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글 읽기

2014.10.12. 큰아이―알록달록 글씨



  글순이가 글씨를 알록달록 꾸민다. 여러 빛깔을 써서 글씨를 쓴다. 글씨마다 새 옷을 입은 듯이 환하다. 연필이 아닌 빛깔펜으로 글씨를 옮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아이들이 연필을 쥐어 글씨를 익힐 수 있지만, 이렇게 여러 빛깔로 글놀이를 해도 재미있겠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글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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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가출했다 힘찬문고 41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한기상 옮김, 최정인 그림 / 우리교육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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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18



어버이는 고스란히 물려준다

― 언니가 가출했다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글

 최정인 그림

 한기상 옮김

 우리교육 펴냄, 2007.1.19.



  어버이는 아이한테 고스란히 물려줍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즐거움도 물려주며, 아픔도 물려줍니다. 사랑도 물려주며, 슬픔도 물려줍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을까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무엇을 물려받고 싶을까요?


  주먹질이나 손찌검을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어버이는 얼마나 될까요? 주먹질이나 손찌검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고 싶은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입시지옥을 물려주고 싶은 어버이는 얼마나 되나요? 입시지옥을 물려받고 싶은 아이는 얼마나 되나요? 한편, 아파트를 물려주고 싶은 어버이는 얼마나 있지요? 아파트를 물려받고 싶은 아이는 얼마나 있지요?



.. 엄마는 몸을 돌려 언니에게 물었다. “그분들 지금은 조화 장미꽃 안 가지고 있니?” “관심 있으면 가서 직접 보시지 그래요!” … 언니는 죽은 모르모트를 안고 침대로 갔다. 그러고는 침대보 위에 눕혀 놓았다. 엄마는 책상 위에 서 있는 타트야나를 안아서 책상 의자에 앉히고는 피가 나는 손가락을 호호 불면서 중얼거렸다 … 저녁에 쿠르트 아저씨가 우리 방으로 왔다. 아저씨는 언니에게 모르모트를 새로 살 거냐고 물었다. “당신 아이들한테나 사 주시지요.” 언니는 아저씨에게 쏘아붙였다 ..  (9∼10, 21∼23, 24쪽)



  어릴 적부터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돈이 무척 많은 동무는 없었으나, 돈이 꽤 많은 동무는 있었습니다. 돈이 꽤 많은 동무는 그 아이가 바라는 장난감을 거의 다 장만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를 바라보면서 생각했어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도 저 아이네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돈이 많기를 바라나?


  아니더군요.


  우리 어머니도 밥을 잘 하시지만, 동무네 어머니 가운데 밥을 놀랍도록 잘 하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밥이나 반찬을 차려서 주시는 동무네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동무네 집에서 밥을 한 그릇 함께 먹으면서 생각했어요. 우리 어머니도 이런 밥과 반찬을 해 주기를 바라나? 우리 집에서 이런 것을 먹기를 바라나?


  아니더군요.


  내가 열네 살인가 열다섯 살에 우리 아버지가 처음으로 자가용을 장만합니다. 값이 비싸니 꽤 오랫동안 다달이 갚도록 하면서 장만합니다. 아버지는 네 식구를 태우고 두 시간 동안 마실을 다니기도 합니다. 동네에 자가용 있는 집이 얼마 없던 때인데, 아버지는 무척 자랑스레 여깁니다. 이때 나는 우리 집에 자가용이 있어 좋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더군요.



.. 언니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엄마가 모욕을 주듯 비웃으며 말했다. “먼저 우리 가족에 대한 약속과 의무부터 지켜 보지그래.” “도대체 내가 지켜야 할 의무가 뭔데요? 그리고 엄마가 말하는 가족이라는 건 누구를 얘기하는 거죠?” … 관리인 할머니는 타트야나의 머리 너머로 나를 째려보았다. 마치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사람이라도 되는 듯 쏘아보았다 … 할머니는 우물쭈물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쨌든 누가 거짓말한다는 걸 알아차리려면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해. 그리고 잘 돌봐 줘야만 하지.” ..  (39, 67, 81쪽)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돈이나 맛난 밥이나 자가용을 물려받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한테 돈이나 맛난 밥이나 자가용을 물려주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어버이한테서 오직 하나, 사랑을 물려받기를 바랐습니다. 예나 이제나 똑같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한테도 오직 하나, 사랑을 물려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과 함께 꿈을 물려받고 싶으며, 꿈을 물려주고 싶어요. 사랑과 꿈과 함께 이야기를 물려받고 싶으며, 이야기를 물려주고 싶어요. 사랑과 꿈과 이야기와 함께 숲집을 물려받고 싶으며, 숲집을 물려주고 싶어요.


