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가난한 책읽기
새벽일·새벽배송 (신문배달부도 노동자냐?)
벌써 스물다섯 해가 흐른 지난일인데 ‘새벽일(새벽배송)’과 얽힌 이야기를 들으면 떠오르는 한마디가 있다. ‘ㄱ노동자문학회’라는 자리에서 ‘ㅂ시인’이 나한테 뱉은 “뭐? 신문배달부도 노동자냐?”라는 한마디인데, ‘노동문학 = 공장문학’이라고만 여기는 마음에서 가볍게 터져나온 말이다. ㅂ시인이 그러더라. 신문배달부도 우유배달부도 가정주부도 ‘구멍가게 할매할배’도 노동자가 아니라고.
요사이는 달라졌다고 할 테지만, ‘새벽일’을 하는 신문배달부나 우유배달부나 청소부를 ‘일꾼(노동자)’으로 안 치던 땀글(노동문학)이다. 나는 이 한마디를 듣고서 땀글에 등돌리지는 않았으나, 그 뒤로 만난 땀글꾼(노동문학가)은 하나같이 ‘공장노동자’였을 뿐, 온나라 작은일꾼은 없다시피 했다. 또한 ‘살림꾼(가사노동자·가정주부)’도 일꾼(노동자)으로 치지 않던 그들 목소리에 진저리가 나기도 했다. 다만, 요사이는 집안일도 ‘일(노동)’로 여기는 듯하지만, 정작 집안일을 하는 숱한 살림꾼한테 밑일삯(기본소득)을 베풀자고 외치는 목소리는 아직 들은 바 없다.
시골에는 새벽길(새벽배송)이 없다. 시골은 낮이고 아침이고 저녁이고 길이 훤하다. 읍내라면 아침저녁으로 ‘큰고장에서 시골로 오가는 쇳덩이(출퇴근 자가용)’가 살짝 붐빌 때가 있지만, 이즈음에 나름이(택배노동)로 뛰는 분은 드물다. 시골에서는 아침저녁 1시간만 비끼면 하루 내내 모든 길이 느긋하다.
시골에는 새뜸(신문)을 새벽이 아닌 낮나절에 받게 마련이다. 서울과 큰고장은 새뜸을 이른새벽에 받는다. 일찍부터 신문배달부와 우유배달부는 ‘새벽일꾼’이다. 이른바 ‘농수산물 경매시장’이 열리기 앞서부터 새벽을 열면서 땀흘린 사람이 신문배달부와 우유배달부와 청소부이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나로서는 ‘새벽길(새벽배송)’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데, 곰곰이 보면, 서울과 큰고장에서는 낮길(낮배송)보다 새벽길이 낫다고 느낀다. 서울과 큰고장은 낮에 얼마나 막히는가? 게다가 낮에는 웬만하면 바깥일을 하느라 집을 비우지 않는가? 서울과 큰고장은 새벽길을 바탕으로 낮에도 따로 하면 될 노릇이라고 본다.
나라에서 ‘새벽길 안 됨(새벽배송 금지)’이라고 못박는다면, 이미 01∼06시에 땀흘리는 신문배달부와 우유배달부는 어찌해야 할까? 설마 나름이(택배기사)만 새벽에 땀흘린다고 여기지는 않겠지? 어쩌면 아직도 민주노총 사람들 눈에는 오래도록 새벽일을 해온 숱한 사람이 아예 안 보일 수 있고, 새벽일을 하는 숱한 사람은 일꾼(노동자)이 아니라고 볼는지 모른다. (모르는 분이 많아서 덧붙이자면, ‘신문값’에는 ‘배달비’가 미리 붙는다)
우리 몸은 02∼04시 사이에 가장 맑고 빛난다. 01시나 05시에도 맑고 빛난다. 다만 저녁 20∼21시에 일찍 자고서 01∼03시에 하루를 열어야 몸과 마음이 나란히 빛난다. 모든 불을 다 끄고서 저녁과 한밤(00시)을 지내며 새벽에 하루를 여는 사람은 스스로 튼튼하다. 이미 시골에서 논밭지기는 다들 03시면 하루를 연다. 시골에서 논밭일을 하면서 04시에 일어나면 게으르거나 철없다고 여긴다. 바지런한 시골 논밭지기는 02시부터 하루를 연다. 나는 글쓰는 사람이되, 어릴적부터 신문배달부로 일한 버릇이 들어서, 푸름이 무렵에는 04시 즈음에 일어났고, 스무 살 무렵부터는 02시에 하루를 열며 서른 해 넘게 지낸다. 아이를 둘 낳아서 돌보는 동안에도 언제나 아이랑 저녁에 일찍 눕고서 이른새벽에 일어나서 집안일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하기에 몸이 망가질 까닭이 없다. 쉼날을 제대로 안 두고서 돌리니까 몸이 망가진다. 새벽일을 하는 사람한테 저녁일까지 시키니 몸이 망가진다. 새벽일을 하는 사람이 아침과 낮과 저녁에는 포근히 쉴 뿐 아니라, 쉼날을 제대로 세우는 틀을 짜야 ‘길(법·노동자보호법)’이다. 또한 ‘새벽길 안 됨’이라고 못박는다면, 시골 논밭에서 이미 02∼03시부터 논일과 밭일을 하는 일꾼은 어쩌려는 셈인가? ‘농사꾼’은 ‘노동자’가 아니니 안 쳐다봐도 되는가?
나는 5월 1일을 ‘노동절’로 이름을 바꾸는 일도 못마땅하다. ‘노동자’라는 이름에는 ‘농사꾼’은 아예 안 들어가거든. 그렇다면 ‘농사절’이 있는가? 없다. 집살림을 맡는 살림꾼을 기리는 ‘가사절’이 있는가? 없다. 5월 1일을 제대로 기리려면 ‘노동’이 아니라 ‘일’이라는 우리말을 쓸 노릇이다. ‘일꽃날’이나 ‘일빛날’처럼 담아내면서 어린이와 푸름이 곁으로 다가서려는 마음을 틔워야 한다. 일을 하자. 일 좀 제대로 하자. 2025.11.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