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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에서 짓는 글살림

39. 햇사랑



  한국말로 옮긴 어느 일본만화를 읽는데 “순애보인가?”라는 짤막한 한 마디를 보았습니다. 어른끼리 이야기하는 둘레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낱말인 ‘순애보’이지만 말뜻을 제대로 짚자는 마음으로 사전을 뒤적입니다. 그런데 이 낱말은 사전에 없습니다. 더 살피니 이 낱말은 1938년에 어느 분이 쓴 글에 붙은 이름이에요. 글이름이라서 사전에 없나 하고 헤아리면서 한문 ‘殉愛譜’를 뜯으니 “바치다(殉) + 사랑(愛) + 적다(譜)”로군요. “바치는 사랑을 적다”라든지 “사랑을 바친 이야기”로 풀이할 만합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글인 터라 아무래도 글이름을 한문으로 적기 쉬웠을 테고, 중국 말씨이거나 일본 말씨일 테지요. 그렇다면 요즘은 어떻게 쓰거나 읽거나 말하거나 나눌 적에 어울리거나 즐겁거나 아름다울까요?


 절절한 순애보 같았다 → 애틋한 사랑 같았다 / 애틋이 사랑에 바친 듯했다

 스타들의 순애보를 보면 → 샛별들 사랑을 보면 / 별님들 사랑타령을 보면

 그녀를 향한 순애보 → 그이를 보는 애틋사랑 / 그님을 보는 사랑

 각별한 순애보를 짐작하게 했다 → 남다른 사랑을 어림해 본다


  한국사람이 쓴 글에 붙인 이름은 ‘순애보’이니 일본만화를 한국말로 옮기는 자리에 섣불리 쓰기에는 안 어울릴 수 있습니다. 수수하게 ‘사랑’이라 하면 되고, “애틋한 사랑”이라든지 ‘사랑타령’이라 할 만해요. “사랑을 바치다”를 간추려 ‘사랑바침’이라 하거나 ‘애틋사랑’이라 해도 어울리겠지요.


  그리고 아예 느낌을 새롭게 담아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해님 같은 사랑을, 햇살 같은 사랑을, 햇볕 같은 사랑이라 할 만하지요. ‘해 + 사랑’ 얼개로 ‘햇사랑’이라 하면 어떨까요?


햇사랑·햇살사랑·햇빛사랑 ← 순애보(殉愛譜), 연가(戀歌), 열애, 순정(純情), 자애, 자비, 가호, 대자대비, 무한한 애정, 애지중지, 정성, 지극정성, 극진, 성심, 성의, 성심성의


  ‘햇사랑·햇살사랑·햇빛사랑’, 이렇게 세 마디를 새로 지어서 써 보니, 여러 가지 한자말이 머리에 줄줄이 떠오릅니다. 저 말고도 ‘햇사랑·햇살사랑·햇빛사랑’ 같은 말을 쓰는 분이 있겠지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해님처럼 맑고 밝으며 포근하기에, 같이 있기만 해도 햇살처럼 눈부시기에, 말 몇 마디만 섞어도 햇빛처럼 환하게 퍼지는 기운이 곱기에 이러한 사랑을 그릴 만하지 싶습니다.


 첫사랑. 풋사랑. 참사랑.

 온사랑. 두사랑. 새모사랑.


  사전을 살피면 ‘첫사랑·풋사랑·참사랑’ 같은 낱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여러모로 펴거나 받거나 누리거나 나누면서 살아갑니다. 여기에 모든(온) 숨결을 담은 ‘온사랑’이라든지, 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두사랑’이라든지, 세 사람이 얽힌 ‘세모사랑’도 있어요.


  우리가 누리거나 조마조마하거나 설레거나 반가이 여기는 사랑을 놓고서 새삼스레 말 한 마디를 엮을 만하지 싶습니다. ‘하늘사랑’이라든지 ‘바다사랑’이라든지 ‘푸른사랑’이라든지 ‘하얀사랑’ 같은 말도 넉넉히 쓸 만할 테고요.


  때로는 바보스럽게 굴어 ‘바보사랑’이 됩니다. 어버이나 어른이 아이를 아끼면서 ‘아이사랑’입니다. 아이가 어버이를 사랑하면 ‘어버이사랑’이에요. 이런 사랑을 두고 ‘내리사랑·치사랑’ 같은 말이 따로 있습니다만, 수수하게 ‘아이사랑·어버이사랑’을 써도 쉽고 어울립니다.


 밥사랑. 옷사랑. 집사랑.

 책사랑. 노래사랑. 이웃사랑.


  먹기를 좋아한다면 ‘밥사랑’이요, 옷을 좋아하기에 ‘옷사랑’입니다. 바깥에서 돌아다니기보다 집에 있기를 좋아하기에 ‘집사랑’이 됩니다. 책이나 만화나 사진이나 그림이나 영화를 즐기면 이러한 즐길거리에 ‘-사랑’을 달아 볼 만합니다. ‘노래사랑’도 하고, ‘자전거사랑’도 하며, ‘나들이사랑’도 할 만해요. 이웃을 돕는다는 ‘이웃돕기’도 좋으나, 이보다는 ‘이웃사랑’이란 말을 쓰면 한결 어울리지 싶습니다.


