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작사계》라고 하는 이쁜 책을 선물받아서 읽는다. 생각했던 대로 이 책에 깃든 글과 사진은 무척 곱다. 시골에서 나무를 만지며 살아가는 사람들 살림새도 참으로 곱다. 스스로 좋아할 삶을 찾아서 스스로 씩씩하게 한길을 걷기 때문에, 이 책을 빚은 사람들이 엮는 이야기는 우리한테 아름다운 노래가 될 만하다고 느낀다. 다만 한 가지는 자꾸 꺼림칙하다. 책이름과 짜임새는 ‘일본에서 흔히 나온 책’하고 너무 많이 닮는다. 요즈음 사람들은 영어이든 프랑스말이든 아무렇지 않게 쓰니, 중국말이건 일본말이건 일본 한자말이건 책이름에 붙이는 일이야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수작사계’라는 이름이야 그냥 스치듯 지나가도 된다. 그러나, 우리 집도 시골에 있고, 우리 집을 이루는 다섯 사람도 시골살이를 누리는 터라, ‘손으로 짓는 네 철’ 이야기를 ‘手作四季’로만 적는 일이란, ‘우리 숲’이나 ‘우리 나무’나 ‘우리 시골’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책에서 좀 동떨어진 모습이 되리라 본다. ‘우리 숲·나무·시골’ 이야기인데, 일본책과 일본말과 일본 한자말하고 너무 닮은 ‘手作四季’를 내세우는 책이름은 좀 생각할 노릇이 아닐는지 궁금하다. 책을 읽으면서 보니, 글쓴이와 곁님이 시골에서 누리는 삶은 “나무놀이”이다. 나무와 함께 하루를 즐겁게 논다. 즐겁게 놀듯이 일하기에 차츰차츰 살림이 편다. 두 어버이가 즐겁게 놀면서 웃기에 아이도 함께 놀면서 웃는 보금자리가 된다. 4347.10.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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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사계- 자급자족의 즐거움
김소연 지음 / 모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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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마실을 하면서 조그마한 인형을 다섯 얻는다. 이 인형을 하나에 이천 원씩 받고 판다 했다. 인형은 공장에서 척척 찍듯이 만들 수 없다. 인형은 모두 누군가 바느질이나 재봉질을 해야 만든다. 모두 손을 써서 천을 오리고, 속을 채우고, 무늬를 박고, 마감질을 해야 비로소 인형 하나가 나온다. 한 사람이 인형 하나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천값은 얼마나 들까. 조그마한 인형이지만 하나에 이천 원 받는 값은 얼마나 알맞을까. 요즈음, 이런 인형은 한국에서는 거의 안 만들고, 바다 건너 중국에서 만든다. 또는 중국보다 일삯을 적게 치러도 된다는 나라에서 만든다. 돌이켜 생각하면, 얼마 앞서까지 한국에서 이런 인형을 참으로 많이 만들었다. 다른 어느 곳보다 서울 청계천에서 이런 인형을 많이 만들었다. 옷이고 신이고 무엇이고, 한국에 있는 공장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이 일을 못 쉬게 하면서 온갖 물건을 뽑아내었다. 이런 모습을 놓고 누군가는 ‘경제개발’이나 ‘경제성장’이라 읊지만, 몸도 마음도 다칠 뿐 아니라 목숨까지 잃은 사람이 아주 많다. 한국에서 ‘저임금 노동착취 공장’이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버마나 인도 같은 곳으로 옮겼다고 하더라도, 지구별 곳곳에 ‘저임금 노동착취 공장’이 있다면 아픔이나 슬픔이나 생채기는 안 가셨다는 뜻이다. 게다가 한국에는 ‘이주노동자 착취’와 ‘이주노동자 푸대접과 따돌림’이 드세다. 만화책 《태일이》는 ‘지나간 어제’ 이야기가 아닌 ‘바로 오늘’ 이야기이다. 4347.10.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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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이 4- 노동자의 길
최호철 그림, 박태옥 글, 고래가그랬어 편집부 / 돌베개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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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빨강 창비청소년문학 2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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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39



청소년은 외롭지 않다

― 난 빨강

 박성우 글

 창비 펴냄, 2010.2.26.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시골에서 어버이를 거들어 흙을 일구는 씩씩한 푸름이를 찾아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이 같은 푸름이를 한둘쯤이라도 만나기는 대단히 힘들겠지요. 대학교를 마친 뒤 시골에서 흙일을 배우고 싶은 젊은이가 있더라도, 시골일을 익힐 만한 시골마을을 찾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견습 농사꾼’을 받아들일 만한 시골은 어디에 있을까요? 모심기와 벼베기부터 씨앗 갈무리와 씨뿌리기를 찬찬히 가르치면서 재워서 키울 만한 시골마을은 어디에 있을까요.


