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아닌 권력자는 읽지 않는다



  나는 따로 좋아하는 작가를 두지 않고 오직 작품만으로 읽습니다. 즐겨읽는 작가가 몇 사람 있다면, 그이를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이가 새로 펴내는 작품이 늘 새롭게 돌아보며 배울 만한 이야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어느 작가가 보여주는 말이나 몸짓이란, 그이가 손가락으로 뻗는 곳이란, 그이 삶일 텐데, 그이 삶으로 무엇을 보여주느냐를 돌아본다면 요즈막 어느 분이 쓰는 글이나 하는 일이란 그분이 흔히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할 적에 쓰는 ‘진보 장사’이자 ‘여성성 장사’라고 느낍니다. 사내는 가시내를 노리개로 삼으며 재미를 얻으려 하는데, 이뿐 아니라 주먹힘까지 얻어요. 사내가 오랫동안 일삼은 노리개질을 가시내가 똑같이 따른다면, 가시내도 잔재미뿐 아니라 주먹힘을 거머쥐려 하거나 거머쥐었다는 뜻이요, 이런 길을 걷는 이가 한국에도 몇 사람 눈에 뜨입니다. 그이들은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지만, 정작 작가이기보다는 권력자로 살아왔지 싶습니다. 저는 작가 아닌 권력자가 부리는 칼부림이 드러난 글이나 책은 참모습을 감추는 권력질이라고 느껴서 그러한 글이나 책은 안 읽고 우리 도서관에는 그런 책을 안 두며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자료로 몇 권 두기는 하지만. 허영만 만화책이라든지 고은 시집이라든지 모윤숙 시집이라든지 김활란 수필책이라든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람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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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지영을 안 읽는다



