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물결 나들이

고흥 길타래 14―꽃내음 들길



  날마다 유채물결 나들이를 한다. 대문을 열고 마을을 한 바퀴 빙 돌아도 유채물결 나들이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삼십 분쯤 들길을 걸어도 유채물결 나들이가 되고,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면소재지를 오가는 길에도 유채물결 나들이가 된다.


  동백마을부터 봉서마을 사이 들판이 유채꽃으로 흐드러진다. 동백마을부터 다시 면소재지 동오치마을까지 들판이 유채꽃으로 물결친다. 동호덕마을 둘레에는 마늘을 심거나 논삶이를 하는 데가 있지만, 신기마을과 원산마을은 들판을 모두 유채꽃으로 물들인다. 삼월 끝무렵과 사월 첫무렵만 하더라도 유채물결이 될까 갸웃갸웃했지만, 사월 한복판을 넘어서면서 환하게 고운 유채잔치가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유채꽃 들길을 천천히 걷고 싶어 한다. 이 들길은 자전거로 달리기보다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천천히 걷고 싶다고 말한다. 어른들도 이 들길은 자가용으로 달리기보다 천천히 거닐면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꽃내음 물씬 흐르는 들길을 거닐면서 꽃바람을 마신다. 꽃빛을 품으면서 마음을 살찌운다. 이 킬로미터 더하기 이 킬로미터 즈음 되는 짧은 길이지만, 이 길에 서면 꽃을 바라보는 눈길이 얼마나 포근하면서 넉넉해지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삶터를 어떻게 가꿀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느낄 수 있다. 관광단지가 있어야 하는 시골이 아니라, 푸른 들과 숲이 있어야 하는 시골인 줄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수출·수입을 먹고 살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밥과 물과 바람을 먹으면서 산다. 싱그러운 밥을 먹고, 시원한 물을 마시며, 맑은 바람을 마신다. 아파트나 자가용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목숨이 아니다. 햇볕과 비와 흙이 곱게 어우러진 곳에서 바람과 풀을 먹는 목숨이다.


  시골을 살리는 길은 투자 유치나 시설 유치가 아니다. 시골을 살리는 길은 시골이 시골스럽게 시골빛이 나도록 하는 데에 있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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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사람 내쫓는 막공사·막개발
고흥 길타래 13―광주학생임해수련원

 


  나는 고흥사람입니다. 나는 고흥군수가 아닙니다. 나는 광주사람이 아니고, 서울사람도 아닙니다. 나는 고흥 도화면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고흥이 즐거워 고흥에서 살아갑니다. 고흥군 도화면 시골마을에서 지내며, 곧잘 자전거에 아이 둘을 태워 발포 바닷가로 마실을 갑니다. 때로는 도화면 택시를 불러 네 식구가 나란히 발포 바닷가로 바닷바람을 쐬면서 바닷물을 누리려고 갑니다.


  발포 바닷가를 처음 찾아간 때는 2011년입니다. 이때에 발포 바닷가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듬해 봄까지도 발포 바닷가에는 ‘국립공원 알림 팻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 여름 어느 날 ‘국립공원 알림 팻말’을 누군가 페인트로 지웠습니다. 2013년으로 접어드니 ‘국립공원 알림 팻말’이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2014년을 앞둔 2013년 12월 26일에 발포 바닷가 한쪽에서 ‘광주학생임해수련원’ 공사를 벌입니다.


