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76] 꽃내음



  어느덧 서른 해 즈음 묵은 만화영화 〈꼬마 자동차 붕붕〉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러한 만화영화가 거의 다 일본에서 들어왔기에 어른들이 아주 싫어했는데, 일본에서 빚은 만화영화라고는 하나 붓으로 물빛그림을 그려서 빚은 작품이기에 느낌이나 결이나 무늬가 아주 곱습니다. 노래도 꽤 재미있어요. 그러나 나는 이 만화영화에 흐르는 노래를 아이한테 고스란히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꽃향기(-香氣)를 맡으면”은 “꽃내음을 맡으면”으로 고치고, “어렵고 험(險)한 길”은 “어렵고 거친 길”로 고칩니다. 글을 읽고 말을 들을 줄 아는 우리 집 일곱 살 아이는 만화영화에 흐르는 말이 ‘꽃향기’와 ‘험한’인 줄 알지만, 아버지가 고친 말대로 고맙게 노래를 부릅니다. 가만히 보면 그렇거든요. 꽃에서 나는 내음이라 ‘꽃내음’이고, 거친 길이라 ‘거칠다’고 합니다. 만화영화에 한자말로 나왔다고 해서 그대로 알려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한국말사전에는 한국말 ‘꽃내음·꽃냄새’를 안 싣기까지 해요. 한자말 ‘향기’는 ‘내음·냄새’를 한자로 옮긴 낱말일 뿐인 줄 모르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잘 생각해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바람내음·풀내음·밥내음·빵내음·물내음·살내음·사랑내음·딸기내음’입니다. 이런 말마디를 ‘향기’로 바꾸지 못하고, ‘풀향기’나 ‘밥향기’ 같은 말을 쓰는 사람도 없습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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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잠자리 긴옷



  올 2014년 10월 14일 밤부터 아이들을 재울 적에 긴옷을 입히기로 한다. 이제부터 한낮에도 집안이 23∼24도에서 오락가락한다. 밤에도 이 온도가 거의 그대로 간다. 바야흐로 깊은 가을이요, 머잖아 겨울이로구나. 겨울로 접어들면 한두 차례 눈발이 날릴까. 눈발이 날릴 즈음 우리 집 마당 한쪽 동백나무에도 붉은 꽃송이가 환하게 터질까. 해가 뜨면 마당에서는 따스하고, 해가 지면 집에서도 썰렁하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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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비차 사계절 아동문고 18
니콜라이 노소프 지음, 엄순천 옮김 / 사계절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64


 

네가 내 동무 맞니?

― 내 친구 비차

 니콜라이 노소프 글

 엄순천 옮김

 사계절 펴냄, 1993.4.20.



  고흥 시골자락에 조그마한 우리 집을 마련한 지 세 해 만에 뒤꼍 유자나무에서 유자알을 구경합니다. 제법 많이 열렸기에 샛노랗게 익으면 즐겁게 따서 유자차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저녁으로 한두 차례씩 뒤꼍에 와서 유자나무를 올려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유자나무 크기로 본다면 지난해와 그러께에도 유자알이 열렸을 텐데 왜 지난 두 해에는 못 보았을까 하고. 설마 지난 두 해에는 우리 집과 맞닿은 다른 이웃이 우리 몰래 유자알을 몽땅 따는 바람에 이 나무에 열매가 안 맺는 줄 여기지 않았을까 하고. 곰곰이 돌아보니, 올봄에 우리 집 뒤꼍 매화나무에 매화알이 아주 많이 맺혀서 이 열매를 노랗게 익은 뒤에 따려고 했는데, 푸르스름한 빛이 빠질 즈음 하루아침에 몽땅 사라진 일이 있었습니다. 터무니없는 일이었어요.


  시골마을에 대문에 자물쇠를 채운다든지, 울타리에 가시넝쿨을 박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 훔쳐 갈 일이 없거니와 훔칠 것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돌울타리는 어른이라면 가볍게 타고 넘을 수 있는 터라, 이웃집에서 ‘푸른 매실’이 아닌 ‘노란 매실’을 얻으려고 그대로 두는 열매를 ‘안 먹으려고 저러는구나’ 하고 함부로 생각하면서 모조리 가져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 내 생각에 아빠는 문제를 제대로 설명할 줄 모른다. 엄마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빠는 절대로 선생님을 하면 안 된다. 처음 30분은 차근차근 설명하다가도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면 마구 화를 낸다. 그러면 나는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면서 바보 멍텅구리처럼 멍하니 앉아만 있게 된다 … 내가 왜 이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국 나는 의지력이 약하다는 걸 깨달았다. 의지력은 있으나 약하다 ..  (43, 87쪽)