  나라하고 나라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려 하는, 이른바 평화협정을 놓고도 ‘이웃사랑’ 같은 말을 쓸 수 있습니다. ‘마을사랑’도 하고 ‘고장사랑’이며 ‘고을사랑’도 할 만하고, 밤하늘 별빛을 지켜보며 ‘별빛사랑’을 할 수 있어요.


 어른사랑 ← 경로우대, 경로석


  버스에 보면 ‘경로석’이란 이름을 붙여놓곤 합니다. 뜻은 좋습니다만 ‘경로석’ 같은 이름은 낡았다고 느껴요. 이제는 어린이도 쉽게 알아보고 느낄 수 있도록 ‘어른사랑’이라든지 ‘어른자리’란 이름을 붙이면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또는 ‘어른아이자리’처럼, 어른하고 아이가 같이 누리는 자리로 삼을 수 있어요.


  오늘날 더없이 흔히 쓰지만, 가없이 좁은 틀에 가두기 일쑤인 ‘사랑’이란 낱말이지 싶습니다. 삶이 노래가 되도록 따뜻하면서 맑고 고이 마음을 쓰면서 나누려고 하는 숨결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 낱말을 이제는 슬기롭게 제대로 쓰면 좋겠습니다.


  벼슬아치 아닌 ‘벼슬지기’ 같은 일꾼이 마을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되어 마을사랑을 펴는 길을 간다면 좋겠어요. 배움터에서는 길잡이가 되는 어른이 배움동무인 어린이하고 푸름이 곁에서 오롯이 사랑이란 마음으로 함께 가르치고 배운다면 좋겠어요. 교육열이나 입시교육이나 교과서 진도가 아닌 ‘배움사랑’이란 마음으로 이야기를 편다면 확 달라질 만하겠지요.


 배움사랑. 글사랑. 사랑손.


  글을 쓰는 일을 하는 분이라면, 멋을 부리거나 그럴듯하게 꾸미거나 잘난척하는 글이 아니라, 옹글게 따사로운 숨을 함께하는 마음이 되어 ‘글사랑’을 편다면 좋겠습니다. 나아 보이려 할 까닭이 없어요. 높아 보여야 할 일이 없어요. 고스란히 사랑이라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여미면 됩니다. 고요히 사랑이라는 손빛으로 이야기를 갈무리하면 됩니다.


  논밭에 씨앗을 심는 손길은 투박하거나 거친 손이 아닌, 사랑이 어린 손입니다. 바로 ‘사랑손’이에요. 아픈 아이나 이웃을 달래거나 다독이기에 사랑손입니다. 이 땅을 넉넉히 돌보거나 가꾸기에 사랑손입니다. 서로 손을 맞잡거나 이바지를 할 줄 알기에 사랑손입니다.


  일을 하거나 글을 쓰는 자리에서는 사랑손이라면, 사람이 사람으로 마주하는 터라든지 사람이 숲을 바라보는 곳에서는 ‘사랑눈’이 되면 좋겠습니다. 개발 이익이란 이름이 아닌 푸른 마을이며 숲이 되도록 사랑눈으로 지켜볼 줄 알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웃이며 동무가 들려주는 말을 어질고 참되게 맞아들이는 귀가 되는, 이른바 ‘사랑귀’라면 한결 좋겠지요.


  사랑손, 사랑눈, 사랑귀, 이다음에는 사랑발, 사랑몸, 사랑숨이 될 테고, 차츰차츰 사랑빛에 사랑넋에 사랑길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겠지요. 말 한 마디에 사랑을 심는 ‘사랑씨앗’이 퍼져서 자라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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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숲에서 짓는 글살림

38. ‘한말’로 짓는 달콤한 노래



  아이들하고 마실을 다닐 적에 아이들 스스로 표를 끊도록 합니다. 돈도 아이가 스스로 치르도록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꽤 쭈뼛거렸어요. 아니, 아무 말도 못하고 수줍어 하더군요. 그렇지만 한 해 두 해 흐르더니, 세 해 네 해 지나가니, 이제 표파는곳 앞에 서서 씩씩하게 “어린이표 하나 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어린이는 어린이 스스로 “어린이표 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린이표’ 같은 이름을 쓴 지는 아직 얼마 안 되어요. 예전에는 으레 ‘소아’나 ‘유아’나 ‘아동’ 같은 한자말만 썼습니다.


  때로는 제가 혼자서 어린이표까지 끊어요. 이때에 흔히 “어른표 하나랑 어린이표 둘 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고장마다 살짝 다르기는 해도 몇 해 앞서까지만 해도 ‘어른표’라는 말을 ‘성인표’로 바꾸어서 대꾸하는 일꾼을 제법 보았으나 요새는 표파는곳에서도 ‘어린이표·어른표’라는 이름을 스스럼없이 씁니다.


  우리 집 어린이는 아직 손전화를 안 씁니다. 굳이 써야 할 까닭이나 일이 없어서 안 쓰기도 하는데요, 둘레에서는 꽤 어리다 싶은 아이한테까지 손전화를 맡기더군요. 아니, 초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까지 손전화를 챙기곤 해요. 이때에 쓰는 이름은 ‘키즈폰’이더군요.