  2014년 3월 15일에 군내버스를 타고 발포 바닷가를 찾아갑니다. 아직 봄바다는 따스하지 않아 아이들이 물놀이까지 하지는 못하고 모래밭놀이만 합니다. 발포리 상촌마을부터 발포 바닷가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이들은 멧자락 한쪽이 시뻘겋게 흙이 드러난 채 파헤쳐진 모습을 보며 말합니다. “뭐야, 누가 여기를 이렇게 망가뜨렸어?”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는 나무를 모조리 베고 커다란 장비가 멧자락을 파헤치는 모습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나는 이 공사 모습을 바라보며 숨이 멎습니다. 발포 바닷가는 오래도록 국립공원이었습니다. 국립공원이 왜 해제되고 누가 해제시켰는지 모르겠으나, 국립공원에서 해제되었다고 해서 발포 바닷가를 아무렇게나 망가뜨리거나 숲을 밀거나 나무를 베어 죽여도 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발포마을 주민들 ‘재산권’도 문제입니다만, 재산권에 앞서, 이곳 멧자락을 ‘부지 매입’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 사들여서 ‘수련원 문화시설 착공’이라는 이름을 들이대어도 될 만한지 알쏭달쏭합니다.


  발포 바닷물이 아직 얼음장처럼 차갑지만, 나는 신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급니다. 그러고는 발포 바닷가가 어떤 모습으로 망가지고 죽는가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고흥군수님한테 묻고 싶으며, 고흥사람한테 묻고 싶습니다. 광주시장님한테 묻고 싶으며, 광주사람한테 묻고 싶습니다. 국립공원을 해제시켜서 이렇게 숲을 망가뜨리면서 짓는 ‘청소년임해수련원’이 ‘광주 전라 청소년과 주민’한테 얼마나 즐겁거나 아름다운 시설이 될 수 있을까요? 광주시에서 220억 원을 들여 어떤 시설 하나 지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만, 이 아름다운 바닷가 숲을 가꾸거나 지키려면 200조 원이 들어도 모자랍니다.


  국립공원 바닷가가 아름다운 까닭은 커다란 시설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국립공원 바닷가는 맑은 바람과 바닷물이 있는 한편, 바닷가를 둘러싼 숲이 나무로 우거지면서 농약과 공장과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중장비가 시끄럽게 굴러다니는 발포 바닷가는 이제 ‘광주 것’이 되겠지요. 이제 이곳은 ‘고흥사람 쉼터’가 될 수 없겠지요. 이런 시설을 짓는 일은 ‘고흥 발전 투자’가 될 수 없으며, 고흥 발전조차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고흥 주민이 고흥을 떠나도록 부추기는 일이 됩니다. 고흥군 인구가 2014년에 7만 밑으로 떨어질까 걱정한다면, 이런 막공사를 이제라도 멈추기를 바랍니다. 이런 막공사가 자꾸 벌어지면, 앞으로 고흥 인구는 7만은커녕 5만도 3만도 1만조차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만 합니다. 깨끗하고 조용한 바닷가를 망가뜨리는데, 어떤 고흥 토박이가 고흥에 앞으로도 살고 싶겠으며, 어떤 도시내기가 고흥이 좋다고 이곳으로 귀촌을 하겠습니까? 막공사가 벌어지면서, 발포 바닷가 후박나무들이 한 그루 두 그루 시들어 죽습니다. 시들어 죽는 아픈 후박나무 줄기를 쓰다듬다가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4347.3.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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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고흥 억새길 걷기 (13.10.26.)
고흥 길타래 12―행정마을·수덕마을·두곡마을

 


  걷는 사람이 길을 봅니다. 걷는 사람이 흙을 만지면서 들일을 합니다. 오늘날에는 기계를 타면 밭갈이나 논갈이뿐 아니라 모내기에다가 가을걷이까지 척척 해 주지요. 아주 빨리 말끔하게 해 줍니다. 몇 만 평이나 몇 십만 평에 이르는 땅이라면 손으로 갈아엎어 일구고는 거름을 뿌려서 하나하나 씨앗을 심어 거두기 무척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기계를 부려 너른 땅을 갈고 엎고 심고 거두고 할 때에, 시골에서도 돈을 쏠쏠히 만질 만하다 여기리라 봅니다.