  낮에 사광이풀과 환삼덩굴 줄기와 돌콩 줄기를 걷어서 유자나무 둘레에 쌓습니다. 뒤꼍에서 다른 집으로 이어지는 자리도 뻥 뚫렸기에, 이곳에도 풀짚을 쌓고 장미나무 줄기를 몇 끊어서 풀짚에 얹습니다. 이쪽은 길도 샛길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쪽으로는 들어오지 말라는 뜻입니다. 뱀이나 개구리나 풀벌레나 새라면 이런 풀짚 울타리야 아랑곳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이 풀짚 울타리를 옆으로 치우거나 밟아서는 안 됩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예부터 제주섬에서는 나뭇가지를 돌울타리 앞자락에 걸쳐서 걸쇠로 삼았다고 합니다. 걸쇠라기보다 그냥 걸치는 나뭇가지일 뿐인데, 이웃은 이 나뭇가지를 보고는 함부로 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요. 나뭇가지 걸친 모습을 보면 ‘집이 빈’ 줄 뻔히 알 수 있겠지요. 집이 빈 줄 뻔히 알면 누구라도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요즈음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집이 빈 줄 뻔히 알기에 함부로 안 들어가나요? 집이 빈 줄 알아차리면 무언가 훔치거나 빼앗으려고 몰래 들어가지 않나요?


  도시를 보면 어느 집이든 문을 꽁꽁 걸어 잠급니다. 문을 꽁꽁 걸어 잠가도 도둑은 용케 자물쇠를 따고 들어갑니다. 다시 말하자면, 도둑은 자물쇠가 있든 없든 훔칩니다. 이웃은 자물쇠가 없든 있든 서로 아끼거나 보살핍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사이일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사이로 여길까 궁금합니다.



.. “오빠는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 오빠는 나를 귀찮아 하는데.” “있었으면 좋겠어. 동생이 있으면 장난감도 만들어 주고, 귀여운 동물들도 갖다 주고 하면서 무척 귀여워해 줄 텐데.” … 만일 나라면? 내가 지고 친구가 이긴다면 오히려 기뻐할 거다. 하지만 알릭은 정반대였다. 자기가 이기면 너무 좋아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지면 화가 나서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  (57, 95쪽)



  니콜라이 노소프 님이 쓴 《내 친구 비차》(사계절,1993)를 읽습니다. 러시아에서 나온 퍽 오래된 어린이문학입니다. 한국말로 옮긴 지도 제법 되었습니다. 러시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꾸준히 읽히면서 사랑받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책이름이 말하듯이 “내 동무”를 이야기합니다. 서로 동무라 한다면 어떻게 아끼고 사랑하면서 지내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동무 사이에 지킬 이야기를 밝히고, 동무 사이에 이룰 수 있는 꿈과 사랑을 알려줍니다.


  어린이문학 《내 친구 비차》에 나오는 아이들은 서로 ‘동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무이면서 동무인 줄 제대로 못 깨닫기도 했기에, 동무가 어려울 적에 제대로 못 돕거나 마음을 못 기울이기도 합니다.



.. 나는 완전히 다른 아이가 돼 있었다. 이렇게 당당한 내 모습에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언제나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 보기만 하던 내가 다른 사람한테 수학 문제를 가르쳐 줄 수 있게 되다니 … 엄마를 위해서 공부하는 건 아니야. 엄마도 늘 그렇게 말씀하셔. 하지만 역시 난 엄마를 위해서도 공부하고 있는 거야. 엄마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셔. 나는 꼭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될 거야 ..  (139, 288쪽)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물을 노릇입니다. 내가 네 동무 맞니, 하고. 네가 내 동무 맞니, 하고.


  생각하고 생각할 노릇입니다. 동무 사이라면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이웃 사이라면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이웃인가요? 여러 정당은 서로 이웃인가요? 한국사람은 저마다 서로 이웃인가요? 남녘과 북녘은 서로 이웃인가요? 한국과 일본은, 또 한국과 중국은, 또 한국과 미국은, 또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 이웃인가요? 지구별에 있는 여러 나라는 서로 이웃인가요?


  사람과 개구리는 이웃인가요? 사람과 나무는 이웃인가요? 사람과 제비는 이웃인가요?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우리가 서로 이웃이 아니라면 어떻게 지내면 될까요? 이웃이 어려울 적에 도와준다면, 이웃이 배고플 적에 밥 한 그릇을 준다면, 우리는 이웃한테 돈을 달라고 바랄 만한지요? 아니면, 이웃이니 즐겁게 도와주었다고 말을 할는지요?



