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빨랫감

 


  지난밤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고 느낀다. 그래 보았자 겨울 가운데 하루요, 전남 고흥 겨울 날씨는 다른 고장하고 견줄 수 없이 포근하다. 다만, 보일러 온도계 있는 방이 밤새 13도까지 내려갔다. 한낮이 되어 비로소 빨래를 하려고 씻는방에 가서 빨래통을 뒤집는데 어제 모은 빨랫감이 꽁꽁 얼어붙었다. 올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따순물을 부어 얼어붙은 빨랫감을 녹이고 얼음조각을 떼어낸다. 그러고는 척척 비누질을 하고 비빔질과 헹굼질을 한다. 한낮 햇볕은 포근하니 이럭저럭 잘 마르겠지. 다 마르지 않으면 방으로 들여서 마저 말리면 될 테고.


  겨우내 꽝꽝 어는 멧골자락에서 지내던 겨울을 되새겨 본다. 겨우내 그리 춥지 않다 할 만한 이곳 시골마을 날씨를 헤아린다. 아이들은 낮이 되어 햇볕이 따사로우니 마당에서 뛰어논다. 아이들도 즐겁고, 빨래해서 너는 어버이도 즐겁다. 4347.1.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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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빨래하는 기쁨

 


  손가락이 트는 바람에 며칠 빨래를 못 했다. 오늘 며칠만에 손빨래를 하면서 복복 비비며 아주 즐겁다. 다 마친 빨래를 꾹꾹 짠 다음 마당에 넌다. 바람이 불지 않아 겨울이지만 물기가 잘 마른다. 해가 질 무렵 빨래를 거두어 집안에 옷걸이로 꿰어 넌다. 이제 하룻밤 자고 나면 보송보송 잘 마를 테지.


  손빨래를 할 수 있는 만큼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할 적에도 성가시지 않다. 튼 자리가 갈라져 핏물이 흐르고 따끔거릴 적에는 밴드를 대거나 씌우개로 씌워도 자꾸 성가시다고 느꼈지만, 잘 아물어 아이들 씻기고 빨래를 할 수 있으니 아주 홀가분하다.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문득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빨래를 잘 해요? 아버지랑 어머니는 왜 밥도 잘 하고 청소도 잘 하고 설거지도 잘 해요?” “그렇게 하고 싶다 생각하니까 잘 할 수 있지.” “나도 잘 하고 싶은데.” “벼리도 잘 하고 싶다 생각하면서 밥을 잘 먹고 무럭무럭 크면 앞으로 잘 할 수 있어.” “에잉.” 두 아이 저녁을 다 먹이고 설거지를 마친다. 이튿날 먹을 쌀을 씻어서 불린다. 오늘 하루도 조용히 즐겁게 저문다. 4346.12.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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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장갑

 


  며칠 앞서 빨래를 하고 난 뒤 왼손 둘째손가락 첫째 마디가 텄다. 바야흐로 겨울이로구나. 다른 곳은 아직 안 텄는데, 이곳이 트면서 빨래를 할 때뿐 아니라 설거지를 할 때에도 자꾸 건드려 따끔거린다. 우체국에 가느라 어제 면소재지를 다녀왔는데, 면소재지 하나로마트 앞에서 무언가 잔뜩 늘어놓고 예수님나신날맞이 에누리잔치를 하던데, 고무장갑이 문득 보였지만 슥 지나쳤다. 고무장갑을 한 켤레 장만해야 했을까.


  아침에 밥을 차리면서 물이 닿을 적마다 따끔거린다. 또 밴드를 붙여야 할까. 손가락씌우개를 씌워야 할까. 옛날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옛날 사람들은 흙과 물과 풀을 늘 만지니 손가락이 틀 일 없었을까. 옛날 사람도 똑같이 손가락이 트며 따끔거렸을 테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지나가면서 튼 자리에 새 살이 돋고 새 굳은살 박혀 나아졌을까. 옛날 사람은 튼 자리를 천으로 둘둘 동여매고 일을 한 뒤, 일을 마치면 천을 풀어 말렸을까. 4346.12.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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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12-24 13:05   좋아요 0 | URL
고무장갑 하나 마련하세요.^^
조금은 도움이 될 텐데요..

크리스마스 이브 행복한 날 되세요^^

숲노래 2013-12-24 13:11   좋아요 0 | URL
아침부터 손가락이 따끔하기는 했는데
그대로 아이들 씻기고 빨래를 했는데
또 밥도 짓고 설거지도 하는데
그럭저럭 괜찮더라구요 ^^;;;

겨울맞이 첫 손트기라서,
이제부터 제 손도 이런 겨울살이에
맞추어 주는구나 싶어요.