  돈을 벌 만한 농사라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버는 만큼 흙을 만지지 않고 흙내음을 모르며 흙빛을 못 읽습니다. 돈을 버는 길보다는 삶을 누리는 길을 걸어가는 흙일이라면 돈은 조금 만지거나 안 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즐거움과 보람과 사랑과 꿈을 흙내음과 흙빛으로 맞아들입니다.


  두 다리로 걸어 들판으로 갑니다. 두 손을 움직여 흙과 풀을 만집니다. 두 다리로 걸어 들일을 하자면 신조차 번거롭습니다. 논밭에서는 아무도 구두나 운동신 안 뀁니다. 논밭에서는 누구나 고무신을 꿰는데, 고무신조차 성가시니 맨발이 됩니다.


  흙은 맨발로 찾아오는 흙지기를 반깁니다. 맨발은 흙을 곧바로 밟으며 느낄 적이 즐겁습니다. 맑게 흐르는 냇물을 장갑 낀 손으로 떠서 마실 사람은 없어요. 맨손으로 냇물을 느끼고 맨낯으로 냇물을 맞으며 마셔요.

 

 


  들바람과 숲바람을 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들내음과 숲내음을 온몸으로 마십니다. 들에서 일하고 들에서 쉬며 들에서 밥을 얻고 들에서 바람과 해와 흙과 풀을 마주하는 사람은 언제나 튼튼합니다. ‘아프다’는 말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시골 흙지기 가운데 아픈 사람이 있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돈을 많이 벌거나 더 벌어야 하는 일이 생겨, 그만 너무 힘겹게 일을 하다 보니 몸이 삐끗거려 아픕니다. 날마다 즐겁게 먹고 즐거이 나누며 즐거운 웃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삶이라면 아플 일 없이 한 해 내내 아름답습니다.


  우리들 부르는 모든 노래는 들에서 태어났습니다. 들에서 일하며 누구나 노래를 불렀어요. 들에서 거두거나 얻은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손질하며 노래를 불렀어요. 모시풀에서 실을 얻으려고 하는 동안 노래를 부르고,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으며 노래를 불렀어요. 길쌈을 하고 바느질을 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고 재우고 놀리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모를 내건 풀을 뽑건 나락을 베건 언제나 노래를 부릅니다.


  기계가 시골에 들어서면서 노래가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경운기와 트랙터와 이앙기와 콤바인이 우렁찬 소리 내며 지나가는데, 사람 목소리는 잠겨서 안 들립니다. 기계가 들판을 누비는 동안 이웃 들에서도 노래를 못 부릅니다. 노래를 부를 만하지 않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논마다 누런 나락 거의 다 베는 즈음, 고흥 억새길을 걷습니다. 동백마을에서 고흥읍으로 군내버스를 타고 나옵니다. 군내버스를 내린 곳부터 천천히 걷습니다. 서문마을 쪽을 멀거니 바라봅니다. 조금씩 누렇게 물드는 느티나무 곁에 빨간 우체통 보입니다. 느티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노란 빛 더하겠지요. 들판을 그득 채운 누런 물결은 사라져도 느티나무는 새삼스러운 노란 빛물결 베풀겠지요.


  대문 앞 조그마한 땅뙈기에 정갈하게 일구는 밭자락 만납니다. 어떤 손길로 이렇게 고운 살림 일굴까요. 어느 시골마을 시골집이나 이렇게 정갈한 손길로 예쁘게 밭자락 일구겠지요.

 

 

 


  서문마을에서 고개를 넘으니 행정마을이 멀리 보입니다. 행정마을 한쪽에는 새로 아파트를 올리려는지 무얼 하려는지 높다랗게 쇠울타리 세웠습니다. 도시는 사람들 너무 몰려 어쩔 수 없이 아파트를 세운다지만, 시골에 왜 아파트를 세워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시골이라면 마당이 있고 텃밭이 있으며, 마당 한켠에 나무 심어 알뜰히 누리는 살림일 때에 더없이 아름다울 텐데요.


