55쪽)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푸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펴는 자리에 가면 저한테 곧잘 이런 말을 묻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어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고. 저는 푸름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되묻습니다. “여러분은 저한테 한국말로 물어보나요, 아니면 영어로 물어보나요? 여러분이 영어를 배울 적에 머리로 생각을 어떤 말로 갈무리를 하나요?”


  유럽에서 네덜란드사람은 영국사람‘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아마 덴마크사람도 비슷할 수 있어요. 그 나라 사람은 왜 영국사람‘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말을 흔히 들을까요?


  수수께끼는 하나입니다. 네덜란드에는 네덜란드말이 있고, 덴마크에는 덴마크말이 있습니다. 이 두 나라는 어린이 나이에 여러 나라 말을 한꺼번에 배워요. 네덜란드라면, 어린이 나이에 ‘네덜란드말, 영어, 프랑스말’을, 덴마크라면 ‘덴마크말, 영어, 독일말’을 배운다고 하는데요, 여러 다른 말을 가르치는 틀이 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네덜란드에서는 네덜란드말부터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기 때문이에요. 덴마크도 그렇고요.



작은 언어를 보호하는 정책에서 중요한 사람은 시인이다. 시로 쓰이지 않는다면 그 언어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117쪽)


과거 동유럽에서 문화 통제하에 살았던 동년배 동료를 무의식중에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는데 어쩌면 동정해야 할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 속에서 치우친 지식만 몸에 익히며 자란 나일지도 모른다. (133쪽)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무엇보다 한국말을 어떻게 배울까요? ‘국어’라는 교과목이나 시험과목이 아닌, 이 땅에서 이웃하고 사귀면서 즐겁게 생각을 꽃피우는 이야기가 될 바탕인 말일까요, 아니면 머리에 달달 집어넣어야 하는 시험지식인 문법하고 띄어쓰기하고 맞춤법하고 표준말일까요?



한자도 결국 외래어다. 오히려 가타가나는 자기가 외부인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외래어지만 한자는 자기가 오리지널인 척 거짓말하는 외래어로 보인다. (135쪽)


모처럼 의욕을 가지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티브이, 컵, 버스, 타월, 테이블, 도어, 커튼, 볼펜만 배우고 있으면 당연히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영어를 변형한 말들로만 보일 뿐이다. 더구나 이 단어가 읽기 편하다면 괜찮은데 반대로 더 어렵다. (154쪽)



  일본말보다는 독일말로 문학을 한다는 어느 일본 이웃이 쓴 《여행하는 말들》(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이 일본 이웃이 ‘독일말로 쓴 문학’을 놓고서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갈팡질팡한다지요. 그러나 독일에서는 ‘독일문학’에도 넣고 ‘세계문학’에도 넣는대요. 다만 일본은 아직 갈팡질팡한다고 합니다.


  문득 우리 옛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한국에서 일제강점기라는 그 메마르고 차갑고 서슬퍼렇고 어둡던 무렵, 한국말 아닌 일본말로 문학을 편 분이 꽤 많습니다. 우리는 이 글, ‘일본말로 한국사람이 쓴 글’을 어느 문학에 넣어야 할까요? ‘일본문학’에도 넣고 한국문학에도 넣을까요, 아니면 한국문학하고 ‘세계문학’에 넣으면 될까요?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란 글씨가 태어났어도 굳이 한문으로 문학을 한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한글(훈민정음)이 아닌 한문으로 쓴 문학은 중국문학일까요, 한국문학일까요, 아니면 세계문학일까요?



사투리를 하는 방식도 재미있었다. 각자가 과거에 어디에서 살았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살아왔는지가 그 사람이 지금 하는 말 속에 남아 있다. (159쪽)



  나라 곳곳에서 중·고등학교 푸름이를 만나는 자리에 서면, 좀처럼 사투리를 못 듣습니다. 참말로 이제는 푸름이 나이쯤 되면 사투리를 아예 모르거나 높낮이(고저장단)만 살짝 남은 말씨입니다. ‘나락’ 같은 말조차 모르는 전라도 푸름이가 꽤 많습니다. 요새는 서울 이웃도 ‘싸목싸목’ 같은 전남 사투리를 고운 말씨라 여기며 받아들여 쓰기도 하지만, 막상 전라도 어린이나 푸름이는 ‘싸목싸목’이 뭔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고 아리송해 하기 일쑤입니다.


  이 책 《여행하는 말들》을 쓴 일본 이웃은, 독일에서 갖가지 독일 사투리를 들으면서 즐겁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또 미국이나 온누리 여러 나라에서도 ‘표준 독일말’이나 ‘표준 영어’나 ‘표준 일본말’이나 ‘표준 한국말’이 아닌, 고장마다 맛깔나게 다른 말씨를 귀로 들으면서 매우 즐거우면서 재미있다고 밝혀요. 그 사투리에는, 고장말에는, 고을말에는, 바로 그 고장이나 고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손수 지은 살림결이 고스란히 묻어나거든요.