.. “얘들아, 이제 코스차를 어떻게 도와줄 건지 얘기해 보자. 코스차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어. 그래서 결국 학교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게 된 거야. 우리한테도 책임은 있어. 우리는 코스차가 어떻게 공부하는지 눈곱만큼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필요할 때에 도와주지도 않았으니까.” … 코스차는 아이들에게 아주 엄한 도서부원이었다. 누가 더러운 손으로 책을 빌리러 오면 마구 화를 냈다. “부끄럽지도 않아? 손이 왜 그렇게 더럽니?” “으응, 좀 더럽지? 그런데 무슨 상관이야?” “무슨 상관이라니? 책 빌리러 온 거 아냐?” “맞아.” “그렇게 더러운 손으로 책을 빌려 가려고?” “그러면 안 돼?” “손을 깨끗이 씻고 빌리러 와야지. 그렇게 더러운 손으로 만지면 책이 더러워지잖아!” ..  (231, 277쪽)



  도시사람은 시골사람을 얼마나 이웃이나 동무로 여길까 헤아려 봅니다. 한국전력 공무원과 경찰과 전투경찰은 밀양 할매와 할배를 얼마나 이웃으나 동무로 여길까 생각해 봅니다. 4대강사업을 끝까지 밀어붙은 대통령과 공무원과 개발업자는 이 나라 사람들을 얼마나 이웃이나 동무로 여겼는지 곰곰이 짚어 봅니다. 전쟁무기를 자꾸 만들면서 군대를 크게 거느리는 정치권력자는 북녘을 얼마나 이웃이나 동무로 여길까 따져 봅니다.


  이웃끼리는 전쟁무기를 겨누지 않습니다. 이웃한테는 총이나 칼을 겨누지 않습니다. 이웃끼리는 탱크나 미사일을 겨누지 않습니다. 이웃한테는 핵무기를 겨누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어깨동무를 하면서 밥을 함께 먹습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입시지옥이나 경쟁이나 상업주의 같은 것을 만들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웁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슬기를 밝혀 즐거운 지구별로 가꿉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면 화석연료를 태우는 짓을 멈추고 모든 나라 모든 마을에서 밥·옷·집을 스스로 일구어 쓰레기 없는 맑고 싱그러운 터전을 짓습니다.


  ‘소비자’나 ‘상품 구매자’나 ‘고객’이나 ‘국민’이 아닌 ‘이웃’이라는 이름이 이 나라에 곱게 드리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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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작은 동네 작은 집에서 흙과 풀과 물을 사랑스레 만지면서 살림을 가꾼다. 할머니는 처음부터 할머니가 아니었다. 할머니는 먼저 어머니였고, 어머니로서 여러 아이를 낳아 돌보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처음부터 어머니가 아니었다. 어머니이기 앞서 아이였고, 이녁을 낳은 어머니와 이녁을 알뜰히 아낀 할머니가 있다. 아이들과, 이웃들과, 동무들과, 누구보다 한집 곁님과 살가이 사랑을 꿈꾸던 조그마한 할머니는 2007년에 《지는 꽃도 아름답다》(달팽이 펴냄)라는 책을 선보였다. 이제 2014년에 《내 뜰 가득 숨탄것들》을 선보인다. 아이이자 어머니이자 할머니이자 이 땅에서 목숨 얻어 숨결 잇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둘레를 찬찬히 바라본 이야기를 책 하나로 조촐하게 묶는다. 바로 이런 이야기가 ‘삶을 가꾸는 글쓰기’이고 ‘말을 가꾸는 이야기’라고 할 테지.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 


그나저나 알라딘에서는

<내 뜰 가득 숨탄것들>과 <지는 꽃도 아름답다>가 같은 분 책인데

두 책이 나란히 이어지지 않는다.

하루 빨리 두 책을 나란히 이어 놓기를 바란다.

'문영이' 작가 검색을 할 때에 두 책이 함께 떠야 한다.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내 뜰 가득 숨탄 것들- 한 우리말 지킴이의 삶의 뒤안길
문영이 지음 / 지식산업사 / 2014년 9월
12,000원 → 11,400원(5%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10월 15일에 저장

지는 꽃도 아름답다
문영이 지음 / 달팽이 / 2007년 6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2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10월 15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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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102. 마을순이, 마을돌이 (2014.9.25.)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늘 마음이 확 뚫린다고 느낀다. 이 마음이란 무엇일까.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삶터로 시골이 즐겁구나 싶어서 사는데,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터전일 때에 어버이도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는 뜻인가. 집은 얼마나 넓어야 할까. 마을은 얼마나 커야 할까. 마당에서만 잘 놀아도 시골순이와 시골돌이가 된다. 마을 고샅을 거리낌없이 달릴 수 있어도 마을순이와 마을돌이가 된다. 그렇지. 멀리 멀리 다른 마을까지 돌아다녀야 아름다운 나들이가 아니다. 바로 우리 마을에서 날마다 새롭게 들과 하늘을 바라보면서 활짝 웃을 때에 놀이가 되고 삶으로 뿌리를 내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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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0-15 13:25   좋아요 0 | URL
이 사진은 책 표지로 써도 훌륭할 것 같네요.

숲노래 2014-10-15 15: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모두들 어디에서나
눈부신 하늘과 푸른 들과 숲을
가슴에 담고 하루를 즐겁게 누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