  봄에 이어 가을에 다시 피는 민들레는 어느새 꽃이 지고 씨앗을 새로 날립니다. 행정마을 어귀는 우람하게 선 느티나무가 모든 길손과 마을사람을 맞이합니다. 참말 마을 어귀는 이렇게 우람한 나무가 있어야 듬직합니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는 여름 내내 시원한 바람으로 흙지기들 땀방울 식힙니다.


  시골마다 기계가 척척 들어서면서 볃가리 쌓는 일이 자취를 감춥니다. 앞으로 스무 해쯤 지나면 볃가리도 낟가리도 아무도 못 엮거나 못 쌓지 않으랴 싶습니다. 앞으로 마흔 해쯤 지나면 짚신도 새끼도 아무도 못 삼고 못 꼬리라 느낍니다.


  군내버스가 지나갑니다. 천천히 걷는 옆으로 군내버스가 부웅 바람을 날리며 지나갑니다. 저 버스를 타면 1200원으로, 또 1400원으로, 또 1500원이나 1700원으로 얼마든지 이웃마을로 갈 수 있습니다. 저 버스를 타고 8분이면 고흥읍 서문마을에서 두원면 두곡마을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천천히 들길을 걷습니다. 논도랑이나 논둑을 따라 피어나서 흔들리는 억새를 바라보며 시골길을 걷습니다.

 

 

 

 


  수덕마을 군내버스 타는 곳 앞에 섭니다. 수덕마을 앞 버스터에는 ‘수덕’이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비와 바람과 햇볕에 바래 글씨가 사라졌을까요. 처음부터 따로 글씨를 넣지 않았을까요. 이곳에 따로 글씨가 없더라도 군내버스 일꾼은 이곳이 수덕마을인 줄 다 알아요. 이곳에서 버스를 내리는 마을사람도 이곳이 수덕마을인 줄 모두 압니다.


  길가에 피는 꽃들 바라봅니다. 이 꽃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가을에 하얗고 파란 꽃송이를 벌릴까요. 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이 꽃들을 얼마나 알아보면서 ‘아이 곱구나’ 하고 말 한 마디 건넬까요.


  두원면 소재지로 가는 길하고 풍류 쪽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자리에 섭니다. 이 길에 자동차는 아주 뜸하지만, 이 뜸한 자동차 가운데 웬만한 자동차는 두원면 소재지 쪽으로 달립니다. 풍류 쪽으로 가는 길에는 자동차 거의 드나들지 않습니다. 아주 조용합니다. 자동차 소리가 사라지니, 깊은 숲속부터 울려퍼지는 풀노래가 곱게 흐릅니다. 늦가을 한낮 햇살 곱게 받으면서 늦가을 풀벌레가 늦가을 풀노래 들려줍니다.


  풀노래는 버스에서도 못 듣습니다. 풀노래는 자가용이나 택시에서도 못 듣습니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커서 풀노래를 온통 밀칩니다. 자전거를 달리면? 자전거를 달리더라도 천천히 달려야 풀노래를 들어요. 싱싱 달리는 자전거라면 자동차와 똑같이 풀노래하고 멀어집니다.

 

 

 

 


  노르스름하게 물든 큼지막한 잎사귀 길에서 구릅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봅니다. 잎사귀야, 너는 어쩜 이렇게 고운 물을 듬뿍 들일 수 있었니. 어떤 뛰어난 화가 있어 너를 종이에 그릴 수 있을까. 어떤 빼어난 예술가 있어 너를 예술품으로 그릴 수 있을까. 화가와 예술가 있더라도 겨우 가을잎 한두 가지 그린다지만, 네가 있던 나무는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다 다른 잎빛을 가을마다 곱게 물들여 이렇게 내려놓는구나. 다 다른 잎사귀 가을잎빛을 어떤 화가와 예술가 있어 담아낼 수 있겠니.