번역가가 있으니 무엇이든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흐른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이 세계 대부분의 텍스트는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거나 이미 오역이 됐거나 둘 중 하나다. (162쪽)



  한국말은 엉성하면서 영어만 잘한다면, 이이는 영어만 할밖에 없습니다. 자, 그러면 생각해 봐요. 한국이란 나라에서 살아가는데 ‘한국 이웃’하고 생각을 나눌 한국말이 엉성하다면, 어떤 이야기를 펼 만할까요? 우리 스스로도 우리 이웃한테 내 뜻이나 마음을 제대로 못 펴겠지만, 이웃이 우리한테 펴는 뜻이나 마음을 얼마나 알아듣거나 알아차릴까요?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한국말부터 잘해야 하는 까닭’은 한 줄로도 갈무리할 만합니다. 내 뜻을 제대로 펴고, 네 뜻을 제대로 읽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느 나라 어느 말이든 홀가분하게 날아다니고 싶습니다. 표준이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나 문법이라는 굴레가 아닌, 이야기라는 꽃이 되어 훨훨 날아다니면서 즐겁고 향긋한 내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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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브르의 탐구생활 - 취미는 자연! 산나물, 노린재, 오래된 살림, 할머니를 좋아합니다
이파람 지음 / 열매하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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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92


《이파브르의 탐구생활》

 이파람

 열매하나

 2019.7.29.



지역마다 다른 놀이의 특색이 흥미롭고 재밌기만 한데, 어째서 지금은 한두 가지 방식으로만 이어지고 있는 건지 아쉽다. (42쪽)


콩알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형형색색 그 자태가 영롱하고 신비하다. 행성을 닮은 씨앗 안에는 어떤 우주가 들어 있을가? (80쪽)


고사리는 어쩐지 바다향이 나서 좋다. 산에서 맡는 바다 내음이라니. (100쪽)


이름처럼 바람이 불면 온몸으로 노래하는 생명체인 것을 나는 미안하게도 종종 잊곤 한다. (133쪽)


떡갈나무잎에 떡을 사서 쪘다는 조상님들의 지혜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152쪽)



  1970년대 무렵을 헤아리면 이 나라 시골에 아이랑 젊은이가 북적북적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에도 아직 아이랑 젊은이가 복닥복닥했다는데, 1990년대로 접어들고 2000년대로 넘어서자 어느새 텅 비다시피 하고 2010년대를 지나고 2020년대를 코앞에 두면서 마을이 아예 사라질 판이 됩니다.


  모든 것이 서울에 우루루 몰린 흐름이니, 시골을 빨리 떠나서 서울로 가려는 물결이 되었다고 할 만해요. 1950년대나 1930년대에도 시골을 떠나 서울로 간 사람은 제법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많던 시골 어린이하고 시골 젊은이가 감쪽같이 빠져나간 지는 이제 서른∼마흔 해 언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안 ‘서울살이를 노래하는 책’이 참으로 많이 나왔어요. 거의 모든 책은 서울살이를 바탕으로 썼다고 할 만해요. ‘시골살이를 노래하는 책’은 드문드문 나왔지요. 그런데 이제는 서울내기가 시골내기로 삶을 바꾸는 흐름이 차츰 늘면서 ‘시골을 새로 읽고 누린 기쁨’을 담아내는 책이 부쩍 늘어납니다.


  더는 서울에서 견딜 수 없다고, 이제는 서울에서는 스스로 사람다운 사랑을 나누기 어렵다고 여긴 젊은 이웃님 두 분은 《이파브르의 탐구생활》(이파람, 열매하나, 2019)이라는 책을 선보입니다. 서울살이가 꼭 나쁘거나 메마르다고는 할 수 없어요. 사람이 아주 많으니 더 살갑게 어우러지는 한마당이 서기도 합니다. 다만, 서울에서 마당 있는 느긋한 보금자리를 꾸미기란 좀처럼 안 쉬운 일이에요. 서울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 터전을 찾기도 만만하지 않아요. 시골에서라면 집을 사고 땅까지 살 돈으로 넉넉하지만, 서울에서는 전세값을 대기에도 빠듯한 판입니다.


  모든 것, 이른바 물질문명이 넘실거리는 서울입니다. 극장도 많고 책집도 많고, 찻집이며 옷집이며 밥집도 많아요. 굳이 전화를 안 걸고 손전화 단추를 톡톡 눌러도 집까지 튀김닭이며 피자를 갖다 주는 도시예요.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가게도 적고, 값도 비싸고, 무얼 사다 먹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없고 시골에 있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바로 별입니다. 싱그러운 바람입니다. 맑은 물입니다. 깊은 숲입니다. 멧새와 철새가 늘 다르게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철마다 새로 깨어나는 풀벌레는 철마다 다른 노래잔치를 벌입니다. 봄부터 가을이 저물 때까지 개구리도 우렁차게 노래를 베풀어요. 무논에서만 개구리가 노래하지 않아요. 겨울잠에 들기 앞서 참개구리는 풀숲 한켠에 깃들어 마지막 가을노래를 베풉니다. 게다가 바람이 쉬잉 불면 나무가 춤을 추면서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기도 해요. 가랑잎이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북소리 같아요.