  땅이나 집이 아닌 ‘숲집’입니다. 숲으로 이루어진 숲입니다. 숲을 이룬 집입니다. 넓거나 비싼 땅이나 집이 아닌, 숲으로 둘러싸인 집입니다. 언제나 아름답게 우거진 푸른 숲과 집입니다.



.. 나는 언니한테 여기에 남아 있어 달라고 말하려 했다. 안 그러면 난 완전히 혼자가 되니까 … “누나네 할머니 좋아? 누나네 할머니도 우리한테 할머니가 될 수 있어? 누나네 할머니도 할아버지 있어? 그 할아버지도 좋아?” 올리버가 물었다. 난 재채기를 했다. 그리고 계속 재채기를 하면서 몇 번이나 “그래, 그래.” 하고 대답했다 ..  (49, 153쪽)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님이 쓴 《언니가 가출했다》(우리교육,2007)를 읽습니다. 이녁은 이 작품을 1974년에 처음 선보였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마흔 해를 묵은 작품인데, 유럽에서도 마흔에 앞서까지 ‘가정폭력’과 ‘가정불화’가 대단했구나 싶습니다. 아마 오늘날에도 이러한 아픔과 슬픔은 모두 안 가셨지 싶습니다. 아이를 때리거나 다그치는 어버이가 많고, 아이를 괴롭히거나 윽박지르는 어버이가 많습니다. 게다가 학교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학교에서도 어른들은 아이를 다그치거나 윽박지르기 일쑤입니다. 요즈은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에서 아이를 때리는 일은 거의 수그러들었다 할 만하지만, 아이를 때리지 않아도 입시지옥이 있어요. 시험지옥이 있습니다. 여기에, 학원이 지옥처럼 도사립니다. 아이들은 마음 놓고 놀지 못하고, 아이들은 동무와 사이좋게 지내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열대여섯 살쯤 된다면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드디어 몸으로 옮길 만합니다. 그러면, 열대여섯 살짜리 아이는 집을 나가서 어디로 갈 만할까요? 우리 사회는 ‘집을 나간 아이’를 받아들일 만큼 너그럽거나 넉넉하거나 포근할까요? 현대 도시문명 사회는 모든 사람을 옥죄거나 윽박지르기에, 여느 집 어버이조차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때리지 않을까요?


  아이를 때리는 어버이도 마음에 생채기가 있습니다. 어버이부터 스스로 생채기를 다스리지 못했으니 아이를 낳아도 사랑으로 보살피지 못합니다. 어버이부터 삶을 새롭게 찾아야 합니다. 즐거운 삶이 되어야 하고, 아름다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즐겁지도 못하고 아름답지도 못한 하루라면, 이러한 굴레에 갇힌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자리를 찾거나 셋집을 찾으면서 집을 나가는 삶이 아닌, 스스로 꿈을 세워서 가꿀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야기책 《언니가 가출했다》에서 ‘언니’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데, ‘언니’가 집으로 돌아온들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언니네 어머니도, 언니네 새아버지도, 언니네 새할머니도 모두 예전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이제 언니에 이어 동생도 머잖아 집을 나가겠지요. 머잖아 집을 나간 뒤 두 번 다시 그 집에 돌아가지 않겠지요. 사랑이 없는 집에서 뛰쳐나가겠지요.


  그런데, 사랑이 없는 집에서 뛰쳐나온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된 ‘사랑 없이 자란 아이’가 아이를 낳을 적에는 어떤 삶이 흐를까요. 예전과 똑같은 가정폭력과 가정불화일까요, 아니면 이 아이들은 슬기롭게 거듭나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가꿀까요? 이야기책 《언니가 가출했다》에서는 이 대목을 못 건드립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책에서는 이 대목을 못 살폈다거나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거나 이 대목까지 마음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는지 모릅니다. 4347.10.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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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34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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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4



삶을 배우는 길

― 천재 유교수의 생활 34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학산문화사 펴냄, 2013.11.25.