후애 님도 예쁘며 즐겁게
성탄절 누리셔요~~~~~
 

빨래노래를 안 부르다

 


  작은아이가 밤오줌을 말끔히 뗀 뒤, 한동안 이불과 이부자리에 밤오줌을 질펀하게 누곤 했지만, 이제 이마저 없다. 큰아이를 돌보는 동안에도 느꼈는데, 아이들이 밤오줌을 말끔히 떼었다고 느낄 적에 얼마나 홀가분하면서 고맙고 눈물이 나는지 모른다. 다만, 이러다가도 너무 힘들게 논 날에는 아이 스스로 모르게 오줌을 지리곤 한다. 괜찮아. 누구나 그럴 수 있거든. 너희가 그럴 적에는 이불을 빨아야 할 때라고 알려주는 셈이니, 외려 반갑지.


  아이들이 밤오줌을 잘 가리니, 천기저귀를 댈 일도 빨래할 일도 없다. 빨래해서 말리느라 애먹을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오줌을 가릴 수 있고 똥도 잘 가리는 만큼, 오줌바지와 똥바지 빨래도 나오지 않는다. 아주 어린 아이들 돌보는 어버이라면 잘 알 텐데, 아이들이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를 내놓는다면, 으레 오줌바지와 똥바지를 나란히 내놓는다. 여기에 웃도리에까지 오줌으로 적시거나 똥을 묻혀서 함께 빨도록 덤을 얹기도 한다.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들과 살자면, 날마다 빨래를 너덧 차례를 해도 모자라기 일쑤이다.


  어린 아이들과 지내며 늘 빨래를 하며 빨래순이처럼 하루를 보내며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구는 동안 혼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생각에 젖기도 했다. 이제 빨래 일이 부쩍 줄어들다 보니, 빨래노래 부르는 일 또한 부쩍 준다. 한편, 아이들이 크다 보니, 한 번 입고 벗어던진 뒤 다시 안 입는 옷이 생긴다. 빨 까닭이 없지만, 여러 날 먼지를 먹고 뒹군 탓에 빨아야 하는 옷이 생긴다. 슬금슬금 이마에 골이 팬다. 이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오줌을 누어 빨래하는 옷이나, 아이들이 한 번 입고 아무 데나 던지는 바람에 먼지구덩이가 되어 빨래하는 옷이나, 서로 똑같은 옷이요 빨래 아닌가 하고 느낀다. 한손으로 이마를 살살 문질러 골을 지운다. 아이들이 나한테 예쁜 선물을 주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착하고 멋진 아이들아, 신나게 놀자. 아름답게 노래하자. 기쁘게 어깨동무하자. 너희가 바로 어버이를 어버이답게 가꾸어 주는구나. 4346.12.2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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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핏기저귀 빨래

 


  새벽 다섯 시 반에 방바닥에 불을 넣는다. 아이들 이불깃을 여민다. 작은아이가 뒤척이기에 쉬 할래 하고 여러 차례 묻는다. 안아서 쉬를 누일까 하다가 달게 자는구나 싶어 그대로 둔다. 어제는 이러다가 바지에 쉬를 옴팡 누었지만,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잘 가리리라 믿는다. 방바닥에 불을 넣는 김에 새벽빨래를 할까 생각한다. 아이들 옷가지만 빨아야 한다면 아침이나 낮에 해도 되지만, 곁님 핏기저귀가 있으니, 따순 물로, 아니 뜨거운 물에 폭 담그면서 빨래하자고 생각한다.


  갓난쟁이 똥기저귀와 곁님 핏기저귀는 햇볕에 바짝바짝 말려야 누런 기운이나 붉은 기운이 빠진다. 아무리 잘 삶아도, 삶듯이 뜨거운 물에 폭폭 담그며 빨아도, 누런 기운이나 붉은 기운은 빠져나가지 않는다. 다른 빨래도 햇볕에 말릴 적에 가장 잘 마르고, 이불도 햇볕에 말려야 비로소 보송보송한데, 기저귀도 햇볕에 말려야 가장 보드라우며 포근한 기운이 감돈다.


  요 며칠 날이 좀 얼어붙어 빨래를 바깥으로 내놓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어떤 날씨가 될까. 햇볕이 알맞게 따스하다면, 핏기저귀 빨래를 마당에 살포시 내놓아 햇볕을 먹이고 싶다.


  뜨거운 물에 담그며 빨다 보니 손이 얼얼하다. 찬물에 빨래를 해도, 더운물에 빨래를 해도, 옷가지를 다 널고 나면 손이 내 손이 아닌 듯하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동백마을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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