 어린이표 ← 소아표 / 아동표

 어른표 ← 성인표

 어린이전화 ← 키즈폰

 어린이쉼터 ← 키즈카페


  어린이가 마음껏 뛰놀 빈터가 자취를 감추면서 따로 ‘키즈카페’가 생기곤 합니다. 마을 어린이가 서로 동무가 되어 즐겁게 놀이를 지어서 누리던 살림길이 차츰 옅어지며 ‘놀이하는’ 몸짓도 사라지는 셈인데요, 이러면서 어린이답게 쓰던 말까지 시나브로 잊혀지지 싶어요. ‘어린이쉼터·어린쉼터·아이쉼터’ 같은 이름을 써도 넉넉하지 않을까요.


  하룻내


  한자말 ‘종일(終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동안”을 뜻한다고 해요. ‘온종일·진종일’ 같은 한자말도 뜻이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말 ‘하루’도 뜻이 같아요. “하루 종일”이나 “하루 온종일”이나 “하루 진종일”이라 하면 모두 겹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손질해야 알맞을까요? 먼저 ‘하루’라고만 하면 됩니다. 군더더기 없이 쓰면 걱정할 대목이 없어요. 힘줌말로 쓰고 싶다면 “하루 내내”라 할 만하고 ‘온하루’라 해도 어울립니다. “하루 내내”를 줄여 ‘하룻내’ 같은 새말을 지어도 되어요.


  달콤멋


  ‘로맨틱(romantic)’이란 낱말을 영어사전에서 살피면 ‘로맨틱한’으로 풀이해요. 이런 풀이는 알맞을까요? 일본사전을 그대로 베끼거나 훔친 풀이는 아닐까요? 이제라도 영어사전이 영어사전답도록 뜻풀이를 모조리 손질하거나 새로 붙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말사전 뜻풀이도 참 엉성하지만, 영어사전을 비롯한 여러 사전도 엇비슷합니다. 우리는 일본 정치꾼 아베가 일삼는 막짓이라든지 여러 곳에서 불거지는 막말을 나무라는데요, 이 나무람이나 호통이 ‘일제강점기부터 스며들어 얄궂게 퍼진 말씨’로까지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구나 싶어요.


  한국말은 한국말답게 쓰면서, 영어는 영어답게 익혀서 쓰는 길을 새삼스레 다스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로맨틱’ 같은 영어는 ‘낭만적인’이란 일본 한자말 풀이로도 다루지 말고 ‘사랑스러운(사랑스런)’이나 ‘달콤한’이나 ‘멋있는·멋진·멋스러운’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애틋한’이나 ‘포근한·따스한·살가운’으로 풀어낼 수 있어요.


  달콤맛·달달맛·포근맛·사랑맛

  달콤멋·달달멋·포근멋·사랑멋


  달콤한 일이 있습니다. 달달한 사랑이 있습니다. ‘달콤사랑’처럼 새롭게 써도 좋고, ‘달콤사랑맛’처럼 더 길게 써 보아도 좋습니다. 단출하게 ‘달콤하다’나 ‘사랑스럽다’라 해도 되고, ‘달콤맛’이나 ‘달달멋’처럼 ‘맛·멋’을 살짝 다르게 붙여도 어울려요. ‘사랑맛·사랑멋’도 어울릴 테고, 사랑이란 포근한 기운이라 여겨 ‘포근맛·포근멋’처럼 새말을 엮어도 됩니다.


  말을 짓는 사람은 바로 우리입니다. 남이 지어 주지 않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지은 낱말이 좋구나 싶으면 받아들일 수 있고, 아니로구나 싶으면 우리 깜냥껏 새로 지어서 쓰면 됩니다.


  혼밥 ← 1인식

  혼밥집·혼밥가게 ← 1인식당


  혼자 먹는 밥이라 ‘혼밥’입니다. 이런 말씨는 국어학자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거나 못했습니다. 그러나 혼자 밥을 먹고 살아가는 수수한 사람들 스스로 이런 말을 지어서 널리 썼어요.


  혼밥은 ‘혼놀이’나 ‘혼술’로도 이어집니다만, 어느새 ‘혼자 찾아가서 먹을 수 있는 밥집’을 가리키는 ‘혼식당’으로도 퍼집니다. 자, 여기에서 더 마음을 기울인다면 ‘혼밥 + 가게/집’ 얼거리로 ‘혼밥가게·혼밥집’ 같은 새 이름을 지어서 알맞게 쓸 만합니다.


  ‘혼-’을 붙이는 말씨 못지않게 ‘함-’을 붙이는 말씨도 퍼지지요. ‘떼노래’란 말도 씁니다만 ‘함노래’라 할 수 있어요. 함께 먹어서 ‘함밥’이라 하면 되고, 함께 마시니 ‘함술’이 되어요. 함께 앉는 자리를 그냥그냥 ‘단체석’이라 합니다만 ‘함자리’나 ‘함께자리’라 해도 좋습니다.


  생각해 봐요. “오늘은 혼술을 할까, 함술을 할까?”라든지 “오늘은 혼밥을 할까, 함밥을 할까?”처럼 이야기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한집에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집삯을 나누어 내기에 ‘함집’이나 ‘모둠집’이나 ‘두레집’을 이룹니다.