  두곡마을과 지남마을로 갈리는 길목입니다. 두 마을 갈림길 한쪽에 조그마한 빗돌 섭니다. 빗돌에 새긴 글씨는 비바람에 많이 바랬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간다면 이 빗돌 못 알아보겠구나 싶습니다. 참말 지남마을에 갈 사람이 아니라면 이 빗돌을 알아보지 않겠지요. 아니, 지남마을에 갈 사람이라면 늘 아는 길이니 이 빗돌이 있건 없건 대수롭지 않겠지요.


  가을제비꽃을 만납니다. 민들레도 씀바귀도 고들빼기도 한 차례 나고 진 뒤, 새삼스럽게 다시 피는데, 제비꽃도 한 차례 진 지 꽤 되었는데 이렇게 가을맞이 새 꽃송이 틔웁니다.


  한쪽에서는 꽃송이 붉고, 다른 한쪽에서는 씨주머니 터집니다. 가을제비꽃 앞에서 오래도록 쪼그려앉아 꽃 구경을 하노라니, 군내버스 한 대 씽 하고 지나갑니다.

 

 

 

 


  이윽고 억새가 밭을 이루는 길이 나타납니다. 이 길 참 곱네 하고 느끼면서, 고흥사람은 고흥에서 고흥 들길 거닐면 고흥 억새밭 흐드러지게 누리겠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사람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제주섬으로 억새 구경 가겠지요. 제주섬은 관광객 발길이 끝없습니다. 이와 달리 고흥에는 관광객 발길이 거의 없습니다. 관광객이라 할 도시사람이 이 멋진 억새밭길 구경하지 못한다 싶으니 아쉽다 싶으면서도, 고흥으로 관광객 찾아들지 않아, 아주 한갓지면서 느긋하게 이 길을 거닐 수 있구나 싶습니다. 시골 들판 억새밭길은 온통 시골마을 흙지기가 누리는 가을빛입니다.


  고갯마루 하나 지나니 금빛이라는 말로도 가리키기 어려운 샛노란 들빛이 폭 안깁니다. 거의 모든 논은 나락을 베었지만 늦게 심어 늦게 베는 논은 샛노란 들빛이 눈부십니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노란 들빛 또한 깊이 물듭니다. 살며시 떨어지는 저녁햇빛과 얽혀 마음속까지 후련하게 씻어 주는 샛노랑 물결입니다.


  붉나무 곁을 지나 두곡마을 어귀에 닿습니다. 지팡이 짚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할매 뒤를 따라 걷다가 안골 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두곡마을도 수돗물 놓는 공사를 한창 벌이는구나 싶습니다. 시멘트벽돌로 쌓은 낡은 담을 바라봅니다. 슬레트로 지붕을 이은 헛간을 바라봅니다. 시멘트담이 없던 때에는 따로 대문도 없었을 테니, 지붕을 받치는 기둥에 이름패가 붙습니다. 담 너머에서 이름패를 들여다봅니다. 더는 안 쓰는 빨래터와 우물자리를 바라봅니다. 어느 집 담벼락에 “뭉치자 일하자 잘 살아 보자”라는 글씨 페인트로 적혔습니다. 새마을운동을 한창 하던 때에 적은 글월이지 싶습니다.

 

 

 

 


  두곡마을 안골 깊숙한 데에서 지내는 이웃집에 닿습니다. 땀을 식히며 앞 멧자락 바라봅니다. 멧새들 노래하면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저 나무에서 저저기 있는 나무로 옮겨 앉습니다.