  밥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은 무척 즐겁습니다. 밥 한 그릇을 베풀 수 있으니까요. 배고픈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함께 먹고, 배고픈 이웃이 있으면 밥 한 그릇 덜어서 함께 나눕니다. 가만히 앉아서 밥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매우 즐겁습니다. 살붙이나 이웃이 지은 사랑을 고맙게 받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내 살붙이나 이웃은 사랑을 베풀 사람이 있어 즐겁고, 나는 내 살붙이나 이웃한테서 사랑을 받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쌀을 씻어 불립니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놀고, 도란도란 오순도순 온갖 놀이를 아침부터 누리고 싶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노는 아이들은 곧 배가 고플 테며, 아이들이 배고프다는 소리가 나올 즈음 천천히 밥을 지으면, 아이들은 밥 익는 냄새를 맡고는 더 신나게 놉니다.


  밥은 입으로 먹어도 배가 부르지만, 밥내음을 코로 맡아도 즐겁습니다. 우리는 입으로 밥을 씹어서 먹는 한편, 코와 살갗으로 밥기운을 맞아들이면서 새롭게 기운을 내는구나 싶어요. 그러니, 햇볕을 쬐면서 뿌듯하고 즐겁습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개운하며 기쁩니다.





- ‘나는 지금, 무척 동요하고 있다. 중증이 아니라는 설명을 그토록 듣고 왔는데도, 나는 어쩌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내 연구에 언젠가 끝이 온다는 것을, 나는 몰랐던 게 아닐까?’ (13쪽)

- ‘그렇다. 수많은 인생계획을 생각했지만, 우선순위는 뻔하지 않은가. 처음에 떠올린 것은 아내의 얼굴이 아니었나. 오늘 이날도 마치 그날처럼.ㅣ 나는 앞으로도 변함없는 하루하루를 살 것이다.’ (25쪽)



  아직 내 몸에 힘이 크게 솟지 않으면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너덧 살 아이가 제 신을 스스로 복복 비벼서 빨기란 수월하지 않습니다. 대여섯 살 아이가 제 옷가지를 스스로 복복 비벼서 빨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무렵에는 어른이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합니다.


  아이들이 차츰차츰 자라면서 몸과 손에 힘이 붙으면, 이제 스스로 신을 빨고 옷가지를 복복 비빌 수 있습니다. 스스로 이를 닦고, 스스로 손발을 씻습니다. 스스로 걸레를 빨아서, 스스로 방바닥을 훔칩니다.


  어른이 스스로 즐겁게 방바닥을 훔치면, 아이들은 이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이러다가 어느 날 스스로 걸레를 빨아 보고, 물을 짜 보며, ‘아이인 탓에 물을 덜 짠 물걸레’로 방바닥을 물바다로 만듭니다.


  내 어릴 적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내가 방바닥이나 마룻바닥을 물바다로 만들었을 적에, 어머니는 “이리 줘 봐.” 하면서 걸레를 비틀어 물을 죽죽 짰습니다. 물기를 쪽쪽 빼낸 걸레를 건네셨어요.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다음에는 물기를 짜려고 악착같이 용을 씁니다. 어려서 물기짜기가 도무지 안 되겠다 싶으면, 젖은걸레로 한 차례 닦은 뒤 마른걸레로 다시 닦습니다.





- ‘그도 나쁜 뜻은 없었을 테고, 그의 개성으로서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경영자로서는 다소 문제가 있다. 그는, 실패할 만했기에 실패한 것이 아닐까? 나는 쿠루스 군의 실패를, 음미하고 있나?’ (52쪽)

- “아무리 우여도 아빠는 몰라. 그러니까 언니야가 엄마 해 주께. 아빤 공부할 땐 아무 쓰모가 없쪄. 엄마가 그랬거든? 아빤 언제나 ‘공부’란 놀이만 하고, 힘들고 지저분한 건 다아 내 차지라고. 다아 나한테만 떠맡겨서 힘드여 주께쩌.” (71∼72쪽)



  나는 즐겁게 걷습니다. 먼 길이건 안 먼 길이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냥 걷습니다. 두 시간이나 서너 시간이 걸리는 길도 그냥 걷습니다. 그냥 걸어 봅니다. 한참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좀 멀다 싶은 길을 걸으려 했네 하고 생각합니다. 어디 마땅한 곳을 찾아 앉습니다. 다리를 쉬면서 바람을 마십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동네를 살핍니다. 다리를 툭툭 두들긴 뒤 일어나 다시 걷습니다. 걷고 걸으며 또 걸어서 드디어 내가 가려는 곳에 닿습니다.


