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따로 자기

 


  다른 집 아이들 볼 적에 ‘열 살까지는 아기인걸요.’ 하고 말하면서도, 막상 우리 집 아이들한테는 너무 까다롭게 구는 아버지 아닌가 하고 자꾸 돌아본다. 오늘 낮에 큰아이가 아버지 속썩이는 짓을 자꾸 하기에 그만 아버지는 혼자 토라져서 저녁을 안 차려 주고, 큰아이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으며, 말도 섞지 않는다. 큰아이가 까치걸음으로 살금살금 다가와 아버지한테 미안하다 말하려 하는 줄 뻔히 느꼈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하기도 했다. 그래, 너희가 아버지 없이 얼마나 잘 놀고 먹는지 지켜보자고, 하는 생각으로 저녁 아홉 시에는 아예 이불 뒤집어쓰고 드러눕는다. 이래저래 집일 도맡으면서 바깥일까지 도맡으니 몸이 많이 고단하기도 해서 오늘은 자리에 드러눕자마자 등허리가 아이고 소리를 낸다. 온몸 뼈가 으드득으드득 결린다.


  어머니 곁에 달라붙어 어머니 공부를 헤살 놓는 아이들을 느낀다. 어머니가 공부 못하게 헤살 놓는 짓을 그치게 할까 하다가, 나 스스로 아이들하고 오늘은 말 안 섞고 잠들기로 했다는 다짐을 떠올린다. 너희가 언제까지 졸음을 견디며 안 자는가 두고보자고, 아니 지켜보자고 생각한다. 얘들아, 아버지가 너희한테 토라지고, 너희가 아버지를 미워하면 어떻게 살아갈 만하겠느냐. 잘 알아두라고. 너희가 아직 아기이지만, 너희는 모르는 것이 없어. 모두 안단 말이야. 너희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생각해. 아버지가 차려 주니까 먹는 밥은 아니야. 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이 아니어도 너희는 끼니를 채울 수 있어. 그런데, 밥은 끼니채우기가 아니야. 밥은 늘 사랑이 감돌며 누리는 아름다운 빛이야. 생각하라고. 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이니 고맙게 먹는 밥이 아니라, 이 땅에서 고운 숨결들이 푸른 넋으로 이 밥상에 깃들어 우리들이 새로운 마음과 몸으로 기운을 얻을 수 있는 줄 느끼라고.


  큰아이가 졸린데 아버지 눈치 보느라 잠을 못 자는구나 싶어, 얇은 이불 한 장만 들고 옆방으로 옮겨 눕는다. 웬만하면 토라지며 부아를 내고 싶지 않으나, 오늘은 내 마음이 견디지 못한다. 큰아이는 아버지가 잠자는방에 없는 줄 느끼고는 밤 열두 시가 되어서 비로소 드러눕는다. 더는 버티지 못하겠지. 더는 졸음을 참지 못하겠지. 어쩌겠니. 배가 고프면 먹고, 쉬가 마려우면 누고, 졸리면 자야지. 어쩌겠니. 심심하면 놀고, 기운차면 공부도 하고, 재미나면 웃고, 즐거우면 노래하고, 기쁘면 춤추고, 신나면 방방 뛰어야지. 어떻게 꾹 누르면서 살아갈 수 있겠니. 답답하면 말하고, 갑갑하면 뛰쳐나가고, 슬프면 울고, 터무니없으면 싸워야지.


  너희 아버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너희와 함께 복닥이느라, 이동안에는 참말 글조각 하나 붙잡을 겨를이 없다. 너희 아버지는 너희가 아주 깊이 잠든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서 너희들 쉬를 누이고 글쓰기를 한다. 그러니, 여태껏 새벽 두어 시부터, 때로는 밤 열두 시나 한 시부터 너희하고 따로 잔 셈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큰아이 네가 여섯 살이 되도록 한 번도 따로 잔 적이 없는데, 아버지가 부아를 풀지 못해 따로 잔다. 십일월 육일이 아버지한테는 무언가 쓰디쓰게 깊이 아프도록 남은 날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너희와 따로 잔 첫날이 되는구나. 문득 생각하니, 너희가 아직 이 땅에 태어나기 앞서인 1995년 십일월 육일에 네 아버지가 군대에 끌려갔구나. 오늘은 아침부터 어쩐지 많이 찜찜했는데, 참말 해마다 이날이 되면 무언가 찜찜해서 뒤숭숭했는데, 네 아버지가 강원도 양구군 비무장지대 맨 안쪽, 지도로 보면 남녘땅 아닌 북녘땅에서 군대살이를 하도록 끌려간 첫날이 오늘이었구나. 지난날 겪은 일이 몸에 깊이 아로새겨진 탓인지 아침부터 꿀꿀했고, 이 느낌을 떨치지 못해, 따스하거나 슬기롭지 못한 몸과 마음으로 너희하고 마주했구나 싶다. 네 아버지부터 이런 바보스러운 옛일은 살포시 씻도록 해야겠다.


  이제 이 고단한 날이 지나간다. 아무쪼록 새근새근 잘 자고, 이튿날 아침에는 다른 날보다 더 길게 자고 일어나기를 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롭고 밝은 날이 될 테니까.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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