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 다녀오겠다는 바보짓



아이들하고 쓸 글살림을 챙기려고 순천마실을 합니다. 고흥에서는 문방구가 읍내에 두 곳 있으나 저희가 바라는 글살림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순천에는 꽤 큰 문방구가 있어서 찾아가 보는데, 한숨이 절로 나와요. 잘못 생각했군요. 요새는 문방구에 찾아갈 노릇이 아니라, 집에서 누리집을 뒤져 장만해야 할 노릇이로군요. 찻삯하고 품을 들여서 도시에 있는 큰 문방구에 가 본들, 사람들이 자주 찾거나 많이 사는 것만 들여놓을 뿐, 요모조모 헤아려서 갖추려 하는 글살림은 찾을 길이 없어요. 따지고 보면 큰책집도 엇비슷합니다. 큰책집이라 해서 갖은 책을 두루 갖추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싶은 책을 더 갖추려 하고, 잘 팔린다 싶은 책을 넓게 둡니다. 여러 갈래에서 여러모로 쓰임새가 있을 온갖 책을 두루 갖추려 하지 않기 일쑤입니다. 나라 곳곳에 새롭게 문을 여는 마을책집은 어떤 책을 갖출까요? 잘 팔릴 만한 책을 둔대서 잘못이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책이 잘 팔리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살림은 무척 좋다고 여깁니다.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즐겁게 삶을 북돋아 슬기로이 어깨동무할 뿐 아니라, 스스로 숲바람이 되도록 넌지시 일깨우는 책을 살뜰히 알아보고서 곱다시 갖출 수 있다면, 더없이 빛나는 책집이 되리라 느껴요. 그냥저냥 읽을거리를 한켠에 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냥저냥 읽을거리만 둘 적에는 책집이 아닙니다. 책집은 사뭇 다른 곳입니다. 숲을 종이로 옮긴 곳이 책집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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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사람입니다



비평이나 평론을 할 수 있을까요? 아마 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비평이나 평론이란 이름은 그리 안 어울리지 싶어요. 오직 하나 “읽었습니다” 하고만 말할 만하지 싶습니다. “읽은 느낌을 적었습니다” 하고 덧붙일 수 있을 테고요. 어느 글이나 책을 쓴 사람이 어떠한 마음인가는 글쓴이나 책쓴이만 낱낱이 알 뿐이지 싶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곁에서 지켜볼 뿐이기에 “읽은 느낌을 적거나 밝힐” 뿐이에요. 누구를 안다고 할 수 없다고 느껴요. “누구를 만나서 이렇게 느꼈다”고만 말할 만하지 싶습니다. 이를테면 “이오덕을 읽은 사람입니다”나 “린드그렌을 읽었어요” 하고만 말하면 넉넉하지 싶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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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란 말



“마음 같아서는 이 책들을 우리 책방에 오는 분들한테 다 그냥 주고 싶은데.” 하고 이야기하는 책집지기는 나쁘거나 궂은 마음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분이 손수 써서 펴낸 책이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는 섣불리 하거나 함부로 입밖에 낼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쓰거나 엮거나 펴낸 책이 아니라면, 그러한 책에는 책 하나를 온삶을 바쳐 지은 사람들 땀방울하고 사랑이 깃들고, 엮은이하고 꾸민이하고 펴낸이 땀방울하고 사랑이 함께 깃들거든요. 책집지기가 책집지기답게 뜻을 펴는 마음이라 한다면 이쯤으로는 이야기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테면, “내 마음은 이 책이 제대로 읽히고 살뜰히 퍼져서, 글쓴이도 펴낸이도 꾸민이도 엮은이도 모두 즐겁게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면 좋겠어.” 우리는 서로 사랑값을 나눕니다. 저마다 흘린 땀값을 기쁘게 주고받습니다. 사랑값이나 땀값을 제대로 읽거나 느낄 때에 비로소 서로 반가울 만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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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더하기 사람 더하기 숲



흔히들, 책하고 책집을 놓고서 “책하고 사람을 잇는다”고들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듣거나 읽을 적마다 으레 거북해요. 뭔가 하나 빠졌구나 싶거든요. 오늘 아침, “책하고 사람을 잇는다”라는 말에 빠진 한 가지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책하고 사람하고 숲을 잇는다”라 말해야 알맞지 싶어요. 책하고 사람하고 숲은 늘 하나라는 대목을, 이 세 가지는 따로 가를 수 없이 흐른다는 대목을, 고요히 눈을 감고서 헤아립니다. 제가 짓거나 가꾸려는 책살림이라면, “책하고 사람하고 숲을 잇는 보금자리”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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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없던 시외버스



인천에서 고흥까지 시외버스로 다섯 시간 넘게 걸립니다. 자다가 깨어 책 하나 다 읽고서 다시 자고, 또 깨어 책 하나 더 읽어도 널널한 길입니다. 그런데 이 시외버스에 등불이 없네요. 창밖으로 해거름을 지켜보다가 등불을 찾아보는데 없어서 놀랍니다. 허허, 우째 등불이 없노. 고요히 눈을 감으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이러다가 시외버스가 긴 굴길을 지나갈 무렵 얼른 수첩을 꺼내어 동시를 적습니다. 긴 굴길을 빠져나오면 손전화를 켜서 동시를 마무리합니다. 시외버스에 부디 등불을 달아 주시기를. 너덧 시간을 시외버스에서 보내야 하는 사람은 이 길에 책도 읽고 동시도 쓰고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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