  여덟 살 적 일을 떠올립니다. 나는 여덟 살 적부터 그예 씩씩하게 걸었습니다. 혼자 학교까지 걸었습니다. 학교에서 다시 집까지 걸었습니다. 이무렵, 나와 함께 그 길을 걸어서 다닌 동무는 없습니다. 모두 버스를 타고 그만 한 길을 다녔어요. 중학교 적에도 고등학교 적에도 똑같습니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즈음 걸어서 학교를 다닌 동무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함께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거나 하늘바라기를 할 만한 동무는 좀처럼 못 만납니다.


  걸음동무는 사귀지 못했지만, 혼자 오랫동안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오직 내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오로지 내 생각에 젖어듭니다. 이제껏 내가 걸은 길을 헤아리고, 앞으로 내가 걸을 길을 돌아봅니다. 어제까지 내가 걸은 길을 되짚고, 오늘부터 내가 걸을 길을 톺아봅니다.





- “이츠코는 어떻게 이런 걸 잘하게 됐지?” “아빤 좀 가만 있어요.” “미안하다. 계속하거라.” (79쪽)

- ‘나는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무것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늘 눈여겨보던 이츠코는, 내가 모르는 사이 놀랄 만큼 자라 있었다. 이 순간의 감동을 기록하고 싶다. 가족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 (82∼83쪽)

- “당신 그럼, 밤엔 이츠코한테만 맡겼다고요?” “응?” “그런 갓난쟁이를? 애가 밤새 콜콜 잠만 자는 줄 알아요? 난쟁이 요정이 밤마다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 줬을 리도 없는데, 밤엔 애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88쪽)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13) 서른넷째 책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유택 교수는 언제나 삶을 배웁니다. 언제나 삶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생각을 기울이고, 생각을 기울인 끝에 스스로 즐겁게 배웁니다.


  다만, 유택 교수는 혼자 생각해서 혼자 배울 뿐, 좀처럼 이 슬기와 즐거움을 둘레에 나누어 주지 못해요.


  이러던 어느 날, 유택 교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줄 깨닫습니다. 그러나, ‘죽음 뒤 인생설계’는 생각하면서도 정작 ‘유택 교수 곁에 있는 사람과 나눌 이야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고 갈고닦아서 ‘옳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이 기쁨을 이야기꽃으로 펼치지 못해요.





- “내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어쩌면 새로 사귀는 친구들 중에는, 손 한 번 잡을 일 없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구나.” (122쪽)

- “너는 참 이유도 많구나. 벚꽃을 보면, 나는 네 어머니가 생각난다. 오오, 벚꽃처럼 덧없고 아름다운 나의 추억이여. 오오, 신이여!” (168쪽)

- “유택이는 감정이 없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아요. 나는 저 아이가 웃는 얼굴을 자주 보거든요.” “그런가? 그렇다면 좋겠지만.” (185쪽)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유택 교수네 아버지는 이 대목을 날카롭게 짚습니다. ‘내 아들’이면서도 이런 모습이 참으로 못마땅하다고 말하지요. 그리고, 아들인 유택 교수는 이런 아버지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참말 그렇지요. 유택 교수는 아직 배울 것이 많습니다. 배울 것이 많다는 얘기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유택 교수는 새롭게 배울 생각을 하면서 참말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데, 새롭게 배우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이웃하고 나누는 일에서는 퍽 어리숙합니다. 어릴 적 유택 교수네 어머니가 어린 유택한테 들려주던 이야기도 ‘유택 교수가 손녀를 본 나이’가 되어서야 어렴풋하게 헤아릴 뿐입니다.



- ‘어머니와 벚꽃을 보던 시절, 앞으로 몇 번이나 이렇게 벚꽃을 볼 수 있을지는 생각한 적도 없었다. 봄이 매년 오는 것이 당연하던 그 시절, 벚꽃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 (187쪽)



  예순 줄 나이를 한참 넘겨서야 벚꽃을 벚꽃 그대로 바라본 유택 교수입니다. 유택 교수는 아기 기저귀를 갈 줄조차 몰랐습니다. 유택 교수는 밥짓기도 못하고, 집살림은 영 할 줄 모릅니다. 생각조차 하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으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유택 교수는 스스로 쳐다보고 생각한 것만 스스로 깨닫습니다. 스스로 쳐다보지 않은 것은 아예 유택 교수 마음에 없고, 마음에 없는 것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떻게 되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앞으로 유택 교수는 이녁 삶에서 무엇을 더 바라보고 새롭게 배우면 즐거울까요? 집 바깥에서 다른 삶을 바라보고 배워야 할까요? 아니면, 유택 교수 스스로 ‘맨 먼저 떠올리는 곁님 얼굴’처럼, 곁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는가 하는 대목을 서로 조곤조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내 마음에서 바라볼 것’을 바라보면서 배울까요?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배웁니다. 우리는 늘 배웁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배웁니다. 마음을 열면 다 보이고, 마음을 열 때에 다 깨닫습니다. 4347.10.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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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67. 그저 홀가분하게 놀듯이