  우리 스스로 살아가는 결을 고스란히 말에 담습니다. 우리 스스로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새말을 짓습니다. 따지고 보면 예부터 사투리란 말이 이와 같았어요. 임금님이 지어 주는 말인 한문을 쓰던 사람들이 아니라, 고장마다 다 다른 살림에 맞추어 다 다른 눈빛으로 다 다른 말씨를 엮어서 쓰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흐름을 본다면, 한국은 한자문화권이 아닌, ‘한겨레 살림밭’이에요. ‘한살림밭’이나 ‘한살림누리’인 셈이에요. 중국을 섬기며 한문으로 글을 쓰고 말을 하던 임금이나 벼슬아치는 아주 적었어요. 흙을 짓고 들을 가꾸며 숲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을을 돌본 수수한 사람들은 언제나 한겨레 말인 ‘한말’로 노래하는 나날이었지요.


  해마다 가을이면 시월에 한글날을 맞이합니다. 한겨레 글씨를 지은 임금님을 기리는 날인데요, 어느덧 우리는 새로운 기림날을 하나 삼을 때이지 싶습니다. 아마 10만 해일 수도, 어쩌면 30만 해일 수도 있는, 한겨레 말씨를 기리는 날을 하나 둘 수 있어요. 이른바 ‘한말날’입니다. 글씨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나 표준말에 갇힌다면, 말씨는 우리 삶자리에서 스스로 지으면서 피어납니다.


  앞으로는 ‘한말’을 아름답게 쓰는 사랑스러운 우리가 되면 좋겠어요. 서로 아끼는 마음을 말 한 마디에 담고, 서로 착하게 어깨동무하는 뜻을 말 한 자락에 담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삶말이자 살림말이자 사랑말인 한말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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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이야기

숲에서 짓는 글살림

37. 서울 다녀오는 길



  서울을 다녀오는 일이 있을 적에 언제나 “서울에 간다”고만 말합니다만, 둘레에서는 ‘상경’이나 “서울에 올라오다”라는 말로 받습니다. 이 말씨 ‘상경·서울에 올라오다’가 알맞지 않다고 넌지시 알려주어도 좀처럼 못 바꾸는 분이 아주 많습니다. 하기는, 전남 고흥에 살면서 고흥읍에 일이 있어 갈 적에도 비슷해요. 고흥군청이나 고흥교육청에서 일하는 분들 입에서 으레 “읍내에 올라오시지요?” 같은 말이 툭툭 나옵니다.


  이 위아래로 가르는 말씨를 언제쯤 말끔히 씻을까요? 촛불 한 자루 드는 물결로는 못 씻으려나요? 나이로 위아래를 가를 뿐 아니라, 자리로 위아래를 가르는 버릇으로는 어떤 어깨동무도 못 한다고 느껴요. 그나저나 서울에 걸음을 하고 보면, 곳곳에 선 알림판 글월이 어지럽습니다. 다만 저한테만 어지러운지 이런 알림글은 서른 해가 가고 쉰해가 흐르고 일흔 해가 지나도록 바뀔 낌새가 안 보입니다.


열차가 방금 출발하였으니 다음 열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열차가 막 떠났으니 다음 열차를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 열차가 바로 떠났으니 다음 열차를 타 주시기 바랍니다


  열차는 타거나 내립니다. “다음 열차를 이용해”가 아닌 “다음 열차를 타”라 해야 맞아요. 또는 “다음 열차를 기다려”라 하면 되겠지요. ‘방금·금방’은 앞뒤만 바꾼 한자말인데, ‘막’이나 ‘곧’이나 ‘이제’나 ‘바로’로 손볼 만합니다.


무리한 승하차 금지

→ 억지로 타지 마셔요

→ 밀면서 타지 말아요


  아직 내리지 않았으나 벌써 치고 들어오는 분이 있습니다. 서울이야 워낙 사람으로 물결을 치니 1초조차 아쉬워서 마구 밀어붙이는구나 싶어요. 이때에 “무리한 승하차 금지”란 말을 누가 얼마나 알아들을까요?


  이 알림글을 읽다가 생각했어요. 어쩌면 사람들이 이 말씨를 못 알아보기에 억지로 밀면서 타지는 않을까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알림글을 붙이니, 정작 사람들 버릇이 안 바뀌지는 않을까요? ‘억지로’ 타려 하지 말자고, ‘밀면서’ 타려 하지 말자고, 무엇보다도 “하지 말자(← 금지)”고 제대로 밝히지 않으니, 다들 그냥그냥 억지짓을 할는지 몰라요.


무리한 승하차는 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 밀면서 타고내리면 다칠 수 있습니다

→ 억지로 타고내리면 다칠 수 있습니다


  버스나 전철에서 사람들이 어찌나 밀고 당기는지 알림글이 곳곳에 붙습니다. 말씨가 살짝 다른 알림글인데, “사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는 무슨 뜻일까요? 이런 알림글을 못 알아볼 어른이 많지 싶은데, 어린이라면 더더구나 못 알아보겠구나 싶습니다.


  모름지기 사람들이 많이 모이거나 오가는 곳에서는 알림글을 ‘다섯 살 어린이도 알아볼’ 수 있도록 가다듬어야지 싶어요. 여덟 살 어린이가 알아보지 못한다면, 한글을 읽었어도 뜻을 어림하기 어렵다면, 잘못 붙인 알림글이라고 느낍니다.