  시골집 마당이나 텃밭이나 뒤꼍을 누린다면, 따로 심은 푸성귀가 없더라도, 온갖 풀을 나물로 삼을 만합니다. 새로 돋는 나뭇잎도 즐거운 나물입니다. 감잎이나 뽕잎을 비롯해, 쑥잎이나 쇠무릎잎도 즐겁게 덖어서 찻물로 우려서 마실 만해요. 수세미가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면, 싱그러운 설거지 수세미도 얻지만, 통통한 수세미를 썰어서 말리면 수세미 찻물을 얻기도 해요.


  이제 바람이 되고 싶던 서울내기는 ‘이파람’이란 이름을 새로 지었다고 해요. 둘레에서 이파람 님을 ‘이파브르’란 새이름으로 불러 주기도 한대요. 무엇이든 낯설지만, 낯설기에 더 들여다보면서 배우고 싶은 이파람 님은, ‘풋풋한 파브르 살림’을 꾸리는 재미를 누린다지요. 이 재미진 하루는 어느새 글로 피어납니다. 텃밭살림 못지않게 글꽃살림을 짓습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숲살림이나 들살림을 몸으로 부대낍니다. 숲이나 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책이 아니라 눈이랑 손으로 마주합니다. 시골로 삶자리를 옮겼다면 즐겁게 숲을 껴안으면 좋겠어요. 그냥그냥 서울살이가 좋더라도 마음눈을 뜨고서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빛을 같이 나누면 좋겠어요. 다같이 ‘풋풋한 파브르’가 되어 들꽃내음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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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 달팽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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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숲책 읽기 146


《나무》

 고다 아야

 차주연 옮김

 달팽이

 2017.10.27.



똑똑 하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사방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조릿대잎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14쪽)


나무가 목재로 쓰이기 이전의 살아 있는 모습에도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거늘 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인가. (47쪽)


나는 참지 못하고 나뭇조각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폭한 듯 삼각형으로 갈라진 굽이는 강렬한 편백나무 향기를 내뿜었다. (68∼69쪽)


삼나무는 도대체 무엇을 양분으로 삼을까? 그것은 태양과 비, 즉 햇빛과 물뿐이다. (90쪽)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서 있을 때의 생명과 잘려서 목재가 된 이후의 생명 이렇게 두 번의 생명을 갖는다고 한다. (163쪽)


(나무는) 그저 젊은 목수를 압박하지만은 않는다. 압박하면서 그와 동시에 젊은 목수의 담력과 지혜를 키워 주고 있다. (170쪽)



  우리 집에 있을 적에는 언제나 우리 집 나무 기운을 받아들이고, 우리 기운을 나무한테 보냅니다. 우리 집을 떠나 여러 고장을 돌아다닐 적에는 여러 고장을 싱그러이 보듬는 나무가 퍼뜨리는 기운을 헤아리면서, 여러 고장에서 살뜰히 피어나는 나무한테 반갑다는 눈빛을 띄웁니다.


  나무 곁에 서서 줄기를 포근히 안으면 포근한 기운이 가슴을 거쳐 온몸으로 흐릅니다. 나무 앞에 서서 줄기에 손을 고요히 대면 고요한 기운이 손을 지나 온마음으로 물결칩니다. 저는 나무한테서 기쁜 웃음을 받고, 저는 나무한테 즐거운 노래를 띄웁니다.


  《나무》(고다 아야/차주연 옮김, 달팽이, 2017)를 읽으며 생각했어요.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깊은 숨을 품고서 우리 곁에 있는가를 느끼고, 나무 한 그루 곁에서 얼마나 깊은 사랑을 지으면서 새롭게 나누는가를 돌아봅니다. 오롯이 나무한테 바치는 글이자, 옹글에 나무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담은 책 한 자락입니다.


  나무가 있기에 책걸상을 짜고, 집을 짓고, 종이하고 붓을 얻고, 땔감으로 겨울을 나고, 우리 터전을 푸르면서 맑게 돌보는 길을 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은 나무한테 무엇을 돌려줄까요? 우리 사람은 숲에 무엇을 심을까요?


  나무가 살 터를 자꾸 밀어없애거나 짓밟는 사람은 아닌가요? 나무가 자랄 땅을 쉬잖고 밀어붙이거나 짓이기는 사람은 아닌지요?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이 우람한 나무가 됩니다. 작은 사람 하나가 아름다운 마을을 이루고 사랑스러운 고을로 피어납니다. 나무도 숲이 되고, 사람도 숲이 됩니다. 이야기도 숲이 되고, 노래도 숲이 됩니다. 모두 숲이면서 빛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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