  사진을 찍을 적에는 그저 홀가분하게 놀듯이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다른 어느 것에도 얽히거나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놀 적에 어떤 마음이거나 몸가짐인지 가만히 헤아리면서, 사진 찍는 매무새를 다스립니다.


  나는 브레송이나 살가도처럼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나는 쿠델카나 카파처럼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나 저런 사람처럼 사진을 찍을 까닭이 없습니다. 나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나답게 사진을 찍습니다.


  훌륭하거나 멋지거나 아름답게 사진을 찍은 이웃이 있으면, 사진이웃이 빚은 훌륭하거나 멋지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한껏 누려요.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선 이곳에서 오늘 마주할 즐거우면서 기쁜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내 사진이 ‘내 사진’이 되려면, 내 사진을 언제나 나답게 찍어야 합니다. 내가 찍은 사진에서 ‘쿠델카스러움’이나 ‘브레송다움’이 드러난다면, 이 사진은 누가 찍은 누구 사진이 될까요?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흉내낼 까닭은 하나도 없어요.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에서 배울 수는 있으나, 배움이란 따라하기나 흉내내기가 아닙니다. 배움이란 ‘사진을 찍는 넋과 슬기와 사랑과 꿈’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일입니다.


  그저 홀가분하게 놀듯이 사진을 찍습니다. 노는 아이들을 눈여겨보셔요. 어떤 아이도 다른 아이를 흉내내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는 저마다 다르게 놉니다. 잘 달리는 아이가 있고, 걸음이 느린 아이가 있습니다. 걸음이 느리거나 몸이 굼떠서 자꾸 술래가 되는 아이가 있을 테지요. 술래가 되면 어떨까요? 서운할까요? 아닙니다. 술래가 되면 그저 술래가 될 뿐입니다. 술래가 되든 술래에서 벗어나든 아랑곳할 일이 없어요. 왜냐하면 아이는 그저 신나게 ‘놀이’를 한껏 누리거든요.


  노는 아이는 놀이를 누려야 합니다. 사진을 찍는 나는 내 사진을 누려야 합니다. 내 삶을 바라보셔요. 내 삶을 읽으셔요. 내 삶을 생각하고, 내 삶을 사랑하셔요. 그러면, 사진은 저절로 곱다라니 태어납니다. 4347.10.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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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66. 사진에 함께 깃들어



  어떤 마음으로 밥을 짓느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집니다. 즐겁게 노래하면서 밥을 지으면 밥맛에 즐거운 노래가 깃듭니다. 고단하게 억지로 밥을 지으면 고단하며 억지스러운 숨결이 깃듭니다. 어떤 밥을 먹고 싶은가 하고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맛나면서 즐겁게 먹고 싶은지, 고단하면서 아무렇게나 배만 채우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느냐에 따라 글넋이 달라집니다. 기쁘게 꿈을 꾸면서 글을 쓰면 글줄마다 기쁜 꿈노래가 흐릅니다. 돈을 벌 마음으로 꾸역꾸역 글잣수를 채우면 겉보기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글줄이라 하더라도 이웃을 따사로이 보듬는 기운은 조금도 안 깃듭니다.


  어떤 마음으로 사진기를 손에 쥐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장비를 손에 쥐든 다 똑같습니다. 장비가 더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맑지 못하면 사진이 흐릿합니다. 값비싼 장비를 손에 넣었어도 마음이 착하지 못하거나 참답지 않다면 사진이 어설프거나 어리숙하기 마련입니다.


  즐겁게 마음을 북돋아 밥을 짓듯이, 즐겁게 마음을 가꾸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기쁘게 마음을 살찌워 글을 쓰듯이, 기쁘게 마음을 돌보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에 함께 깃드는 기운을 살핍니다. 사진에 함께 깃들 사랑을 헤아립니다. 사진은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모습이나 기록이나 그림’이 아닙니다. 사진은 너와 내가 함께 가꾸는 즐거운 사랑이요 꿈이며 노래입니다. 4347.10.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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