  곰곰이 살피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젊은 넋이 시골에 뿌리를 내려 시골일을 배우도록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푸른 넋이 흙을 만지며 자라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모든 푸름이와 젊은이가 도시에서 쳇바퀴를 돌도록 내몹니다. 어른도 아이도 회사원이 되거나 가게·공장 일꾼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는 길만 보여줍니다.



.. 여름방학이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왔다는 에리카와 에밀리와 카리와 캐서린 누나를 만났다 // 김치와 꽃게장과 청국장과 밴댕이젓에 하나같이 손을 대지 못하던 누나들은 고개만 절레절레, 한정식 밥상을 물렸다 허기졌을 배로 한옥마을 골목을 돌았고 은행나무 그늘에 들어 더위를 식혔다 ..  (한옥마을 일박)



  오늘날 아이들은 날마다 마시는 바람을 제대로 바라볼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날마다 바람을 마시면서도 바람맛을 안 느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바람맛을 가르칠 줄 모릅니다.


  우리는 바람을 모르고도 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바람을 배우지 않고도 살 만한지 궁금합니다. 대통령이나 운동선수는 바람을 익히지 않고도 삶을 꾸릴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바람 한 줄기를 마실 수 없다면, 대학교쯤은 아무것 아닙니다. 아파트나 자가용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바람 한 줄기 누릴 수 없다면, 아파트이고 자가용이고 대단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려면, 숨을 쉬어야 하고, 숨결을 보듬어야 하며, 숨소리를 나누어야 합니다.

  목숨을 서로 아끼고 보살필 때에 아름답습니다. 목숨에서 우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나눌 수 있을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목숨을 함께 지키고 가꾸면서 꿈을 키울 때에 즐겁습니다.



..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 피아노도 치고 싶고 / 시도 쓰고 싶다는 /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  (내 친구, 선미)



  박성우 님이 이 나라 푸름이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쓴 시를 묶은 《난 빨강》(창비,2010)을 읽습니다. 이 시집은 ‘청소년시’를 모았다고 합니다. ‘동시’와 ‘어른시’처럼 푸름이한테도 따로 ‘푸른시(청소년시)’가 있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이 나라 푸름이가 읽을 푸른시는 어떤 이야기를 담을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입시지옥을 다루면 될까요? 학원이 넘실거리는 모습을 다루면 될까요? 부부싸움과 이혼 같은 다툼을 다루면 될까요? 이성친구를 사귀거나 이성친구 살결을 주무르는 이야기를 다루면 될까요? 젖가슴이 볼록 나오거나 거웃이 돋는 모습을 다루면 될까요?


  어떤 이야기이든 모두 다룰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른으로서 푸른시를 쓴다면, 또 우리가 어른으로서 푸름이한테 시를 한 자락 들려주려고 한다면, 겉모습을 넘어서거나 아우르거나 품을 수 있는 마음결을 들려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푸름이 스스로 마음을 가꾸고 삶을 사랑하도록 돕는 꿈을 노래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 쉬는 시간마다 가출 계획을 짰다 / 가출 계획서를 작성하기에는 /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  (신나는 가출)



  청소년한테 들려주는 시라고 하는 《난 빨강》에서는 어떤 사랑을 보여줄까요? 어떤 꿈을 밝힐까요? 어떤 이야기와 어떤 노래와 어떤 웃음과 어떤 눈물을 알려줄까요?


  푸름이는 푸름이입니다.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닙니다. 푸름이는 푸름이입니다. 그리고, 푸름이는 사람입니다. 어린이도 사람이고, 어른도 사람입니다. 이리하여, 푸름이가 읽을 시이든, 어린이가 읽을 시이든, 어른이 읽을 시이든, 모든 시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가장 곱게 여미면서 아낄 사랑을 담고, 꿈을 그리며, 이야기를 짓는 얼거리로 환하게 피어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람이 짓는 글이고, 사람이 짓는 삶이며, 사람이 짓는 말이거든요.



.. 단짝 애들은 학원으로 몰려가고 / 나는 여느 때처럼 그냥 집으로 갔다 ..  (학원)



  청소년문학은 청소년만 누리는 문학이 아닙니다. 청소년부터 누리는 문학입니다. 청소년한테만 머무는 문학이 아니라, 청소년과 이웃한 어린이한테 손짓을 하는 문학이요, 청소년과 함께 지내는 수많은 어버이와 둘레 어른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문학입니다.