  두곡마을 이웃집 뒤꼍 장독대에 가을풀 살짝 돋았습니다. 풀잎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차츰 해가 기울며 다른 손님 하나둘 찾아옵니다. 모두들 짐차나 자가용을 타고 찾아옵니다. 멀거나 짧은 길 즐거이 마실하셨겠지요. 다른 분들도 다음에는 짐차며 자가용이며 내려놓고는 이 길을 걸어서 찾아오면 아름다운 가을빛 실컷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한 달 서른 날 자가용을 타더라도 하루쯤은 두 다리로 한두 시간 천천히 거닐 수 있기를 빌어요. 그래야 비로소 가을볕 샛노랗고 싱그럽게 드리우는 고흥 시골길 억새밭과 들내음 누릴 테니까요.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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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1-02 14:06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사진과 글 따라... 늦가을 고흥 억새길 함께 잘 걸었습니다. ^^
사진들이 고흥의 고즈넉하고 환하고 아름다운 가을빛 가득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이라도 바라보는 자의 아름다운 눈빛과 마음의 노래가 없다면
이렇듯 삶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누리지 못하겠지요~
지금 이곳은 가을비에 파란 은행잎들 사이 먼저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비에 젖어 걸어 가는 길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억새길과 황금들판, 마지막 두 장의 사진에 마음이 뿌듯해 집니다~
감사드립니다~*^^*

숲노래 2013-11-03 02:52   좋아요 0 | URL
사람들 누구나 고운 마음빛이 되도록
고운 가을빛 듬뿍 받아들일 수 있기를 빌어요~

보슬비 2013-11-02 23:24   좋아요 0 | URL
어릴적 외갓집 선산 근처에 억새가 많아서 억새 꺽다가 베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릴적 이후로 가본적이 없어 지금도 그곳에 억새가 많은지는 모르겠어요. 오랜만에 외할머니께 전화드려 물어봐야겠네요.^^

함께살기님께서 올려주신 글과 사진들을 읽을때면 옛추억들이 하나 둘 떠올라 즐겁습니다.

숲노래 2013-11-03 02:51   좋아요 0 | URL
억새는 어디에서나 많이 나고 잘 자라니, 그곳에도 틀림없이 있겠지요~ ^^
 

 

 

 

여름이 저무는 제비춤

고흥 길타래 11―시골마을 고운 벗님

 


  한여름 무더위가 지나가는 전남 고흥 시골 들판에 제비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닙니다. 전깃줄에 줄줄이 앉아서 하늘바라기를 하다가는, 우루루 날갯짓하면서 들판을 이리저리 휙휙 춤을 추듯 날아다닙니다.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제비 무리를 만납니다. 제비들은 찻길에 무리지어 앉아서 쉬다가, 또는 찻길에서 몸을 덥히는 풀벌레를 잡아먹다가, 자전거가 지나가니 한꺼번에 날아오릅니다. 이쪽에서 한 무리, 이 다음에 또 한 무리, 그 다음에 다시 한 무리,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한 무리 더. 이들 무리는 저마다 한식구일까요. 아니면 서로 마음이 맞아 함께 다니는 무리나 동무일까요.


  우체국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비 무리를 다시 만납니다. 논둑에는 고들빼기꽃이 하얗게 피고, 달개비꽃이 파랗게 핍니다. 고들빼기는 하얗게 피운 꽃이 지면 열매를 알뜰히 맺어 씨앗을 퍼뜨리겠지요. 가을논 나락베기를 앞두기까지 고들빼기도 바지런히 씨주머니 터뜨려 온 들판에 새끼들을 내려놓아야 할 테지요.


  유월뿐 아니라 칠월과 팔월 여름날 가문 날씨였으나 나락은 씩씩하게 잘 자랐습니다. 벌써 이삭이 패어 고개를 숙인 나락이 있고, 이제 막 이삭이 패려는 나락이 있습니다. 얼마 앞서까지 푸른 물결 논은 차츰 노르스름한 물이 듭니다. 제비들은 들판이 노랗게 물들 무렵 배를 한껏 채우고 먼 바닷길 가로질러 따뜻한 새터로 떠나리라 봅니다.