  요즈음은 나라밖에서 찾아온 일꾼이 많아요. 한국말이 아직 서툰 여러 나라 이웃님도 ‘일본 한자말로 범벅질인 알림글’은 알아보기 어려워 하겠지요.


보행환경 개선사업

→ 거님길 손질

→ 거님돌 새로놓기


  걸어다니는 길바닥에 깔았던 돌을 뜯어내어 새로 까는 일을 지켜보다가 옆으로 한참 돌아서 갔습니다. 마침 이 삽질을 알리는 판이 한쪽에 섰더군요. 알림판에 적힌 글을 읽다가 피식 웃었습니다. “보행환경 개선사업”이란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붙인 이 삽질이란 무엇일까요?


  짐짓 부풀린 듯한 이런 말씨는 이제 걷어낼 때이지 싶어요. 말에 낀 거품을 걷어내고, 갖은 삽질에 흐르는 찌꺼기도 털어낼 때라고 느낍니다. “거님길을 손봅니다”라든지 “거님돌을 새로 놓습니다”처럼, 어떤 삽질을 하는가를 꾸밈없이 밝히면 되어요.


잠시 후 도착합니다

→ 곧 옵니다

→ 곧 들어옵니다


  때때로 아이들하고 서울마실을 하노라면, 아이들이 매우 힘들어 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기에 힘들어 할 적도 있지만, 서울 곳곳에 나붙은 알림글이 너무 어렵거나 아리송해서 힘들어 해요.


  아마 어른한테는 “잠시 후 도착”이 익숙할 수 있어요. 워낙 이곳저곳에서 이런 말씨를 자주 쓰니까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알맞거나 바르지 않은 정치나 행정을 알맞거나 바르게 가다듬어야 아름답다면, 알맞거나 바르지 않은 말씨도 알맞거나 바르게 가다듬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막에 “일본 것 안 사기!” 바람이 부는데요, 이런 일본 것 안 사는 물결은 왜 일본 한자말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나 “NO JAPAN”처럼 영어로만 말해야 할까요? “일본 것 안 살래”나 “일본 싫어”나 “일본은 저리 가!”처럼 한국말로 먼저 제대로 밝히고서 영어를 곁들이면 좋겠어요. 


전동차 내 자전거 휴대승차 안내문

→ 전동차에서 자전거를 들고 타려면

→ 전동차에 자전거 들고 타신 분한테


  알림글은 알리는 글입니다. 사람들이 바로 알아보도록 이끌 글입니다.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면서 그때그때 맞추어서 움직이도록 도울 글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스며들어서 여태 또아리를 튼 숱한 일본 말씨를 이제부터 제대로 뿌리뽑을 수 있으면, 또는 새롭게 손질하거나 추슬러서 한국말로 곱고 알뜰히 보듬으면 좋겠습니다.


어르신 시내버스 승하차 도우미 운영

→ 어르신 시내버스 도움이 있습니다

→ 어르신이 버스 탈 적에 도와줍니다


  어르신이 버스를 잘 타고내리도록 도우려 한다면, 어르신 눈높이에 맞게 일해야겠지요. 도움이 노릇을 하는 분도 어르신 눈높이에 맞출 노릇이면서, 이러한 일을 알리는 말도 어르신한테 맞추어야지 싶습니다.


  어느 분은 ‘승하차’쯤 어르신 나이에 다 알지 않겠느냐고 물을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르신을 모두 붙잡고 물어보면 좋겠어요. 참말 다들 알까요? 그리고 이런 말을 구태여 아직까지도 써야 할까요?


  서울을 다녀오면 범벅말이 가득해 눈이 어지럽습니다. 숲으로 둘러싼 보금자리에 돌아와서 나무 곁에 섭니다. 나무를 쓰다듬고 맨발로 풀밭에 서서 눈 마음 몸을 달랩니다. 나무하고 나눌 말을, 숲에서 짓는 말을, 바람을 아끼는 말을 그립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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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36. 치고 모으고 부끄럽고



  두 가지 말을 해보겠습니다.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집니다.”하고 “관점에 의해 변화합니다.”입니다. “보는 눈이 있다.”하고 “안목을 지녔다.”입니다. “눈이 좋다.”하고 “관찰력을 가졌다.”입니다. “해야 한다.”하고 “필요로 한다.”입니다. “처음 해봤다.”하고 “최초로 시도했다.”입니다. “네가 처음이야.”하고 “네가 시작이야.”입니다. “너한테서 비롯했어.”하고 “네가 시초야.”입니다.


  두 가지로 말을 할 줄 알기에 우리 생각을 환하게 나타낸다고 할 만할까요? 두 가지 말을 섞느라 막상 우리 생각을 환하게 나타내기보다는, 어떤 자리에 맞추느라 바쁘지는 않을까요?


  ‘염치불고’가 맞느냐 ‘염치불구’가 맞느냐를 놓고서 갈팡질팡하는 분이 꽤 있습니다. 이분을 바라보다가 넌지시 말씀을 여쭙니다. ‘창피하지만’이나 ‘부끄럽지만’이나 ‘남사스럽지만’이나 ‘낯부끄럽지만’이라 말하면 될 노릇 아니냐 하고요.