  나는 공지영을 안 읽습니다. 공지영이란 분이 무슨 말을 퍼뜨리든, 무슨 글이나 책을 쓰든 이녁이 짓는 이야기는 안 읽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란 데에 들어갈 무렵, 또 대학교를 그만두고 고졸 배움끈으로 살아갈 무렵,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가서 신나게 책을 팔 무렵, 스물여섯 살에 한국말사전 편집장으로 일할 무렵, 둘레에서는 으레 공지영 책을 읽었고 왜 저더러 이녁 책을 안 읽느냐고 묻거나 따졌습니다. 저는 짧게 대꾸했습니다. 그이 책 몇 권을 들춰 보기는 했는데 한 줄조차 안 넘어가더라고, 한 쪽 아닌 한 줄조차 숨이 턱턱 막혀서 이런 글은 읽을 수 없더라고, 그분 공지영 님이 얼마나 생각(상상력)이 뛰어난지 모르겠지만, 글에서 참빛이 안 보여서 쳐다볼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요즈음도 공지영을 읽을 일이 없다고 느끼는데, 아마 앞으로도 이이 책은 거들떠볼 일조차 없으리라 여깁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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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홍준표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여성 혐오’하고 ‘여성 헐뜯기’ 같은 말을 찬찬히 들려주었습니다. 다만, 이분이 생각하기로는 이분 스스로 내놓은 말은 ‘여성 혐오’도 ‘여성 헐뜯기’도 아닐 수 있습니다. 이분은 여성을 늘 그렇게 바라보도록 어릴 적부터 ‘배웠’을 테고 ‘보았’을 테니까요. 남성이 집안일도 안 하고 설거지나 밥도 안 하는 삶자리에서 자란다면, 남성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여성을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이웃으로 바라보지 않는 터전에서 자란다면, 이때에 남성은 무엇을 알거나 말할 만할까요? 모든 사람한테는 ‘말할 자유’ 이른바 ‘표현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한테는 ‘듣지 않을 권리’ 이른바 ‘표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사진을 찍을 자유가 있다면, 사진에 안 찍힐 권리가 있습니다. 자유와 권리는 서로 부딪힐 만한 갈래가 아닙니다만, 둘 사이에 ‘사랑’이 없다면, 사람을 사람답게 사랑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이때에는 어떤 자유나 권리도 제구실을 못 하는구나 하고 느껴요. 여성은 남성한테서 아무 말이나 들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며 마주하기에 스스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017.5.4.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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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여러모로 꽤 고마운 사람이지 싶습니다. 사드 미사일 값 1조 원을 한국이 내라고 떳떳하게 말하거든요. 가만히 돌아보셔요. 한국 정부는 여태까지 미국 무기를 한국에 두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미국한테 냈어요. 주한미군한테 들어가는 돈도 해마다 엄청나지요. 그런데 여태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한 미국 대통령이 없어요. 아마 웬만한 한국사람은 주한미군한테 들어가는 돈이 ‘미국 주머니’가 아닌 ‘한국 주머니’에서 나오는 줄 모르고 살았지 싶어요. 더욱이 한국에서 정치지도자와 여야 정당은 이 대목을 사람들한테 꽁꽁 감췄어요. 한국이 미국한테 해마다 얼마나 많은 돈을 퍼주어야 하는가를 떳떳하게 제대로 밝힌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꽁꽁 감춰진 이야기를 진보 지식인과 진보 정당만 캐내어 밝혔어요. 이런 흐름이 오래 이어지면서 ‘한미동맹’ 같은 말을 단단히 믿은 분이 많을 텐데,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이런 단단한 믿음을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뜨려 준 셈이지요. 자, 사드 미사일 값만 치르면 될까요? 아니지요. 주한미군 주둔비도 치러야 하지요. 이밖에 온갖 돈을 치러야 할 테고요. 미국 무기를 어마어마한 돈을 해마다 치러야 한국이 ‘안전한 나라’가 될까요, 아니면 그 어마어마한 돈이 한국에서 돌고 돌도록 할 적에 한국이 ‘튼튼한 나라’가 될까요? 한국은 식량자급률이 대단히 낮습니다. 미국이며 중국이며 칠레이며 베트남이며 브라질이며 온갖 다른 나라에서 하루만 ‘식량 수출’을 끊으면 한국은 휘청거립니다. 전쟁무기가 없대서 굶어죽지 않아요. 전쟁무기는 잔뜩 있으면서 굶어죽으면 뭣 하겠습니까. 전쟁무기 잔뜩 갖추고, 핵무기를 만든다며 아웅거리는 북녘을 보셔요. 남녘은 북녘을 손가락질할 만한 주제가 못 됩니다. 북녘은 북녘대로 오랫동안 멍청한 짓을 해대고, 남녘은 남녘대로 오래도록 멍청한 짓을 해댔어요. 정 전쟁무기가 있어야겠다고 여긴다면, 먼저 식량자급률이 100%가 되도록 해야지요. 한국에서 스스로 제 먹을거리를 지어서 먹을 수 있고 나서야 뭔가 다른 길을 열 수 있지, 스스로 먹고살지도 못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제 껍데기가 아닌 속살을 바라볼 때입니다. 사람들을 굶기고 전쟁무기만 갖추려 하는 정치지도자나 정당은 이 전쟁무기로 사람들을 짓밟는 독재를 부리는 짓하고 똑같습니다. 전쟁무기만 잔뜩 있는 곳에는 평화도 없으나 민주나 복지도 없고, 온갖 불평등과 차별과 비정규직만 있어요. 1조 원을 시골에 풀어 보셔요. 시골에 사는 사람한테 1조 원을 골고루 줘 보셔요. 그러면 시골사람은 이제 농약 비료 안 쓰는 아름다운 농사를 지을 테고, 도시에서 아주 빠르게 시골로 들어가서 흙 만지며 즐겁게 살겠노라는 물결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2017.4.2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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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100만 권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 님 책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 님 책은 ‘여행 사진책’ 한 권만 장만했습니다. 이분 다른 책은 이웃님이 열 권 남짓 선물해 주어, 우리 도서관학교 책꽂이 한쪽에 얌전히 꽂아 놓은 적이 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님을 둘러싸고서 꽤 예전부터 ‘100만 권’이라는 이름이 달라붙었습니다. 이 ‘100만 권’이라는 숫자를 좀 새롭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100만 권”은 으레 ‘작가 한 사람 책을 한 군데 출판사에서 100만 권 팔아서 돈을 버는 일’로만 다룹니다. 이러한 일은 나쁘지 않아요. 그리고 좋지도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아야지 싶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테두리를 넘어서, 우리는 “100만 권 1작가” 아닌 “1만 권 100작가”라는 밑바탕부터 제대로 다져야지 싶어요. 한 작가 책만 한 군데 출판사에서 100만 권 팔아치워서는 책마을은 더 뒤틀리고 말아요. 백 군데 출판사에서 백 사람에 이르는 작가를 놓고서 백 가지 책이 나와 저마다 만 권씩 팔릴 적에 책마을이 바르게 서리라 느껴요.


  송인서적 같은 도매상은 ‘더 많은 책을 한 가지 책으로 잔뜩 팔 수 있는 큰 출판사’에 결재를 훨씬 잘 해 줍니다. 한 달에 백 권쯤 파는 작은 출판사 결재는 으레 미루거나 어음으로 돌리곤 하지요. 이런 얼거리는 앞으로 몽땅 갈아엎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책을 사고파는 숫자’라는 테두리에서도, “백 작가 만 권씩 백만 권”이 될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 할 테고, 이렇게 밑바탕부터 제대로 다지면서 책마을을 살리는 길을 걸을 적에, 머잖아 “100만 권 100작가”를 이루는 한국 책마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백 사람에 이르는 작가가 저마다 100만 권을 사랑받도록 할 수 있고, 천 사람에 이르는 작가가 저마다 100만 권을 사랑받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작게 한 걸음부터 내딛으면 말예요. 2017.3.19.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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