 

 

 


  메뚜기도 먹고 방아깨비도 먹습니다. 사마귀도 먹고 거미도 먹습니다. 잠자리도 나비도 먹습니다. 파리와 모기도 함께 먹습니다. 이 너른 들에 제비 무리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제비한테 먹이가 될 풀벌레와 날벌레가 크게 줄었을 테니, 제비도 살아가기 만만하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먼 옛날을 돌아봅니다. 우리 옛이야기에 나오듯이, 흥부네 집은 처마 밑 제비집을 알뜰히 아꼈을 뿐 아니라, 다리 부러진 제비를 고치려고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흥부라는 사람으로 빗댄 이야기는, 시골사람이면 누구나, 또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이면 모두, 제비를 살가이 아끼며 사랑했다는 뜻을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제비가 있어 새벽을 함께 열어요. 사람도 제비도 일찌감치 일어나서 늦봄과 첫여름 새벽을 엽니다. 한여름에는 한결 일찍 새벽을 열고, 늦여름으로 접어들고 첫가을에 이르면 조금 느즈막히 새벽을 열어요. 들일을 나가면 제비도 들판 누비며 새끼들 먹일 밥을 찾습니다. 들일을 쉴 무렵, 제비도 나뭇가지에 앉아서 쉬었어요.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무렵, 제비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째째 노래하면서 시골집 처마 밑으로 돌아가요.


  시골사람이면 예부터 흙과 풀과 돌과 나무로 집을 짓습니다. 흙집입니다. 시골사람하고 이웃하는 제비는 흙과 지푸라기로 집을 짓습니다. 사람집도 제비집도 예부터 모두 흙집입니다.

 

 

 

 


  제비가 있어 들판에서 여러 풀벌레와 날벌레를 잡아 주었습니다. 먼 옛날부터 시골 흙일꾼은 제비를 살뜰히 아끼면서 곁에서 동무로 삼을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제비가 이 나라를 떠나 먼 바다 가로질러 따스한 나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곧 가을 지나 겨울이 닥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가을일 바지런히 마무리짓습니다. 봄을 밝히고 여름을 빛내며 가을을 누리면서 겨울을 맞이하는 네 철을 또렷이 보여주면서 이끄는 시골벗 제비입니다.


  자전거를 세웁니다. 한손으로 자전거를 끌면서 아이들과 들길을 거닐며 제비를 바라봅니다. 제비들이 한껏 들판 날아다닐 적에는 한참 논둑에 서서 물끄러미 제비를 쳐다봅니다. 저 작은 몸으로 먼 바다를 잘 날아왔구나, 저 조그마한 몸으로 다시 먼 바다를 씩씩하게 날아가겠구나, 생각하면서, 우리 아이들도 작고 튼튼한 몸 씩씩하게 크기를 바랍니다.


  제비 무리 노는 들판을 지나면서 다시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웃마을 나팔꽃 흐드러진 논둑을 구경합니다. 바람이 선들선들 시원합니다. 구름이 하얗습니다. 4346.8.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날아가는 제비~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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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8-25 13:03   좋아요 0 | URL
제비 무리 노는 들판과 나팔꽃 흐드러진 논둑...사진에
가슴이 시원하니 참 좋습니다~
나팔꽃은 어디에 피어 있어도 늘 아련하니 예뻐요.
여섯 번째 사진의 꽃은, 혹시 달개비꽃인가요~?

숲노래 2013-08-26 05:30   좋아요 0 | URL
파란꽃은 달개비꽃이 맞아요~ ^^
 

술집 된 김일체육관

[고흥 길타래 10] 고흥 찾아온 손님들은 무엇을 볼까

 

 

  따사로운 봄햇살 내리쬐는 오월 십구일 낮, 서울서 고흥으로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녹동항을 돌아보고, 소록다리와 거금다리를 건넙니다. 금산면 거금섬으로 들어온 우리들은 면소재지에 커다랗게 선 김일체육관을 들르기로 합니다. 지난날 ‘박치기왕 김일’을 떠올리는 서울 손님들은 레슬링선수 김일 님 기리는 체육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해 합니다.