  겉은 여리거나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이 단단하거나 곧은 사람을 두고 ‘외유내강’이라 일컫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외유내강’이란 말을 알기에 스스럼없이 쓸 테지만, 모든 사람이 이 말을 알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겉은 부드러운데 속은 단단해”처럼 수수하게 말해도 넉넉합니다. 이 수수한 말씨가 길구나 싶으면 앞머리를 따서 줄이면 돼요. ‘겉부속단’이나 ‘겉여속곧’처럼.


  숱한 한자말은 ‘긴 이야기를 줄여서 담아낸 낱말’입니다. 한국말도 얼마든지 새롭게 줄여서 담아낼 수 있습니다. ‘혼밥’에 이어 ‘함밥’을 말하듯, ‘셀카’라면 ‘혼찍’이라 하면 됩니다. 여럿이 모여서 찍으면 ‘단체촬영’이 아닌 ‘함찍’이나 ‘모둠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책을 읽는데 다음처럼 묶음표를 넣어 꽤 길게 쓰더군요. 굳이 이렇게 길게 쓸 까닭이 없다고 여기니 단출하게 다듬어 봅니다.


오늘의 대견한 나를 괄목상대刮目相對(눈을 비비며 다시 본다는 뜻으로, 한동안 못 본 사이에 상대방의 학문이나 인품이 놀랍게 발전하여 이전의 그 사람이 아닌 새 사람으로 보이는 경지를 말함)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오늘 대견한 나를 다시보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괄목상대’라는 한자말을 아는 분은 이 말을 꼭 쓰고 싶었구나 싶어요. 그런데 그분은 이 말을 알더라도 이 말을 모를 이웃이 많겠구나 하고 여겨 묶음표를 치면서 잔뜩 덧붙여요. 이때에 생각해 봐요. “눈을 비비며 다시 본다”는 뜻이라면, 새롭게 ‘다시보다’라는 낱말을 지어서 쓰면 됩니다. ‘새로보다’라 해도 어울려요. ‘다시보다’나 ‘새로보다’라는 말을 지어서 쓰면 굳이 덧말을 안 달아도 알아들을 만합니다. 이런 한국말이 아직 사전에 안 실렸어도, 글을 읽거나 말을 들으면서 어린이도 곧 알아차릴 만하겠지요.


  사전을 들추면 ‘치부’라는 낱말을 네 가지 다루는데, 이 넷 가운데 셋을 사람들이 이모저모 쓰곤 하지만, 찬찬히 따지면 이 세 가지도 쓸 일이 없다 할 만합니다. 하나씩 짚어 보겠습니다.


 치부(置簿)

 그날 벌이의 치부가 끝나자 → 그날 벌이를 다 적자

 다소 모자라는 사람으로 치부된 → 적잖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친

 그를 겁쟁이로 치부하였다 → 그를 무섬쟁이로 여겼다

 모두 과거사라고 치부하고 → 모두 옛일이라고 보고

 믿을 게 못 되는 것으로 치부한다 →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한다


  ‘置簿’라는 한자만 떡 볼 적에 알아차리지 못할 사람이 많습니다. 한글로 ‘치부’라 적어도 알아차리지 못할 사람이 많아요. 어떤 치부를 말하는지 헷갈릴 테니까요. 한국말로 ‘적다’를 쓰거나 ‘치다·여기다·보다·생각하다’를 쓴다면,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어린이도 알아차립니다.


 치부(致富)

 자수성가한 오늘의 치부가 불과 자기 당대에서 망할 줄 → 맨손으로 일군 이 돈이 고작 제 삶자리에서 끝장날 줄

 그것은 운용하기에 따라 치부와 직결돼 있는 → 이를 다루기에 따라 돈벌이와 이어진

 젊어서 치부하여 → 젊어서 돈을 모아


  ‘致富’라는 한자만 딱 보면서 알아차릴 분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한글로 ‘치부’라 적으면 이때에도 어느 치부인지 아리송하기 마련입니다. 이때에도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돈을 모으다”나 “돈을 쌓다”라 하면 쉽겠지요? 때로는 ‘돈’이나 ‘목돈’이나 ‘큰돈’이라 나타내면 될 테고요.


 치부(恥部)

 치부를 드러내다 → 허물을 드러내다 / 부끄러움을 드러내다

 치부를 폭로하다 → 허물을 밝히다 / 뒷짓을 밝히다

 나의 치부 → 내 부끄러움 / 내 멍울 / 내 아픔 / 내 속살


  ‘恥部’라는 한자만 척 보면서 알아차릴 수도 있습니다만, 이때에도 한국말로 밝혀서 적으면 참말로 누구나 알아보겠지요. 하나하나 짚으면 좋겠어요. ‘허물’을 말하려는지, ‘부끄러움’을 말하려는지, ‘뒷짓’을 말하려는지, ‘멍울’이나 ‘아픔’이나 ‘속살’을 말하려는지 곰곰이 생각해서 말하면 좋겠어요.


  ‘치다’라는 한국말은 쓰임새가 매우 넓습니다.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갈무리해 보겠습니다.