  청소년은 나이를 더 먹으면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성년식을 하거나 스무 살이 되거나 주민등록증을 받는대서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거나 술과 담배를 거리낌없이 누릴 수 있대서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어른이란, 철이 든 사람입니다. 어른이란, 철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른이란, 철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서른이나 마흔이라 하더라도 철이 들지 않으면 어른이 아닙니다. 어리광쟁이입니다. 나이가 쉰이나 예순이라 하더라도 철이 없으면 어른이 아닙니다. 이때에는 바보이거나 멍텅구리입니다. 나이가 일흔이거나 여든이라 하더라도 철을 알지 못하면 어른이 아닙니다. 어른이란, 철을 알아 슬기로운 넋으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입니다.



.. 쉬는 날 아침에 머리 좀 빗으면 / ―넌, 아침부터 머리만 빗냐 ..  (대체 왜 그러세요)



  박성우 님은 시집 《난 빨강》에서 어떤 철을 푸름이와 나누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박성우 님은 이 시집에서 푸름이한테 어떤 철을 보여주면서, 어떤 어른으로서 이 땅에서 씩씩하고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삶을 가꾸는가를 밝히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땅 푸름이는 외롭지 않습니다. 이 땅 어른들이 외롭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날이면 날마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서 쳇바퀴를 돕니다. 이 나라 어른들은 외로움에 목이 말라서 인터넷에 빠지고 손전화에 사로잡힙니다. 어린이와 푸름이는 어버이와 둘레 어른한세터 삶을 배우니, 언제나 다른 어른들이 늘 보여주는 대로, 이성친구 살결을 비비는 짓을 사랑으로 잘못 아는데다가, 인터넷과 손전화를 들락거리면서 노닥거려야 삶이 즐거운 줄 잘못 알고, 스무 살만 넘으면 술과 담배에 절면서 살아요.


  청소년문학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겉모습을 훑어서 이럭저럭 그럴듯하게 그리는 글은 청소년문학이 아닙니다. 이런 글은 문학이 아닌 관찰기, 이른바 ‘청소년 관찰기’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청소년문학을 일구어 푸름이와 함께 꿈을 꾸고 싶다면, 어른으로서 먼저 꿈을 꾸는 삶을 지어서, 즐겁게 빚은 사랑스러운 하루를 글로 담아서 보여주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푸념하지 마셔요. 아이들 앞에서 꿈을 꾸셔요. 아이들한테 돈을 주지 마셔요. 아이들한테 사랑을 주셔요.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에 몰아세우지 마셔요. 아이들을 두 팔을 벌려 포근히 안아 주셔요.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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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에 왔지



  이틀쯤 바깥일을 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찻삯이나 여관삯이 모자랐기에 하룻밤만 부산에서 보내고 고흥으로 돌아온다. 하룻밤만 바깥일을 보고 돌아오자면, 시외버스에서 무척 오래 엉덩이를 지지고 앉아야 하니 고단하기는 한데, 하루 만에 시골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새롭게 기운이 난다. 맑은 바람을 마시고 싱그러운 물을 누릴 수 있는 우리 보금자리가 즐겁기 때문이다.


  집에 닿아 선물꾸러미를 내려놓고 가방을 푼 뒤 비로소 씻는다. 시골집에서 온몸에 끼얹는 싱그러운 물맛과 물내음이란.


  고즈넉한 시골집 둘레에서 퍼지는 가을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는다. 두 아이는 밤이 깊어서야 똥을 눈다. 등허리가 결려 쉬고 싶지만 두 아이 똥을 치우고 밑을 닦는다. 조용하면서 살가운 바람이 분다. 집에 왔다. 4347.10.2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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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글쓰기



  나는 글 한 꼭지를 쓸 때에 몇 분이 걸리는가? 글감에 따라 다르지만, 글감보다는 내 마음에 따라 다르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한껏 그러모을 수 있으면, 원고지 열 장짜리 글을 10분에 쓸 수 있고, 원고지 30장짜리 글을 30분에 쓸 수 있다. 어느 날은 마음을 아주 힘껏 그러모아서 원고지 예순 장짜리 글을 30분에 쓰기도 합니다.


  부산 사상역에서 고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린다. 순천을 거쳐서 갈는지, 고흥으로 바로 갈는지 헤아린다. 13시 20분에 순천으로 가는 버스가 있고, 이 버스는 두 시간 반이 걸린단다. 13시 30분에 고흥으로 들어서는 버스가 있으며, 이 버스는 네 시간이 걸린단다. 순천에서 고흥까지는 한 시간이다. 그런데 왜 두 버스는 한 시간 반이 벌어질까? 두 버스 사이에 있는 20분은 무엇일까?


  버스삯은 500원쯤 벌어진다. 겨를은 20분이 생긴다. 나는 500원을 더 들여서 20분을 내 몫으로 삼기로 한다. 20분이라 하더라도 시외버스에서 덜 보내고 싶다. 20분 동안 내 마음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이야기꽃을 글 한 줄로 피우고 싶다.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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