  지난해 태풍 때 날아간 지붕은 새로운 빛깔로 곱게 손질했습니다. 돌로 빚은 김일 선수 기념물도 새롭게 꾸몄습니다. 널찍한 주차장에는 빨간 관광버스 한 대 있습니다. 서울 손님들과 함께 체육관으로 들어섭니다. 체육관 안쪽 마룻바닥 경기장에 그물 하나 걸리고, 이곳에서 작은 공으로 족구 하는 아저씨들 보입니다. 그런데, 김일체육관에서 족구를 즐기는 아저씨들은 소주병을 들고 놉니다. 관리하는 사람 따로 없어, 체육관에서 아무렇지 않게 소주를 마시면서 족구를 할까요. 관광버스 타고 김일체육관으로 찾아온 분들은 김일 선수를 기리려고 소주 한 잔 올리려 했다가 그만 당신들 술잔치를 체육관에서 하는 셈일까요.

 
  소주 마시며 족구를 하던 아저씨들은 사진기를 들고 체육관으로 들어온 우리들을 보고는 이내 술병을 치우고 족구를 그만두며 자리를 뜹니다. 김일체육관 술잔치를 굳이 사진으로 찍을 생각이 없기에 아저씨들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합니다. 체육관 안쪽에 큼지막하게 붙은 김일 선수 사진을 보고 밖으로 나오려다가, ‘김일 선수 박물관’은 아직 ‘유품 정리가 안 되어 준비한다’는 알림말만 붙습니다.지난해에도 ‘준비중’이라 했는데, 올해에도 ‘준비중’이면 이듬해에는 ‘준비 끝’ 될까요. 아니면, 다음 군수 선거 때에는 ‘준비 끝’ 되려나요.


  김일체육관 나들이를 온 서울 손님들은 다리쉼을 할 자리를 못 찾다가 길게 펼쳐진 어느 돌무더기에 앉습니다. 체육관 앞마당 널찍하게 마련해서 예쁘기는 하지만, 정작 다리쉼을 할 만한 걸상 하나 없습니다. 계단에 앉아도 되고, 길바닥에 앉아도 되겠지요. 풀밭에 앉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걸상이 하나도 없는 김일체육관 앞마당은 어쩐지 쓸쓸합니다.


  그런데, 서울 손님들 앉은 돌 뒤를 문득 보니 ‘기념식수’라는 글월 보입니다. 김일체육관 앞마당에 가느다란 나무 몇 그루 있는데, 이 나무들 심은 분들 이름 적은 듯합니다. 그런데, 왜 거님길 자리에 ‘기념식수 기념비’를 나란히 세웠을까요. 걸어가면서 들여다보고 꾸벅 절하며 인사하라는 뜻일까요.

 
  변변한 걸상도, 나무그늘도 없는 김일체육관 앞마당에는 ‘기념식수 기념돌 무더기’에다가 ‘체육관 짓는 데에 돈 보탠 사람들 이름 새긴 커다란 돌’이 아주 크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박치기왕 김일’을 느낄 만한 어느 것도 없는 김일체육관에서 술잔치 벌이는 관광버스 아저씨들하고 섞이고 싶지 않아, 서울 손님들은 곧바로 자리를 뜨기로 합니다. 5월 19일 한낮, 금산면소재지 둘레에 문을 연 밥집 잘 안 보여, 다시 거금다리 건너고 소록다리 건너 녹동항으로 갑니다. 자동차 몰아 여섯 시간 서울서 달려온 손님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면 좋을는지 참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고흥에 어떤 기념관이나 박물관이나 전시장 있는지 참으로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관광이나 문화는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만, 김일체육관 짓는 데에 들인 돈과 품을 헤아린다면, 애써 돈들여 무엇 하나 만든다 할 적에,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아끼며 어떻게 사랑할 때에, 고흥 문화와 삶이 빛날 만한지 궁금합니다. 어떤 ‘새로운 소식’ 있지 않고는, 앞으로 고흥 찾아온 손님들하고 김일체육관에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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