치다 1 ← 강타, 타격, 구타, 타자(打字), 타자(打者), 제작, 수타, 연주, 공격, 공략, 공박, 논박, 절개, 절단, 제거, 동작, 전송, 전달, 함락

치다 2 ← 첨가, 첨부

치다 3 ← 설치, 구성

치다 4 ← 축산, 양돈, 앙계, 출산, 숙박

치다 5 ← 정리, 정돈, 청소

치다 6 ← 사고를 내다

치다 7 ← 인정, 가정(假定), 인식, 계산, 합하다, 합치다, 합산, 합계, 치부(置簿)

치다 8 ← 정제


  한국사람이 쓸 말은 한국말입니다. 한국으로 찾아와서 일하는 이웃도 한국말을 씁니다. 이때에 우리가 어떤 한국말을 차근차근 익혀서 함께 쓰는가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어릴 적부터 열두 해에 걸쳐 학교를 다니는 동안, 또 대학교까지 다니는 사이, 막상 한국말부터 제대로 안 배우거나 못 익히지 않았을까요? 한국말부터 제대로 모르는 판이라, 다른 외국말을 배울 적마다 힘들거나 막히지는 않을까요? 우리 입하고 손에서 흘러나오는 한국말이 어떠한 결인가를 하나씩 짚으면서, 우리 생각이나 마음이나 뜻을 어느 만큼 펴는가를 살피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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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라도닷컴> 2019년 8월호에 실었습니다.


..


숲에서 짓는 글살림

35. 가시버시


  제가 여덟아홉 살 무렵이던 어린 날은 1980년대 첫무렵입니다. 이즈음 할아버지 할머니 가운데 ‘남녀칠세부동석’ 같은 말을 읊던 분이 있었어요. 또래끼리 가시내이든 사내이든 섞여서 놀면 몹시 못마땅하다면서 서로 갈라야 한다고 나무라곤 했습니다. 가만 보니 할머니는 으레 할머니끼리만 어울리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끼리만 어울리더군요. 이런 흐름은 학교에서 고스란히 드러나, 여느 때에는 가시내랑 사내를 안 가리고 잘 놀다가도 ‘여자 쪽’하고 ‘남자 자리’로 가르기 일쑤였어요.


  ‘여자 쪽’에서는 더러 ‘남녀’란 말이 안 내킨다고, ‘여남’이라 말해야 한다는 소리가 불거졌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보니 고개를 끄덕일 만해요. 여느 어른은 으레 ‘아들딸’이라고만 말합니다만, ‘딸아들’이라 말해도 되어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딸아들 : x

아들딸 : 아들과 딸을 아울러 이르는 말

여남 : x

남녀(男女) : 남자와 여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이쯤에서 사전을 뒤적이겠습니다. 나라에서 내놓는 사전을 보면 ‘아들딸’만 올림말입니다. ‘딸아들’이란 낱말은 없어요. 한자로 ‘여남’은 없고 ‘남녀’만 올림말로 있어요. 이 대목이 옳지 않다고 여겨서 따진 적 있는데, 아직 국립국어원에서 아무 대꾸를 하지 않습니다.


  어릴 적에 둘레 어른들한테 ‘남녀’를 가리키는 한국말은 없느냐고 곧잘 여쭈었습니다. 이때에 마땅하다 싶게 대꾸해 준 분이 없어요. 이러다가 열한 살 즈음이지 싶은데, 그때 담임 교사 한 분이 이모저모 한참 알아보시고는, ‘남녀’를 가리키는 한국말은 못 찾았지만 ‘가시버시’라는 낱말은 있다고, 남녀는 아니고 부부를 가리키는 낱말이라고 알려준 적 있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가시버시 : ‘부부’를 낮잡아 이르는 말

부부(夫婦) : 남편과 아내를 아울러 이르는 말 ≒ 내외·부처·안팎·이인·항배


  오늘날 사전을 살피면 ‘가시버시’는 낮춤말로 여깁니다. 이 대목을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만, ‘부부’ 뜻풀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할밖에 없습니다. ‘안팎’이란 낱말은 ‘내외’란 한자말을 그대로 풀어낸 낱말일 텐데, 일본을 거쳐 들어왔다고 여길 만합니다. 일본에서는 두 곁사람 가운데 사내 쪽은 ‘주인’으로, 가시내 쪽은 ‘내자’라는 한자말로 가리키곤 합니다. ‘바깥사람·안사람(아내)’은 모두 일본 말씨에 물들어 퍼졌다고 할 만해요.


  새삼스레 따질 노릇이라고 여겨요. 예전에 이 땅에서 한자를 쓴 이는 매우 드뭅니다. 이들은 모두 권력자나 지식인인데 0.01퍼센트가 안 되었어요. 99.99퍼센트에 이르는 이들은 손수 흙을 일구고 옷밥집이란 살림을 스스로 지어서 누린 수수한 시골사람이에요. 예부터 거의 모든 사람들은 수수한 한국말인 사투리를 썼어요.


  간추려 본다면, ‘가시버시’는 오래된 한국말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쓰던 낱말이요, 권력자하고 지식인이 중국말을 섬기면서 마치 낮춤말이라도 되는 듯 깎아내리거나 짓밟느라 밀려난 낱말입니다.


 가시버시 : 가시 + 버시


  낱말을 뜯어 볼게요. ‘가시 + 버시’이니 ‘가시버시’입니다. ‘가시’는 누가 보아도 ‘가시내’를 가리키는 이름인 줄 알 테지요? ‘가시 + 버시’ 얼개라서, 겉모습만 보고 문득 ‘뾰족하게 찔리는 가시’를 떠올릴 분이 있지 싶은데요, 그 결도 틀림없이 이 낱말에 깃듭니다만, 더 뿌리를 캐 보겠습니다.


 (가시 = 가시내) + (버시 = 벗) = 가시버시(갓이 + 벗이 = 갓 + 벗)


  ‘가시내·사내’에서 ‘내’는 ‘네’처럼 사람(집)을 가리키는 자리에 붙이는 말입니다. 밑말은 ‘가시’요, 이는 ‘갓’ 꼴로 씁니다. 사내를 가리키는 ‘버시’도 이와 같아서 ‘벗’ 꼴로 쓰기 마련입니다. ‘동무’하고 맞물리거나 비슷하지만 다른 ‘벗’이라는 낱말이 으레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를 아스라이 예전 살림자리에서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동무’라는 낱말은 가시내랑 사내를 가리지 않고 쓰던 말이라면 ‘벗’이라는 낱말은 으레 사내끼리 사귀는 사이에서 쓰던 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다음으로 ‘갓’은 두 갈래 쓰임새가 있는데, 첫째는 ‘메·봉우리’입니다. 이른바 ‘산(山)’을 가리키는 낱말이에요. ‘멧갓’이라고도 쓰는데, 봉우리가 어떤 모습인지 그려 보셔요. 아래쪽은 펑퍼짐하게 넓으나 위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마침내 뾰족한 꼴입니다. 이러한 꼴을 따서 머리에 얹는 것을 두고도 ‘갓’이라 했고, 요새는 한자말 ‘모자(帽子)’를 쓰곤 합니다만, 해를 가리려고 머리에 쓰는 것을 ‘해가림갓’이라 할 만해요. 아무튼 ‘갓’ 하면 으레 조선이란 나라에서 양반이 쓰던 것만 떠올리는 분이 많으나, 머리에 쓰면 다 갓이라 했어요. ‘삿갓’이란 낱말은 아직 그대로 남았어요. 자, 이러다 보니 ‘갓·가시’가 얽혀, ‘가시 = 뾰족하다’로도 쓰임새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셔요. 오랜 텃말인 ‘가시버시’는 가시내를 앞에 놓은 이름입니다. 눈치를 채셨을까요? ‘버시가시’가 아니라 ‘가시버시’라 했어요. ‘가시집·가시어머니·가시아버지’ 같은 이름이 있는데요, ‘가시 = 뾰족함’이 자꾸 떠오른다면 ‘갓집·갓어머니(갓어미·갓어매)·갓아버지(갓아비·갓아배)’처럼 쓸 만합니다. 높다란 봉우리를 떠올리면서, ‘가시내(갓) = 봉우리’로 바라보는 마음으로 이 낱말 ‘가시버시’를 쓸 만하지요. 그래서, 이 낱말을 살짝 줄여 ‘갓벗’이라 해보아도 어울립니다.


  갓집이 있으니 ‘벗집’이 있고 ‘벗어머니(벗어미·벗어매)·벗아버지(벗아비·벗아배)’가 있습니다. 우리가 즈믄 해를 쓰던 낱말을 헤아리면 좋겠어요. 아니 오만 해나 십만 해를 쓰던 말씨를 되새기면 좋겠어요.


  그런데 있지요, 사내하고 가시내를 가리키던 이름을 파헤치노라면 ‘머스마·머시매’는 ‘머슴’하고 이어지는 고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다 한뿌리인 말입니다. 일을 도맡아 하는 사내를 따로 ‘머슴’이라 했어요.


[숲노래 사전] 갓벗(가시버시) : 가시내하고 사내(머스마·머시매)를 아우르는 이름. 가시내하고 사내를 함께 가리키기도 하고, 둘이 짝을 맺어서 함께 살림을 짓거나 살아가는 사이일 적에 가리키기도 한다. 갓(가시)은 ‘가시내’를, 벗(버시)은 ‘사내’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앞으로 우리 사전은 뜻풀이를 싹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오랜 한국말을 낮추는 낡은 버릇을 치워내야겠고, 말이 흘러온 자취하고 뿌리하고 결을 제대로 살려서, 오늘날 새롭게 북돋아서 쓰는 길을 밝히기도 해야겠다고 느낍니다.


  ‘갓벗’이라 하면 단출하면서도 뜻이 확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남녀칠세부동석’ 같은 낡은 틀은 이제 치울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갓님하고 벗님이 슬기롭게 어울리면서 살림을 사랑으로 짓는 길을 가르치고 배우고 나누고 노래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벗님하고 갓님이 서로 곁에 돌볼 줄 아는 님으로, 곁님으로서 보금자리를 살찌우는 새로운 숨결로 거듭나도록 말 한 마디에 싱그러이 손길을 보태면 좋겠습니다. 어제는 ‘갓이’랑 ‘벗이’가 수수하게 만났다면, 오늘은 ‘갓님’하고 ‘벗님’이 어깨동무하는 웃음으로 마주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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